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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30화 (130/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3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30화

130화

* * *

국경을 넘은 군대의 숫자는 정확히 3만 4천이었다.

이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인원도 포함한 수치로, 실제 전투 가능 인력은 3만 정도다.

이 전력에서 2만을 넬슨 후작가로 보내고 나머지 1만은 라파엘 백작가로 향했다.

“이게 무슨?”

라파엘 백작을 따르는 중소 영주들은 우리 군대를 보자마자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사교도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와중에, 설마 타국의 군대가 들어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주들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모두 붙잡아라.”

깜짝 놀라 영지에 틀어박히든, 상황을 파악하고 백기를 들고 나오든 예외는 없었다.

영주들은 모두 무력하게 붙잡혔다.

난 그들을 붙잡은 명분으로 사교도와 연관성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했다.

영주가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 수밖에 없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이 하소연할 상대 따위는 없으니까.

중심이 될 인물인 라파엘 백작은 이미 가족들과 함께 유폐된 상태였다.

“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네패스 국왕 전하! 전하!”

기사들에게 포박된 영주는 무죄를 주장하며 절박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우악스럽게 끌려 나가며 그 목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영주들이 잡히자 아랫사람들은 타국의 군대에 겁을 먹은 채 모습을 감췄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무장을 해제시키고 모두 제압해라.”

영주가 잡힌 마당에 휘하 병력의 처지도 다를 건 없었다.

기사들은 모두 무장을 해제당했고,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그렇게 라파엘 백작가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나 이는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영웅들이 담당하고 있는 넬슨 후작가는 이쪽보다 더 심각할 테니까.

* * *

“어서! 어서 정렬하란 말이야!”

넬슨 후작은 허둥거리며 병사들을 붙잡아다 성벽 위에 배치했다.

3만으로 추정되는 네패스 왕국 군대가 국경을 넘었고, 여기서 다시 2만 정도의 전력이 넬슨 후작가를 포위했다.

다른 영주들을 불러 모을 시간도 없는 상황에 넬슨 후작은 급한 대로 근처에 있는 병력을 한데 모아서 농성에 들어갔다.

“설마 바로 공격해 오지는 않겠지?”

“저희로서는 차라리 그게 낫습니다.”

바깥 상황을 살피던 기사는 넬슨 후작의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적들이 저희를 포위하고 그냥 놀고 있겠습니까?”

경험이 풍부한 기사는 네패스 왕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를 훤히 예상할 수 있었다.

차라리 이대로 공격해 주면 어떻게 빈틈이라도 만들어보련만.

만약 포위를 굳힌 채 그들을 고사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갑작스럽게 포위를 당한 상태라 준비된 물자도 넉넉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아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으니까.

‘바보가 아니라면 포위하는 동안 병력을 빼서 이웃 영지들을 점령할 테지.’

기사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넬슨 후작가를 공격한 군대는 포위가 완성되자마자 별동대를 꾸려서 이웃 영지들을 습격했다.

항복한 영지들도 무장을 해제당하였고 저항한 영지들은 본보기로 쑥대밭을 만들었다.

넬슨 후작은 이 모든 상황을 짐작하며 좌절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먼저 공격하기에는 상대의 수가 월등한 데다 방비도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휘하 영주들이 죽거나 붙잡히고 아군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거기에 물자마저 빠르게 바닥을 보이었기에 넬슨 후작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술이라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그의 눈치를 보고 고분고분했던 기사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술상을 뒤엎었다.

결전을 앞두고 지휘관이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넬슨 후작은 이에 호통을 쳤으나 기사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황이라 넬슨 후작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쌓여왔던 분노를 표출하며 기사들은 넬슨 후작에게 면박을 주었다.

“이게 다 후작 각하께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국경의 책임자를 해임하지만 않으셨어도 이 정도로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라파엘 백작을 주의하라고 일러주었건만, 결국 뒤통수를 맞으신 게 아닙니까?”

가신들이 내쳐지면서 눈치를 봐왔던 기사들은 억눌려왔던 분노를 한 번에 표출했다.

넬슨 후작은 치를 떨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입도 제대로 뻥긋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 상황이 달라지자 자신을 무시하는 게 치욕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화가 난 넬슨 후작은 자신을 나무라는 기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 자식이 건방지게 감히!”

퍽!

“지금 절 치셨습니까?”

넬슨 후작에게 얻어맞은 기사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린 넬슨 후작은 급하게 주위에 도움을 청했다.

“이, 이 건방진 놈 붙잡아!”

그러나 넬슨 후작의 명령에 움직이는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맞은 기사와 같은 살벌한 눈빛으로 넬슨 후작을 노려보았다.

“뭐야?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누군 줄 몰라? 내가 너희 주군이라고!”

“너 따위가 우리 주군이라고?”

안면을 얻어맞은 기사는 성큼성큼 넬슨 후작에게 다가갔다.

눈앞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넬슨 후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껏 신분이란 벽 때문에 그에게 입도 뻥긋하지 못했으나, 기사의 체격은 넬슨 후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겨, 경! 진정하게! 진정하고 대화로…….”

우직!

처참한 소리와 함께 기사에게 얻어맞은 넬슨 후작은 바닥을 뒹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통증이 느껴지며 눈에 눈물이 맺혔다.

“으아악! 미쳤어! 다 미쳤다고!”

거하게 얻어맞은 넬슨 후작은 제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를 본 기사들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희망도 없고 그들은 누군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에 제일 알맞은 인물이 바로 넬슨 후작이었다.

네패스 왕국의 군대는 침략의 명분으로 라파엘 백작이 다스리는 땅에서 사교도가 발호한 것이 넬슨 후작의 계략이라 말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분명 넬슨 후작은 그런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쓰레기지만, 동시에 그럴 능력은 없는 진성 쓰레기였으니까.

하지만 누명이라도 이를 통해 자신들의 목숨을 구할 길을 찾을 수는 있었다.

“감히 사교도와 손을 잡다니! 그대는 더 이상 나의 주군이 아니다!”

“사교도는 마족과도 손잡은 놈들! 제 아비를 죽인 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사들은 네패스 왕국이 제시한 명분을 그대로 받아서 넬슨 후작을 포박했다.

“무슨 미친 소리야!”

“닥쳐라!”

기사들은 넬슨 후작이 떠들지 못하도록 입술을 두들겨 팼다.

이가 뽑히고 입술이 불어터진 넬슨 후작은 더는 결백을 주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를 듣더라도 그걸 긍정해 줄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

설령 넬슨 후작이 결백한 게 사실이라도 그가 모든 죄를 떠안고 죽어주는 쪽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넬슨 후작을 포박한 기사들은 내친김에 빈센트를 비롯해 눈에 거슬리던 간신과 아첨꾼들까지 남김없이 붙잡았다.

그들 모두 현재 넬슨 후작의 측근이기에 죄를 덮어씌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덤으로 지금껏 쌓인 분노를 해소할 수도 있었기에 기사들은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에게도 거리낌 없이 폭력을 분출했다.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마지막으로 백기를 올리고 항복할 때, 넬슨 후작은 울면서 하늘을 보았다.

신관이 자신에게 말했던 신의 심판이 정말 자신을 찾아오고 말았다.

* * *

“직접 만나니 반갑군.”

라파엘 백작을 따르는 영주들을 정리한 뒤 1만의 군대는 곧장 라파엘 백작가로 왔다.

다른 곳들과 달리 라파엘 백작은 이미 붙잡힌 상태이기에 바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국경이 열리고 불과 열흘이 안 되는 시간.

서부를 완전히 장악한 내 앞에 라파엘 백작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대가 바라는 대로 모두 이루어졌으니 부디 내 가족들의 목숨은 살려주시오.”

최악의 상황은 이미 이루어진 뒤였다.

라파엘 백작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경을 지켜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시점에서 그의 마음은 완전히 꺾인 상태였다.

“그건 좀 더 고민해 봐야겠군.”

라파엘 백작은 이미 쓸모를 다한 뒤였다.

그러나 그는 내 로베른 왕국 침공의 명분이 된 당사자로서 자칫 비밀이 새어 나갈 우려가 있었다.

세상에 국가가 로베른 왕국 하나뿐이라면 몰라도 타국 역시 내 침략에 온 신경을 기울일 터.

내가 명분을 가짜로 만들어서 침공했다는 게 알려지면 앞으로 일이 힘들어질 수 있었다.

“비밀을 지키고 싶다면 내 목을 가져가시오. 그러면 되지 않소?”

“그대의 가족들이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내 시선이 백작 부인과 자식들을 훑자 라파엘 백작은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가족들을 살려주십시오.”

“흠. 보고에 따르면 가족을 아끼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라파엘 백작의 태도는 조금 의외였다.

오랜 시간 라파엘 백작을 모셨던 마법사는 라파엘 백작이 그렇게 가정에 충실한 인물은 아니라고 정보를 전했다.

실제로 작전이 결행되던 날에도 첩을 끼고 뒹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위기의 상황에서 혈육에 대한 정이 강해지는 게 이상하지는 않으나 뜻밖이기는 했다.

‘이게 이 세계 귀족들에게는 당연한 건가?’

첩은 결국 첩이고 부인은 부인.

예외가 있긴 하겠지만 전형적인 귀족으로 보인 라파엘 백작의 모습이 귀족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닮고 싶지는 않았지만.

“맞습니다. 전 못난 놈입니다. 그러니 제발 가족들을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뭐, 백작의 도움이 크기는 했으니까. 살 기회를 주지.”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해야 할 일을 알려주자 라파엘 백작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사교도 준동의 배후로 지목되어 끌려온 넬슨 후작의 앞에 라파엘 백작이 섰다.

“네 이놈!”

라파엘 백작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넬슨 후작에게 호통을 쳤다.

수척한 인상의 젊은 귀족인 넬슨 후작은 그런 라파엘 백작의 고함에 몸을 움찔했다.

“네놈이 감히 사교도와 손을 잡고 내 영지를 습격해?”

하지만 이어지는 라파엘 백작의 외침에 넬슨 후작은 언제 놀랐냐는 듯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러나 그에게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넬슨 후작의 입은 재갈이 물려 단단히 틀어막힌 뒤였으니까.

영지민들은 라파엘 백작이 주연으로 서서 진행하는 연극을 가만히 구경했다.

백작가 기사단의 죽음도 전부 넬슨 후작에게 책임이 물어졌고, 넬슨 후작은 온갖 야유와 오물 투척을 당했다.

“내 손으로 직접 널 죽일 수 있도록 해주신 네패스 국왕 전하의 자비심에 감사한다.”

모든 과정이 끝나자 라파엘 백작은 제 손으로 직접 넬슨 후작을 죽였다.

평범한 영지민으로 위장하고 있는 다른 지역이나 타국의 첩자들은 이 상황을 자신들의 주인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내세운 가짜 명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진짜 명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원래라면 라파엘 백작이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이런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생각은 없었으나, 생각보다 그가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큰 덕분에 시도해 볼 만했다.

‘이걸로 명분도 굳혔고.’

자고로 진실이란 사람들이 믿는 것을 말한다.

당사자인 라파엘 백작이 직접 말하고 넬슨 후작을 심판한 이상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리라.

라파엘 백작이 서명한 서한도 그대로 남아있고, 국경에서도 라파엘 백작에게 확인한 다음에 길을 열어준 것이니까.

“설마 여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모든 일이 끝나고 휴식을 취하려 안으로 들어오자 자크론이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한 건지. 마족도 이런 짓은 생각도 못 할 거다.”

“그러니까 마족이 인간에게 패배한 거 아니겠습니까?”

“할 말 없게 만드는구나.”

마족은 졌다.

인간보다 강한 힘이 있었는데도 인간에게 패배했다.

오만해서? 머릿수가 적어서?

아니다.

그들이 패배한 건 멍청해서다.

전쟁에서 먼저 명분을 내준 건 마족이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마족이 타국의 왕족을 죽이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했으니.

이는 곧 그들이 애초에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걸었다는 의미니까 그들이 멍청하다는 증거다.

“그렇지만 이런 계략은 마족에게 통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지난 6개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나는 6티어로 올라갈 수 없었다.

내가 군주가 아니라 일개 마법사였다면 절대 마족과 싸울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동부에서 상대했던 오차드도 지금의 나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으니까.

“마족에게는 마족에게 맞는 전략을 써야지요.”

하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난 앞에서 힘자랑이나 할 생각은 없다.

세계를 구하는 용사가 될 생각도 없고, 명성이나 공을 세우는 게 굳이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

군주는 사람을 다루는 역할이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해내는 역할은 아니니까.

“플레턴이 정말 제자 하나는 기가 차게 골랐군. 아주 기가 막혀.”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정거림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가볍게 받아들였다.

자고로 대전이나 경쟁과 같은 장르의 게임에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은 상대의 욕이었다.

“그런데 왕이 이렇게 친정을 나와도 되는 거냐?”

“오히려 좋아할걸요?”

보통 후계자도 없는 왕이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이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애초에 내전을 평정하면서 얻은 무용을 기반으로 민심을 얻은 상태였다.

대외적으로 도덕에 타격을 받을 일도 없으니, 사교도를 징벌하고 계략을 꾸민 넬슨 후작을 죽인 건 오히려 내 지지도를 올려줄 요소였다.

‘반드시 그래야 했고.’

국내를 벗어나 처음으로 외국을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내세울 마땅한 명분이 없다면 정복 전쟁이 원활하게 돌아갈 리 없다.

‘빅터도 반대하지 않았을 정도니.’

혹시나 해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선량한 인품을 가진 인물인 빅터에게 이번 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빅터는 여기에 긍정했다.

타국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마족과 연관되었다는 사교도가 국경 너머에 둥지를 튼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를 미연에 방지한 것은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었다.

거기에 넬슨 후작 같은 자를 징벌하는 건 명예를 자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소재였고.

‘가면을 벗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실제로는 어디까지나 내 야망을 위해서 대륙을 정복하려고 하지만 마족과 맞서고 불의에 맞선다는 영웅으로서의 이미지가 나를 포장해 주는 상태였다.

아랫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자신들이 옳다고 믿으면 망설임이 없어지니까.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도 무시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의 행동이 위험을 방관하는 겁쟁이의 행태가 되도록 만들 수도 있었다.

딱히 언론이라고 할 게 없는 이 세계에서 명성만큼 잘 통하는 건 없으니까.

“거참 무섭군. 카이로스 백작은 애송이로 보이고 마족보다도 더해.”

“이 정도는 해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크론과 대화를 마친 뒤에는 빅터를 호출해서 돈다발을 주며 지시를 내렸다.

“신전에 기부하고 오게.”

“알겠습니다.”

준비했던 거금을 전달해 주자 빅터는 눈을 반짝이며 돈을 챙겼다.

로베른 왕국 서부에는 사교도 말고 멀쩡한 종교도 있었다.

넬슨 후작가의 영역에서 빈민과 고아들을 구제 중이라고 하는데 챙겨줘서 나쁠 건 없었다.

이걸로 내가 이 지역을 점령해도 민심이 나를 따르게 될 테니까.

넬슨 후작이라는 녀석이 워낙 악명이 자자한 덕분이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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