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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55화 (155/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5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55화

155화

* * *

카시안 공작은 일천의 추격대를 이끌고 급하게 레이칸 국왕의 뒤를 쫓았다.

빌헬름을 습격했던 군주들이 흩어졌다는 보고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흔적을 통해서 레이칸 왕국으로 추정되는 무리를 찾을 수는 있었다.

각국에서 데리고 온 기사의 숫자는 이미 보고가 되어있던 덕분이었다.

“가장 숫자가 적은 이들이 레이칸 왕국이겠지.”

카시안 공작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곧 달아났던 레이칸 왕국의 전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는 카시안 공작의 예상 밖이었다.

“이게 무슨?”

처참하게 죽어 있는 레이칸 왕국의 전사와 목이 베어진 레이칸 국왕.

마치 빌헬름이 그에게 죽은 모습을 연상시켰지만 레이칸 국왕에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상처가 있었다.

“여럿이서 습격했군. 하지만 일국의 군주와 호위를 위한 전사들을 이렇게 단시간에 해치우다니.”

카시안 공작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일단 제국의 기사단은 아니다.

그렇지만 매우 강한 상대임은 분명했다.

적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난 건가 싶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부족했다.

“각국의 군주 중에서 레이칸 국왕을 노릴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어디였지?”

“네패스 왕국이 가장 유력한 거 같습니다.”

카시안 공작의 물음에 그를 따라온 부관은 고민하다 네패스 왕국을 지목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레이칸 왕국과 충돌할 만한 원인으로 과거 내전에서의 일이 있었고, 이번에 연회장에서도 서로 충돌했다.

더구나 혼자서 500명의 기사를 대동했으니 레이칸 국왕을 죽일 만한 실력도 충분했다.

“네패스 국왕이라…….”

카시안 공작은 고민에 빠졌다.

최우선 목표였던 레이칸 국왕이 죽었으니 그와 협력해 빌헬름을 죽인 군주들을 쫓을지, 아니면 가장 위협적인 상대를 쫓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명분을 고려하면 전자가 중요했지만 어쩐지 카시안 공작의 감은 후자를 노리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제국의 영역에서 타국의 군주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보통이 아니다.’

원한이 있다고 해도 빌헬름이 죽은 상황에서는 달아나는 걸 우선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자신의 원한을 갚아버리다니.

절대 예사로운 배짱이 아니었고, 추격대가 오기 전에 신속하게 철수한 것도 신경 쓰였다.

아무리 머릿수가 많다고 해도 레이칸 국왕이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을 테니까.

‘어쩌면 훗날 큰 위협이 될지도 몰라.’

카시안 공작은 자신의 감을 믿기로 하고 네패스 왕국으로 추격의 대상을 바꿨다.

“이대로 네패스 왕국을 쫓는다. 머릿수가 많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카시안 공작은 네패스 왕국의 군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흔적을 따라서 추격하는 것 자체는 쉬웠으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 흔적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게 대체?”

마법사들의 순간 이동 마법진을 목격한 카시안 공작은 당황했다.

제국의 영토에 타국 마법사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마법진을 설치해 두다니?

“네패스 국왕은 마법사 협회를 제 뜻대로 조종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제국의 영토에 이런 짓을. 게다가 그 인원이 700명이다. 아무리 마법사 협회라도 그만한 규모의 병력을 쉽게 옮기지는 못할 텐데?”

미리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고 들어가는 보주의 양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수상쩍었다.

빌헬름을 노린 군주들의 명단에는 아인의 이름이 없었으나 뭔가 예상한 게 아니고서야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없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군.”

카시안 공작은 이 상황이 절대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빌헬름을 죽인 군주들의 계획과 그것을 역이용한 네패스 국왕.

절대 현장에서 즉석으로 낼 만한 계획이나 노림수가 아니었다.

“그만한 인원을 옮기려면 들어가는 보주의 양은 크다. 절대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방향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국경을 단단히 틀어막아 두면 어딘가에서는 잡힐 거야. 네패스 국왕을 잡아야만 한다.”

카시안 공작은 반드시 아인을 잡아야 한다고 휘하 병력을 채근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주변에서 네패스 왕국의 기사들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 * *

일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나는 이번 일에 마법사 협회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기존의 전쟁에 원로 한 명만 지원받는 조건과 달리 협회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요구한 것이다.

이에 따라서 협회에서는 원로 대다수가 동원되었다.

그들은 제국에 순간 이동 마법을 준비한다는 것에 난색을 표했으나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미 협회와 내 운명은 한배를 탄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체 얼마나 많은 보주가 소모된 건지.”

원로들은 나에게 들으란 듯이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빚을 지웠다지만 감히 일국의 군주를 상대로 보통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과 동행한 원로 중에는 플레턴이 있었다.

“후.”

심기가 잔뜩 불편해 보이는 플레턴의 모습에는 나도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협회의 일원으로서 스승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마법사는 있을 수 없으니까.

대외적인 신분이 어떻든 플레턴 앞에서는 어느 정도 숙이는 모습을 보이는 게 협회와의 관계에도 좋았다.

“내 건강을 신경 써주려면 이런 일에는 엮이지 않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게다가 내가 신경 쓰는 건 단순히 협회와의 관계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말대로 플레턴의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를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딱히 이번 일에 플레턴을 지목해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으나, 내가 대규모로 원로 마법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그가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플레턴이 주축이 되어 원로들이 파견되었고, 막대한 보주를 써가며 제국에서 달아났다.

“그래도 황제의 죽음에 결국 너는 엮이지 않았다는 말이로구나. 그건 다행이다.”

빌헬름의 죽음에 대해 전달받은 협회는 처음에는 식겁하며 나를 봤다.

내가 기어이 제국 황제를 죽이고 그 분노를 샀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이번 일의 중심은 내가 아니었다.

본래라면 그렇게 될 예정이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빌헬름은 레이칸 국왕과 다른 군주들이 죽였으니까.

나는 그들에게 선전 포고가 있으리라는 정보를 제공하기만 했을 뿐이다.

비록 내가 예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 손을 쓰지 않고 빌헬름을 처치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나름대로 소득도 있었고.

“마족과 내통했던 군주들이라……. 세상이 뒤집힐 이야기로군.”

모든 기사들의 입을 막을 수도 없고 굳이 숨길 만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 또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예상은 다들 하고 있던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렇게 실체가 잡힐 줄은 몰랐지.”

그 말에는 나도 동의했다.

대영주 중 누군가가 마족과 내통했다는 건 예상 범위였지만 이번 일에 그들의 실체가 드러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덕분에 뒤통수도 맞아본 셈이고.

설마 게임에서는 아군이었던 크라이더 국왕이 그 배후 중 한 사람이었다니.

“제국은 황제가 죽었다. 내전을 거치며 황족들이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 혼란은 매우 커지겠지. 그런 와중에 마족과 내통한 군주들의 존재라…….”

플레턴은 혀를 찼다.

이건 다시금 몰아칠 거대한 폭풍의 전조였다.

이전이 내전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큰 스케일의 전쟁이겠지만.

“피의 연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군주들과 그 책임을 물으려는 군주들, 거기에 선전 포고를 때려버린 제국이라…….”

대륙의 절반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싸우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마족과의 전쟁과 내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될 만큼 우리는 커다란 혼란을 앞둔 상태였다.

“정말 골 때리는구나. 이래서야 마족 놈들에게는 신경 쓸 겨를도 없겠어.”

“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마족도 마족이지만 거기에 얽혔던 군주들도 대륙의 혼란에 대한 책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하는 앞으로의 전쟁은 대륙 정복의 야망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좋은 명분이 되어줄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피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너야 그렇겠지.”

내 생각을 읽어낸 플레턴이 핀잔을 주었다.

“마족 놈들도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봐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라…….”

“우리가 먼저 마족을 찾아낼 수는 없는 입장이니까요.”

마족들의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니기에 먼저 마족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으로선 이 전쟁을 틈타 다시 세력을 키우고 다가올 마족들과의 결전을 준비하는 쪽이 나을 것이다.

“훗날 역사에서 이 시기를 어찌 평가할지 모르겠구나.”

플레턴은 답 없는 각국의 상황에 한탄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단합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인류는 계속해서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 역시 나처럼 야망을 품은 군주뿐이었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평가하도록 지시를 내려두겠습니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점에 근거해 말을 꺼내자 플레턴의 표정이 처참하게 굳어졌다.

처음으로 나에 대해 진심 어린 분노가 느껴지는 시선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야 했다.

너무 우울해하는 것 같길래 농담을 던진 것인데 역효과였다.

“젠장. 하긴 세상 다 그런 거지. 너 알아서 다 해라.”

플레턴은 툴툴거리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힘없는 발길이었다.

“어떻게 보이십니까?”

“많이 안 좋은 모양이구나.”

슬쩍 묻자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자크론이었다.

협회에서 제명당한 몸으로 원로들과 시시덕거릴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해도 자크론답지 않게 플레턴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플레턴의 건강이 이전보다도 나빠졌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너랑 마법 대결을 했었다지? 그때를 기점으로 아마 크게 악화했을 것이다.”

자크론은 내가 비전 마법을 보여주기 위해서 플레턴과 대련한 걸 지적했다.

건강한 몸인 나도 무리하게 마법을 운용할 경우에는 고통을 느낀다.

플레턴의 나이라면 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뭐, 플레턴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만.”

자크론의 얼굴에도 어느덧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디 안 좋으신 부분이라도?”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빠진다. 그런데 너는 나를 굳이 제국 땅까지 데려와서는…….”

플레턴에 이어서 자크론까지.

새삼 내 죄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생이라도 좀 편하게 보내면 안 되겠느냐?”

“그럴 만큼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란 걸 알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그런 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놔줘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험 많은 4티어의 원로 마법사가 전장에서 보일 수 있는 위력이, 그들의 힘이 구해낼 수 있는 아군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제가 힘을 드리는 쪽이…….”

“죽을 때까지 고생하기는 싫다.”

승급권을 쓸 틈을 노리자 자크론이 기겁하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 * *

로스니아 제국의 황제 빌헬름의 죽음.

그리고 그를 죽인 존재인 레이칸 국왕의 죽음과 제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몇몇 군주들의 죽음.

연달아서 터진 대소식에 대륙 전역에 긴장감이 들끓었다.

더구나 빌헬름이 각국의 군주들을 모은 이유가 함께 미래를 의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국에 선전 포고를 하려던 것이었음이 알려지자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었다.

제국에 대한 비판과 성토.

황제를 잃은 제국의 분노.

아직 군주들이 마족과 내통한 정보까지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것만으로도 전란이 찾아오기에는 충분했다.

실제로 대대적인 움직임이 확인되었다.

내전을 아직 끝내지 못한 왕국에서는 서둘러 전투가 발발했고 내전이 끝난 곳에서도 전쟁을 위한 대비가 시작되었다.

평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또 전쟁인가.”

“내전으로도 힘들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싸우려고…….”

각국의 민심이 요동쳤다.

피의 연회와 내전은 그나마 어쩔 수 없는 혼란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각국의 왕족들이 무참히 죽어나갔고, 그 자리를 둘러싼 대영주들의 다툼은 필연적이었으니.

그러나 이때까지는 내전 이후를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더는 못 하겠다! 이렇게는 못 살아!”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협회의 경고로 조금 주춤하는 거 같던 사교도의 세력이 다시 활개를 쳤고, 각국의 군주들은 이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어떤 군주도 백성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 북부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이는 내 왕국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최대한 민심을 안정시켜 왔지만 이번 전란에는 이성을 잃고 흥분한 민심이 끼어있었다.

과거 카슨 공작의 영토였던 로베른 왕국 북부에서 반란의 조짐이 보였다.

“사교도 세력인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카슨 공작 휘하였던 귀족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소식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은 둘 중 하나였다.

무력을 통해서 그들을 짓누르거나, 아니면 찾아가서 그들을 달래주거나.

이를 무시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기에 고려의 여지조차 없었다.

“목숨을 살려줬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지.”

내 선택은 전자였다.

빠르게 안정을 시키기 위해서도 신속한 진압이 필요했고, 더구나 타국과 달리 내 왕국에서 난 영웅으로서 명성이 있었다.

굳이 상대의 사정을 봐주면서 행동해야 할 정도로 내 입지가 좁지는 않았다.

“지워라.”

간결한 명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번 불온한 움직임에 가담한 여러 귀족과 식솔들의 목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사람이 부족한 판국에 뼈아픈 출혈이었으나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족속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전쟁을 앞두고 불화의 씨를 먼저 정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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