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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81화 (18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8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81화

181화

* * *

마족 로바크는 사교도들이 의식을 진행하는 건물에 발을 디디며 인상을 구겼다.

마족으로서 인간들에 대해 원한을 가지는 건 당연했지만 로바크가 인상을 구긴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더러운 것들.’

동족을 제물로 삼는 이 잔혹한 사교도에 빠지는 인간들은 대부분 시궁창과 다름없는 인생을 사는 하위 계층이었다.

예의가 없는 건 당연하고 몰골 역시 대부분 영 좋지 않았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이들이라고 해봐야 도적질이나 하고 다니는 패잔병 출신이었고.

“신의 사자를 뵙습니다!”

그때 로바크의 앞으로 제사장이 나타났다.

로바크는 자신에게 허리를 숙인 제사장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나름대로 수천이나 되는 사교도를 이끄는 위치였지만 제 동족의 심장을 뜯어 먹는 만큼 그의 몰골 역시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말 피곤하군. 복수만 아니면 이딴 놈들하고는 상종하지 않을 텐데.’

로바크는 제사장을 보자마자 피로해짐을 느꼈다.

다른 것들은 애써 무시라도 하겠지만 제사장과는 반드시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사교도를 부흥시키고 그 세력을 모으라는 게 아스카의 명령이었으니까.

‘왜 하필 나야?’

로바크는 아스카의 명령을 따르는 게 그리 내키지 않았다.

기존의 마족 잔당들의 집단이었던 크로노스는 베이브라는 우두머리가 있을지언정 수평적인 성향의 조직이었다.

하지만 아스카의 부활 이후로는 달라졌다.

베이브는 우두머리로서 권리를 잃었고 마족들은 모두 아스카의 명령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인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확고한 목표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런 일이 달갑지는 않았다.

“이곳에는 신도가 몇 명이나 있지?”

“신도들의 숫자는 모두 2,132명입니다.”

“2천이라.”

로바크는 주변에 모인 사교도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그게 전부냐?”

“송구합니다! 각국 영주들의 감시망을 피하다 보니 확장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로바크의 시선에 주눅이 들었다.

그 역시 나름대로 열심히 사교도를 늘리려고 노력은 했었다.

하지만 사교도가 마족과 엮였다는 소식이 퍼진 뒤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신도들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영주들이 사교도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로스니아 제국이 전쟁을 시작한 이후로는 조금 잠잠해졌지만 이는 최근의 일이었다.

“내가 그딴 변명을 듣고 싶은 줄 알아?”

로바크는 제사장을 나무랐다.

제사장의 성과가 시원찮은 걸 빌미 삼아 아스카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 셈이었다.

다니엘은 로바크에게 혼나는 제사장을 지켜보며 눈을 빛냈다.

마족들과 사교도의 유착 관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마족이 이 자리에 직접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큰 소득이군.’

아인은 아인츠발트 덕분에 마족들의 아지트가 어딘지는 알았지만, 그 장소를 노릴 계획은 전혀 구상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아지트가 노출된 걸 안 이상 이를 옮기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괜히 아지트를 노리다가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기에 아인은 아지트에 대한 접근을 불허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다른 곳에서 마족이 목격된 것이다.

본래 임무는 아스카의 불사에 대한 단서를 모으는 것이지만 근황을 파악하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었다.

‘가서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지만.’

다니엘은 로바크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사교도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신의 사자시여! 부디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저희에게 신의 구원을 내려주소서!”

제사장이 마족에게 갈굼을 받는 상황에서도 사교도들은 눈치 없이 로바크에게 다가갔다.

눈앞에 직접 신의 사자가 나타나자 눈이 뒤집어진 것이다.

로바크는 느닷없이 달려드는 군중들을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이 하찮은 것들이!”

로바크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신도들을 향해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이에 가장 가까이에 다가갔던 신도는 목에서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신의 사자님!”

신도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던 사제장은 급하게 로바크를 말리기 시작했다.

사교도의 숫자를 늘리라고 지시한 건 다름 아닌 그들의 신인 아스카였다.

“이렇게 의식도 없이 죽이시면 어떡합니까? 신께서 바라시는 건 가능한 많은 신자들을 모으는 것인데!”

“그러면 네놈이 더 분발해라!”

사제장의 항의에 로바크는 인상을 찡그렸다.

땟국물이 좔좔 흐르는 더러운 인간의 손이 자신에게 닿을 뻔했다.

로바크로서는 도저히 참기 힘든 일이었다.

설령 아스카에게 혼이 나더라도.

“후우, 애초에 이런 일 자체가 나한테는 안 맞았어.”

로바크는 아지트에서 대기하고 있을 동족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술이나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사제장은 기운 없는 얼굴로 로바크의 명령에 따라 고급술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를 한 모금 넘긴 로바크는 바로 술병을 내던졌다.

“술맛이 뭐 이따위냐? 내가 분명 좋은 술로 준비하라고 했을 텐데? 내 말을 우습게 들은 것이냐?”

“절대 아닙니다! 그건 이 근방에서는 알아주는 명주입니다.”

“저딴 게 명주라고?”

로바크를 비롯해 마족의 잔당은 인류와의 전쟁이 있기 전에도 상당한 힘과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로바크에게 변방에서 알아주는 술 따위는 입에 댈 가치도 없었다.

“네놈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어찌 신의 사자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아니면 제대로 된 술을 가져와라!”

로바크는 행패를 부린 뒤 몸을 돌렸다.

다니엘은 멀어져 가는 로바크의 모습을 보며 저게 마족인지 양아치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 * *

그 뒤로 한 주가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사교도 활동에 참가하고 있던 다니엘은 유독 어수선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 있나?”

다니엘은 일부러 친분을 다진 사교도에게 질문했고, 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대답했다.

“아, 아까 신의 사자께서 다녀가셨어. 그런데 사제장님께 불경하다며 강단을 뒤집었지 뭐야?”

사교도는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평소 사제장이 연설하던 강단에 있던 장식품 몇 개가 박살 난 채로 버려져 있었다.

다니엘은 그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마족들은 전쟁에서 인류가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공포와 같은 존재였다.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 능력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마법의 재능.

그리고 철저하게 무력을 통해 상대를 짓밟는 잔혹함까지.

하지만 지금 보여주는 로바크란 마족의 모습은 삼류 양아치와 다를 게 없었다.

‘한꺼풀을 벗기고 보면 다 이런 건가?’

귀족이고 평민이고 하류층이고.

껍데기를 벗기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다니엘은 이미 예전부터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족마저 그렇단 것은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너무 막연하게 두려워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다니엘이 아는 마족은 오차드와 말릭, 둘뿐이었다.

한쪽은 홀로 1천의 인간 군대를 조종했으며 다른 한쪽은 요새를 일으키거나 죽어도 부활하는 기이한 힘을 보였다.

그렇다고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다니엘은 내심 마족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런 힘을 빼고 보면 마족의 정신적인 수준은 그리 뛰어날 게 없었다.

‘하긴 애초에 그런 존재가 여럿인 게 이상하지.’

다니엘은 유일하게 예외적인 존재로 아인을 떠올렸다.

겉만 화려하게 치장한 게 아니라 속이 검고 깊은 진짜배기 귀족.

아인은 남들의 위에 서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기존과 다른 파격적인 행사를 선보였다.

그런 괴짜 같은 파격을 보이는 이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 결말은 좋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파격은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행태였으니까.

그러나 아인은 결과를 통해서 자신을 입증했다.

고용주조차 쉽게 믿지 못하는 암살자인 자신이 이렇게 신뢰할 정도였으니.

‘분명 파격적이지만 원칙이 일관된다. 적어도 헷갈리지는 않지. 아스카라는 놈도 그럴까?’

다니엘은 문득 마족들이 부활시킨 아스카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아스카는 지금 마족들이 따르는 존재이고 아인이 경계를 할 정도로 대단한 마족이었다.

과거에 대륙의 영토를 지배했다고도 하니 아스카에게도 아인과 닮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사제장님은 어디 계시지?”

“안쪽에 계셔. 왜?”

“신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어서.”

다니엘은 사교도를 툭툭 쳐주고 사제장을 찾아 내부로 들어갔다.

사제장은 로바크의 행태에 열받아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빨리빨리 치워라!”

그러나 그의 분노는 로바크가 아니라 아래의 신도들을 향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게 아스카교는 아스카를 신으로 신봉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스카는 신이 아닌 강한 마족에 불과했고, 그렇기에 사교도는 마족들을 특별한 존재로 포장해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간에 불과한 사제장과 특별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격차가 만들어졌다.

‘빌어먹을! 내가 왜 마족 따위에게 이렇게 고개를 숙여야 하지?’

사제장은 로바크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가 아스카교의 사제장이 된 건 절대로 아스카를 믿어서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마족들로부터 받은 주술을 통해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전까지는 나름대로 그것이 잘 되었다.

하지만 아스카의 부활 이후로 마족들은 사교도들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유로웠던 사제장의 권리 역시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은 이미 인류에게 패한 놈들인데!’

마족이 과거처럼 무섭기만 한 존재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사제장은 마족들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아스카교의 사제장이 말하기에는 우스운 것이지만, 인류는 이미 전쟁에서 마족을 물리친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사제장님.”

“무슨 일인가?”

다니엘은 사제장의 곁으로 다가가 공손하게 자세를 낮췄다.

사제장은 씩씩거리다가 다니엘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수습했다.

신도 대부분은 사제장에게 있어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드물게도 신도 중에서도 이래저래 쓸 만한 존재가 있었다.

다니엘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저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런가. 참으로 성실하구만.”

다니엘은 자신의 신분을 전쟁터에서 도망친 탈영병으로 위장했고, 그런 만큼 어느 정도의 무력을 내보인 상태였다.

명령을 받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구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쓸모는 있었다.

구울은 지성이 없기에 무력을 빼고는 써먹기가 어려웠으니 더욱.

“마침 시킬 일이 있었는데 잘 왔군. 자네 칼 좀 쓰나?”

사제장의 물음에 다니엘은 방긋 웃으며 허리춤에서 무기를 꺼냈다.

아무 신도나 무기를 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영주의 군대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고 해도 평상시에 무장을 시키는 건 사제장으로서도 위험했으니.

특히 늙은 사제장은 행여 자신에게 위협이 될까 신도들의 무장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을 비롯한 실력자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무기의 소지를 허가받고 사제장을 가까이에서 지키고 신도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믿음직스럽군.”

사제장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다니엘을 훑었다.

‘나중에는 훌륭한 구울이 되겠어.’

구울이라고 다 같은 구울이 아니었다.

기사 수준의 뛰어난 실력자는 구울이 되고서도 그 실력이 남아 무기를 다루기도 했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사제장은 다니엘이 그런 구울이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신의 사자께서 신도들을 늘리라고 하셨지만 일반적인 영입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네.”

“확실히 그렇지요.”

다니엘은 사제장의 말에 긍정했다.

전쟁으로 감시의 시선이 뜸해졌다고 하나 영주들의 경계는 여전했으니.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볼까 하네.”

“다른 방법이라고 하시면?”

“직접 사람을 데려오는 거야.”

“흠. 영지를 습격하는 겁니까?”

다니엘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딱히 영지를 습격하는 상황 자체가 우려되는 건 아니었다.

네패스 왕국도 아닌 타국의 영지.

거기서 죄 없는 이를 죽이라고 해도 다니엘은 약간의 찝찝함만 느낄 뿐 죄책감 없이 이를 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보인 것 이상의 실력이 드러나거나 사교도의 흔적이 드러나는 건 절대 좋지 않았다.

아인의 명령은 사교도를 통해서 아인의 정보를 얻어내는 쪽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이 노인을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하고 싶지만…….’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사제장이 갑자기 사라지면 누군가가 사교도를 습격한다는 게 마족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면 네패스 왕국으로서는 마족에게 연결된 끈 하나를 잃는 셈이다.

게다가 고문을 한다고 해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거지.’

다니엘은 신도로서 활동하며 사제장을 통해 아스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스카를 추종하는 자로서 신실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의심받을 일도 없었다.

“그래.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의 사자께서도 동행할 것이네.”

“네?”

이어지는 사제장의 말에 다니엘은 당황했다.

영지를 습격하는 일에 마족이 나선다는 건 영주들의 경계심을 크게 자극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으실 거야. 아직은 때가 아니지.”

“그런데 왜 그분께서 나서는 겁니까?”

다니엘의 물음에 사제장은 표정을 찌푸렸다.

“답답해서 못 참으시겠다더군. 아무래도 피를 좀 보셔야 진정될 거 같아.”

다니엘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마족이라 해도 설마 심심풀이로 사람을 죽이려고 할 줄이야.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신도들을 늘리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은 곧장 문제를 지적했다.

영지를 습격하는 목적 자체가 사람을 잡아 오기 위해서인데 로바크는 사람을 죽이는 게 목적이다.

이래서야 목적이 제대로 달성될 리 없었다.

“자네가 좀 신경 써주게. 내 크게 써줄 테니까.”

이에 사제장은 다니엘의 손을 잡으며 회유했다.

그로서도 마족인 로바크를 통제할 수 없었기에 다니엘에게 일을 떠맡긴 것이다.

다니엘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뭐, 나름대로 기회이기도 하고.’

상황을 봐서 이번에 나서는 마족은 로바크 하나와 사교도 몇이 전부일 터.

이는 마족을 하나 제거할 만한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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