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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49화 (14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4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49화

149화

장외에서의 소란과 무관하게 루시우스와 하이록의 대련은 치열하게 이어졌다.

양쪽 다 좀처럼 우위를 잡지 못한 채 앞선 대련보다도 시간이 흘러가며 체력과 집중력 싸움으로 거의 굳어져 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지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숨 돌릴 틈조차 없이 계속 검을 주고받는 치열한 승부였기 때문이다.

“젠장!”

그러다 서서히 승패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이록의 체력 소모가 좀 더 컸는지 숨 쉬는 게 곤란해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루시우스는 한참 젊은 나이지만 하이록은 이미 전성기에 이른 기량이었다.

아까 루시우스가 했던 말처럼 이제는 약해질 일만 남은 몸으로, 장기전은 하이록에게 유리할 것이 없었다.

“난 지면 안 된다고!”

점차 상황이 불리해지자 하이록은 더욱 절박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음이 앞서서 그런지 오히려 검의 정밀함은 떨어졌다.

결국 한참 이어진 치열한 승부에서 승리를 가져온 것은 루시우스였다.

“좋은 대련이었습니다.”

많이 지치기는 했으나 승리를 거둔 루시우스는 기분 좋게 웃었다.

반면에 하이록의 표정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그랜트가 패배한 마당에 자신까지 졌으니 2:0으로 결판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련은 어쩌겠나?”

“그래도 하기는 해야지요.”

혹시 마지막 대련을 취소하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봤지만, 하이록은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무리 그래도 2:0으로 끝나는 것보다는 2:1이 낫다는 생각 같았다.

그렇게 이미 승패가 나뉜 상황에서 마지막 대련의 상대가 앞으로 나왔다.

“페일 경. 부디 제국의 자존심을 지켜주게.”

로스니아 제국 마지막 기사의 이름은 페일.

30대 초반의 기사로 3티어 영웅이었다.

“마무리하고 오겠습니다.”

그에 맞서는 건 빅터였다.

“시작하게.”

하이록이 신호를 보내자 페일이라는 이름의 기사는 처음부터 맹공을 퍼부었다.

이미 제국의 패배가 정해진 상황에서 자신마저 패해 3:0으로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인지 최선을 다하는 게 눈에 보였다.

채앵!

그러나 빅터 역시 만만치 않았다.

릴리아나와 루시우스가 연달아서 승리를 거둔 상황에서 자신 혼자 패배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과거 부족한 재능으로 인해서 좌절을 맛봤던 빅터였기에 더욱.

“나는 절대 질 수 없네.”

“나 역시 마찬가지야.”

마지막 대련을 하는 두 사람은 앞선 대련과 달리 험한 말이나 모욕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두 사람의 대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양쪽의 실력은 호각이었다.

빅터의 공격은 안정적이었고 페일이라는 기사의 공격은 변화무쌍했다.

검술의 성향은 다소 다르지만 서로 어우러지며 멋진 장관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치열한 게 아니라 보는 맛이 있었다.

“대단하군.”

그렇게 한참 승부가 이어지자 페일에게서 느껴지던 조급함이 사라졌다.

대신 그는 진정으로 빅터를 인정한다는 듯 투지를 불태웠다.

“서로의 자존심을 떠나서 이토록 이기고 싶은 상대가 얼마 만인지!”

채앵!

다음 순간 페일의 검이 화려하게 움직였다.

눈을 현혹시킬 정도로 복잡한 궤도를 그리는가 싶었으나 진짜 노림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경로로 빅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카앙!

하지만 빅터는 방패를 들어 이를 안정적으로 막아내고, 이를 앞세워 페일의 균형을 무너트리려 했다.

페일은 이에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빠르게 균형을 회복했다.

“누가 이길 거 같나?”

그 모습을 지켜보다 혹시 다른 전투형 영웅은 나와 다른 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릴리아나에게 물었다.

“지금으로선 아직 승패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릴리아나도 승패를 점치지 못하고 있었다.

“빅터 경은 안정적입니다. 상대가 누구라도 절대 쉽게 패배하지 않는 공방 일체의 검술을 자랑하지요.”

“상대는?”

“페일이라는 이름의 제국 기사는 화려하지만 분명 실전적인 검술을 익혔습니다.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빈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저런 검술은 보통 빅터 경에게 상성이 나쁩니다만…….”

릴리아나는 말을 흐렸지만 뒤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혀 빅터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는 상대의 검술이 지닌 완성도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으로선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앞선 대련처럼 엄청난 장기전으로 갈지 모릅니다.”

릴리아나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서로 결착을 짓지 못한 두 사람의 대련은 계속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러나 앞선 경기처럼 빅터가 젊으니까 유리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페일이라는 기사의 나이도 그리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왜 빅터 경을 내보내셨습니까?”

그때, 이번에는 릴리아나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훌륭한 기사를 내보낸 것에 문제가 있나?”

“안정적으로 이기려면 로크 경이 나았을 겁니다.”

대검을 다루는 로크는 페일이라는 기사와 상성상 불리하지만 두 사람의 실력 격차는 검술의 상성을 뒤집을 정도로 컸다.

분명 로크라면 이미 승리를 거뒀을 것이다.

“근위기사단장을 대련에 내보낼 수는 없지.”

하지만 로크는 근위기사단장이다.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로크를 대련에 내보내서 부상을 입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릴리아나는 대답이 부족하다고 여긴 듯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실력을 무엇보다 우선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로크를 내보내는 게 나다운 방식이기는 했다.

“확실하게 이길 기회를 놓고 굳이 불확실한 선택을 한 건…….”

“누가 그러지? 내가 불확실한 선택을 했다고?”

다음 순간 대련에 이변이 일어났다.

파악!

양쪽 다 체력이 떨어진 시점에 갑자기 빅터가 페일을 몸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큭!”

치열하게 검술을 맞부딪치던 상황에서 갑자기 초근접전으로 상황이 변하자 페일은 당황하는 낌새를 보였다.

나는 그런 그의 영웅 정보를 확인했다.

격투술이 고작 1밖에 되지 않았다.

“완성도 있는 검술은 그만큼 시간을 할애했다는 소리지.”

순수하게 검술만 놓고 보자면 빅터보다 페일이 나았다.

그러나 빅터는 안정적인 방어로 페일의 체력이 빠질 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이제는 빅터에게 나은 종목으로 바꾸면 될 일.

콰당!

빅터는 페일을 바닥에 패대기치고 주먹을 들었다.

검을 휘두르기에는 너무 바짝 붙은 상태였다.

라이언처럼 단검이라도 쓴다면 모를까, 페일의 무장에는 단검이 없었다.

“그럼 검술 빼고 뭐가 남겠나?”

뻐억!

빅터의 주먹이 페일의 안면에 꽂혔다.

단 한 방이었다.

치열하게 맞붙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도 빅터는 단 일격으로 페일을 침묵시켰다.

짝짝짝.

난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박수를 쳐줬다.

그런데 박수를 치는 인물이 나만은 아니었다.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라이언도 나를 따라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격투로 끝나게 될 걸 알았나?”

“제가 직접 가르쳤으니까요.”

“잘 가르쳤군.”

난 솔직하게 라이언을 칭찬해 주었다.

물론 빅터가 성실하기에 저렇게 훌륭하게 배운 것이겠지만.

“전하께서는 어찌 아셨습니까?”

“몰랐어.”

“네?”

“그냥 이길 거라는 것만 알았지.”

빅터가 이기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길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막무가내 같지만 빅터는 자신의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 말릭과 싸워서 한 번 죽인 게 누구인데.

거기에 비해서 페일은 한참 애송이일 뿐이었다.

“이걸로 대련도 끝이군.”

3:0이라는 압도적인 차이.

제국 기사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졌습니다.”

하이록은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신들이 이길 줄 알고 준비한 대련에서 처참하게 패배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만약 이 일이 빌헬름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네패스 왕국의 기사들은 정말 대단하군요.”

“만회할 기회를 얻고 싶나?”

난 그런 하이록에게 희망을 던졌다.

“그 말씀은?”

“이번에는 기사단이 겨뤘으니 다음에는 마법사끼리 겨루는 게 어떤가?”

그러나 그건 썩은 동아줄이었다.

마법사란 말이 나옴과 동시에 하이록은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곧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시선을 숙이기는 했으나 그 눈동자에 나를 욕하려는 감정이 나온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졌습니다. 구차하게 더 붙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왜 그러지? 마법사는 이길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 하이록! 제국의 마법사들이 가진 힘을 보여줘야지!”

하이록과 달리 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지 그랜트는 어서 이를 받아들이라고 하이록을 재촉했다.

그에 하이록은 그랜트의 옆구리를 꽉 잡으며 살벌한 눈길을 보냈다.

“입 닥쳐, 새끼야.”

“어? 어…….”

그 모습을 봐서 하이록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는 듯했다.

아쉬운 일이었다.

나와 자크론 그리고 티아라를 내보내서 제국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밟아줄 생각이었는데.

명성이 너무 큰 것도 문제였다.

* * *

대련이 끝나고 타국의 군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에서 아는 얼굴도 있었고 게임에서는 못 봤지만 이 세계에 와서 이름을 알게 된 이들도 있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제국의 기사들과 대련을 해서 3:0으로 완승을 거두셨다고.”

안면이 없거나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군주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는 제국과 관련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 하이록이 친선 대련을 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왔다.

제국에서는 가능하면 이 사실을 숨기고 싶겠지만, 그러려면 막아야 할 입이 자그마치 700명이었다.

작정하고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기에 타국의 군주들은 모두 도착하자마자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대단한 기사들을 보유하셨습니다.”

“마법사들의 대련까지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지요. 기사들만 재미를 보고 저는 심심했지 뭡니까?”

곁에 있는 하이록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하자 하이록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랬습니까? 이거 참, 황제의 초청을 받아 온 손님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각국의 군주였다.

작위는 백작에서 나와 같이 왕위에 오른 사람까지 다양했지만 각 나라에서 가장 세력이 강맹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반면 제국의 인물이라고는 그랜트나 하이록 정도뿐이고, 그랜트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상 하이록 혼자서 귀빈들을 상대해야 하니 제국의 위신이 제대로 설 수 없었다.

“여러분! 사트리안 왕국의 프레시아 공작님이 오셨습니다.”

그때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어디까지나 내가 일방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반가워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프레시아 공작의 딸인 이데아의 외모는 타국에도 소문이 퍼질 정도였기에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저 사람이 프레시아 공작인가.”

“그럼 옆에 있는 게 소문이 자자한…….”

프레시아 공작과 함께 이데아가 들어섰다.

마치 보석처럼 아름다운 눈동자와 비단결 같은 은발 머리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녀는, 어째서 절대군주에서 그토록 유저들의 찬양을 받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위니스보다 낫군.’

위니스도 대단한 미녀였지만 이데아가 좀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은 레일리지만.

“이거 오히려 소문이 부족할 정도로군.”

“우리 아들놈이랑 한번 엮어볼까?”

이데아의 아름다움을 목격한 군주들은 갑자기 시종을 시켜서 거울을 가져오게 하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게다가 중매라도 서려는지 동생이나 아들, 조카 등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들끼리 먼저 말을 걸겠다고 다툼이 일어나기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미녀군요.”

그래도 나와 대화를 나누던 이는 그런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크라이더 국왕.

게임에서 나온 유능한 군주로 일부러 친분을 다지고자 그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네패스 국왕은 관심 없습니까?”

“이미 부인을 둔 몸이니까요.”

“허허허. 그렇지요.”

크라이더 국왕은 호탕하게 웃고는 잔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건배나 합시다.”

“그러지요.”

나도 마찬가지로 잔을 들었다.

그러나 서로의 잔을 부딪치기 전, 생각지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칸 왕국의 레이칸 국왕 전하가 오셨습니다.”

아직 크레시안 왕국이었던 시절, 북부 내전에서 적으로 마주했던 레이칸 왕국의 국왕이 나타난 것이다.

“무, 무슨 덩치가?”

레이칸 국왕의 입장과 동시에 들떠있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거인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키는 모르타르조차 작아 보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북풍한설을 그대로 몰고 온 것처럼 오싹한 느낌과 서슬 퍼런 기세는 심약한 이라면 보는 것만으로 악몽에 시달려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압도되는 기분이군.”

크라이더 국왕이 눈을 흘기고 나는 몸을 긴장시켰다.

설마 로스니아 제국이 초대한 자리에서 칼부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레이칸 왕국의 국왕은 무력으로 정해진다고 하던데.’

이는 저기에 있는 레이칸 국왕이 한 국가를 대표할 실력자란 소리였다.

아무리 5티어 마법사인 나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마팔보다는 더 강할 테니까.

“네패스 국왕은 어디에 있나?”

가능하면 조용히 지나쳤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될 모양이었다.

레이칸 국왕이 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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