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6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68화
168화
순간 위니스가 농담이라도 던진 줄 알았다.
초대 네패스 남작이 어떤 사람이던가?
크레시안 왕국이던 시절에는 나름대로 크게 이름을 떨친 마법사로, 협회의 원로인 플레턴도 그를 기억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타르타로스와의 거래로 얻게 된 힘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가 남긴 네패스 마법 이론은 문제가 많았고, 그 문제점은 초대 네패스 남작의 부족한 지식에서 비롯되었다.
실전에서는 훌륭한 마법사였을지 모르나, 그는 글조차 제대로 못 쓰던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알고 보니 영웅의 후손이었다?
“뭐, 몇 세대나 걸쳐서 내려왔으니까 그 피는 거의 흩어졌겠지만.”
그건 그랬다.
내가 봤던 고대의 마법사와 초대 네패스 남작 사이에도 수백 년의 차이가 있었다.
거기에 아인까지 내려오게 되면, 말이 선조와 후손이지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그 기억은 아인츠발트를 구해달라는 뜻에서 마법사가 남긴 거야. 영웅의 혈족 중 누군가가 그 장소에 가면 볼 수 있도록 한 거지.”
“그런 거였나.”
아인츠발트를 향해 눈길을 옮겼다.
그는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꽤 좋은 이야기군. 네가 이 남자를 설득하는 게 쉽겠어.”
“그건 그렇겠군.”
과거 동료의 후손이었다는 걸 밝힌다면 아인츠발트를 끌어들이는 게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게다가 내가 레이칸 왕국에서 아스카의 보주와 영웅들의 무기까지 챙겨 왔으니.
“그런데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어떻게 아는 거야?”
위니스의 말대로 초대 네패스 남작과 선조였던 마법사에게는 긴 세월의 격차가 있었다.
아무리 타르타로스가 엄청난 세력이라고 해도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과거의 비사까지 아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나 가이스트 같은 범차원 세력이라면 그런 걸 알 수 있는 능력자 정도는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위니스는 이게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라고 말해 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타르타로스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힘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탐이 났다.
어떻게 이런 세력을 나와 같은 지구인이 키워냈을까?
절대군주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그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대륙부터 먼저 점령해야겠지만.
* * *
위니스가 떠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난 급하게 시종을 불러서 의식이 없는 아인츠발트를 챙겼다.
시종은 갑자기 나타난 아인츠발트에게 한 번, 그가 인간과 닮았으나 다른 종족이란 것에 두 번 놀랐다.
그러나 왕궁에서 일하는 시종답게 의문을 표하지는 않았다.
섣부른 호기심을 보이는 대신에 묵묵하게 아인츠발트를 방으로 옮겼다.
본래 왕궁의 방은 대부분 주인이 정해지고 손님용 방은 별채에나 있지만 내 명령으로 빈방 하나를 만드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비록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서 시종들이 자다가 깨어나서 일을 해야 하는 날벼락을 맞기는 했지만.
‘흠.’
난 아인츠발트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영웅 정보는 분명 대단했다.
그렇지만 의외로 아인츠발트의 장비는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영웅들의 무기가 그랬던 것처럼 네임드 장비.
그마저 세월의 흐름에 많이 무뎌진 상태였다.
뭐, 아인츠발트는 저주로 인해서 죽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이 무기는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나름대로 관리는 해온 모양이지만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대단했다.
‘루안에게 검을 한 자루 만들라고 해야겠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한 수준의 영웅에게 고작 이 정도 수준의 장비를 쓰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으음.”
그때 아인츠발트가 마침내 의식을 차렸다.
그는 잠시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살피다가 나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누구십니까?”
“아인 네패스. 네패스 왕국의 국왕이다.”
국왕이라는 말에 아인츠발트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역시 일국의 군주와 갑자기 대면하는 건 놀랄 만한 일인 모양이다.
아니면 오랜 세월 산맥에 갇혀 살아야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지금은 나와도 되는 건가?’
아인츠발트가 산맥을 벗어나지 못한 건 아스카의 불사를 공유하는 저주 때문이었다.
이 저주 때문에 아인츠발트는 아스카와 함께 긴 세월 동안 죽지 않았으나 평생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지금 아인츠발트는 위니스에 의해서 우리 왕국까지 옮겨진 상태였다.
‘뭐, 위니스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저주가 풀리자마자 늙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늙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위니스 정도라면 뭔가 수를 써뒀을 것이다.
“많이 혼란스러운 듯하군.”
“그렇습니다.”
아인츠발트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 평범한 반응이 나에게는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
게임에서 본 아인츠발트는 별다른 대사도 해주지 않은 채 산맥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제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겁니까?”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말이야.”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으면 그냥 침실로 돌아가서 잘 생각이었다.
애초에 위니스를 만난 것도 취침을 위해서 침실로 향하던 도중이었고.
하루 종일 격무에 시달린 상태로 일일이 의문을 풀어주기에는 피로가 너무 심했다.
“핵심만 간단하게 말하지.”
난 내가 고대 마법사의 후예라는 것부터 아스카의 보주와 영웅들이 남긴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걸 아인츠발트에게 설명했다.
처음 아인츠발트는 이를 쉽게 믿지 못하는 듯했다.
그가 산맥에서 보내온 세월 동안 접촉해 온 이가 없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아스카의 보주를 보여주자 아인츠발트도 더는 부정하지 못했다.
“상당히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다 최근에 알게 된 거지만.”
난 원래 네패스 남작가에서 내전을 통해 국왕이 된 사정도 간추려서 설명했다.
그러자 아인츠발트의 표정이 달라졌다.
“남작 가문에서 왕국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피의 연회와 내전을 거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는 대영주 가문도 아니고, 변방의 한미한 가문 따위가 이렇게 큰 것이었으니.
“그럼, 혹시 저를 도와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아인츠발트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원래라면 내가 아인츠발트에게 협력해 달라고 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와 나는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다.
아스카의 재봉인이나 토벌.
그리고 아스카를 부활시킨 마족들의 전멸.
그런 와중에 아인츠발트가 먼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이런 아인츠발트의 태도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실력의 영웅이라고 해도 아인츠발트는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문 잊힌 존재였으니까.
레이칸 왕국을 빼면 이 대륙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아인츠발트가 마족 아스카의 위험성을 말한다고 한들 누군가가 귀담아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뛰어난 실력이 있으니 명성을 얻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만 그게 단시일에 가능한 일도 아니고.
아스카와 마족을 대비해야 하는 일로 한시가 시급한 아인츠발트에게 내 존재는 동아줄과 다름없었다.
“마족을 토벌하는 건 인류의 사명이니까. 개인적으로 원한도 있고.”
난 아인츠발트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아인 네패스의 가족들이 죽게 된 건 마족과 그들에게 협력한 반제국 동맹 때문.
거기에 영웅의 후손이며 일국의 군주라는 점에서 아인츠발트에게 나는 최고의 협력자였다.
그 반대도 가능했지만.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겁니까?”
내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마음이 놓였는지 아인츠발트는 조금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아인츠발트는 재차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를 물어왔다.
‘위니스에 대한 걸 설명해야 하나?’
위니스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위니스는 이제 이곳에서 내가 시험에 통과할 때까지 다시 얼굴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게다가 아인츠발트가 외부 세력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지 의문이었고.
하지만 위니스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서야 아인츠발트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납득시킬 방법이 없었다.
“놀라지 말고 듣도록.”
나는 최대한 아인츠발트의 반응을 신경 쓰며 위니스와 타르타로스, 그리고 마족과 가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실 나도 그들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닌 입장이었지만.
“음. 그런 세력이 있을 줄은…….”
아인츠발트는 내 이야기를 쉽게 믿지 못하는 구석이었다.
하긴 나도 이 세계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이들의 존재를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범차원 세력이라는 존재들은 이질적이었다.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이질감이 이상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수상한 구석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믿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겠군요.”
다행히 아인츠발트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고결한 성품 때문에 수상쩍은 존재와는 손잡을 수 없다고 나오면 어떡하나 우려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편히 쉬게.”
난 아인츠발트가 머무는 방을 나섰다.
나만 설명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인츠발트로부터 아스카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아인츠발트는 막강했고 아스카는 그보다 더했다.
아인츠발트는 부활한 아스카의 힘이 자신을 상회한다고 설명했다.
아인츠발트만 해도 이 세계에서는 과연 당해낼 수 있을지 의문인 존재인데 아스카는 그마저 넘어서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내가 아스카라면 무엇을 할까?’
정황상 아인츠발트가 위험에 처한 순간 위니스가 난입해서 그를 구해온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스카도 위니스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거나 최소한 의구심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다.
크로노스라는 이름을 가진 마족 잔당들도 있으니 그들에게서 가이스트나 타르타로스 같은 외부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었을 것이고.
‘일단 세력부터 키우려고 하겠지.’
아스카는 과거 대륙의 절반 이상을 지배했던 몸이다.
그러나 이는 본인의 무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 해도 단신으로 지배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영토가 아니었다.
과거 아스카에게는 사교도를 비롯해 마족과 여러 추종자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번에도 그들을 먼저 모으려고 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륙 정복이라는 건 절대 무력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자신의 수족이 되어서 움직여줄 사람들이 꼭 필요했다.
마족 잔당이 있지만 그들은 생각보다도 머릿수가 적은 처지였다.
‘마족들은 잔당을 빼고는 모두 죽었으니 뭘 노릴지는 뻔하지.’
아스카가 어떤 방식으로 세력을 키울지가 짐작되었다.
그가 노릴 수 있는 건 사교도가 유일했다.
* * *
“사교도 놈들을 끌어들인다.”
위니스가 아인츠발트를 데리고 사라진 뒤, 아스카는 베이브를 통해서 외부 세력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입수했다.
그리고 전율했다.
설마 행성을 벗어나 차원을 넘나드는 거대한 세력이 존재하다니.
그런 이들이라면 더욱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가능성은 낮았다.
그래서 아스카는 어떻게 해야 대륙을 자신의 손아귀로 되돌릴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다행히 전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아스카를 부활시킨 마족들은 아스카에게 전폭적으로 협조해 주겠노라고 약조했으니까.
그것을 순진하게 믿을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당장 배신할 거 같지는 않았다.
자신과 마족들의 이해관계는 적어도 지금으로선 일치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숫자였다.
이미 종족 자체가 인간에게 패배하고 몰락해 버린 마족들은 더는 종을 보존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마족들이 생존자의 거의 전부.
살아남은 마족이 어딘가에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이스트로부터 힘을 받은 마족과 그렇지 않은 마족의 격차는 엄청났다.
게다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오지에 숨었을 텐데, 그들을 찾는 것에 긴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스카는 마족들 대신 사교도를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인간들을 부린다는 게 내심 찝찝하기는 했지만, 이는 과거에도 숱하게 있던 일이었다.
아스카가 보여준 힘에 매혹되어 그를 신처럼 추앙하던 이들.
다행히 마족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직 이 땅에 남아있다고 하니 나름대로 머릿수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스카가 내린 결정에 베이브는 고개 숙여 답했다.
“참, 알아보라고 한 것은?”
아스카는 베이브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뒤 타르타로스가 선택한 대리자를 찾으라고 마족들을 닦달해 둔 상태였다.
타르타로스라고 하는 거대한 외부 세력이 직접 선별해서 찍어둔 상대.
분명 과거 아인츠발트처럼 아스카에게 있어 고비가 될 적수일 것이다.
하지만 그를 넘어선다면 아스카는 그토록 바라던 영역에 발을 들이밀 수 있었다.
“그게…….”
그러나 베이브는 이번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타르타로스에서 선택한 대리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위니스를 통해서 이제 막 알게 된 상황이었다.
위니스가 상대를 인간이라 부르기는 했으나 현재 대륙의 패권을 가진 존재가 인간인 이상 그 수는 얼마든지 널려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다른 단서를 더 준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 뭔가를 조사해 보려고 해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 베이브의 모습에 아스카는 인상을 찌푸렸다.
“못 찾은 건가?”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는 단서가 부족합니다.”
“상대는 분명 뛰어난 마법사거나 뛰어난 마법사를 부리는 인간일 거다.”
베이브의 변명에 아스카는 곧장 힌트를 주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타르타로스에서 선택한 대리인은 마법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불사가 불완전한 것이라고는 해도 검사인 아인츠발트는 자신을 죽일 수단이 전혀 없으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마법에 정통한 이가 반드시 필요했다.
“인간 마법사라…….”
아스카의 이야기에 베이브는 무언가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뛰어난 수준의 인간 마법사.
마침 거슬리는 상대가 한 명 있었다.
“짚이는 상대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지?”
“아인 네패스라는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