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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75화 (175/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7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75화

175화

* * *

로스니아 제국과 반제국 동맹의 전투는 예정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반제국 동맹은 불리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로스니아 제국을 상대로 만만찮은 저항을 보였다.

이는 로스니아 제국이 상대를 너무 쉽게 여긴 것과 케프리 남작이 제국 내에서 일으킨 소란으로 인한 영향이 컸다.

거기에 밤이 오기 직전 이루어진 이데아의 기습.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로스니아 제국은 기껏 준비했던 공성 병기를 잃으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마법사들이 마나를 회복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크라이더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한 건 나쁜 소식이었다.

“결국 와버렸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먼 길을 오느라 지친 군대입니다. 게다가 병력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안덴스 후작은 크라이더 왕국의 전력을 살피고 그들이 생각보다 볼품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게다가 크라이더 왕국의 지원군은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미 10만의 군대와 격돌을 한 뒤에 무리해서 행군을 해서 그런지 기껏해야 2만 정도가 지원군의 전부였다.

그마저 먼 길을 오느라 잔뜩 지친 병력이니 당장 몰아쳐서 해치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크라이더 국왕이 그 사실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카시안 공작은 섣불리 공격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크라이더 국왕이 바보도 아니고 저런 엉망이 된 병력만 가져왔을 리 없었다.

분명 모종의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병력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안덴스 후작은 크라이더 왕국의 군대가 더 있는 건 아닌지 이미 꼼꼼하게 살핀 뒤였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다른 군대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제국 내에 있는 적들은?”

“네?”

“1차 보급 부대를 습격한 적들이 남아 있지 않은가?”

카시안 공작의 반문에 안덴스 후작은 말문이 막혔다.

신원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세력.

생각해 보니 그들의 존재가 남아 있었다.

“만약 크라이더 왕국을 공격하는데 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가세한다면?”

“그렇다고 해도 저희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는 생기겠지.”

“소모전으로 가도 병력이 앞서는 저희에게 나쁠 건 없지요.”

안덴스 후작은 말을 내뱉고서는 아차 싶었다.

로스니아 제국이 엄청난 군사력으로 전략적 우위를 얻고는 있었지만 소모전은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특히 기사들의 명예를 생각하면 소모전을 통한 승리는 패배와 다를 바 없었다.

더구나 이 전장은 제국의 최정예가 모여 있는 상황.

이런 장소에서 소모전을 한다는 건 어디 가서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카시안 공작은 그런 안덴스 후작의 발언을 지적하지 않았다.

“저들을 이기더라도 2차 보급 부대가 오지 못한다면 우리 군량이 먼저 떨어질 거야.”

대신 카시안 공작은 보급 부대를 습격한 적들을 우려했다.

그들이 나타난 장소가 하필 제국 내부인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2차 보급 부대 역시 무사히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었고, 자칫하면 20만에 달하는 덩치로 인해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전투를 중단하고 후퇴하거나 요새를 빨리 함락시켜야 한다.’

당연하게도 요새의 안에는 프레시아 공작가에서 준비한 군량이 쌓여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빼앗을 수 있다면 얼마간은 별도의 보급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프레시아 공작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기껏 요새를 뚫었는데 상대가 군량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어.’

보급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요새를 점령하고도 퇴각하게 된다면 카시안 공작은 지금껏 쌓아왔던 명성을 모두 잃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황제의 자리를 노리는 그의 야망에도 지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게 지금 카시안 공작의 판단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면 내 명성에 흠집이 생긴다. 어떻게든 여기서 승부를 봐야만 해.’

퇴각을 해서 보급로의 안전을 확보하는 쪽이 옳다는 걸 알지만, 그러면 황제의 자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카시안 공작은 이 곤란한 상황에 냉정함을 잃은 상태였다.

“카시안 공작 전하!”

그때 하이록 백작이 당황한 얼굴로 카시안 공작을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1차 보급 부대를 습격한 적들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어떻게 알았나?”

카시안 공작의 얼굴이 환해졌다.

적들의 정체를 안다면 그 규모를 유추하고 대응을 짜내는 것도 한결 수월해질 수밖에 없었다.

“1차 보급 부대의 생존자 중에서 정보를 아는 자가 있었습니다. 알데버 자작을 가까이에서 지키던 기사라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일이로군.”

카시안 공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라면 상대의 신원도 어느 정도 분명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 감히 제국의 영토를 들쑤신 적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게…….”

하이록 백작은 말하기에 앞서 잠시 망설였다.

“왜 그러나?”

“아르센 황자의 잔당이라고 합니다.”

“뭐?”

아르센의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자리에 모여 있던 귀족들은 눈을 부릅떴다.

이 자리에서 갑자기 빌헬름에게 죽은 아르센의 이름이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잔당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고?”

“내전에서 확인되지 않은 병력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마 반제국 동맹의 지원을 받고 움직이는 세력일 겁니다.”

하이록 백작은 앞뒤 정황을 맞춰서 상황을 파악했다.

아르센 황자와 그를 따르던 세력들은 내전에서 빌헬름에게 쓸려 나간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 내전에서 사실 반제국 동맹이 관여했던 정황이 발견되었으니, 그 병력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나 카시안 공작은 하이록 백작의 보고에 위화감을 느꼈다.

아인으로부터 반제국 동맹의 정보를 전해 들은 뒤로 조사를 하면서 그들을 찾아내려고 했으나 당시 그들은 이미 제국을 빠져나간 뒤였다.

그런데 사실 아직 제국에 남아 있었다니?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마땅히 떠오르는 세력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찝찝함 속에서도 카시안 공작은 아랫사람들의 무능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 * *

‘이게 정말 통할까?’

케프리 남작을 따르는 평민 출신의 기사는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알데버 자작의 기사로 위장하여 제국에 거짓 정보를 넘겨준 상태였다.

이는 그들의 가족들이 제국의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었으나 과연 이게 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카시안 공작 전하께 보고를 올렸네.”

그때 그를 조사하던 2차 보급 부대의 책임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말에 기사는 겨우 긴장이 풀렸다.

나름대로 연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과연 이게 정말 통할지는 그조차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의 반응을 보면 전혀 의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무능한 새끼. 이걸 믿는다고?’

그에 기사는 어째서 내전 도중에 반제국 동맹에게 제국이 휘둘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 제국의 정상에 있는 귀족들은 비록 출신의 덕을 봤을지언정 모두가 유능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아래를 살펴봐도 가문과 인맥을 통해서 자리에 오른 무능한 귀족들이 많았다.

“다행입니다. 적들의 정체를 알았으니 대책도 세울 수 있겠지요.”

“그렇네. 자네는 이제 돌아가서 쉬게.”

심지어 자신을 그냥 돌려보내려는 책임자의 행동에 기사는 어이가 없었다.

거짓으로 속았다고 해도 어쨌든 자신은 대단한 공을 세운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최소한의 치하 정도는 하는 게 마땅한 도리일 텐데도.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사는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가 의심하지 않고, 더구나 그냥 풀어준다면 그로서는 조용히 빠져나가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상대가 모든 것을 다 알고서도 일부러 자신을 풀어줘서 뒤를 쫓으려는 계획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그냥 돌아갈 거 같냐?’

기사는 케프리 남작이 있는 쪽이 아니라 엉뚱한 쪽으로 움직였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미행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몇 날 며칠을 움직여도 미행이 따라오는 기미는 전혀 없었다.

‘이런 미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무용지물이었다.

제자리에서 하루를 기다려도 미행은 없었으니.

기사는 귀족들을 욕하며 복귀했다.

“허.”

케프리 남작은 기사의 보고를 전해 듣고는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상대가 순순히 속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높게 쳐줘야 1할이 될까 말까.

사실상 이 기사는 그 낮은 가능성에 목숨을 내걸고 떠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히 돌아오니 그를 보냈던 케프리 남작도 어이가 없었다.

“하여튼 끔찍한 놈들이로군.”

부단한 노력으로 기사 가문 출신에서 남작이 되었지만 케프리 남작은 자신이 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혐오스러운 종자들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혐오감은 이번 일을 통해서 더욱 커졌다.

“2차 보급 부대에 대한 정보는 알아 왔나?”

“그렇습니다.”

기사는 책임자에게서 주워들은 2차 보급 부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두 번 세 번 조심해야겠지.”

케프리 남작은 습격을 두 차례로 나눠서 하기로 했다.

첫 습격은 이 정보가 함정일지도 모르기에 일부러 소수의 병력만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2차 보급 부대는 그 첫 번째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병력을 조금만 보냈기에 이쪽도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시간을 끌 정도는 되었다.

“이런 미친!”

그리고 케프리 남작은 그것으로 상대가 끝끝내 기사를 의심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2차 보급 부대의 책임자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무능한 인물이었다.

알데버 자작은 제국 내에서 습격을 받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변명이라도 가능했으니까.

그러나 이번 책임자는 앞선 보급 부대가 어떻게 당했는지를 아는 인물인데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런 놈들에게 밀려났다니.”

케프리 남작 휘하의 기사들은 이를 부득 갈았다.

이렇게까지 멍청하고 무능한 귀족들에게 밀려나서 변방의 한직이나 맡은 게 그들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었다.

같은 제국민을 상대로 나쁜 짓을 한다는 죄책감도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증오스러워졌다.

“이 제국은 겉으로만 그럴듯하지 속으로는 완전히 썩어 문드러졌다.”

케프리 남작은 그런 기사들의 증오심을 이용했다.

20만의 군대를 굶어 죽일 수도 있는 독한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증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륙 정복은 그저 개소리나 다름없지. 우리는 제국을 개혁할 것이다.”

“케프리 남작님을 따르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이끌어주십시오.”

기사들은 망설임을 버리고 케프리 남작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케프리 남작 역시 변방의 한미한 영주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외팔이가 된 몸으로도 근방에서는 케프리 남작의 적수가 될 만한 기사가 없었다.

그들은 호되게 당한 뒤에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움직이던 2차 보급 부대를 재차 습격했다.

두 번째 습격은 제국의 대응 역시 만만치 않았기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케프리 남작의 활약으로 끝내 2차 보급 부대 역시 패퇴하고 말았다.

* * *

“2차 보급 부대가…….”

보고를 올리는 마법사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였다.

2차 보급 부대의 실패.

이는 1차 보급 부대에 이어서 다시 한번 보급이 실패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20만이라는 군대를 먹일 길이 사라졌다는 소리였다.

“허…….”

카시안 공작은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적들의 정체를 모르고 당한 것도 아니고 알고서도 그대로 당했다는 말에는 기가 찼다.

“이쪽에서도 병사를 보내지 않았느냐?”

카시안 공작이 마냥 2차 보급 부대를 손 놓고 기다린 건 아니었다.

도무지 아랫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어진 카시안 공작은 2차 보급 부대를 맞이하기 위해서 군대 일부를 보급로로 돌려보냈다.

일부라고 하지만 그 수만 2만 명이다.

저쪽에 자리하고 있는 크라이더 왕국의 지원군과 비등한 숫자.

제국 내에 있는 적들로서는 감당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끝끝내 2차 보급 부대를 막는 데 성공했다.

“정보가 잘못되었습니다.”

안덴스 후작은 자신들에게 들어온 아르센 황자의 잔당이라는 보고가 잘못되었음을 확신했다.

2차 보급 부대의 규모와 합치면 족히 수만의 군대다.

아무리 일선 부대가 아닌 보급 부대라고 해도 머릿수가 그 정도나 되면 잔당 따위가 건드릴 수준이 아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정보가 잘못되었다고 봐야 했다.

“적들은 절대 잔당 따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기에 제국의 영토 내에서 제국의 부대를 계속 습격하는 것이지?”

“놈들은 제국군이 분명합니다.”

안덴스 후작의 말에 귀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상대가 제국군이라니?”

“설마 내부의 적이란 말인가?”

귀족들은 동요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이미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모두 모인 상태였다.

그런데 대체 누가 그들을 방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설령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이라고 해도 이번 전쟁에 얽힌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면 수만의 군대를 상대할 정도의 병력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애초에 누군가가 놈들을 숨겨주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안덴스 후작은 차분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상대의 정체를 짐작해 내기에 이르렀다.

“변방의 귀족들이나 일부 계층이 우리를 배신한 겁니다.”

“어째서인가! 그들 역시 제국민일 텐데!”

“그건 모르지요. 반제국 동맹의 설득에 넘어간 변절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습니다.”

안덴스 후작의 시선에 카시안 공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철군을 명령해라.”

로스니아 제국의 역사에 길이 남을 통한의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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