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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73화 (17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7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73화

173화

【 제국의 암운 】

명성은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무관심한 편이라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이야기는 들어도 금세 잊곤 한다.

더구나 로스니아 제국은 타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구를 가진 국가.

그런 곳에서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유지하려면 쉽게 잊히지 않을 만한 활약이 필요했다.

카시안 공작은 이를 위하여 젊은 날 제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과 겨루고 다니며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카시안 공작은 그만 원수를 한 명 만들었다.

케프리 남작.

카시안 공작과 같은 연배의 촉망받던 기사.

그의 잠재력은 결코 카시안 공작의 아래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제국에서 자랑하는 기사 중에 케프리 남작이라는 이름은 없다.

그는 카시안 공작과의 치열한 대련에서 그만 팔을 하나 잃었기 때문이다.

이후 케프리 남작의 처지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잃어버린 팔을 대신해 외팔로 검을 수련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고, 과거의 경지를 되찾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아예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습관을 하나하나 뜯어고치고 맞지 않는 균형에 적응해야 하니까.

솔직히 그냥 포기하고 모든 걸 놔버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케프리 남작은 카시안 공작에 대한 증오를 곱씹으며 그 일을 해냈다.

‘뭐, 여기까지라면 로스니아 제국에 위협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로스니아 제국에서 케프리 남작의 위치는 변방의 영주이자 기사에 불과하다.

과거의 원한이 어떻다고 해도 절대 카시안 공작에게 위협이 될 수는 없는 수준.

그러나 이는 케프리 남작의 배경이나 외팔이라는 특징 때문에 절하되는 측면이 크다.

케프리 남작의 실력은 충분히 카시안 공작과 겨뤄볼 만하다.

‘그 케프리 남작이 지금 카시안 공작의 행보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겠지.’

게임에서 나온 케프리 남작은 카시안 공작과 충돌하는 모습을 몇 번 보였다.

그러나 제국 기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빌헬름의 존재로 인해서 둘의 감정이 터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제국 기사들을 하나로 묶어줄 빌헬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빌헬름을 대신해서 전쟁을 이끌고 있는 건 카시안 공작 본인.

그의 행동은 명백하게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월권이자 불충이며 반역이다.

다른 인물들이라면 카시안 공작의 지위와 명성에 굴복하겠지만 케프리 남작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제국을 찌르는 비수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후환은 확실히 처리했어야지.’

나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적을 만들었다.

가령 첫 영지전의 상대였던 도미닉 남작 같은.

그러나 지금 나에게 후환이 될 만한 인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니엘 같은 암살자를 기사로 받아들이고 별도로 분리해서 기사단을 운용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모두 내가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더러운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 * *

“카시안 공작.”

외팔의 기사, 케프리 남작은 최근 로스니아 제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기가 막혔다.

제국에서 이름난 기사들은 황제인 빌헬름을 지키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았다.

각국의 군주들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하는 자리에서 상대를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그들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제국의 꿈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케프리 남작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빌헬름의 성급함이야 제국의 귀족치고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까.

비록 뼈아픈 실수지만 기사들만 타박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카시안 공작의 행보는 케프리 남작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제국 최강의 기사라는 명성을 통해서 귀족들을 다독이고 안정시키는 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카시안 공작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짓밟은 상대 중 하나인 케프리 남작으로서는 과거의 증오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황제를 두고 그들끼리 권력을 나눠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케프리 남작은 카시안 공작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카시안 공작은 황제의 자리를 넘보는 건가?’

빌헬름의 죽음으로 인한 문제를 수습하는 것으로 카시안 공작은 기사들의 지지를 자신에게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이 상황이 케프리 남작에게는 매우 공교롭게 보였다.

어쩌면 빌헬름의 죽음은 카시안 공작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작은 의구심.

이후 황제의 권력을 넘보는 모습은 거기에 쐐기를 박기 충분했다.

“비록 내 인생을 망친 원수지만 기사로서 마땅히 존중해야 할 놈이라고 생각했거늘!”

케프리 남작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카시안 공작이 명예로운 기사로 남았다면 그의 분노는 속에서만 곪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확실하게 야망이 드러난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절대 제국을 네놈에게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케프리 남작은 즉시 자신과 힘을 합칠 이들을 불러들였다.

그의 지인은 주로 기사나 평민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출신이 한미할 뿐 재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이런 세력이 존재하게 된 건 로스니아 제국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긴 세월 동안의 안정.

어떤 세력도 로스니아 제국을 위협할 수 없었기에 귀족들은 교만하였고 아랫것을 무시하며 차별하는 게 익숙했다.

이로 인해 능력이 있어도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계속해서 나오게 됐다.

그나마 다른 국가처럼 왕조가 무너진 뒤 큰 내전이라도 겪었다면 그런 이들이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르나 로스니아 제국은 그렇지 않았다.

빌헬름이 제국 기사들을 끌어들인 것과 달리 아르센은 반제국 동맹과 결탁했을 뿐 이들을 끌어들이지는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전쟁이 시작된 지금에서야 그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임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제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은 이미 자리를 비웠다.”

케프리 남작은 제국의 취약점을 쉽게 찾아냈다.

외부와의 전쟁에 모든 신경과 관심이 쏠렸고 남아 있는 병력도 많았기에 보안 상태가 허술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빈틈을 노릴 것이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식량. 어떤 군대도 식량 없이는 싸우지 못하지.”

케프리 남작은 사트리안 왕국과의 싸움에 집중된 20만의 군세로 향하는 길목을 가리켰다.

로스니아 제국은 사트리안 왕국에 유독 많은 병력을 보냈다.

이유는 하나였다.

반제국 동맹의 국가들을 각개격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위하여 뛰어난 기사들도 모두 사트리안 왕국에 몰렸다.

당연히 식량이 소모되는 시간도 빠를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보급이 필수적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20만이라는 거대한 덩치는 오히려 식량을 잡아먹는 최대의 단점이었다.

“우리는 보급을 끊는다.”

케프리 남작의 발상에 몇몇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카시안 공작이 감히 황제의 자리를 넘보는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20만의 군대는 그들과 같은 평민이었다.

상식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면 아래부터 보급을 끊게 될 테니 그들의 행동은 같은 평민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카시안 공작을 막을 다른 방법이 있는가?”

그러나 이어지는 케프리 남작의 반문에는 누구도 대꾸할 수 없었다.

양측의 전력 차이는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개인적으로 재능이 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그런 재능으로 어쩌지 못할 만큼 상대가 가진 권력은 엄청났다.

“나 역시 그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게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큰일에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야. 그리고 지금 막지 않으면 카시안 공작은 황제가 되겠지. 너희는 황제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로스니아 제국에서 황제란 자리가 가지는 상징성은 엄청났다.

황제의 권위는 절대적.

거기에 제국 최강의 기사라는 카시안 공작이 지닌 힘이 더해진다면 어쩌면 과거의 황제보다 더 뛰어난 군주가 될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때가 되면 작은 훼방을 놓는 일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되든 안 되든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케프리 남작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설득하고 행동에 나섰다.

* * *

알데버 자작은 사트리안 왕국으로 출정한 병력들에게 먹일 군량을 한가득 싣고 길을 나섰다.

성공적인 각개격파를 위해서 제국의 역량은 사트리안 왕국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만큼 이번 임무의 중요성이 가지는 무게 역시 엄청났다.

반드시 예정된 시간에 예정된 양의 군량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는 책임자로서 목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동에 차질은 없는가?”

“물론입니다. 마차나 말들도 넉넉하게 준비했으니 절대 지체될 일은 없을 겁니다.”

알데버 자작의 물음에 기사단장은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다행이군. 비싼 돈 들여서 빌리기를 잘했어.”

그에 알데버 자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게 된다면 그 자리에 있는 카시안 공작이나 다른 기사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당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에 알데버 자작은 가지고 있는 돈과 인맥을 총동원하여 말과 마차를 넉넉히 준비했다.

이번 임무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그의 출세와 몰락이 결정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군량의 상태도 괜찮겠지?”

“매일 두 번씩 확인하고 있으나 최상입니다.”

“좋군. 군량도 군량이지만 진상할 물건들은 특히 신경 쓰게.”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야 먹고 탈이 나지 않을 정도면 충분했다.

문제는 귀족들.

전쟁에서는 아무리 귀족이라도 끼니를 꼬박 챙길 수 없고 술처럼 먹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렇기에 눈치 좋은 이들은 그들에게 몰래 진상할 술이나 좋은 음식을 따로 챙겨 가는 게 관례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장 신뢰하는 기사들을 마차 옆에 붙여뒀으니까요.”

기사단장은 저 멀리 움직이는 마차 하나를 가리켰다.

여느 마차들과 달리 고급스러운 천막으로 내용물을 숨긴 그곳에는 이름 있는 술과 귀한 식재료가 들어 있었다.

더구나 그 마차를 경계하는 건 그냥 병사가 아닌 기사들이었다.

“반드시 무사히 운송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서.”

“그래. 꼭 그래야만 하네.”

알데버 자작은 기사단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퓨퓨퓻!

갑자기 좌우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음.

기사단장은 경험으로 그것이 화살이 날아드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파바박!

쏟아지는 화살 공격에 마차를 지키던 이들이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습격이다!”

“적이다!”

뒤늦게 습격 사실을 알아차린 이들이 무장을 꺼내었으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알데버 자작은 멍한 얼굴로 마차를 습격하는 적들을 보았다.

만약 적의 습격이 있다고 해도 그건 제국을 벗어난 뒤의 일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아직 제국의 영토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습격이라니?

어찌 적국의 군대가 제국의 영토 내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건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속히 몸을 피하십시오!”

기사단장은 서둘러 알데버 자작을 밀쳐내고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전황은 순식간에 악화되었다.

모습을 드러낸 적들은 예상을 능가할 정도로 많았고 그 실력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알데버 자작이 준비한 보급 부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다.

‘도대체 이런 놈들이 어디서 나타난 거지?’

기사단장은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와 마주한 상대 역시 밀리지 않는 솜씨로 이를 받아쳤다.

‘제길! 이놈이고 저놈이고 만만치 않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무언가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어째 적들이 사용하는 검술이 눈에 익은 것이다.

검술에도 가문마다, 지역마다, 국가마다 모두 특색이 있는데 상대는 기이하게도 제국에서 유명한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기사단장은 그 광경에 혼란을 느꼈다.

“이게 대체? 어찌 네놈들이 제국의 검술을 쓰는 거지?”

제국의 적이 제국의 검술을 쓰는 기이한 상황.

기사단장이 당황할 때 그와 겨루던 상대가 입을 열었다.

“그야 우리가 제국민이기 때문 아니겠나?”

“뭐라고?”

그 말에 기사단장은 경악했다.

“어째서냐? 대체 왜 같은 제국민이 제국의 보급 부대를 습격하는 것이냐! 우리 제국의 숙원을 위한 일을 어찌 막아선다는 말이냐!”

“숙원이라…….”

상대는 기사단장의 말에 조소를 흘렸다.

“나도 한때는 제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여긴 적이 있었지. 이 제국이 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기 전에는 말이야.”

상대는 기사단장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승부수를 걸어왔다.

한순간 빈틈을 드러난 기사단장은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기사로서 무기를 잃었다는 건 치명적인 실책.

더구나 적과 맞상대하던 상황에서 이는 이미 죽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푸욱!

상대의 칼날이 그대로 기사단장의 복부를 꿰뚫었다.

“커억! 대, 대체 왜?”

기사단장은 끝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알데버 자작은 기사단장의 죽음에 또 한 번 놀랐다.

여럿이 덤빈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한 명에게 자신의 기사단장이 패배하다니?

악몽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알데버 자작.”

그때 적들의 무리에서 튀어나온 누군가가 알데버 자작을 불렀다.

알데버 자작은 긴장으로 몸을 덜덜 떨며 상대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상대의 얼굴이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네, 네놈은 케프리 남작!”

혹시나 얼굴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허전한 외팔의 차림새는 절대 잘못 볼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제국의 가도에서 제국을 위한 보급 부대를 습격하다니!”

“제국을 위한? ‘카시안 공작을 위한’이라는 말을 잘못 쓴 것 같군.”

“뭐?”

“아, 그대들에게 제국은 제국의 귀족들만 존재하는 것이니까 잘못 쓴 게 아닌가?”

“무, 무슨 소리를! 이 일이 성공하면 제국은 번영한다. 오랜 숙원을 이뤄서 누구나 지금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되는 거야!”

“헛소리.”

케프리 남작은 알데버 자작의 말을 가차 없이 끊어냈다.

“내전을 끝낸 다른 국가들만 봐도 알 수 있는 뻔한 거짓말이다.”

내전이 끝난 국가 중 어느 국가도 귀족의 숫자가 늘어난 곳은 없었다.

애초에 내전이 귀족들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전쟁도 이와 비슷했다.

끝나고 나면 귀족의 숫자는 줄면 줄었지 늘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힘들게 얻은 것들을 미천한 이들과 나누려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가진 걸 남과 나눌 리가 없지 않느냐?”

케프리 남작은 성큼성큼 알데버 자작에게 다가갔다.

알데버 자작은 뒷걸음질치며 달아나려고 했으나 뒤편에도 적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결국 알데버 자작은 케프리 남작의 칼날에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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