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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44화 (14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4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44화

144화

【 제국의 초대 】

산사태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혹시나 협회가 새로운 정보를 얻어오지 않을까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마족들에 대한 추가적인 소득은 얻을 수 없었다.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어쩔 수 없지.’

따로 해야 할 일도 있었고.

“네가 협회를 직접 찾아온 건 이번이 두 번째로구나.”

지금 난 마법사 협회의 본부에 와 있었다.

맞은편 자리에 앉은 플레턴은 깊은 눈으로 나를 훑었다.

협회의 역사는 길지만 일국의 군주가 직접 협회를 방문한 전례는 없었다.

덕분에 최초로 협회를 방문한 국왕이자 마법사가 되어 많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플레턴이 꺼지라는 말 한마디로 구경꾼들을 모두 내쫓기는 했지만.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용건이나 말해라.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렇게 만나는 것도 부담되는구나.”

몇 달 전과 비교해서도 플레턴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연세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마법사 협회는 벨로스 원로를 비롯해 나를 반대하던 파벌과 다투고, 말릭과의 싸움에서 원하던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많은 문제를 떠안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로들이 발 벗고 나서고는 있었으나 그만큼 업무 부담이 늘었을 것이다.

“저번에 저에게 직접 마법을 만들라고 하셨지요.”

“그랬었지. 관심이 생겼느냐?”

“이미 만들어 왔습니다.”

“벌써?”

설마 이미 준비가 되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플레턴도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환하게 웃었다.

지금껏 나로서도 본 적 없는 미소였다.

‘이게 그렇게 기쁜가?’

비전 마법의 제작이 마법사로서의 일생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마법사라면 짧게는 수년, 길게는 평생을 바치겠으나 5티어인 내 재능으로는 잠깐 고생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것참 기대되는구나. 내 제자가 어떤 대단한 마법을 준비했을지 말이야.”

그래서 기대감에 찬 플레턴의 모습에 괜히 부담감이 들었다.

“혹시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만들어야지.”

플레턴은 타협의 여지는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기껏 시간을 내어 마법을 만들었는데 자칫 혼만 잔뜩 나는 게 아닌지 걱정되는 반응이었다.

“어떤 마법이냐?”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대신 장소를 옮겨야 합니다.”

“흐음.”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말에 플레턴은 뭔가를 생각해 보더니 씩 웃었다.

“전투를 위한 마법이구나?”

“그렇습니다.”

플레턴의 물음에 가볍게 긍정했다.

굳이 마법을 개발하려면 전투에 쓰이는 마법인 쪽이 효율적이니까.

향후 나의 장애물이 될 로스니아 제국과 마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따라와라. 간만에 너와 다시 겨뤄보겠구나.”

“대련을 해보자는 말씀입니까?”

“이제 나 따위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플레턴의 반문은 대답하기 어려웠다.

마족과의 전쟁으로 협회의 원로가 많이 바뀌기 이전부터 플레턴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투 이외에도 다양한 마법을 익혔고 경험 역시 풍부하다.

분명 플레턴이 가지고 있는 경험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는 저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내 승산이 더 높은 건 사실이었다.

“설마 예전에 내가 보여준 게 전부였다는 멍청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영웅 정보를 통해서 확인한 플레턴의 무수한 마법 중 나를 상대로 사용하지 않은 마법이 절반은 넘었다.

애초에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마법도 있지만 그러한 마법조차 어떤 식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게 바로 경험이었다.

“어차피 늙은 몸. 이제는 이런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마지막 가르침이라고 생각해라.”

본부에 있는 넓은 공동에 들어서자 기분이 묘했다.

남부에 있던 지부와는 다른 곳이지만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본부도 느낌은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지 플레턴과 수련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눈빛도 그렇고.’

그곳에 들어선 뒤 나를 흘겨보는 플레턴의 눈빛에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절대 가볍게 상대해 주거나 위력을 조절하는 일 없이 전력을 다할 거란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쉽지 않겠군.’

그렇다고 나 역시 전력을 다할 수는 없었다.

플레턴의 건강을 생각하면 가벼운 피해도 치명적이었다.

이러한 리스크를 생각하자니 갑자기 이 대련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패널티를 안고 하는 대련이라…….’

그러나 이런 생각과 달리 내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딱 내가 만든 비전 마법을 사용하기에 좋은 무대였기 때문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말과 함께 바로 플레턴의 뒤로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내 기습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플레턴은 익히 예상했다는 듯이 유연하게 대처했고 나아가 역습을 가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 개의 마법을 주고받았으나 서로 별다른 부담이 없는 가벼운 인사에 불과했다.

“너는 마법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런 가벼운 탐색전을 이어 나가던 도중 갑자기 질문이 날아왔다.

대답을 지체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힘입니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대답이었다.

마법 자체가 가지는 물리력을 말하기도 했지만, 마법사라는 신분 자체의 권력을 뜻하기도 했다.

귀족이라는 기득권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지만, 마법사들도 어쨌든 보통의 평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위치였다.

대체로 기사보다 박한 대우를 받지만 그건 마법사의 능력을 아래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협회의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니까.

협회를 박차고 나와 귀족에게 충성하는 마법사라면 오히려 웬만한 기사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힘이라…….”

“원하던 대답이 아니십니까?”

“마법에 대한 정의는 마법사 개인이 내려야 하는 법. 거기에 맞고 틀렸다는 잣대는 없지.”

플레턴의 주위로 3개의 마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중 마법.

그것도 진심으로 할 생각인지 느껴지는 힘이 심상치 않았다.

“그럼 네 국왕이라는 신분은 어떠냐? 그것도 힘이더냐?”

물음과 함께 플레턴이 마법이 나에게 작렬했다.

마나 실드를 기반으로 나 역시 삼중 마법을 사용하여 공격을 막아냈다.

“반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반은 아닙니다.”

“왜지?”

“마법은 스스로 갈고닦는 힘입니다. 어디에 쓰든지 자신의 자유이지요. 그러나 신분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내 말 한마디로 나라의 운명을 걸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마법사는 그럴 수 없다.

마법사가 아무리 떠들고 난리를 쳐도 개인의 행동이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니까.

마족과 인류의 전쟁도 왕족이 당해서 일어났지 평민이 마족에게 살해당했다면 절대 전쟁으로까지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폭군은 많았다.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거 아십니까? 폭군은 대를 이어져 온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누군가가 문제를 만들면 누군가는 수습하기 마련이다.

군주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 문제는 계속 남아 책임을 추궁한다.

결국, 누군가는 앞선 폭군이 싸질러놓은 똥을 치워야만 한다는 소리다.

“책임을 남에게 떠맡긴 것이지 책임의 유무가 부정되는 건 아니지요.”

플레턴을 향해 마나 가속으로 강화한 일격을 날렸다.

엄청난 충격으로 마나 실드에 금이 갔으나 아슬아슬하게 깨지지는 않았고, 플레턴은 뒤로 쭉 밀려났다.

“그럼 넌 네 책임을 받아들이겠느냐?”

“달갑지는 않지만요.”

“왜지? 폭군의 길이 더 쉽고 편할 텐데.”

“자신의 행동에서 눈 돌리고 도망치면 쪽팔리지 않습니까?”

아무런 각오도 없이 막연하게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게 아니다.

만약 내 능력이 부족해 중간에 스러지더라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기습이나 계략을 꾸미는 건 되는데 책임은 피하지 않는다?”

“딱히 남들이 내 아래에서 고통받는 게 좋다거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저를 증명하고 싶은데 방법이 이것뿐이라서요.”

서로 진심으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진심이 될 만한 것이 걸려야 한다.

그게 목숨이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든.

그래야만 나도, 상대도 온전한 전력을 끌어내고 진정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제 왕도입니다.”

“왕도라…….”

플레턴의 주위로 방대한 마나가 요동치더니 돌연 눈앞이 번쩍 빛났다.

일부 마법사들이 익히는 이 마법은 일시적으로 상대의 시야를 앗아가는 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었다.

내 암살자 중에서도 이 마법을 쓸 수 있는 이가 있는데, 드물게 암살자치고 마법의 재능을 가진 경우였다.

뭐, 본업은 암살자였던지라 기습에 좋은 마법밖에 익히지 않은 반쪽짜리였지만.

“큭!”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마나 실드를 단단하게 두르고 버티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플레턴이 그걸 모르고 이 마법을 썼을 리 없다.

내 마나 실드를 부수거나 주어진 시간으로 더 큰 공격을 날리기 위해서 이 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 옳은 대처는 방어에 몰두하는 게 아니다.

“라이트닝 플레어!”

오히려 공격하는 거지.

내가 먼저 선공을 잡을 수 있는 마법으로 신속하게 역공을 날렸다.

비록 시력은 빼앗겼어도 플레턴의 마나는 감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내 아차 싶었다.

내가 마나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는 걸 플레턴도 모를 리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마법이 적중함과 동시에 플레턴의 마나가 흩어졌다.

공격에 당해서는 아니었다.

다른 장소에서 플레턴의 마나가 느껴졌으니까.

‘자신이 있던 자리에 마나를 남겨서 바꿔치기했어?’

시야를 뺏어서 감각으로밖에 찾을 수 없는 상태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어떤 마법인지 모르겠지만 몹시 유용해 보였다.

내 허를 찌른 플레턴은 그대로 나에게 접근해 왔다.

마지못해 마나 실드를 펼쳤지만 플레턴은 이를 아주 손쉽게 대처해 냈다.

과거에 내가 플레턴의 마나 실드를 회전시켰을 때처럼 자신과 내 마나 실드를 강제로 회전시켜 버린 것이다.

예전에 내가 썼던 방법을 지금 내가 당하게 되니까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네가 온전히 마법에만 열중했다면 이미 나 따위는 물론 에이든마저 앞질렀겠지. 그러나 너는 영주로서, 그리고 군주로서 목표를 달성하느라 마법에는 소홀한 편이었다. 권력은 얻었을지 모르나 무력은 아직 부족하지.”

“어차피 마족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건 무력보다는 권력 아닙니까?”

플레턴은 과거 나에게 영주를 그만두라고 한 적이 있었다.

마법사로서 압도적인 재능이 있기에 거기에 몰두하는 쪽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영주로서도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고, 플레턴도 그저 강한 마법사보다는 나와 함께 싸워줄 이들을 부릴 수 있는 권력이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인정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아니란 말씀입니까?”

“네가 상대해야 할 마족은 내가 알던 마족과는 수준이 다르다.”

마나 블래스트를 통해 플레턴의 회전을 강제로 정지시켰다.

내가 출력에서 앞서는 걸 이용해 힘으로 찍어 누르기로 한 것이다.

이는 오직 등급이 높은 나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냥 머릿수를 앞세운다고 해결될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제 기사들의 실력은 뛰어납니다.”

지금까지 내전과 전쟁, 마족 토벌 등 내 기사들은 전혀 부족함이 없음을 몇 차례나 증명해 냈다.

“하지만 너보다 재능이 좋지는 않겠지. 너는 노력만 한다면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에 이를 수 있는 재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녀석들은 그냥 대단한 수준에 머물겠지.”

“그건 수긍할 수 없습니다.”

플레턴의 말은 거의 맞다.

그러나 완벽하게 맞는 건 아니었다.

릴리아나는 비록 자신보다 뛰어난 실력자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충분히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안 역시 그렇다.

승급권을 쓸 수도 없고 영웅 정보도 나오지 않는데 여전히 루안은 내 왕국의 핵심 인력이었다.

“마법사로서는 분명 제가 제일 뛰어날지도 모릅니다만 기사로서, 장인으로서 저와 대등한 수준의 천재는 이미 있습니다.”

이건 플레턴마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지 조금 놀란 모습이었다.

“아마 이전에도 드물지만 이런 천재는 있었겠지요, 에이든이라는 사람도 그럴 거고. 저도 재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세상은 재능만으로 살 만큼 만만하지 않더군요.”

“재능만으로는?”

“네. 그래서 만들어줄 겁니다, 재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예산을 퍼부어가며 병력의 체질 개선에 몰두했겠는가?

빅터를 보고 느꼈다.

재능이 없는 게 아니라 재능을 알아보는 게 힘들고 재능이 있더라도 키워내는 것 역시 어렵다는 것을.

그러나 그걸 해내지 않고서야 타르타로스의 절대군주에 도달하기는커녕 이 대륙의 통일을 입에 담을 수조차 없다.

“그러기 위해서 국왕이라는 자리가 필요했던 겁니다.”

지금이야말로 새로 만든 비전 마법을 선보이기에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르릉.

나는 품에서 호신용 단검을 꺼냈다.

“으응?”

마법사가 무기를 드는 기묘한 광경에 노련한 플레턴조차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안심했다.

이건 노련한 플레턴조차 예상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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