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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43화 (14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4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43화

143화

안개에 가려진 상대의 모습이 드러나자 베이브와 마족들은 크게 당황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있었고 마족이라 불리는 그들도 엄연히 따지면 모두가 같은 종족은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마법을 허락받은 종족들을 통합해서 부르는 명칭이 마족일 뿐.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이런 다양한 종족 중에서도 크게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인간이든 드래고니안이든 마족이든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물체로서의 특징을 눈앞의 상대는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게 대체 뭐지? 물인가?”

흡사 시커먼 물이 뭉쳐서 사람의 형상을 취한 것 같은 모습.

눈이나 코, 입과 같은 기관은 하나도 없이 질척한 검은 액체로 이루어진 외형은 본 적 없는 기괴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에 잠깐 넋을 놓았던 건 뼈아픈 실수였다.

마족들이 놀라서 주춤거린 틈을 타 파수꾼은 가까운 마족의 목을 날려버렸다.

“커헉!”

인지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이루어진 공격.

마족들은 눈앞에서 쓰러지는 동족을 보며 동요했다.

말릭이 그러하듯 마족 모두 부활할 수 있는 수단은 마련해 둔 상태였으나 그게 이렇게 간단히 죽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부활에 필요한 제물은 유한한 자원.

그것도 하나같이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해 그들을 애먹이고 있었다.

“일단 흩어져라! 붙어 있으면 우리가 불리해!”

베이브는 서둘러 지시를 내리고 다시 한번 마법을 펼쳐서 상대를 가뒀다.

그러나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마법에 대해 파수꾼의 대응은 기민하기 그지없었다.

결계가 채 펼쳐지기 전부터 몸을 회전하더니 그대로 검격을 날려 막 펼쳐지는 결계를 그대로 깨트려버린 것이다.

그 신속한 대응에 베이브는 아무런 소득도 내지 못한 채 무력함을 느껴야 했다.

동시에 전신에 소름이 쭉 올라왔다.

‘도무지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후로도 파수꾼은 날리는 마법 대부분을 피하거나 쳐냈고, 일부 적중한 마법마저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육체 능력 자체가 마법을 받아낼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베이브는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마족들은 모두 인간과의 전쟁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마주한 어떤 인간도 이러한 영역에 닿아있지는 않았다.

눈앞의 상대가 가이스트나 타르타로스 같은 외부에서 온 존재가 아니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단순히 강한 게 아니라 생명체 같지 않은 이질감은 마족들을 공포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으아아아!”

그때 덩치 큰 마족이 뒤에서 덤벼들어 파수꾼을 붙잡았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동족들이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이다!”

베이브는 간신히 주어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모두 여분의 목숨을 가지고 있기에 거리낄 것도 없었다.

파수꾼은 덩치 큰 마족을 떨쳐내기 위해서 그를 뒤집어 패대기치고 팔을 잘라냈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마족들이 날린 마법이 파수꾼을 뒤덮었다.

퍼퍼퍼펑!

공포에 빠진 마족들은 뒤를 생각하지 않고 아낌없이 힘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여파는 이대로 산이 무너져 매장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석관이 있는 공간이 무사히 견딘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으나 베이브는 뒤늦게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붕괴가 일어났다면 부활한다고 한들 제물만 허비하고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충격으로 나부끼는 먼지가 가라앉자 희생한 마족과 파수꾼이 처참하게 변한 광경이 드러났다.

생명체인지조차 의심스러운 파수꾼은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서 물웅덩이가 된 상태였다.

“우리가 이긴 건가?”

그러나 마족들은 승리를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신들을 이토록 위협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섬뜩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기랄! 베이브, 도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온 거야?”

“설명은 이미 해줬잖아?”

성질 급한 마족의 외침에 베이브는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파수꾼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잘 피해서 오면 충돌은 없을 거라고 들었다.

그러나 오는 길에 들켰는지 우연히 마주친 건지, 결국에는 파수꾼과 붙었고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이스트 덕분에 강해진 상태로도 이 정도. 단독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았을 거다.’

이곳을 찾아온 마족의 숫자는 모두 열.

그 하나하나가 능히 일국을 상대할 만한 전력을 갖추었다 자부할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절반이나 희생된 끝에 만신창이의 승리를 거뒀을 뿐이다.

그마저 두 번은 통하지 않을 요행이었고.

“어쨌든 이걸로 제물은 마련됐군.”

베이브는 그나마 이 상황에서 얻은 유일한 이득을 상기시켰다.

벽화에 따르면 석관을 여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제물.

생명체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파수꾼을 제외하더라도 남겨진 동족의 시신이면 제물로는 충분했다.

“벽화에 나온 방식에 따라서 의식을 진행한다.”

“우리 동족의 시신을 바치라는 건가?”

베이브의 지시에 어느 마족이 불만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러한 곳에 제대로 된 위험을 알려주지도 않고 데려온 것만 해도 베이브에 대한 신임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부활하고 남는 육체라지만 동족의 시신을 제물로 바치라니?

“어차피 부활하고 남은 껍데기야.”

그러나 베이브는 자신의 의견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여기까지 와서 소득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족들은 벽화에 나온 방법을 그대로 재현하여 동족들의 시신을 제물로 바쳤다.

쿠쿵!

“뭐, 뭐야?”

의식이 끝나자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다.

파수꾼에게 크게 당한 마족들은 두려운 눈으로 소리가 들려온 장소를 보았다.

그곳은 다름 아닌 석관 안이었다.

그러나 잠깐 들린 굉음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석관을 노려보던 베이브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석관의 뚜껑을 들었다.

그르릉.

모두가 달려들어도 열 수 없던 방금과 달리 이번에는 베이브 혼자서도 충분했다.

뚜껑을 완전히 걷어낸 베이브는 석관 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보였다.

‘이게 먼 과거에 세상을 지배했다는 존재인가.’

베이브는 가이스트의 전 협력자가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득한 과거에 이 대륙을 지배했다는 마족.

어떤 마족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고, 인간 중에는 그를 신이라고 칭하며 숭배하던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존재조차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궁리했으나 끝내 답을 찾지 못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석관 속 미라의 정체였다.

“위험해!”

그때 갑자기 자신에게 소리치는 동족의 목소리에 베이브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분명히 방금 쓰러트렸던 파수꾼이 어느새 흩어졌던 육신을 모두 회복한 채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젠장! 이미 늦었다!’

반사적으로 마법을 준비했지만 이미 파수꾼의 칼날은 베이브의 목을 잘라내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그린 이후였다.

베이브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목이 떨어지게 될 미래가 선명히 그려졌다.

멈칫!

그러나 베이브를 향해 휘둘러지던 칼날은 목 앞에 드리운 채 그대로 멈췄다.

검만 멈춘 게 아니었다.

파수꾼은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무언가에 걸린 듯이 움직임을 멈췄다.

“허억! 헉!”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베이브는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 된 거지? 석관을 열어서 멈춘 건가?”

“하지만 녀석이 움직인 건 석관이 열린 다음이라고. 저기 석관이……. 헉!”

멈춰버린 파수꾼을 의아하게 여기던 마족들은 어딘가를 보고는 기겁했다.

베이브는 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의 뒤를 향해 있다는 걸 깨닫고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경악했다.

분명 방금까지 석관에 누워 있던 미라가 어느새 스스로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뭐야?’

베이브는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했다.

무한한 마나를 내뿜는 장소들을 차지한 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존재를 되살려내기 위해서였다.

정확히는 가이스트가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이 존재를 되살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복수에 목마른 마족들로서는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석관을 여는 의식을 취했을 뿐인데 미라가 되살아나다니?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파수꾼이 갑자기 멈춘 것처럼 석관에서 일어난 미라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파수꾼과 함께 정지해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살아난 건 아닌 모양이군.”

베이브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어떤 원리로 미라가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제물을 바친 대가로 잠깐의 움직임이 가능해진 것일 터.

그러나 의식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이걸로 목적은 달성했다. 미라를 회수해서 돌아가자.”

“그럼 저 녀석은 어쩌지?”

어느 마족이 파수꾼을 가리키자 베이브는 힐끔 파수꾼을 돌아봤다.

아까 자신의 목을 치려던 광경은 다시 생각해도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미라가 멈춰준 거 같지만 과연 정말 죽었는지는 의문이었다.

만약 파수꾼이 다시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놓고 간다.”

베이브는 이 꺼림칙한 파수꾼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들로서는 통제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고.

서둘러 이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던 마족들도 그런 베이브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들은 석관의 미라를 챙긴 뒤 서둘러 산을 빠져나갔다.

마족들이 석관의 미라를 데리고 사라지자 석관이 있던 장소에는 파수꾼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꿈틀!

혼자 남겨진 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멈춰 있던 파수꾼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조금씩 몸이 움직임을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파수꾼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액체가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철퍽!

그렇게 끈적끈적한 검은 액체가 벗겨지자 그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무튀튀한 피부색과 탈색된 듯 새하얀 백발.

그리고 색상이 조금 다른 청록빛의 눈동자를 가진 남성이었다.

그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고개를 돌리다가 텅 비어 있는 석관을 발견했다.

“아스카…….”

미라의 이름을 부른 파수꾼은 서둘러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파수꾼이 바깥으로 나오기 무섭게 산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파수꾼을 휘감았다.

콰아아앙!

파수꾼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몰려드는 안개를 밀어냈다.

거대한 자연 현상을 순수하게 육체의 능력만으로 몰아내는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파수꾼은 이 정도로는 안개가 자신을 놓아주지 않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밀려났던 안개는 의지를 갖고 덤비듯 다시 파수꾼을 향해 몰려왔다.

쿠구구궁!

산을 빠져나가려는 파수꾼과 그를 붙잡아두려는 안개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그 충격파에 마족들의 공격에 간신히 버티던 산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렇게 몇 번의 충격이 더 반복되자, 이윽고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나며 일대를 덮쳤다.

퍼석!

파수꾼은 무너진 토사를 파헤치고 몸을 일으켰다.

* * *

사트리안 왕국에 나타난 마족들에 대한 목격담은 곧 다른 소식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바로 대규모 산사태였다.

지진이나 폭풍이 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발생한 대규모 산사태는 마족들의 소행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 목적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겼다.

마족들이 굳이 산사태를 일으켰어야 할 만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사 협회에서 즉시 원로들을 파견해서 해당 장소를 뒤졌으나 산사태로 인해서 무엇도 발견해 낼 수 없었다.

“도대체 놈들이 뭣 때문에 거기에 나타났던 거지?”

“신성수도 없었다고 했죠?”

“협회의 말로는 그렇더구나. 사교도의 흔적도 없고, 애초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이었다고 한다. 안개 때문에 출입할 수가 없었거든.”

자크론과 의논을 해봤지만 마땅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기어이 산이 무너졌다는 것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절대군주에 나오는 세계 최강자의 정체는 고대의 요정족 검사 아인츠발트.

그는 산에 들어오는 침입자들을 내쫓는 안개에 뒤덮인 정체불명의 NPC였다.

아인츠발트의 실력은 절대군주에 존재하는 티어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었으며, 설령 군대를 몰고 가더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대놓고 잡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아인츠발트의 존재는 유저들로 하여금 오히려 승부욕을 이끌어내는 요소였다.

자고로 높은 난이도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따라오기 마련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위니스와 만나기 전까지 아인츠발트는 끝끝내 공략당하지 않았었다.

“흐음.”

게임에서는 없던 산사태가 터진 걸 보면 마족들이 아인츠발트와 충돌한 건 분명했다.

문제는 그 이유와 결과.

마족이 왜 아인츠발트와 충돌했으며 누가 승리했는가?

이는 앞으로의 내 행보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변수였다.

문제는 정보를 얻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

협회의 원로들도 소수의 인원만 겨우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사트리안 왕국과의 거리는 상당했다.

‘찝찝하지만 단서를 얻는 건 안 되겠군.’

아쉽지만 이 일에 대해서는 덮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언젠가 이 일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는 날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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