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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51화 (15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5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51화

151화

빌헬름의 발언은 연회장의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전을 거치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이들치고 전쟁을 경험하지 않거나 눈치 없는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레이칸 국왕은 겉모습만으로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모두가 레이칸 국왕을 피하며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 상대를 대놓고 앞으로 불러내다니?

물론 제국의 황제로서 자신의 초청을 받고 온 군주들이 멋대로 싸움이 붙은 건 기분 나쁠 일이 맞았다.

하지만 군주들은 이를 반갑게 여기지 않았다.

‘젠장! 저 미친놈이 또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빨리 내 곁으로 모여라! 날 지키란 말이다!’

긴장이 풀렸던 군주들이 다시 바싹 얼어붙고, 호위들도 살벌한 시선으로 군주 곁으로 모여들었다.

동시에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 곳을 향했다.

“나가서 어쩌라는 거지?”

건장한 호위들과 비교해서도 머리가 두 개 이상은 큰 레이칸 국왕이 빌헬름의 부름에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그런 빌헬름의 태도에 제국의 귀족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 폐하께서 부르시니 일단 나가시지요.”

“너희에게나 황제지 나에게도 황제더냐? 그냥 타국의 군주일 뿐이다. 내가 그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

레이칸 국왕이 대놓고 거부하자 빌헬름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레이칸 왕국은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약소국이었다.

척박하고 험한 기후와 지형 탓에 인구도 부족하고 기술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땅.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레이칸 왕국의 전사들은 분명 강하지만 그래 봐야 머릿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이곳은 로스니아 제국입니다.”

“그래. 그리고 난 초청을 받아서 이 자리에 왔지. 이게 제국이 손님을 대하는 예절인가?”

냉소적인 레이칸 국왕의 태도에 제국 귀족들은 말문이 막혔다.

로스니아 제국이 가지고 있는 힘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상대는 막무가내였다.

“아무래도 단순히 말로만 하면 안 될 거 같군.”

그런 레이칸 국왕의 태도에 빌헬름의 인내심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빌헬름은 레이칸 국왕을 향해 직접 몸을 움직였다.

제국 황제의 발걸음 앞에 군주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좌우로 흩어졌다.

그 대신 빌헬름을 따르는 귀족들이 빠르게 그 곁에 붙었다.

이에 따라 레이칸 국왕을 지키는 전사들도 붙었으나 규모 면에서 제국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조촐한 인원이군.”

레이칸 국왕의 앞에 멈춰 선 빌헬름은 전사들의 숫자를 보며 비웃었다.

제국의 황제인 자신에게는 이 자리에서만 수많은 기사들이 붙었으며, 그중에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뛰어난 이들도 있었다.

반면에 레이칸 국왕의 곁에 선 전사들의 숫자는 절반조차 되지 않았다.

“머릿수가 많으면 뭐 하겠는가? 제일 앞에 서 있는 게 잔챙이인 것을.”

레이칸 국왕은 빌헬름을 향해 조롱을 보냈다.

그가 보았을 때 빌헬름의 수준은 정말로 형편없었다.

잔혹한 성정과 높은 계승 순위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빌헬름이 가진 능력은 이 자리에 모인 군주 중에서도 그리 특출날 게 없었다.

그래서 친동생의 반란으로 수년이라는 시간을 날려먹은 것 아니겠는가?

“그거 아나? 나는 이 제국의 선대 황제를 본 일이 있었지.”

이어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빌헬름의 표정에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가장 고귀한 피를 갖고 태어났으면서 무력도 지략도 출중했던 군주였다. 가히 황제라는 자리에 그만큼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레이칸 국왕의 이야기에 귀족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선대 황제에 대한 칭찬은 분명 제국의 위상을 살리는 일이었으나, 지금의 황제인 빌헬름에 대한 반면교사로 사용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도 선대 황제는 제 능력을 보였다.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이들과는 달랐지.”

“내가 그런 멍청이라는 소리인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런 것이겠지.”

“나는 직접 반란을 평정했다. 수괴인 동생을 내 손으로 처단했지.”

자신의 능력을 의심당하자 빌헬름은 아르센이 일으킨 내전에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레이칸 국왕의 조롱은 더욱 심해졌다.

“그만한 병력을 가지고도 지면 병신이지. 애초에 상대는 이길 수도 없는 내전을 수년이나 질질 끈 것만 해도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꿈틀!

빌헬름은 더는 표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것처럼 시뻘게진 얼굴로 레이칸 국왕을 노려봤다.

“지금 그 말, 감당할 수 있겠나?”

“못할 거 같나?”

빌헬름과 레이칸 국왕의 대치에 군주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가벼운 대화로 풀릴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저런 미친놈! 아무리 레이칸 왕국이 험지라서 타국의 군대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해도 그렇지!’

‘지금 이 자리에서 피바람이 부는 건 어찌하려고? 무식한 놈이!’

군주들은 빌헬름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레이칸 국왕의 목이 단숨에 떨어지리라 생각했다.

호위의 숫자도 부족하고, 이 자리에는 제국에서 이름난 기사들이 많았다.

반면에 레이칸 왕국의 전사들은 로스니아 제국에 비해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얻을 만한 정보라고는 지금은 네패스 왕국이 된 구 크레시안 왕국의 내전에 끼었다가 참패했다는 것뿐.

그렇기에 누구도 레이칸 국왕의 승산을 점치지는 않았다.

“좋아.”

그때 빌헬름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이렇게까지 모욕을 들은 이상 참는 것도 말이 안 되지. 레이칸 국왕, 그대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다.”

“군주가 모욕 좀 받았다고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제 와서 겁이 나나?”

“감정에 따라 휘둘리는 국정이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꼴인지.”

여전히 자신에게 비아냥거리는 레이칸 국왕의 행태에 빌헬름은 목소리를 높였다.

“미안하지만 이건 감정으로 인한 것이 아니야. 처음부터 준비는 해뒀으니까.”

“준비라고 했나?”

“그렇다. 이 기회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군주들에게 선언하지. 현 시간부로 로스니아 제국은 서부에 있는 모든 국가에 전쟁을 선포한다!”

빌헬름의 외침에 군주들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레이칸 국왕이 준 모욕 때문에 레이칸 왕국을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한 것이라면 이해라도 하련만.

그런데 빌헬름은 서부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뜬금없이 전쟁을 선포했다.

군주들로서는 당연히 황당했다.

“그게 무슨?”

“지금 전쟁을 선포한다고 했나?”

“설마. 잘못 말한 것이겠지.”

빌헬름은 어리둥절한 군주들의 반응을 보며 거기에 쐐기를 박았다.

“제대로 들었다. 로스니아 제국의 황제인 나, 빌헬름의 이름으로 서부의 모든 국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

한 번 더 전쟁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군주들은 현실을 인지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갑자기 전쟁이라니?”

“우리 왕국은 로스니아 제국과 아무런 원한도 없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건가?”

군주들의 항의에 빌헬름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그런 반응들이지? 언젠가 일어났을 예정된 일인데.”

빌헬름의 이야기에 군주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로스니아 제국의 국력이 강해질수록 타국에 대한 위협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서부의 국가들은 로스니아 제국을 어느 정도 견제해 왔다.

압도적인 국력을 가진 로스니아 제국이 언젠가 야욕을 드러낼지도 모르기에.

그러나 마족과의 전쟁과 거듭된 내전으로 인해 어느 순간 제국에 대해 조심하는 이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눈앞에 들이닥친 혼란 때문에 로스니아 제국의 존재를 신경 쓸 겨를이 없던 것이다.

“안심해라. 내 이름으로 초청한 손님들을 이 자리에서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고국으로 돌아가 전쟁에 대비할 시간을 주도록 하겠다. 그런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빌헬름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다른 국가들이 얼마든지 힘을 합쳐봐야 로스니아 제국의 힘을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에 군주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이를 부정하지 못했다.

실제로 로스니아 제국의 군대가 작정하고 정복 전쟁을 개시한다면 근처에 있는 국가부터 쓸려나가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으니까.

마족과의 전쟁과 연이은 내전으로 피해를 본 대부분 국가는 로스니아 제국이라는 거대한 힘에 대항할 능력이 없었다.

“레이칸 국왕. 그대의 왕국은 친히 내가 짓밟아주도록 하지.”

선전 포고를 날린 빌헬름은 레이칸 국왕을 향해 미소 지었다.

설마 진짜 전쟁이 선언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다가 허를 찔린 상태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이칸 국왕은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기어이 그 말을 내뱉었구나, 멍청한 황제여.”

“무슨?”

당황하기는커녕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레이칸 국왕의 말에 오히려 빌헬름이 당황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이었다.

빌헬름의 앞으로 무언가가 쇄도했다.

워낙 빠른 속도로 움직였기에 빌헬름은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으나 거기에 반응한 이들이 셋 있었다.

쩌엉!

공기가 찢기는 폭음과 자신의 몸을 낚아채는 묵직한 느낌.

빌헬름은 어느새 레이칸 국왕의 앞에서 훌쩍 떨어진 뒤편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무슨?”

갑작스러운 이변에 빌헬름은 당황했다.

빌헬름을 뒤편으로 옮긴 건 제국의 귀족 중 한 사람이자, 황실을 수호하는 로열나이츠의 단장 필립 후작이었다.

제국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명성이 자자한 그는 잔뜩 굳어진 얼굴로 빌헬름의 앞을 지켰다.

‘아슬아슬했다.’

필립 후작은 찰나의 순간에 레이칸 국왕의 살기를 읽어내고 본능적으로 빌헬름을 빼냈다.

상대가 어지간한 담력이 아닌 것 같아 긴장하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하마터면 황제의 목이 날아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저, 저 미친놈이 기어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빌헬름은 치욕으로 몸을 떨었다.

제국의 황제인 자신을 죽이려고 하다니?

아무리 선전 포고를 했다지만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설마 제국의 땅에서 황제인 자신을 죽이려고 들 줄이야.

“뭣들 하는 거냐! 당장 저놈을 죽여라!”

빌헬름의 명령에 그랜트와 로열나이츠의 부단장인 로터스 백작이 레이칸 국왕을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비무장 상태였던 레이칸 국왕은 곁으로 다가온 전사에게 무기를 넘겨받아 휘둘렀다.

그의 거구에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글레이브였다.

콰콰쾅!

레이칸 국왕이 휘두른 일합이 전해주는 충격에 그랜트는 몸을 떨었다.

지금껏 살면서 받아본 어떤 일격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힘에 전신이 비명을 질렸다.

‘덩치부터 장난이 아니지만, 이게 정말 인간의 힘인가?’

공격을 받아낸 손이 충격에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당황하기는 로터스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의 이름 있는 기사들은 서로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누군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랜트가 저 정도 충격을 받았다면 자신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때 로터스 백작을 당황시키는 문제가 연달아서 벌어졌다.

뒤편으로 빠져서 빌헬름을 보호하던 필립 후작은 섬뜩한 느낌과 함께 급하게 방패를 들었다.

카앙!

사각에서 이루어진 기습이었음에도 이를 느끼고 방어한 필립 후작의 감각은 대단했다.

그러나 레이칸 국왕이 아닌 다른 적의 출현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빌헬름도 자신을 노린 암기의 존재에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몇몇 군주들과 그 호위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 * *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시작은 빌헬름의 부름에 레이칸 국왕이 응하지 않으면서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생각 없는 머저리가 아니었다.

빌헬름을 상대로 대놓고 모욕을 주는 행동에서 은근히 선전 포고를 유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자신이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빌헬름이 선전 포고를 해올 거라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의문이었다.

‘분명 내가 언질을 주기는 했지만, 레이칸 국왕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난 빌헬름이 전 국가를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할 거라는 걸 몇몇 군주들에게 전달해 둔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성공적으로 빌헬름을 죽이고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도와줄 협력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굴도 본 적 없는 타국의 군주들에게 모든 걸 말해 줄 수는 없었다.

행여나 빌헬름의 편에 서는 멍청한 군주가 나올지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게임에 기반해 믿을 만한 군주들을 선별하고 제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복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만 해두고 만약의 상황에 나에게 협조 해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거기에 레이칸 국왕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아무래도 레이칸 국왕이 먼저 움직일 생각인 모양이군.”

그때 크라이더 국왕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그는 마치 레이칸 국왕이 저렇게 나올 거라는 사실을 예측한 것처럼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혼란스러운가? 그에게는 내가 말했네. 레이칸 국왕과는 따로 연락이 가능했거든.”

이어지는 크라이더 국왕의 설명에 머리를 망치로 후려 맞은 거 같은 기분이었다.

크라이더 국왕은 게임에서도 나왔던 인물이기에 충분히 신뢰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내 예상을 벗어난 행동을 보였다.

“자네는 대단한 영웅이야, 네패스 국왕. 그렇지만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느라 위를 잘 모르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지.”

“그게 무슨?”

“로스니아 제국이 언제고 야욕을 드러낼 거라는 걸 타국의 군주들이 전혀 몰랐겠나? 이미 예전부터 이에 대항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동맹을 맺은 국가들이 있었지.”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비밀스러운 동맹.

그런 건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왕가의 인물인 레일리도 그런 이야기는 해준 적이 없었고.

“설마 황제가 이런 미친 선택을 할 줄은 우리도 몰랐지만, 자네 덕분에 미리 준비할 수 있었네.”

크라이더 국왕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앞으로 나갔다.

그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군주들이 크라이더 국왕의 옆에 붙어서 빌헬름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의 호위 역시 이미 빌헬름을 죽이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황제는 죽을 거야.”

크라이더 국왕의 말에 소름이 쫙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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