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3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31화
131화
* * *
“네패스 왕국의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로베른 왕국의 북부와 중부를 평정하고 왕국을 차지한 카슨 공작은 최근 들어 신경이 예민해졌다.
서부에서 사교도가 발호했다는 소문 때문은 아니었다.
그까짓 사교도가 영주들에게 위협이 되지는 못하리라 여겼으니까.
그러나 그 사교도가 나비 효과를 일으켜 네패스 왕국이라는 거대한 호랑이를 불러들인 건 문제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
카슨 공작은 테이블을 내려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가 이토록 근심을 하게 된 원인인 사교도의 배후에 넬슨 후작이 있다고 알려졌다.
라파엘 백작이 직접 넬슨 후작의 목을 쳤기에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욕을 하면 했지.
“라파엘 백작도 그래. 정신이 나간 게 아니고서야 타국을 끌어들이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를 부르지도 않고.”
카슨 공작의 말에 휘하 귀족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나 그는 내심 라파엘 백작의 행동을 이해했다.
카슨 공작과 라파엘 백작이 사이가 상당히 나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사교도의 배후로 넬슨 후작이 추측되었다면 라파엘 백작으로서는 사면초가와 마찬가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카슨 공작이 아니라 타국의 군주에게 걸어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은 아니었다.
실제로 상대는 엄청난 명성과 평판을 가진 이였으니까.
물론 이로 인해서 피해를 보게 된 로베른 왕국의 귀족으로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절대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네패스 왕국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명심하겠습니다.”
카슨 공작은 귀족들에게 네패스 왕국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사교도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귀족들을 색출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등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 군대를 다시 회군시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노림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만약 다른 걸 노린다면 그 상대는 분명 내가 되겠지!’
로베른 왕국의 북부와 중부를 모두 지배하고 있는 카슨 공작이었다.
네패스 왕국이 딴마음을 품었다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왕국을 점령한 것으로 모자라 서부마저 집어삼킨 상대에 비해 카슨 공작이 가진 땅은 고작 두 개 지역밖에 되지 않았다.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무리하게 징집을 하더라도 2만 넘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징집 없이도 3만이라는 군세를 이끌고 나타난 상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내가 이 세력을 어떻게 키웠는데!’
카슨 공작은 본래 공작이 아니었다.
피의 연회가 일어났던 2년 전까지만 해도 백작이었다가 두 개 지역을 점령한 뒤 자칭해서 작위를 올린 몸이었다.
당연히 이를 인정하는 대영주는 없었으나 카슨 공작의 세력이 무서워 모두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그러나 카슨 공작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기세를 몰아 서부까지 점령해 최소한 왕국의 절반이 넘는 땅을 가지고 왕을 자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갑자기 끼어든 네패스 왕국 때문에 망가지고 만 것이다.
“무엇을 걱정하고 계십니까?”
그때 카슨 공작을 편안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냉철한 인상의 다부지고 굳건한 육체를 가진 기사가 칼날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카슨 공작에게 다가왔다.
“오오! 왔는가?”
카슨 공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대를 맞이해 주었다.
상대는 그저 일개 기사가 아닌, 그가 가장 아끼고 신뢰하는 라키아 경이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조사는 어찌 되었나?”
라키아는 마법사 협회가 전해진 정보들을 조사하고자 직접 나섰던 상태였다.
덕분에 최고 실력자의 부재가 생겨 카슨 공작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신성수를 살피고 왔습니다만 의심스러운 구석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감수할 수밖에 없던 건 마족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대영주라도 간과할 수 없었다.
이제는 세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숫자가 줄어든 마족이었으나 어쨌든 생존자는 있었으니까.
게다가 협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살아남은 마족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다.
네패스 왕국에서 아인과 마법사 협회가 말릭이라는 마족을 상대로 겨뤘던 전투는 기존 전쟁에서도 본 적 없는 수준이었으니.
“사교도 쪽은 어떻지?”
“동부에서 사교도가 암약하기는 했습니다만, 서부에 비하면 조잡한 세력이었습니다.”
라키아가 올리는 보고는 이미 마법사를 통해서 사전에 전달받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카슨 공작은 이렇게 라키아의 입으로 직접 보고 받기를 좋아했다.
통쾌했기 때문이다.
라키아는 절대 카슨 공작에게 나쁜 보고가 올라오게 한 적이 없었다.
오직 기분 좋은 이야기만이 올라오도록 성공적으로 일을 해결해 카슨 공작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조잡하다라……. 그래서 단신으로 모두 궤멸시킨 것인가?”
로베른 왕국의 동부에도 사교도가 활동하고 있었다.
라키아는 조잡하다고 말했으나 라파엘 백작과 마찬가지로 결코 경시하지 못할 세력이었다.
다행히 동부의 대영주는 대화가 잘 통했고 카슨 공작은 라키아를 파견하여 사교도를 조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아스카교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처단에 나섰다.
싹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던 카슨 공작의 계획에 라키아는 사교도를 깔끔하게 뿌리 뽑았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휘하 기사단을 동원하지 않고 라키아 단독으로 그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사교도의 숫자가 수백은 되었을 텐데.”
카슨 공작의 말에 귀족들은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라키아를 보았다.
그의 무용은 일찍이 잘 알려져 있었다.
로베른 왕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검사.
마족과의 전쟁에서 단신으로 수많은 마족을 베어 넘긴 활약은 그 자체로 전설이었다.
게다가 라키아는 아직 꽤 젊은 편이었다.
이제 겨우 30대를 지나 40대에 접어든 나이.
세월이 흐를수록 강해지는 마법사와 달리 기사의 육체는 쇠퇴하기 마련이지만 40대라면 충분히 절정이라 말할 수 있었다.
“싸우는 법도 모르는 이들뿐이었습니다.”
라키아는 겸손하게 답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급소를 당하고도 멀쩡히 살아난다는 게 신기하지만, 그저 그뿐.
능력을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협회에서 아스카교에 대한 정보를 모두 공개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다.
“크하하하! 과연 누가 수백의 적을 앞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설령 상대가 어린아이라도 그렇게 많으면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텐데.”
카슨 공작은 라키아와 대화를 하면서 네패스 왕국에 대한 불안감이 모두 해소되었다.
그 혼자라면 절대 단시일에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2년 만에 백작에서 공작이 된 것은 모두 로베른 왕국 최강의 검사인 라키아가 있는 덕분이었다.
그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었다.
“라키아 경.”
“하명하십시오.”
“나는 네패스 왕국이 의심스럽다.”
어떤 명성을 갖고 있더라도 귀족이라면 일단 상대를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카슨 공작의 지론이었다.
“자기들 사정이 좋지도 않은데 타국을 순수한 선의로 도와준다? 게다가 군대도 물리지 않고?”
“말이 안 되는 일이군요.”
라키아도 카슨 공작의 생각에 동의했다.
단순히 대의를 위한다는 이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 전쟁입니까?”
“아니. 그러고 싶지만 먼저 공격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국경을 넘었다는 이유로 항의해 보기는 했으나 상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공격하기에는 라파엘 백작이 보여준 행동이 문제였다.
카슨 공작은 혼자 무리하게 싸우는 게 아니라 상대를 말로 내쫓거나 최악의 경우 남부와 동부 대영주들의 협력을 받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밝힐 증거가 필요했다.
“그래서 말인데, 서부로 잠입해 줄 수 있겠나?”
본래라면 최고의 기사에게 시키기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라키아는 보통의 기사와 다르게 정보 수집이나 염탐 등을 선호했다.
오히려 다른 기사에게 이런 일을 맡기면 자신을 믿지 않는 건가 기분 나빠했고.
“기꺼이.”
명령을 받은 라키아는 꺼리는 기색도 없이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참된 기사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에 카슨 공작은 모든 불안을 떨쳐낼 수 있었다.
그렇게 로베른 왕국 최강의 검사 라키아는 네패스 왕국의 군대가 들어온 서부로 향했다.
* * *
“기사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릴리아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초라한 행색의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를 본 릴리아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먹을 것과 동전을 꺼내 나눠 주었다.
“여기. 사이좋게 나눠야 한다?”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릴리아나에게 넙죽 허리를 숙이고는 신이 나서 뛰어갔다.
“귀찮지 않습니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동료 기사들은 멀어지는 아이들을 귀찮은 눈으로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들도 아이들을 돕는 게 싫지 않았다.
왕을 모시는 명예로운 기사로서 약자를 돕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먹을 것 좀 달라고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먹성이 좋은지 어딘가에 먹을 걸 따로 챙겨두는지 몇 번이나 구걸을 해왔다.
호의로 대하던 기사들도 이제는 아이들에게 질린 상태였다.
기사들이 아이들을 싫어하게 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염치도 모르는 것들입니다. 저번에는 과자를 사주는 동안 제 돈주머니를 슬쩍하려고 하지 뭡니까?”
기껏 귀찮음을 감수하고 먹을 것을 사주려고 했는데 한 아이가 혼잡한 틈을 타서 기사의 주머니를 털어가려고 했다.
어림도 없는 일이기는 했으나 그 뒤로 기사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회의감을 품었다.
저 아이들은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이 아니라 영악하고 배은망덕한 하이에나였다.
“다음부터는 그냥 무시하거나 쫓아내십시오.”
기사들의 조언에 릴리아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들의 심정도 이해했지만 도와달라는 말을 들으니 매정하게 구는 게 쉽지 않았다.
상대가 무장한 적이라면 단숨에 목을 치겠지만 저들은 어린아이였으니까.
저 영악함마저 결국 어려운 환경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거 같아서 안쓰러웠다.
“딱히 부담되는 것도 아닌걸.”
아인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릴리아나는 자작으로 작위가 오른 상태였다.
하사받은 영지도 이전보다 훨씬 커지고 재산도 몇 배나 늘어났다.
그러니 아이들이나 빈민에게 조금 베푸는 일 정도는 딱히 부담스러울 것도 없었다.
“사람이 너무 좋으십니다.”
기사들은 그런 릴리아나를 훈훈하게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기사단에 웬 여자가 있나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멋모르고 그런 시선을 보냈다가는 릴리아나에게 된통 당하기 때문이다.
그 뒤로 릴리아나를 보는 기사들의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그것은 동경이었다.
성별이라는 벽을 넘어 왕국에서 손꼽는 기사이며 외모 역시 나쁘지 않았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남자밖에 없는 기사단에서 인기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실제로 내심 릴리아나에게 마음을 품은 젊은 기사도 여럿이었고.
‘빅터 남작만 아니었어도!’
그러나 기사들은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단장 레벨에는 못 미치지만, 기사단 내 상위 실력자인 빅터와 릴리아나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놓고 호감을 보이지는 않으나 두 사람 사이가 묘하다는 건 기사단에 널리 퍼진 상태였다.
빅터는 경쟁자로서 꽤 만만찮은 상대였다.
말릭이라는 마족을 죽이는 데 큰 활약을 했고, 남작이라는 작위까지 하사받으며, 외모 또한 괜찮았다.
빅터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 기사는 많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그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참, 그거 아십니까? 이 로베른 왕국에 엄청난 검사가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검사?”
동료 기사가 갑자기 꺼낸 주제에 릴리아나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전까지의 활약 등을 이유로 기사들은 릴리아나, 다니엘, 로크, 루시우스를 동급으로 생각하였다.
거기에 엄청난 저격을 하는 탈론을 원거리에서 최강자로 꼽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단장 레벨은 시합에 나서지 않고 다른 기사들을 평가하느라 공개되지 않았으나 릴리아나는 반년 동안 다른 단장들을 모두 꺾은 상태였다.
대검을 쓰는 로크는 상성이 나빠서 릴리아나에게 쉽게 당했고, 루시우스도 수세로 버티는 게 한계였다.
다니엘의 전투 방식은 흥미롭지만 거듭된 시합에서 수를 모두 파악당한 뒤 털리는 게 일상이었고 탈론만이 계속 무승부를 기록하고 있었다.
궁사인 탈론으로서는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고, 릴리아나는 달아나는 탈론을 잡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탈론이 날리는 화살에 반응하여 피하는 건 어렵지 않은 상태까지 올라왔다.
“라키아라는 이름인데, 들어보셨습니까?”
“아, 들어본 거 같기도 한데.”
라키아의 명성은 로베른 왕국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타국의 인물이었지만 릴리아나도 그의 명성을 접해본 적이 있었다.
‘한번 붙어보고 싶기는 한데.’
릴리아나는 라키아를 향해 강한 호승심을 보였다.
실력이 큰 폭으로 늘었던 빅터나 지금의 단장들은 모두 그녀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릴리아나 역시 성장의 정체기를 맞이하였다.
루시우스를 패퇴시키고 탈론이 간신히 쓰러트렸다는 레이칸 왕국의 대전사 마팔과 상대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없겠지?’
현재 네패스 왕국은 어디까지나 로베른 왕국의 대영주인 라파엘 백작의 요청을 받아 상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철수가 늦어지고 있었으나 결국에는 떠날 몸.
카슨 공작 휘하에 있다는 라키아와 검을 맞댈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나리! 부디 먹을 것 좀 나눠 주세요!”
그때 릴리아나와 기사들 앞에 아까와는 다른 아이들이 구걸하는 모습이 보였다.
릴리아나는 익숙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전을 세며 아이들을 보았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붙들린 상대가 돌발적인 행동을 했다.
“비켜라!”
아이들이 구걸하던 건 용병으로 보이는 경장 차림의 남성이었는데 그는 신경질적으로 아이들을 밀쳤다.
그런데 힘이 어찌나 강한지 거기에 밀린 아이가 그만 벽에 세게 충돌하고 의식을 잃었다.
“형! 형!”
“오빠!”
아이들은 당황하며 기절한 아이를 붙잡고 흔들어댔다.
“이런!”
이를 본 기사들은 황급히 뛰어갔다.
의식을 잃은 사람을 흔들어대는 건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흠칫!
기사들이 다가오는 걸 본 남성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릴리아나는 서둘러 뛰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그냥 가려고 하는 거지?”
기사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릴리아나의 복장에 남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의도치 않은 사고였으니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죠.”
“적어도 아이에게 사과는 하고 가는 게 맞지 않나?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사과?”
사과라는 말에 남성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보고 고작 거지새끼들한테 사과하라고?”
목소리에 묻어나는 스산한 분위기에 릴리아나는 몸을 긴장시켰다.
단련된 감각이 보내오는 본능의 경고.
상대는 절대 겉모습처럼 평범한 용병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긴장시킨 남성의 정체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묻겠다. 이름이 뭐지?”
“말할 수 없다.”
“명령이다.”
“내가 왜 타국 기사의 말을 따라야 하지?”
상대는 기사인 릴리아나의 명령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릴리아나에게 사납게 인상 쓰며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쐐액!
상대가 무기를 쓰려는 걸 본 순간, 릴리아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느새 뽑혀 나온 그녀의 애검 실버 스타폴이 남성의 목을 노렸다.
채앵!
그러나 남성은 순식간에 자신의 검을 뽑아 릴리아나의 일격에 대응했다.
단 한 수의 교환으로 릴리아나는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아래가 아니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