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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63화 (16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6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63화

163화

* * *

카시안 공작은 고심하고 있었다.

‘네패스 국왕.’

빌헬름이 죽고 제국의 추격이 시작된 상황에서 굳이 레이칸 국왕을 죽였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카시안 공작은 아인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무언가를 알지 않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행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아인이 알고 있던 정보가 이런 것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빌헬름을 죽인 반제국 동맹의 군주들이 사실은 인류를 배신하고 피의 연회와 내전을 일으킨 배후였다니.

‘이건 반드시 얻어내야 한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은 지금 로스니아 제국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차기 황제가 누가 되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든지 상관없이 전쟁의 명분이 되어줄 수 있었으니까.

인류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이라면, 심지어 제국의 정복 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소수파마저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체.’

그러나 카시안 공작은 한편으로 아인에 대한 경계심을 높였다.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건가?

그리고 직접 레이칸 국왕을 죽인 장본인이 어떻게 레이칸 왕국으로부터 저런 증거들을 입수해 왔는가?

‘그저 젊고 유능한 군주가 아니다.’

정보력이 말도 안 되게 좋든 운이 기가 막히든.

어느 쪽이라도 아인에게는 정국을 주도해 나갈 만한 능력이 있었다.

로스니아 제국으로서는 껄끄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처치하고 싶을 정도야.’

사실 카시안 공작은 그렇지 않아도 이 협상 자리에서 아인을 죽일지를 고민하던 상태였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혼란한 상황에서 레이칸 국왕을 죽이고 제국에서 유유히 빠져나간 능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인의 손에 들린 제국의 명분을 두고 이를 행할 수는 없었다.

훗날 아인이 어떤 강적이 되더라도 당장은 아인의 목보다 그가 줄 수 있는 명분이 훨씬 더 가치 있었으니.

‘어쩔 수 없군.’

카시안 공작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감을 신뢰하지만 그 감만으로 제국의 위험을 벗어날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얼마까지 생각하나?”

그러나 이를 미끼로 제국으로부터 한몫 뜯어낼 생각이 분명한 아인을 보자 걱정이 되었다.

이쪽의 약점은 상대에게 훤히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제국의 부유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얼마를 퍼주더라도 이 명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상대에게 퍼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훗날 적이 될 상대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되어줄 자금이었으니.

“얼마를 원하십니까?”

카시안 공작은 아인이 과연 어느 정도의 액수를 부를지 걱정되었다.

어지간한 국가의 예산 정도는 부르지 않을까?

아니, 저 명분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 이상을 부르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부르면 감당할 수 있나?”

“감당해야만 하겠죠.”

전적으로 밀리는 협상이었다.

카시안 공작은 죽은 빌헬름이 원망스러웠다.

그 뒷수습은 순전히 자신의 몫이었으니까.

“그럼 제국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번 기회에 알아보도록 하지.”

하지만 이어지는 아인의 말에 카시안 공작은 차라리 혼란을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정말로 상대는 제국의 바닥을 궁금해하는 듯했으니.

“100억.”

아인은 시작부터 카시안 공작의 정신을 흔들었다.

금화로 100억.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액수였고, 로스니아 제국이 아니라면 감히 지불하지도 못할 것이었다.

아니, 로스니아 제국이라도 절대 단시일에 마련할 수 있는 예산은 아니었다.

“그만한 금액을 네패스 왕국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게다가 이건 받는 쪽에서도 큰 타격이었다.

로스니아 제국의 체급에 비해 네패스 왕국은 아직 한참이나 작았다.

그런 곳에 이런 막대한 재물이 흘려간다면 그 충격은 절대 작지 않을 것이다.

“돈으로 받겠다고는 안 했는데.”

“무슨?”

아인도 그 부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로스니아 제국으로부터 돈을 뜯어낼 기회가 또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시장이 감당하기 힘든 액수는 현물로 받아버리면 그만이었다.

“물론 돈도 받아야겠지만 다른 것도 받을 건 많지 않겠나? 제국이 가진 게 돈이 전부는 아닐 테니.”

기술이든 문화든 로스니아 제국은 대륙에서 최고를 자부해도 좋은 국가였다.

아인은 그 부분을 언급한 것이다.

“끄응.”

카시안 공작은 신음을 흘렸다.

차라리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 게 많아지면 타격은 적겠지만 이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절차는 많아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아인이 그것들을 어디에 활용할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는 된다.’

어떻게 보면 아인의 이런 선택은 오히려 당연했다.

바보같이 재물만 받았다가 탈이 생기는 것보다 훨씬 낫고, 내전으로 많은 걸 상실한 네패스 왕국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릴 기회였으니까.

카시안 공작은 끝내 이를 거부하지 못했다.

* * *

협상은 단시일에 끝나지 않았다.

아인이 요구하는 게 늘어날 때마다 제국에서 그에 대해 잘 아는 귀족을 불러와야 했기 때문이다.

카시안 공작은 정치적인 수완도 나쁜 인물이 아니었으나 그라고 모든 분야를 다 파악할 수는 없었다.

특히 기술적인 부분은 별개의 영역이었다.

“후우.”

그렇게 협상이 며칠을 이어졌을까.

카시안 공작은 다른 귀족들과 매일 회의를 거듭해 가며 네패스 왕국과 거래할 것들을 조율했다.

“머리가 아프군.”

“괜찮으시면 카시안 공작 전하께서는 쉬고 계십시오. 실무적인 부분은 저희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아래의 귀족들은 그런 카시안 공작의 모습을 보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카시안 공작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일의 책임자는 그였고, 아랫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주지 못할 내용도 있었으니까.

특히 반제국 동맹에 대한 것은 막연히 실무진에게 맡길 사안이 아니었다.

“괜찮다. 그보다 조사하라는 건?”

“사실이 맞는 거 같습니다.”

카시안 공작은 뒤에서 아인의 말이 진짜가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증거는 눈으로 본 상태였지만 이번 사안은 그만큼 중대했기 때문이다.

이중 삼중을 넘어 몇 번을 거듭해도 절대 과하다고 할 수 없었다.

“반제국 동맹이라니, 왜 그런 이들을 진즉에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지?”

카시안 공작은 혀를 찼다.

로스니아 제국을 위협시 여기고 이에 대비하려는 군주들의 모임이라니.

그런 게 있었다면 당연히 제국에서도 이를 파악하고 있었어야 한다.

그러면 빌헬름처럼 어처구니없이 죽는 경우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연회장에서 호위를 더 강화하거나 그들은 빼고 부르든 했을 테니까.

“내부적으로 꽤 오랜 세월을 암약해 온 거 같습니다. 게다가 피의 연회로 공백도 있었고.”

보고를 올리는 귀족은 원인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모든 건 마족과의 전쟁과 피의 연회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시선이 쏠려 있었기에 제국의 보안에 구멍이 뚫려 첩자가 들어올 수 있던 것이다.

제국의 덩치가 큰 것도 한몫했다.

영토가 너무 넓고 사람이 많다 보니 파고들 틈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뇌부에까지 상대가 들어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이것 참.”

카시안 공작은 그 이야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기사들은 아르센이 일으킨 내전만 정리하면 로스니아 제국이 대륙을 통일하는 건 시간문제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랜 세월 오만함에 취해 여기저기 빈틈을 드러낸 상태였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정복 전쟁에만 빠져 있었으니 제국을 지키는 몸으로서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어떻게든 말렸어야 했는데.”

빌헬름은 기사들이 가진 정복 전쟁에 대한 야망을 자극하며 무수한 지지를 얻어냈다.

카시안 공작은 그런 빌헬름에게 정복 전쟁은 신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고는 했으나 이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내심 제국의 적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콩깍지를 벗기고 본 제국은 그렇게 훌륭하지만은 않았다.

“차기 황제에 대한 건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현재 접촉한 황위 계승권자는 셋입니다.”

남아 있는 황실의 혈통은 모두 빌헬름의 숙청을 피해 타국으로 몸을 옮긴 상태였다.

하지만 빌헬름이 죽고 옥좌에 공백이 생기자 다시 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었다.

“고작 셋?”

하지만 카시안 공작은 인원수를 듣고 당황했다.

빌헬름의 손에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망명에 성공한 이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족히 수십은 모여야 할 텐데 겨우 셋이라니?

“왜 그것밖에 안 되지?”

“어쩔 수 없습니다. 제국 한복판에서 황제가 죽은 상황에다가, 바로 전쟁이 일어날 게 분명하니까요.”

빌헬름의 죽음은 단순히 옥좌의 공백만 불러온 게 아니었다.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뜩이나 피의 연회로 인해 충격을 받았던 이들은 그에 경기를 일으켰다.

그 잔혹했던 빌헬름마저 죽어 나자빠지는 옥좌의 위험성을 인식한 것이다.

게다가 바보가 아니라면 이미 선전 포고가 나온 상황에서 새 황제가 옹립되면 바로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황족들은 빌헬름이라는 위험이 사라졌음에도 제국으로 돌아오는 걸 꺼리고 있었다.

“게다가 저희에 대한 신뢰 역시 없을 테고.”

빌헬름의 편을 들며 야망을 보여준 게 제국의 기사와 귀족들이었다.

그런 빌헬름을 막으려던 의기를 보여줬던 아르센은 처참하게 죽었고.

이런 로스니아 제국의 야망에 염증을 느끼고 도망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쯧.”

카시안 공작은 혀를 찼지만 그들을 더 나무랄 순 없었다.

이게 다 제국이 쌓은 업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래서야 빌헬름의 뒤를 이을 황제가 제대로 된 황제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진정 몰락의 시작인가?’

군사력도, 경제력, 문화와 기술도 모두 탄탄하지만 제국을 이끌어 나갈 그릇을 지닌 군주가 없는 상황.

선원들은 많은데 지휘할 선장이 없는 상황과 같았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내가…….’

카시안 공작은 못 미더운 이들에게 황제의 자리를 갖다 바치지 말고 차라리 자신이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자신의 생각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황제의 자리를 탐하는 건 역적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제정신이 박힌 귀족이라면 절대 그 자리에 자신이 오르겠다는 생각을 할 순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빌헬름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카시안 공작은 자신이 변할까 두려워졌다.

* * *

제국과의 협상이 마무리되는 데는 약 한 달이 걸렸다.

협상을 하기로 결심한 게 첫날 바로였음을 생각하면 실무란 게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이를 주로 담당했던 네일은 처참한 몰골이 되어 있었고.

“아무래도 쉬어야겠군.”

“그러면 이틀만 쉬겠습니다.”

“좀 더 쉬어도 괜찮은데.”

“쉬는 동안 한가득 쌓일 업무를 생각하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닙니다.”

기껏 휴가를 잔뜩 주겠다고 했으나 네일은 단 이틀만 받아들였다.

휴가가 길어질수록 돌아와서 할 일이 무서운 듯했다.

그 일을 만들어낸 사람이 나이기에 마냥 위로할 수만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구 크레시안 왕국에 로베른 왕국.

거기에 이제는 레이칸 왕국마저 흡수하게 된 처지지만 좀처럼 뛰어난 내정형 영웅은 발견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네일이나 다른 영웅들에게 승급권을 써서 굴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뛰어난 마법사나 전투형 영웅은 많은데.’

외교형 영웅을 찾아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3티어를 넘는 재능은 절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하마터면 로스니아 제국과의 협상에서 사람 좀 달라는 말을 할 뻔했다.

그렇게 받아와서야 충성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터가 안 좋은가?’

레이칸 왕국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두 개 왕국을 합쳐놓고서도 영웅 하나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과연 이 왕국의 교육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새삼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손보는 건 쉽지 않고.

지능이 뛰어난 영웅을 키우려면 자질이 있는 영특한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키우고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으니까.

“네패스 국왕 전하. 콘라드 후작이 알현을 청했습니다.”

그때 콘라드 후작이 나를 방문했다.

당연하게도 사전에 약속된 만남이었다.

아무리 대영주라도 국왕을 불쑥 찾아올 수는 없으니까.

“들여보내라.”

콘라드 후작은 몇 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입장했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래. 이번 일로 논의할 것이 있다지?”

콘라드 후작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제국과의 협상과 관련된 문제였다.

딱히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제국에서 얻어낸 것 중 몇 가지를 두고 나와 거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무례한 일은 아니었다.

군주가 대영주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건 아주 자연스러웠으니까.

오히려 이 사실을 알고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쪽이 이상할 것이다.

“네. 제국의 문화나 기술이야 유명하니까요. 혹여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거래를 통해 얻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뒤의 사람들은?”

“실무를 맡아줄 이들입니다.”

콘라드 후작은 곧장 젊은이들을 나에게 인사시켰다.

나는 이번에 제국과 협상으로 얻어낸 것들의 목록을 꺼내 콘라드 후작에게 전달했다.

콘라드 후작은 목록을 살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제국에서 얻어낸 것들이 꽤나 훌륭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만큼 네일이 고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흠.”

콘라드 후작은 이어서 목록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빠르게 목록을 살폈는데 금방 몇 가지를 짚어내서 콘라드 후작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능숙하고 똑 부러졌다.

콘라드 후작이 직접 데리고 온 걸로 봐서 인정도 받고 있을 테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웅 정보를 사용했다가 경악했다.

‘이게 뭐야?’

그들은 내가 그토록 찾았던 고티어 내정형 영웅과 외교형 영웅들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뒤져봐도 인재가 없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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