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3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33화
133화
* * *
아인이 감옥으로 들어왔을 때 라키아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깜짝 놀란 상태였다.
자신의 실력이 좋다고 해도 설마 일국의 국왕이 고작 수상한 사람 하나 보겠다며 감옥까지 직접 행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라키아는 아직 희망을 품고 있었다.
당장은 힘들지만 빈틈을 봐 탈출할 틈이 생길지도 모르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들킨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딱히 신분이 확인될 만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모 역시 나름 바꾼 상태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실력에 의구심을 품을 순 있더라도 정체를 들킬 확률은 낮다고 자신했다.
“카슨 공작의 기사인 라키아 경이로군.”
그러나 아인은 한눈에 라키아를 알아봤다.
어디까지나 초면인 상대를, 게다가 외모까지 바뀐 사람을 단번에 꿰뚫는 눈썰미에 라키아의 입이 쩍하니 벌어졌다.
* * *
“라키아? 저 사람이 로베른 왕국 최고의 검사라는 그 라키아 경입니까?”
영웅 정보를 통해 확인한 상대의 신분을 알려주자 감옥에 몰려온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직접 검을 맞댄 릴리아나는 말할 것도 없고 내 행차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간수조차 기겁하며 라키아를 돌아봤다.
그만큼 라키아가 가진 명성이 대단하다는 의미였다.
‘절대군주에서도 그랬지.’
단역이지만 라키아의 등장은 꽤 강렬했다.
한 왕국을 대표하는 최고 실력자답게 다른 등장인물들이 라키아를 띄워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은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잡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라키아는 루퍼스와 달리 그저 스쳐 가는 인물이었을 뿐 적이나 아군으로 나온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알고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고 루퍼스 때처럼 공략을 파악하고 있지도 않았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난 라키아가 아니라 용병인 퍼거슨입니다.”
내가 자신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자 라키아는 발뺌을 하기 시작했다.
“용병이라고?”
“그렇습니다.”
라키아가 정체를 부정하자 기사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정말로 상대의 정체가 라키아인지 아닌지 그들로서는 알아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연령 역시 비슷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라키아라 확정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간단한 문제였다.
“그 정도 실력의 용병이라면 명성이 없을 리가 없지.”
2티어 용병이었던 라이언도 나름 마법사 협회에서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로 유명했다.
비록 그게 귀족을 공격하고 기사를 해치워서 생긴 악명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실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릴리아나와 정면에서 승부할 정도의 용병이라면?
아무리 용병이라도 그 정도라면 지역을 넘어 왕국 전체에 명성을 떨쳐야 했다.
그러나 퍼거슨이라는 이름의 용병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다.
“거짓말을 하려면 좀 성의껏 하지 그러나? 라키아 경.”
“전 정말 퍼거슨입니다. 명성은 없지만…….”
“그럼 일개 용병이 내 기사를 공격한 거군. 괘씸하게도.”
신호를 보내자 감옥 앞에 서 있던 기사들의 손이 검으로 향했다.
이를 본 라키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래도 로베른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의 명성이 있는데, 그냥 목을 매달아 버리는 건 품위 없지 않나?”
순순히 정체를 밝히라는 협박에 결국 라키아는 버티지 못하고 굴복했다.
“후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네패스 국왕 전하.”
“내 기사를 공격해 놓고도 그딴 소리인가?”
“전 백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입니다. 어쩌다 고아 좀 밀쳤다고 앞길을 막은 여기사의 죄가 더 클 테지요.”
라키아가 뻔뻔하게 대꾸했다.
실력은 대단한 인물이지만 상당히 오만한 타입 같았다.
“그거야 용병으로 위장하지 않고 정식으로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지. 아닌 말로 나를 죽이려고 온 게 아니라고 어떻게 증명할 생각이지?”
“죽이다니요? 딱히 적대하고 있는 상태도 아닌데,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꾸밀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럼 왜 같잖은 용병 행세를 하며 서부에 있었는지 해명을 듣고 싶군.”
라키아의 말문이 막혔다.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미 내가 라키아를 위협으로 받아들인 시점에선 아무 의미도 없었다.
당장 내가 라키아를 카슨 공작이 보낸 자객이라고 말해 버린다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가 여기서 사로잡힌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직접 말할 수 없다면 내가 대신 이야기를 해볼까? 분명 카슨 공작의 명령을 받았겠지. 타국의 군대가 들어와서 주둔하고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으니까.”
“끄응.”
복잡할 것도 없는 당연한 추측이었지만, 그렇기에 부정할 여지도 없었다.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수상하니까.
라키아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말대로 신경이 쓰여서 그랬던 거지 적대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정보 수집의 목적으로…….”
“타국의 정보를 멋대로 수집하려는 것 자체가 죄라는 걸 모르는가?”
바보가 아니라면 내전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과 귀를 곳곳에 심어두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따지면 문제가 되고도 남을 행동이었다.
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것뿐이지.
게다가 위협을 느껴서 정보를 모은다고 하면 군사 정보 역시 수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점은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라키아의 이야기에 슬쩍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상대가 몰래 들어와서 염탐을 한 건 문제였지만 라키아는 개인의 명성도 그렇고 작위도 백작씩이나 되는 고위 귀족이었다.
더구나 카슨 공작이라는 세력에 속해있었기에 단순히 염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죽이기에는 부담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서로의 관계가 원만해지기를 바라는 경우에 한정되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대륙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나에게는 카슨 공작도 쓰러트려야 할 적에 불과했다.
“모두 잠깐 자리를 비워라. 라키아 경과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군.”
그러나 그 속내를 떠벌릴 수는 없는 일.
나는 주변을 지켜보는 눈부터 치웠다.
기사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명령에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자리가 마련되고, 난 라키아가 품은 일말의 기대를 짓밟았다.
“내가 그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네패스 국왕 전하!”
부탁을 거절하자 라키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몸의 구속과 감옥의 쇠창살이 아니었다면 분명 달려들었을 것이다.
“서부와 북부의 경계 지역. 군사 7천과 기사 60명.”
난 그를 향해 내가 왜 거절했는지 이유를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라키아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부와 중부의 경계 지역. 군사 1만에 기사 130명.”
하지만 두 번째 말에 라키아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인물이라면 모를까 라키아라면 몰라선 안 될 정보였기 때문이다.
“각 지역에서 추가로 동원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병력의 수는 지역마다 2천씩 4천.”
2만을 상회하는 군세와 200여 명의 기사.
로베른 왕국의 북부와 중부를 점령하고 있는 카슨 공작의 전력이었다.
지금 난 카슨 공작의 병력 정보를 말한 것이다.
“그, 그건!”
라키아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쳤다.
만약 내가 조만간 왕국으로 회군할 생각이라면 구태여 이런 정보를 수집해 둘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정보라는 건 쉽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일이 직접 세어보든지 소모되는 물자의 양을 파악하든지.
어느 쪽이라도 움직이지 않는 군대의 정확한 규모를 알려면 내부 정보에 능통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리 첩자를 심어두거나 소속된 인물의 회유가 필연적이다.
“하나 묻지. 내가 이 정보를 왜 모았을 거 같나?”
덜컹!
바싹 달라붙은 라키아에 의해 쇠창살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대체 무슨 명분으로 타국의 군주인 그대가 이 왕국을 침공한다는 말인가!”
“3가지의 명분이 있지.”
“3가지?”
손가락을 펼쳐 보이자 라키아가 기이한 눈길을 보냈다.
내가 로베른 왕국을 침공할 만한 명분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의아해하는 듯했다.
“첫째,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이웃 국가의 백성들을 위하여 대신 내전을 평정한다.”
“무슨! 그건 내정간섭이오!”
라키아의 반박대로였다.
내전이라는 상황에서 쉽게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지만, 동시에 쉽게 반박할 수 있는 명분이기도 했다.
이웃 국가가 소란스러워서 좋을 건 없지만, 그게 침공으로 이어질 명분이 되는 건 아니니까.
“둘째, 그저 좋은 목적으로 로베른 왕국에 온 나를 카슨 공작이 암살하려 시도했으니, 이에 대해 복수를 한다.”
“암살이라니, 이건 모함이다!”
스스로 명분이 되어버린 라키아가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어찌나 당황하면서 외치는지 듣고 있는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그리고 셋째.”
릴라아나가 라키아를 잡은 건 어디까지나 예상하지 못한 우연이자 행운이었다.
당연히 원래 로베른 왕국을 침공할 명분은 따로 준비한 상태였다.
“카슨 공작이 먼저 공격을 해온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에 라키아는 충격을 받았는지 이전과 달리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어떻게 확신하지? 공작의 머릿속이라도 들여다보았나?”
“상식적으로 훨씬 세력이 큰 상대를 먼저 공격해서 빌미를 내어줄 리 없지 않은가?”
라키아의 말대로였다.
적대하는 게 확정된 것도 아니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세력이 불리한 쪽이 먼저 공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적이 쳐들어올 빌미를 내어주게 되니까.
“그래,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그러나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
* * *
로베른 왕국 중부와 서부의 경계 지역.
험준한 경사와 울창한 수목으로 뒤덮인 땅을 헤매는 한 무리의 병력이 있었다.
“이거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혹시 적의 흔적은 없는지. 그리고 설치해 둔 함정은 멀쩡한지 확인하기 위해 나선 순찰.
그러나 그들은 멈추지 않는 백인대장을 보며 걱정이 들었다.
지금 자신들이 과할 정도로 서부에 가까워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쓰읍! 조용히 있어봐라.”
부하의 걱정에 백인대장은 신경질을 냈다.
실제로 그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누가 딱 여기까지가 영역이라고 표시를 해둔 건 아니었으나 지금 자신들은 꽤 위험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 건, 이곳에서 반드시 얻어가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오, 있다!”
이리저리 숲을 살피던 백인대장은 곧 찾고 있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입니까?”
“그래. 다들 와서 봐라.”
백인대장의 손짓에 병사들은 언제 걱정했냐는 듯 우르르 몰려와 바닥을 살폈다.
나무가 우거져 빛이 잘 들지 않는 땅에 큼지막한 푸른 잎 하나가 솟아있었다.
“이야. 이거 꽤 큰 거 같습니다.”
“그치? 이 정도면 저번에 옆 부대에서 찾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고.”
백인대장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잎 아래를 파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어른 팔뚝만 한 두께를 가진 진귀한 약초가 그 자태를 드러냈다.
“흐흐흐흐!”
백인대장은 씰룩이는 입가를 막지 못했다.
이름 있는 약초꾼이라도 평생 구경하기 힘든 귀한 녀석이었다.
게다가 이만한 크기라면 족히 백 년 이상은 묵었을 터.
가히 영약이라고 불러도 될 모습이었다.
“너희들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귀족 나리들도 없어서 못 먹는 거야. 부르는 게 값이라고.”
“정말입니까?”
백인대장의 이야기에 병사들은 신기한 눈으로 영약을 보았다.
“그래. 옆 부대 백인대장 놈이 이 크기의 반도 안 되는 걸 바치고 승진했다는 건 들었지? 이걸 영주님께 바치면 우리 인생은 활짝 피는 거라고.”
백인대장이 무리해서 숲을 돌아다닌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최근 경계를 수색하던 어느 부대에서 우연하게 약초를 발견했고, 그걸 영주한테 바쳤더니 큰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때부터 각 부대의 하급 지휘관들은 약초를 찾기 위해 경계를 헤매었지만 자잘한 것들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다.
이에 백인대장은 작정하고 위험한 영역까지 넘어온 것이다.
다행히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다른 놈 같았으면 혼자 처먹었겠지만 난 다르지. 너희들도 한몫 제대로 챙겨줄게.”
자신들 몫을 챙겨준다는 이야기에 병사들은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느꼈다.
평소에도 스스럼없이 부하들을 대해주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기회까지 나눈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넌 내가 다음 백인대장에 꽂아주고, 넌 도시에 집 장만하도록 도와주고, 그리고 넌 혼수 챙겨주고…….”
휘하 병력의 성격과 사정을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던 백인대장은 그들이 원하는 점을 정확히 짚었다.
“막내야, 너는 뭘 좋아하냐?”
유일한 예외는 배속된 지 두 달이 지나지 않은 막내뿐이었다.
백인대장의 물음에 막내는 어색하게 웃었다.
“전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마라. 흔치 않은 기회니까.”
부스럭!
그런데 바로 그때, 서부 쪽 방향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백인대장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고, 병사들은 각자의 무기를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서 겨눴다.
“침착해라. 절대 먼저 공격하지 마.”
백인대장은 긴장한 병사들을 달랬다.
아직 전면전 상황이 아니기에 상대와 마주치더라도 충분히 물러날 여지가 있었다.
‘이런. 머릿수는 저쪽이 더 많나?’
백인대장은 들려오는 발소리를 통해 상대의 수를 추측했다.
자신들은 고작 10명.
반면 상대는 두 배는 될 거 같았다.
‘아니, 쫄 필요 없다. 각자 갈 길 가자고 하면 되는 거야.’
이윽고 수풀을 헤치고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적이다!”
생각지 못한 대면에 서부에서 나온 병력이 황급히 무장을 꺼냈다.
백인대장은 일부러 상대가 무장을 제대로 갖출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 상대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들 뭔가 이상하다?’
백인대장은 상대의 복장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자신들처럼 경장 차림일 줄 알았는데 유독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장비를 갖춘 이들이 섞여 있었다.
마치 귀족처럼.
‘귀족이 왜 순찰에 나와?’
퓻!
그때, 백인대장의 뒤에서 날아든 화살 한 발이 상대 지휘관의 목을 꿰뚫었다.
“뭐, 뭐야?”
자신의 지시 없이 이뤄진 공격에 백인대장은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막내가 멋대로 공격을 한 상태였다.
“너 이 새끼, 누가…….”
퓻!
막내는 자신에게 호통치는 백인대장을 무시하고 한 발을 더 날렸다.
이번에는 화려한 복장의 귀족이 화살에 맞고 고꾸라졌다.
“펠트 남작님께서 화살에 맞았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냥 귀족도 아니고 남작이라니?
“당장 멈춰!”
백인대장은 서둘러 막내를 막으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지휘관에 이어 귀족마저 쓰러지자 남은 적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헉헉!”
백인대장은 기껏 캐낸 영약을 내팽개친 채 미친 듯이 싸웠다.
다행히 상대는 숫자는 많았으나 실력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수가 훨씬 적었음에도 그들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무언가 단단히 틀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 새끼들, 제대로 훈련도 안 되어 있잖아?’
귀족이 직접 움직이는데 변변한 기사도 없고, 그나마 붙은 일행도 싸우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신병이었다.
백인대장은 급히 막내를 찾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막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막내 그 새끼 어디로 갔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달아났습니다!”
“뭐?”
피유웅!
그때 하늘 저편에서 불길한 소리를 내는 화살 한 발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화살에 설치된 통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는 틀림없이 적습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자 곳곳에서 적들의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