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6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65화
165화
‘어?’
베이브는 세상이 반으로 쪼개진 거 같은 기이한 시야에 당황했다.
육체적으로나 마법 모두 상당한 영역에 이르러 있는 베이브였으나 그 어떤 것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시켜 줄 수는 없었다.
쩌억!
베이브의 전신을 관통하는 실금이 하나 생기며 그의 육신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버렸다.
“세월이 흘렀지만 전혀 녹슬지 않았군.”
아스카는 아인츠발트의 검기에 감탄했다.
비록 그의 불사를 뚫지는 못하지만 몇 번이고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혔던 초월적인 검기였다.
제법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 마족들은 아인츠발트의 칼질 아래에 반응도 못 한 채 죽어버렸다.
그러나 아인츠발트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아무리 마족이라 해도 몸이 둘로 쪼개지면 죽어야 하지만 이 자리에는 이미 산맥에서 죽였던 놈들이 존재했다.
아스카와 마찬가지로 부활이 가능한 모종의 수단이 있다고 봐야 했다.
“너의 존재는 자꾸 나를 감탄하게 만들어. 검술로 그런 영역에 이를 수 있다니.”
아스카는 진심으로 아인츠발트를 칭찬했다.
검술은 몸으로 펼쳐야 하기에 검술의 한계는 육체의 한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아인츠발트의 검은 마치 한계가 없는 듯했다.
이는 비단 재능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세월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구나.”
목숨을 유지해 주는 저주가 풀릴까 봐 산맥을 벗어날 수도 없고, 안개로 인해 누군가와 만날 수도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봉인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아인츠발트를 무너트리기 위하여 아스카는 갖은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본래 그를 둘러싸고 있던 검은 물 역시 저주의 일종이었다.
마법사가 아닌 아인츠발트는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해주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굴하지도 않았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정신을 굳건하게 유지하며 끝끝내 이 자리까지 아스카를 쫓아왔다.
이러니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그 의지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하지만 그뿐이다.”
아스카는 슬슬 길고 긴 악연의 종지부를 내릴 때라는 걸 알았다.
지금 자신의 육체는 과거처럼 늙지 않았다.
부활하는 과정에서 바쳐진 제물들과 막대한 마나를 이용해 능히 전성기 이상의 힘을 품었다.
그러나 아인츠발트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리 저주를 극복하고 불굴의 의지력으로 무장했어도 그 세월 동안 기량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한계.
아인츠발트는 과거에 비해 성장하지 못했다.
“이제 넌 내 적수가 못 돼.”
아스카는 죽은 마족들의 시신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이들의 부활은 단순히 제물을 바쳐서 생명력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아예 상대의 육신을 자신에게 맞는 것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다.
아스카가 과거 자신의 늙은 육신을 버리고 새 육신을 빼앗기 위해 개발했던 방법인데 여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바로 아스카 자신을 대체할 만한 자질이 있는 육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각 종족의 영웅이라 불리던 이들 중에는 뛰어난 마법사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아스카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당장 이 뛰어난 마족들의 육체도 아스카에게는 한참 부족해 보였으니.
그래서 자신보다 나은 육체를 찾지 못했던 아스카는 육체의 나이를 전성기로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자신이 직접 했던 연구를 잊은 건 아니었다.
“크르르!”
반으로 나뉜 마족들의 시신이 요사스러운 귀기를 흘리며 하나로 뭉쳤다.
아스카가 했던 연구의 결과물로 탄생한 구울들이었다.
죽었던 이들이 망자로서 되살아나는 광경에 아인츠발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스카의 경우에는 이미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마족들의 전력은 미지수.
그렇기에 아인츠발트는 아스카라는 숙적이 아니라 그들을 먼저 정리하였다.
그런데 기껏 죽여놓은 상대가 비록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라지만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이런 광경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다.
아스카의 마법에는 의식이라는 준비 단계가 필요했으니까.
“가라.”
아스카의 지시가 내려지자 구울들이 아인츠발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인츠발트는 재차 검을 휘둘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울들은 육편이 되어서 흩날렸다.
하지만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몸이 잘려진 구울들은 순식간에 다시 합쳐졌으니.
“아스카!”
그러나 아인츠발트도 이 정도 상황은 예상하였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구울들을 뚫고 나아갈 잠깐의 시간을 버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인츠발트는 어느새 아스카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콰아앙!
거대한 충돌이 일어났다.
아스카는 마나 실드를 펼쳐 아인츠발츠의 공격을 막아냈다.
기이한 붉은 빛을 내는 마나 실드는 아인츠발트의 검기로도 뚫어낼 수 없었다.
아인츠발트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아스카보다 훨씬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말했지 않냐? 이제 넌 내 적수가 못 된다고.”
아스카는 봉인당한 세월 동안에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바깥에 있는 아인츠발트에게 저주를 내리는 한편 부활 이후를 대비했다.
비록 많은 부분에 제약이 있었으나 아스카는 봉인 속에서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육신은 말라비틀어져 미라가 되었을지언정 아스카의 마나는 여전했으니까.
아스카는 자신의 마나를 보다 다듬고 새로운 마법의 이론을 떠올렸으며 나름대로 이를 단련했다.
거기다 지금은 육체적으로 전성기를 되찾고 마나 역시 크게 얻은 상태.
마법사로서 아스카는 과거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다.
“그 세월에도 무너지지 않고 기량을 유지한 건 대단하지만 결국 육신이 가진 한계란 그런 것이다.”
시뻘건 창이 아인츠발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인츠발트는 유려한 몸놀림으로 이를 피하거나 받아쳤으나 아스카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검사가 마법사를 상대로 하는 데 있어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는 것.
이는 서로에게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음을 의미했다.
“그워어어!”
게다가 아인츠발트의 적은 눈앞의 아스카만이 아니었다.
구울들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촤아악!
눈부신 검광과 함께 구울들은 재차 몸이 베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아인츠발트는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아스카가 날린 시커먼 화염이 일대를 뒤덮었다.
아인츠발트는 이를 피하기 위해서 더욱 뒤로 물러나야 했다.
과거였다면 다른 영웅들이 구울을 붙잡고 아스카에 대한 견제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인츠발트에게는 그를 도와줄 아군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빴다.
아스카에게는 구울 말고도 그를 도와줄 세력이 더 있었으니까.
“이 자식이, 감히 날 또 죽여?”
처음 아인츠발트에게 죽었던 마족들이 어느새 부활하여 나타났다.
이곳이 그들의 아지트였기 때문에 돌아오는 건 금방이었다.
“저게 그 검은 덩어리라는 건 이해가 안 되지만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군.”
“그럼 더 잘됐지. 두 번이나 날 죽였는데 어떻게 넘어가겠어?”
“나도 이건 못 참아.”
마족들까지 가세하여 마법을 퍼부어대자 아인츠발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혼자서 맞서기엔 상대가 너무 강했고 그 수 역시 많았다.
이래서는 아스카를 막기는커녕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게다가 설령 이들을 모두 처치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문제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아인츠발트에게는 아스카에게 걸린 불사의 주술을 깰 방법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군.’
아인츠발트는 이 자리에서 아스카를 막는 걸 포기했다.
아스카에게 좀 더 시간을 주는 게 내키지는 않으나 자신 혼자서는 부활한 아스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 시대의 영웅들을 찾아내야 한다.’
다시 아스카를 봉인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도와줄 실력 있는 마법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물러날 생각인가?”
아스카는 그런 아인츠발트의 의향을 꿰뚫었다.
“너무 늦었다.”
다시 부활한 지금, 아인츠발트는 더는 아스카를 봉인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아인츠발트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스카는 이 자리에서 아인츠발트를 없애거나 최소한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무력화시킬 계획이었다.
콰르르릉!
번개가 떨어졌다.
아스카 특유의 핏빛을 띤 번개는 아무리 아인츠발트라도 제대로 반응해 낼 수 없었다.
전신을 감전시키는 맹렬한 고통에 아인츠발트는 순간 의식이 날아가 버렸다.
“커억!”
단말마와 함께 아인츠발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순간 아스카와 마족들은 모두 자신들의 승리를 예감했다.
텁!
하지만 아인츠발트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 갑자기 웬 손길이 아인츠발트를 부축했다.
밝은 금발이 인상적인 미녀, 위니스였다.
아스카는 위니스의 등장에 당황했다.
상대가 나타나는 게 그의 눈으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인츠발트와 전투 중인 상황이라지만 아스카는 미리 아인츠발트를 감지해 냈던 것처럼 주변의 공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존재라면 작은 개미 한 마리조차 그의 감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어디에서도 전혀 감지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났다.
방향을 특정할 수 없는 그 상황은 마치 허공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가이스트 놈들이 꽤 재미있는 짓을 저질렀군.”
위니스는 아스카와 마족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전혀 긴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흥미롭게 여겼다.
“확실히 이러면 우리가 개입할 명분이 약해지지.”
아스카는 이 세계에 속한 존재.
그 부활에는 가이스트가 관여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타르타로스가 끼어들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런 절차 따위 무시하지 못할 건 아니지만 적어도 찝찝한 구석은 있었다.
게다가 위니스는 이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스카의 존재는 이 세계의 전력을 빠르게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그대는 누구지?”
아스카는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는 위니스를 보며 위협을 느꼈다.
이 시대 마족들의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당했다는 것에 당황하기는 했었다.
설마 이 시대의 인간들은 그가 알던 것보다 훨씬 강한 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막상 눈앞에 나타난 위니스의 존재는 그런 아스카의 예상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어떻게 이런 존재가 있지?’
아스카는 위니스로부터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스카의 경계심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너 따위는 그걸 들을 자격이 없다.”
위니스는 아스카를 비웃었다.
이 세계에서 아스카의 위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타르타로스에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하나의 세계를 발아래에 둘 것.
타르타로스라는 범차원적인 세력을 상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궁금하면 저놈한테 들으라고.”
영문 모를 이야기에 아스카가 의문을 표하자 위니스는 베이브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에 베이브는 당황하며 몸을 떨었다.
위니스의 입에서 가이스트란 이름이 나왔기에 베이브는 나름대로 위니스의 정체를 추론한 상태였다.
‘타르타로스.’
가이스트에게 그들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들은 상태였다.
그러나 저번에 가이스트에서 온 사자가 자신감을 표현했기에 더는 타르타로스와 엮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직접 나타날 줄이야.
아스카의 힘은 베이브가 원했던 대로 경이로웠으나 외부 세력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며 다른 차원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힘이 있었으니까.
“흠.”
아스카는 베이브의 반응을 살폈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이 상대를 두려워하는 기미가 역력했다.
자신이 이렇게 부활한 상태에서도 전혀 승산이 없다는 듯한 압도적인 공포감.
게다가 실제로 자신이 느끼는 압박감.
아스카는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놈은 놓지 그러나?”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아스카는 위니스를 향해 적의를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실력자는 어디로 보나 인간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생각은 들 수 없는데, 하물며 아인츠발트를 감싸고 있는 상태.
끼어든 타이밍도 아인츠발트를 구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싫다면?”
위니스와 아스카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스카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상대의 눈동자 너머에 보이는 음습하고 전율적인 기운.
가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아득함이었다.
“그대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상대일 텐데?”
하지만 순순히 아인츠발트를 넘겨줄 수는 없었다.
저렇게 강력한 존재가 아인츠발트와 손을 잡는다면 그때는 더 최악의 상황이 나올 테니까.
“그건 그렇지.”
위니스는 아스카의 말에 긍정했다.
아스카도 그렇고 아인츠발트도 위니스에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아스카의 존재는 위니스가 진행하고 있는 시험에 명백하게 방해되었다.
이 세계의 규격을 벗어난 수준의 강자.
태생 자체는 이곳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이래서는 균형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는 것도 찝찝하고.
“하지만 내가 쓸 곳이 있거든.”
균형이 맞지 않으면 맞춰야 하는 법.
아인츠발트는 나름대로 균형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만한 존재였다.
“순순히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나?”
아스카의 지시에 따라서 구울들이 위니스를 포위했다.
흉성을 드러내는 구울들에게 위니스는 화사한 미소를 보냈다.
“귀여운 애들이군. 그런데 내 취향은 아니야.”
퍼퍼퍽!
다음 순간 어디선가 날아든 붉은 창들이 구울들을 고슴도치처럼 꿰뚫었다.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아스카는 눈을 부릅떴다.
분명 상대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창이 소환된 건 마치 마법 같았다.
그러나 저 창은 마나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분명 명확하게 실체가 존재하는 상태였다.
“이 정도는 되어야 보기 좋지. 마침 색깔도 빨간색이네.”
창으로 꿰뚫은 구울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는 위니스의 모습에서 아스카는 공포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