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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46화 (146/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46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46화

146화

* * *

빌헬름은 또라이다.

절대군주를 플레이해 봤던 유저라면 누구도 여기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빌헬름의 성격은 로스니아 제국이 처음 등장하는 사절단의 존재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적들을 먼저 대면해서 친히 선전 포고해 주는 그 기질은 여전한가 보군.’

절대군주에서도 로스니아 제국은 전쟁에 나서기에 앞서 각국의 군주들을 소환했다.

내가 게임에서 비중이 낮은 크레시안 왕국이나 로베른 왕국의 귀족들을 알고 있는 것도 이 초청 덕분이었다.

빌헬름은 대륙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국가 전부에 초청장을 돌렸으니까.

이 초청을 거부한 국가는 없었다.

마족과의 전쟁이 있기 전부터 내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까지 로스니아 제국은 서부의 어떤 국가도 넘보지 못할 패권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항할 수 있는 건 동부에 있는 또 다른 제국뿐이니, 다른 국가들은 얌전히 따르는 수밖에.

“초청장이라? 사전에 아무런 교류도 없던 상대에게 초청장을 보냈다는 건가?”

“그렇기에 더욱 초청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서부의 군주들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

빌헬름은 서부의 군주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선전 포고를 날릴 것이다.

자신의 야망을 숨기지 않고 철저하게 세계 정복의 뜻을 드러내는 게 빌헬름다운 행동이니까.

그리고 로스니아 제국은 그래도 될 정도의 저력을 품고 있었다.

족히 100만에 준하는 엄청난 규모의 군대와 양손의 손가락을 모두 더해도 셀 수 없는 숫자의 5티어 영웅.

이렇게나 체급 차이가 큰데 자신감이 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내용이 궁금해지는군. 안으로 들어가지.”

계속 왕궁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기에 하이록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도 하이록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여러 군주 중에서도 네패스 국왕 전하께 깊은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래? 어째서지?”

“그야 네패스 국왕 전하께서는 대단한 영웅 아니십니까? 전하가 지난 수년 동안 쌓아온 업적은 제국 내에서도 위명이 자자합니다.”

언뜻 특별할 것 없는 아부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뉘앙스가 미묘했다.

타국의 군주가 업적을 쌓았다면 일반적으로는 경계를 하는 게 보통일 터.

하물며 빌헬름 같은 또라이가 그저 순수하게 감탄했을 가능성은 없다.

이는 빌헬름이 나를 짓밟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게 맞았다.

“특히 마족을 둘이나 토벌하신 이야기는 놀라웠습니다.”

이를 모르는 척 적당히 대화를 받아주고 있었는데 마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사트리안 왕국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게 떠올랐다.

“마족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제국에는 사트리안 왕국에서 발견된 마족에 대한 정보가 있는가?”

“아, 그 소식은 저도 접해 봤습니다만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혹시나 로스니아 제국이 뭔가 단서라도 알까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는데 마땅한 소득은 없었다.

“이번에 초대한 국가 중에는 사트리안 왕국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곳에서 오는 이들에게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사트리안 왕국에서는 누구를 초청했지?”

사트리안 왕국에 대한 초청 이야기가 나오자 비로소 하이록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본래 사트리안 왕국에서 초청을 받는 인물은 스토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저의 캐릭터였으니까.

그런데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니 사트리안 왕국의 내전은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뭐, 그래 봐야 대영주파가 친왕실파를 몰아내는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흘러갔겠지만.

어쨌든 그 인물이 누구일지는 궁금했다.

“사트리안 왕국에는 현재 가장 세력이 큰 프레시아 공작가에 초청장을 돌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레시아 공작가.

로스니아 제국이 나오기 전 사트리안 왕국 스토리를 담당하는 메인 빌런이었다.

빌런이라고 해도 로스니아 제국처럼 대놓고 악당 역할을 맡은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대영주파의 핵심으로 대립하는 입장이지만.

‘게임에서는 유저에게 패배했지만 이곳에서는 승리한 모양이군.’

유저에 해당하는 인물이 없거나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사트리안 왕국은 그들에게 거의 넘어간 모양이다.

충분히 예상 범위였다.

오히려 여기서 다른 세력이 나왔다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럼 이데아 프레시아도 볼 수 있겠군.’

프레시아 공작가는 초반 악역에 불과하지만 그곳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인기가 많았다.

외모도, 매력도 충분한 데다 능력도 뛰어나 어째서 프레시아 공작가가 아군이 아닌 적이냐고 괴로워하는 유저들도 있을 정도로.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저들의 애정을 받았던 상대가 바로 이데아 프레시아.

프레시아 공작가의 꽃이라 불리는 사트리안 왕국 최고의 미녀이자 초보자들에게는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최초의 5티어 적 영웅이었다.

“이제 초청장을 주게.”

왕좌에 앉아 다시 느긋하게 인사를 받은 뒤 하이록으로부터 준비해 온 초청장을 받았다.

초청장은 로스니아 제국의 풍요로움을 자랑하듯 화려한 상자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격식에 따라서 네일이 대신 받아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어차피 초청장의 내용은 다 아는 부분이기에 혹시 게임과 다른 것이 있는지만 훑었다.

“이상하군. 무엇을 위한 초청인지 제대로 적혀 있지를 않아.”

그리고 하이록을 향해 바로 의문을 제기했다.

분명 초청장 자체는 정상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왜 부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에 선전 포고를 할 거라고 적으면 정신이 나간 게 아니고서야 어느 군주가 빌헬름의 초대에 응할까?

대경실색하며 로스니아 제국 근처로는 발길조차 향하지 않을 것이다.

“그, 혼란스러운 시대가 아닙니까?”

갑자기 허를 찌르는 질문이 날아들자 하이록은 잠시 주춤하더니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어느 한 국가가 노력하는 것만으로 극복될 문제가 아니니, 각국의 군주들이 모여서 회담을 열자는 것이지요.”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렇게 적으면 되었을 텐데.”

빌헬름의 또라이 같은 성격에는 나름의 고집스러운 면모도 존재한다.

서부의 패권국인 로스니아 제국의 황제로서,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뭐, 지금이야 자기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여유를 부리는 것일 뿐, 제 목숨이 위험해지면 그런 걸 전혀 따지지 않지만.

“으음…….”

내 지적에 하이록의 표정이 굳어졌다.

감히 대륙에서 단 둘뿐인 제국의 황제가 나에게 지적질을 받았으니 심기가 불편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하이록은 이에 어떤 항의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여기서 하이록의 항의 때문에 초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해버리면 선전 포고로 잔뜩 기대하고 있을 빌헬름에게 찬물을 끼얹어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백작의 작위를 가진 하이록이라도 대번에 목이 날아가고 말 것이다.

빌헬름에게 작위나 충성심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어쨌든 초청을 받았으니까 응해 줘야겠지.”

“황제 폐하께서 직접 주관하시는 성대한 연회도 열릴 겁니다.”

“그래. 기대되는군.”

분명 성대한 연회이기는 할 것이다.

그게 빌헬름이 바라던 연회는 아니겠지만.

* * *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난 빌헬름으로부터 받은 초청에 응하기 위해서 기사단을 이끌고 왕궁을 나섰다.

‘본래라면 대리인을 쓰는 게 보통이겠지만.’

뭐 하나 믿을 수 없는 제국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일이다.

본디 이런 일에 군주가 직접 움직인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하지만 게임 내 이벤트라서인지, 아니면 상대가 로스니아 제국이기 때문인지, 실제로 지금 서부의 군주들은 나처럼 직접 나서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로베른 왕국도 나에게 흡수되지 않았다면 카슨 공작이 직접 움직였을 것이고.

‘뭐, 보낼 만한 대리인도 없지만.’

이 몸도 그렇고 레일리도 그렇고, 이제는 서로 피붙이 하나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 친척을 보낼 수는 없고, 왕국의 저명한 인사를 선발하자니 또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내전으로 기존의 대영주들이 모두 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합병이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은 로베른 왕국 출신의 대영주들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고.

“전하, 그런데 호위를 이렇게 편성해도 되겠습니까?”

그때 로크가 호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럴 만도 했다.

본래라면 근위기사단장인 로크가 알아서 선발했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인원을 일일이 배정했으니.

그 구성원들의 면면은 로크를 기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문제라도 있나? 왕국 최고 정예들인데?”

“그래서 문제입니다.”

로크의 시선이 내 곁에 있는 기사들을 하나씩 훑었다.

탈론과 모르타르, 릴리아나와 루시우스, 로크와 다니엘.

거기에 마법사는 자크론과 티아라까지 불렀다.

게다가 무장 역시 꼼꼼하게 챙기도록 했고, 호위라고 편성한 병력도 기사단 전체였다.

이에 당황하기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로스니아 제국에 갈 거라고 했을 때 자신만 부르는 줄 알았을 테니까.

“기사의 숫자만 500명입니다. 아무리 로스니아 제국이라지만 과하지 않습니까?”

“전혀.”

“지금 우리 전쟁하러 가는 길입니까?”

“그럴 거면 병사들도 준비했겠지.”

수행원을 포함하면 700명이 넘는 대규모 행렬이다.

자세한 사정도 모른 채 로스니아 제국으로 간다고만 들었던 기사들도 서로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굳이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지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으니까.

결국 로크는 자포자기했는지 몸을 돌렸다.

“보아하니 근위기사단장도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인데…….”

그러자 이번에는 자크론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각국의 군주가 모이는 자리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직속 기사단을 전부 불러내? 게다가 협회에도 공문을 보낸 걸로 알고 있다.”

협회에 대한 이야기가 자크론에게서 나오자 내 시선은 옆에 있던 티아라에게로 향했다.

보통 협회와 접촉할 일이 있으면 티아라를 불러다가 시키기 때문이다.

협회에서 제명된 상태인 자크론에게 협회가 뭔가를 알려줬을 리도 없으니 저 정보는 티아라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왕의 옆에 있기엔 입이 좀 가볍지 않나?”

“죄송합니다!”

내 핀잔에 티아라는 당황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러면서 슬쩍 자크론을 노려보는데 그 눈빛이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제명이라도 원로급 마법사에 자신보다 작위도 높은 귀족인데 당장 뒤통수를 치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애가 좀 변했군.’

예전의 티아라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영웅 정보]

이름 : 티아라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네패스 왕국

유형 : 마법형

등급 : 3티어

칭호 : 뛰어난 마법사

스킬 : 마나 블래스트(3), 윈드 불릿(3), 마나 파장(3), 아이스 체인(3), 파이어 스피어(3), 마나 실드(3), 블리자드(2), 이중 마법(2), 파이어 월(1)

실제로 티아라의 영웅 정보에서 나오는 소속이 마법사 협회에서 네패스 왕국이 된 뒤부터 행동이 많이 달라졌다.

권력의 달콤함에 눈을 떴다고 해야 할까?

고급 원단으로 만든 비싼 옷에 장신구도 주렁주렁 매달고 수행원도 엄청 데리고 다닌다.

더구나 수행원들을 외모로 뽑는지 눈에 띄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애는 그만 쪼고, 무슨 생각인지나 말해 봐라.”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로크와 달리 자크론은 어떻게든 대답을 듣겠다는 듯 강경하게 나왔다.

“다 필요하니까 준비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필요한 곳이 어디냐? 진짜 전쟁을 할 생각은 아닐 테고.”

“연회입니다.”

“연회?”

자크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그런 자크론과 호기심으로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기사들에게 경기를 일으킬 만한 단어를 전달해 주었다.

“제2의 피의 연회라고 할까요?”

“푸흡!”

“커헉!”

피의 연회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곳곳에서 사레가 들린 듯 컥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친놈이?”

심지어 자크론조차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각국의 군주들을 몰살하기라도 할 생각이냐?”

“설마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미친 짓을 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럼?”

“명분은 상대가 알아서 내줄 겁니다.”

빌헬름은 선전 포고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타깃은 서부의 모든 국가.

그 순간에 나와 서부의 국가들은 암묵적인 동맹이 된다.

“그러면 먼저 공격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요.”

왜 상대가 공격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물론 로스니아 제국은 강하다.

게다가 내가 먼저 공격하려 해도 명분도 없고, 승산도 없다.

하지만 선전 포고를 받은 직후라면 다르다.

로스니아 제국은 한참 정복 전쟁을 위한 준비로 분주할 터.

5티어의 영웅들도 모두 전쟁 준비로 바쁠 테니 빌헬름 곁에 있는 이들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현장에서 빌헬름을 죽이면 어떻게 될까?

빌헬름은 자신의 친동생을 포함해서 황실의 핏줄을 잇는 이들을 거의 다 죽였다.

지금 살아남은 인물이라고는 타국으로 망명한 이들 정도뿐.

즉 빌헬름이 죽는 순간, 제국의 옥좌는 텅 비어버리게 되며 로스니아 제국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로스니아 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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