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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32화 (132/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3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32화

132화

상대의 실력에 놀란 건 릴리아나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검을 맞댄 경장 차림의 남성은 다름 아닌 라키아였다.

카슨 공작으로부터 임무를 받고 잠입한 라키아는 귀찮게 달라붙는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기분이 저조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기사들에게 붙들렸으니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다.

그래도 라키아는 정체를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설마 자신 정도 되는 기사가 직접 잠입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할 테니 의심받을 가능성이 작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는 정체 모를 실력 있는 용병과 시비가 붙었다고만 여길 것이다.

하지만 첫수를 교환하는 순간, 그런 자신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채채채챙!

놀랐다고 해서 둘 중 누구도 빈틈을 보이지는 않았다.

라키아와 릴리아나는 서로를 향해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주도권을 쥐는 게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놀라서 빈틈을 보였다면 이를 반드시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두 노련한 기사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기에 누구도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했다.

“무, 물러나라!”

동료 기사들은 당황하며 주변을 물렸다.

릴리아나와 맹렬하게 검을 맞대는 남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실력이 아니었다.

아인이 선별한 단장 레벨의 실력자들은 하나하나가 기사단의 정점이었으니까.

서로를 제외하면 그에 맞설 수 있는 실력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릴리아나가 저렇게 격렬하게 싸워야 하는 상대.

같은 기사인데도 솔직히 눈으로 따라가지도 못할 속도였다.

카앙! 채앵!

불과 몇 초가 되지 않아 수십 번의 합이 오고 갔다.

양쪽 모두 속도에 자신이 있었기에 격렬하게 움직이며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려고 했다.

‘릴리아나! 그 여자로군.’

사전에 네패스 왕국 인물들의 정보를 전달받았던 라키아는 금세 릴리아나를 알아봤다.

유일하게 기사단에 소속된 여기사라는 특징 덕분에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반면 릴리아나는 라키아의 예상대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자신과 맞먹는 실력자가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누구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실력이 아닌데.’

그러나 곧 릴리아나는 그 의문을 지워버렸야 했다.

상대는 진심으로 상대해야 할 만큼 강했다.

그야말로 자신이 바라던 이상적인 상대.

지금은 오롯이 싸움에 집중하고 싶었다.

쐐액!

맞부딪친 릴리아나의 검이 자신의 검을 따라서 그대로 파고들자 라키아는 기겁하며 검면을 비틀어 떨쳐냈다.

처음에는 분명 백중세였던 거 같은데 조금씩 자신이 밀리고 있었다.

상대가 자신의 검술을 이용하며 적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그 터무니없는 재능에 라키아는 말문이 막혔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자신의 검술을 고작해야 한 번의 싸움에서 흡수하고 있었다.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기술을 단번에 흉내 내고, 심지어 앞으로의 검로를 예측해서 이를 틀어막아 왔다.

점점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숨이 막혀오는 느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적으로 마주친 기사들이 자주 느꼈을 공포였다.

‘감히 이 나를 넘어서려고 한단 말인가?’

다음 순간 라키아는 살기를 쏘아내며 릴리아나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의 비장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한 보법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초인의 동작이었기에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경우에는 경험이 독이었다.

경험적으로 상대가 대처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경로를 역으로 비집어내는 것이었으니까.

‘일격필살이다! 이 기술을 본 이상 반드시 죽는다!’

자신의 비기를 꺼낸 것이기에 라키아는 전력을 담아 검을 휘둘렀다.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당황하는 머저리 같은 기사들과 눈앞의 릴리아나는 수준이 달랐다.

시간이 있으면 비기에 대응할 뿐 아니라 어쩌면 이를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성인 이상 신체 능력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겠으나 여기까지 맞선 것과 자신 이상의 재능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귀찮게 엮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잘되었어! 더 크면 위험하니 여기서 죽인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출중한 검술을 가진 기사를 해치는 건 안타까웠으나 네패스 왕국은 카슨 공작이 가장 경계하는 세력이었다.

만약 시간이 좀 더 지나 전장에서 마주쳤다면 라키아는 자신이 패배했을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 먼 미래도 아니다.

눈앞의 재능이라면 당장이라도 자신을 추월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으니까.

파악!

그때, 눈앞에서 갑자기 릴리아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라키아는 갑자기 극단적으로 자세를 낮춘 릴리아나의 모습에 당황했다.

허벅지는커녕 무릎 아래까지 숙인 자세를 단숨에 취했다

갑옷의 무게 등을 고려했을 때 본래라면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해야 하는 위태로운 동작이지만 릴리아나는 그것을 해냈다.

터무니없는 균형 감각이었다.

‘말도 안 돼!’

자신의 비기가 허무하게 빗나간 것에 라키아는 허탈함을 느꼈다.

설마 비기를 쓸 것을 예상하고 대응한 건 아닐 텐데, 어떻게 대처법을 알았는지 의문이었다.

쩌억!

다음 순간 비기의 사용으로 역으로 빈틈을 드러낸 라키아를 향해 릴리아나의 팔꿈치가 틀어박혔다.

기사의 중갑에 비해 용병으로 위장하느라 경갑을 입은 라키아는 이 충격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다.

“커헉! 헉!”

한순간 의식이 날아갈 뻔한 라키아는 즉시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핏물이 떨어지며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지만 덕분에 간신히 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기절하게 되면 난 죽는다.’

간신히 고비를 넘긴 라키아는 다시 검을 쥔 채 릴리아나와 대치했다.

그러나 허용한 일격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귀에서 윙윙거리는 이명이 들리고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빌어먹을!”

그렇지 않아도 적의 지원군만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라키아와 함께 잠입한 병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모두 흩어져서 따로 활동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합류를 한다는 건, 그들이 평범한 용병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밝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고작 저런 애새끼한테.”

자신의 절반이나 살았을까 싶은 상대에게 몰린 것에 라키아는 억울함이 들었다.

지금껏 자신의 재능을 의심해 본 일이 없었는데 생애 처음으로 그 부족함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상대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흥분하고 있다.’

릴리아나는 라키아와 대치를 유지한 채 그의 모습을 살폈다.

충격을 받아 휘청거리는 상태지만 눈빛에 담긴 예리함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만만하게 보고 접근했다가는 분명 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다.

‘방금 그 움직임.’

완벽하게 허를 찌르고 거리를 좁혔던 상대의 움직임은 분명 대단했다.

아끼고 있던 비기였을 터.

그러나 릴리아나는 이를 어느 정도 예감할 수 있었다.

상대가 검을 쥔 모습에서 파고들려는 낌새가 보였기 때문이다.

찰나였기에 반신반의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를 믿은 건 옳은 선택이었다.

알았어도 망설였다면 대응할 틈도 없이 당했을 테니까.

‘나보다 반 수. 아니, 거의 한 수 정도 위야.’

상대는 당장 실력과 경험 모두 자신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릴리아나는 짜릿함을 느꼈다.

검을 맞댐으로써 상대의 검술을 배우고 흡수하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강해지고 싶어!’

타악!

릴리아나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움직이는 선택을 했다.

이성은 위험하다는 걸 알았으나 본능이 이 선택이 옳다며 그녀를 이끌었다.

그에 라키아도 대응에 나섰다.

다른 비기를 꺼낸 것이다.

아까 사용한 비기처럼 불가능한 동작을 취하는 게 아니라 한순간 상대의 공격을 받아쳐 빈틈을 만들어내는 신묘한 검술이었다.

릴리아나는 이에 끌려 들어가 깊이 파고들다가 그대로 빈틈을 노출해버렸다.

‘지금!’

승기를 잡은 라키아는 앞뒤 가리지 않고 있는 힘껏 검을 찔러 넣었다.

상대는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

기회가 온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후웅!

“어?”

그러나 라키아가 내지른 검은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찌르고 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허무한 감각에 라키아는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었다.

라키아의 시선이 서서히 움직여 사라진 릴리아나를 쫓았다.

상대는 불가능한 동작을 초인적인 육체로 발휘해 옆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내 비기를 한 번에 따라 했다고? 아니, 아니야. 이건 그 정도가 아니야.’

앞으로 돌진하는 라키아의 비기와 달리 상대는 옆으로 몸을 움직인 상태였다.

‘고작 한 번 봤을 뿐인 기술을 그냥 쓴 것도 아니고 맞춰서 응용했다고?’

일찍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재능.

그에 라키아는 시기와 부러움을 넘어 섬뜩함을 느꼈다.

빡!

릴리아나는 공격의 실패로 빈틈을 드러낸 라키아의 안면을 손잡이로 가격했다.

이번에는 라키아도 의식을 유지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릴리아나가 승리를 거두자 기사들은 신나서 환호했다.

어째서 저런 실력자가 갑자기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무사히 생포할 수 있었다.

“포박하세요.”

“네!”

릴리아나의 명령에 기사들은 쓰러진 라키아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무척이나 위험한 상대였기에 기사들은 과할 정도로 라키아를 꽁꽁 묶었다.

그러다 보니 라키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밧줄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만에 하나 풀려난다면 참사가 벌어질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아이는?”

릴리아나는 그제야 의식을 잃은 아이가 떠올랐다.

다행히 잠깐 기절한 것뿐이었는지 아이는 금방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릴리아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받으렴.”

지금 가지고 있는 돈 전부였다.

상당한 거금이었으나 릴리아나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 아이들 덕분에 자신의 전력을 다해서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만난 게 고마웠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큰 액수에 아이들은 당황하며 돈을 받았다.

“어, 정말 받아도 돼요?”

“그래. 혹시 뺏으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네패스 왕국의 군대가 상주한 뒤로 서부의 치안은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다.

사교도도 발본색원되었고 패악을 부리던 넬슨 후작도 사라졌으니.

하지만 부랑자들이 없는 건 아니어서 릴리아나는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아이들도 절대 큰돈 받은 걸 내색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들보다 더 크고 힘센 무리가 많았는데, 이 일을 알게 되면 분명 돈을 뺏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 돈을 숨기거나 최대한 빨리 써버리기로 하고 서둘러 모습을 감췄다.

“다니엘 경 쪽에 말해 볼까.”

릴리아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니엘을 떠올렸다.

암살자 출신인 다니엘이라면 그저 경고를 해주는 그녀보다 좀 더 효과적인 대처법을 알고 있을 거 같았다.

그러다 문득 릴리아나는 지금 자신의 생각이 우습다고 여겼다.

다니엘의 과거가 어떻든 암살자를 용인하고 부분적으로나마 긍정을 하고 있었으니.

하긴 애초에 다니엘의 출신을 알고서도 아인에게 항의하지 않은 시점에서 할 말이 없었다.

‘예전이라면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참혹한 내전은 명예를 말하던 기사들의 생각마저 바꿔놓았다.

아인이 그러하듯 릴리아나 역시 일의 효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릴리아나가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

혹시 마족의 습격인가 했지만 다행히 상대의 정체는 마족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족이 아니라고 가볍게 넘기기에는 상대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다.

나에게 직접 보고를 하러 온 릴리아나가 스스로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도대체 상대가 누구이기에 릴리아나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로크나 다니엘, 루시우스 정도라면 지금의 릴리아나를 위협하는 건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의문을 풀기 위해 잡아 왔다는 상대를 보러 직접 감옥까지 향했다.

‘저 사람인가?’

감옥에는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갇혀있었다.

과할 정도로 포박이 되어 있고 입구를 지키기 위해 추가로 기사들까지 배치된 모습.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여실히 느껴졌다.

‘대체 누구이기에?’

망설일 것 없이 곧장 영웅 정보를 사용했다.

[영웅 정보]

이름 : 라키아

국적 : 로베른 왕국

소속 : 카슨 공작가

유형 : 전투형

등급 : 5티어

칭호 : 불세출의 대검호

스킬 : 검술(5), 난전(4), 기마(3), 격투(2)

“어?”

눈을 한번 깜빡이고 다시 영웅 정보를 보았다.

그저 의문의 실력자라고만 생각한 상대는 의외로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로베른 왕국을 노리면서 카슨 공작을 모를 수는 없었으니까.

당연히 그 밑에 있는 천재적인 재능의 검사 라키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로베른 왕국의 카슨 공작과 라키아는 게임에서도 단역으로 등장했던 인물이다.

“일대일로 싸워서 쓰러트렸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혹시 내가 잘못 전달받았나 싶어서 릴리아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에 릴리아나는 재차 긍정을 해주었다.

“맞습니다.”

“혹시 어디 상처 입은 곳이 있나?”

“없습니다.”

릴리아나의 대답을 듣고 다시 영웅 정보를 보았다.

5티어 검사.

나나 탈론과 같은 5티어다.

반면 릴리아나의 등급은 아직 4티어였다.

4티어에서는 끝물이라 생각하고 있고 다른 4티어 영웅들이 상대도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어쨌든 4티어였다.

‘티어 간의 격차는 등급이 높을수록 커지지 않나?’

1티어와 2티어보다 2티어와 3티어의 차이가 크다.

같은 이유로 4티어와 5티어의 차이는 엄청날 텐데 릴리아나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라키아를 붙잡았다.

물론 이게 검사라는 유형의 특징일 수도 있었다.

서로가 기교와 속도에 극단적으로 치중되었기에 찰나에 승패가 갈리니까.

하지만 그럴 경우 보통은 티어가 높은 쪽의 승리를 점치기 마련이었다.

물론 라키아는 정체를 숨기느라 제 장비를 쓰지 못한 패널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티어를 뒤집을 격차일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군.’

카슨 공작의 핵심 영웅을 잡았다는 것.

게다가 그가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와서 내 기사인 릴리아나와 충돌했다는 것.

카슨 공작을 적대할 명분으로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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