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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79화 (17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7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79화

179화

시험은 시시하게 결판났다.

애초에 내가 패배할 가능성 자체가 없는 시험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지만.

‘마법사의 천적.’

플레턴이 전수해 준 비전 마법인 마나 쇼크는 애초에 마법사를 제압하기 위한 마법이다.

약점이 있다고 한다면 마나 실드를 뚫지는 못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근접전 능력도 향상시키고 마나 실드도 쉽게 뚫도록 마법을 부여하는 기술을 별도로 만들었다.

그게 마나 웨폰.

마법사로서 가지게 되는 근접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심 끝에 만든 내 첫 비전 마법으로, 마나 쇼크와 함께할 경우의 시너지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났다.

상대가 순수한 마법사라면 숫자가 몇이든, 실력이 어떻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억!”

“제기랄!”

기껏 최고 위력의 마법을 준비하던 원로들은 정작 그 위력에 자신들마저 휘말릴까 봐 나에게 그 마법을 날리지 못했다.

그저 눈치만 보다가 마나 쇼크에 맥없이 당했을 뿐.

원로들이 어처구니없이 당하는 광경을 본 젊은 마법사들의 분위기 역시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설마 이렇게 끝난 거야?”

대단히 어렵고 화려한 마법이 사용되리라 여겼던 젊은 마법사들은 실망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사실 내용물을 알고 보면 그리 가볍게 볼 만한 건 아니었다.

“미친.”

실제로 티아라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욕설까지 내뱉었다.

“저걸 어떻게 이겨?”

나를 보는 티아라의 시선에는 진한 공포심이 새겨진 상태였다.

마법사라면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녀는 그 사실을 이 짧은 순간에 이해한 것이다.

원로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처구니없이 당한 것에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막상 이를 해결할 방법은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나름대로의 대안을 준비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마법사의 천적으로서 완성된 상태였다.

짝짝짝!

그때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지부장들이 모인 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트가 치는 박수 소리였다.

“훌륭합니다.”

가이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마법사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크게 소리쳤다.

“작고하신 스승님이 남기신 비전 마법의 단점을 보완하여 자신만의 비전 마법을 개발하셨군요.”

갑자기 나를 찬양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은 플레턴이 남겨준 비전 마법이 가진 유일한 약점 마나 실드.

그 마나 실드를 부술 수 있는 비전 마법 마나 웨폰.

이 두 가지를 통해서 그는 나를 스승의 불완전한 비전 마법을 끝내 완벽하게 만들어낸 훌륭한 제자로 포장해 버린 것이다.

물론 사전에 모두 이야기가 되어 있던 부분이다.

그냥 원로들을 찍어누르는 것만으로는 충격을 줄 수 있을지언정 협회장으로서의 존경을 얻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러니까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을 할 필요성이 있었다.

마침 가이트는 딱 적당한 인물이었다.

지부장은 원로에는 못 미치지만 그 바로 아래에 있는 나름대로의 고위직이다.

원로들이 다 내 상대로 나온 이상 이 자리에서는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플레턴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나와 플레턴 사이의 일을 말하기에 적절한 인물이기도 했고.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마나 웨폰은 어디까지나 마법사로서의 약점을 없애기 위한 과정에서 나왔을 뿐, 플레턴의 비전 마법을 보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 마법의 시너지는 아주 훌륭했다.

플레턴조차 그렇게 인정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사제지간의 돈독함을 강조할 만한 스토리만 넣으면 대충 그럴듯하게 들리게 된다.

게다가 가이트 말고도 이용할 수 있는 입은 더 있었다.

“굉장해요!”

내 시선을 받은 티아라가 가이트에 이어서 나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다소 낯뜨거운 이야기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내가 마법사 협회를 해왔던 일들을 나열하고 얼마나 훌륭한 마법사인지를 떠들었다.

그녀가 나에게 작위를 받은 귀족이란 걸 고려하면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엄연히 사실을 기반으로 했기에 반박은 불가능했다.

뒤이어 다른 마법사도 하나둘씩 내가 지금껏 해온 일들을 말했다.

전장에서 나와 적으로 마주한 마법사.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나에게 죽지 않았다.

플레턴 덕분에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돈을 벌기 위해 밑에서 종군하고 있는 마법사.

고용주에게 아부하는 건 마법사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이외에도 여러 젊은 마법사들이 명성에 기반해 내 활약을 떠들어대며 어느새 시시한 시험의 결과와 달리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게 뭔…….”

나에게 제압당해 쓰러져 있던 벨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러나 원로들은 뭐라고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제 와서는 구차한 패자의 발악이니까.

그렇게 나는 많은 마법사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협회장으로의 포석을 까는 데 성공했다.

* * *

“이것 참.”

원로들은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미 결과는 나와버렸다.

젊은 마법사들은 내가 협회장이 되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명분도 충분했다.

원로들을 모두 꺾으며 충격적인 실력 차이를 보였고, 마법의 기반이 스승인 플레턴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식으로 포장되었다.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에 지금까지 마법사들을 위해 해온 헌신까지 강조했으니.

이제는 반대하는 놈이 역적이 될 판이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원로 중 한 사람인 켈렌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나를 흘겼다.

가이트나 티아라를 시작으로 마법사들의 선동이 시작되었으니 그 배후가 나라는 걸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다고 어쩌겠는가?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그저 잘 포장했을 뿐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협회장의 자리에 손을 뻗칠 줄이야.”

“이딴 결과를 우리가 인정할 거 같습니까?”

“그 이야기를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할 수 있나?”

씩씩거리는 원로들을 향해 반문했다.

그에 원로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내 앞에서는 나를 욕해도 다른 마법사 앞에서는 나를 욕하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는 걸 그들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쾅!

그때 누군가가 분을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벨로스였다.

그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딱히 무섭지는 않았다.

체격은 건장하지만 그 정도야 모르타르나 레이칸 왕국의 전사들을 통해서 많이 봤다.

그리고 아무리 몸이 좋아도 그는 마법사였다.

백병전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라는 걸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영웅 정보에서도 전투형 영웅이 가지는 스킬은 없었으니까.’

만약 벨로스에게 난전이나 격투 같은 스킬이 있었다면 절대 원로를 관둔 그가 나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원로들의 억지에 어울려주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나를 반대한다면 원로로서 명예가 실추될 것이다.

“할 말이라도 있는가?”

“대체 협회장이 되어서 뭘 할 계획입니까?”

“마족들을 물리쳐야지. 그게 마법사 협회의 존재의의 아닌가?”

벨로스는 대꾸하지 못했다.

원로들에게 아스카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던 모양이다.

“안심해도 좋다. 마족들을 정리하면 예전에 약조한 대로 더는 협회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난 과거 협회를 장악하면서 했던 약속을 언급했다.

마법사 협회는 뛰어난 힘과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지만 어차피 일국의 군주인 나에게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법사 협회를 고집하고 이런 짓까지 해가며 협회장 자리를 노리는 건 마족들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이제 와서 그 이유를 빼면 마법사 협회는 그리 도움이 되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자신해도 좋을 정도로 나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한 상태였다.

마법사가 필요한 일이 있어도 내가 직접 나서거나 자크론을 이용하면 될 일이었고.

‘티아라도 괜찮지.’

권력에 조금 빠진 느낌은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개발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았다.

티아라도 내 곁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 만큼 내가 능력을 중시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 요즘 젊은 마법사들은 다 그런 편이지만.

‘이 시대에서는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

일국의 군주인데 마법사를 겸하는 존재는 내가 유일했다.

젊은 마법사들이 내 행보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능력에 기반한 인사는 특히 그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뭐, 귀족들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겠지만 내 권위는 그들의 반발을 허락하지 않았다.

딱히 내가 그들에게 챙겨주지 못한 것도 없었고.

무릇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인지라 뒤에서는 딴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다니엘을 통해서 정리하면 그만이고.’

현대에서라면 불법 사찰이라고 욕먹겠지만 이 시대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군주가 대영주들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건 오히려 매우 당연한 일이다.

대영주들도 같은 이유로 아래의 영주들을 꾸준히 살피고, 영주들도 기사나 측근들을 확인하는 게 익숙하다.

오히려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낸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이다.

“후우!”

벨로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정말 다른 것들은 보장해 주십니까?”

“아니면 내가 협회에 흥미를 가질 만한 게 있나?”

원로들은 말문이 막혔다.

내가 평범한 군주가 아니라는 걸 그들도 이해한 것이다.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럼 됐군. 협회장 취임은 언제 하면 되겠나?”

“저희가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테니 기다려주십시오.”

끝내 원로들도 백기를 들었다.

그렇게 필요한 준비 중 하나를 끝마칠 수 있었다.

* * *

쿵!

루안은 나의 앞에 상자를 몇 개 내놓았다.

일전에 명령했던 장비들이었다.

“자네 괜찮나?”

하지만 내 시선은 장비가 아니라 루안에게 꽂혔다.

내가 협회장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여러 준비를 하고 시험을 치르는 동안 루안은 열심히 밤을 새워가며 고생했다.

딱히 내가 루안을 갈궈서 그런 건 아니었다.

루안은 원래 하나에 빠지면 몸도 살피지 않고 작업에 매달리는 성격이니까.

특히 이번에 요구한 장비들은 역대급 품질이어야 했고, 재료 중에는 아스카의 보주도 있기에 루안이 엉망이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 평생의 걸작이 될 겁니다.”

루안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대답했다.

평생의 걸작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 그만큼 대단한 장비들을 만든 모양이었다.

“고생이 많았네.”

적당히 다독여주고 서둘러 쉬라며 돌려보냈다.

도중에 쓰러지는 소리와 시종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분명 괜찮을 것이다.

루안에 대해서는 장기 휴가를 주기로 한 뒤 조심스럽게 장비를 확인했다.

‘흠.’

장비 정보를 통해서 보이는 정보는 과연 대단했다.

네임드 장비를 넘는 수준의 것들이 많았으니.

그러나 내 관심은 금세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앞선 장비들에는 아스카의 보주가 사용된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인가?’

상자를 열며 조심스럽게 장비 정보를 확인했다.

[혈옥의 바알]

아스카의 보주가 장식처럼 달려 있는 짧은 지팡이.

마법사와 지팡이 자체는 언뜻 그럴듯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이 세계에서 지팡이를 사용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마법은 기본적으로 마법사의 체내에 있는 마나라는 자원을 쓰며 여기에는 굳이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법사 협회에서 보주를 통해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기술이 나온 이상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보주를 휴대하고 다니는 건 곧 마법사들에게 있어 당연한 일이 될 테니까.

“진짜 게임 속 마법사가 된 기분이지만 나쁘지는 않군.”

보주를 향해 내 마나를 흘려보내자 보주의 불길한 빛이 진해지며 출력이 높아지는 게 느껴졌다.

“전하, 근위기사단장께서 알현을 청하였습니다.”

그때 로크가 찾아왔다.

루안이 장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루안이 쓰러져서 실려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일지도 모르고.

“들여보내라.”

허락을 내리자 로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태연하게 들어오던 로크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그냥…….”

로크는 나와 내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를 번갈아 보더니 슬쩍 시선을 피했다.

뭔가 차마 못 할 말을 고민하는 것처럼.

“와, 그거 들고 있으니까 꼭 전하께서 마족 같으십니다.”

그런데 그때, 로크의 뒤를 따라온 인물이 불쑥 말을 꺼냈다.

로크는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상대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 같은데, 경은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거인가?”

나에게 거리낌 없이 마족 같다는 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

당연하게도 파격적인 나의 기사 라이언이었다.

“하,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죠.”

라이언은 뒤늦게 수습을 시도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일이었다.

“로크 경.”

“조지겠습니다.”

라이언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난 로크가 라이언을 응징하는 사이에 지팡이를 돌려놓았다.

확실히 아스카의 보주가 내뿜는 색상은 불길하니까 마족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도색이라도 해버려야 하나?’

하얀색이나 파란색으로 보옥을 색칠하면 보기가 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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