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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28화 (12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2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28화

128화

* * *

라파엘 백작을 붙잡은 침입자들은 그를 어딘가로 끌고 갔다.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의아해하던 라파엘 백작은 곧 왜 자신을 끌고 왔는지 깨달았다.

그곳에 먼저 잡힌 그의 가족들이 있던 것이다.

풀려난 라파엘 백작은 자신의 부인과 자식들에게로 달려가 그들을 끌어안았다.

“제발 부탁이니 아이들만이라도 살려주세요!”

백작 부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했지만 침입자들은 그녀의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무기질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냉혹한 시선에 백작 부인과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면 못 할 것도 없지.”

그때 침입자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상대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나서자 라파엘 백작은 정체와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

라파엘 백작은 이미 침입자의 정체가 기사라는 걸 알아낸 상태였다.

처음에는 그냥 침입자인 줄 알았으나 뛰어난 실력이나 좋은 무장 상태 등, 기사로서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상대의 정체를 모두 알아낼 수 없었다.

서부에 있는 어떤 영주도 이만큼의 실력자들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는 어떤 수를 썼는지 자신의 기사들이 빠져나간 틈을 정확하게 노렸다.

마법사가 배신해서 정보를 발설했다고 해도 대체 어디로 들어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서명만 하시오.”

앞으로 나선 침입자가 문서 하나를 내밀었다.

라파엘 백작은 의아한 눈으로 그것을 읽다가 경악했다.

서부의 대영주인 그의 이름으로 네패스 왕국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서한이었기 때문이다.

“네, 네놈들은 설마!”

그제야 라파엘 백작은 모든 진실을 깨달았다.

크레시안 왕국의 내전을 평정하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국한 젊은 영웅 아인 네패스의 명성은 로베른 왕국에도 자자했다.

그러나 내전 종식 이후 반년 동안 그저 국정을 돌보는 것에만 집중했기에 주변 영주들은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모두 자신들을 방심시키려는 기만에 불과했다.

“안 돼! 이딴 서명을 어떻게 하란 말이냐?”

라파엘 백작은 치를 떨었다.

여기서 자신이 서명하면 네패스 왕국의 군대는 국경을 넘을 명분을 손에 넣게 된다.

내전과 사교도의 발호로 혼란스러운 로베른 왕국은 이를 감당해 낼 여력이 없었다.

서부는 물론이고 왕국 전역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신중하게 대답하는 게 좋을 텐데?”

침입자는 턱짓으로 라파엘 백작의 가족들을 가리켰다.

인질을 통한 협박에 라파엘 백작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영웅이니 뭐니 하더니, 상대의 계략은 그야말로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네놈들은 기사로서 명예도 없느냐!”

라파엘 백작은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소리쳤다.

그러나 라파엘 백작의 호통에 침입자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하하하하!”

모든 침입자들이 웃어 제끼는 광경에 라파엘 백작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이런 소리를 듣고서도 오히려 웃다니,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었다.

“백작. 우리가 기사로 보이나?”

“당연한 소리를!”

상대의 물음에 라파엘 백작은 바로 긍정했다.

네패스 왕국의 기사가 아니라면 이런 짓을 할 이유도 없고 그들의 실력과 무장 상태도 기사가 분명했다.

“그것참 영광이군.”

그러나 상대의 반응은 무언가 이상했다.

기사라는 이야기에 오히려 영광이라며 즐거워했다.

“뭐, 맞는 말 아닙니까?”

“그래, 우리도 이제 기사이기는 하지.”

껄렁한 말투와 기이한 반응.

라파엘 백작은 표정이 굳어졌다.

어렴풋이 상대의 출신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놈들, 위험한 부류다.’

차라리 상대가 기사인 게 나았을 것이다.

깔끔하게 죽일지언정 애먼 짓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실제로 자신의 첩을 그냥 돌려보내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는 자신의 착각이었다.

이들이 이젤리아를 그냥 놔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가 자신들과 같은 밑바닥이라 여겼기에 보인 동정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일은 기사가 할 일이 아니거든.”

파악!

어디서 났는지를 모를 단검이 백작 부인의 머리 옆에 꽂혔다.

이에 머리 장식이 잘려 나가며 백작 부인의 머리는 산발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밑바닥 놈들이라서. 명예로운 일은 몰라.”

진실을 깨달은 라파엘 백작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는 고작 목숨이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확실히 아는 건 오직 하나. 여기에 백작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야.”

상대의 위협에 라파엘 백작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 *

라파엘 백작가의 기사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웃 영주들은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그에게 합류했다.

라파엘 백작가의 기사단장 헤이란트는 영주들을 맞이하며 사교도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놈들은 저 마을에 있소.”

“규모나 무장 상태는 어찌 됩니까?”

“무장은 별로지만 머릿수가 많소. 거의 3천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소.”

3천이라는 말에 헤이란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영주의 군대는 뭘 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곧 사교도가 마족과 연관되었다는 정보를 떠올리고 억지로 이를 수긍했다.

“그런데 백작 각하께서는 직접 오시지 않은 건가?”

“고작 사교도를 상대하는 일에 백작 각하께서 왜 나서야 한단 말입니까?”

헤이란트가 되묻자 영주들은 얼굴을 붉혔다.

그 사교도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자신들을 나무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기사단과 협회의 마법사가 있으니.”

헤이란트는 자신이 너무 영주들을 몰아붙였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협회에 대한 이야기에 영주들의 관심이 브레인에게로 돌아갔다.

“원로 마법사라니, 든든하군. 협회와 선이 있었는가?”

영주들은 마법사 협회가 이 자리에 온 이유가 라파엘 백작의 수완이라고만 생각했다.

헤이란트가 일부러 마족에 대한 단서를 영주들에게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영주들이 겁을 먹고 소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또 하나는 대영주인 라파엘 백작의 능력을 띄우기 위해서였다.

‘지원이 늦었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 아니면 불충한 생각을 품을지도 모르니까.’

협회의 원로인 브레인이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기에 헤이란트는 마음 놓고 영주들을 속였다.

“그럼 이제 공격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헤이란트와 이웃 영주의 군대는 사교도 무리를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

“아스카를 믿어라!”

“신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사교도들은 괴성을 지르며 기사단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머릿수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의 무력 앞에 사교도는 속수무책이었다.

촤악!

단숨에 3명의 목을 날려버린 헤이란트는 보고대로 상대가 되살아나자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마법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기이한 힘에도 한계가 분명하다고 했다.

한 번으로 죽지 않으면 두 번, 두 번으로 죽지 않으면 세 번 죽이면 그만.

실제로 전부는 아니지만 몇 명은 되살아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체력이 부담되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로군.’

이웃 영주들의 군대와 협회 마법사들의 화력이 있었기에 헤이란트는 이를 믿고 용맹하게 맞섰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본래라면 3천의 사교도 따위는 모두 베어야 했을 시간이 지났으나 아직도 적들은 득실거리고 있었다.

“헉헉! 안 되겠다! 모두 후퇴해라!”

헤이란트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포위당하지 않도록 기사단을 뒤로 물렸다.

자신들만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면 가장 이상적이었겠지만 그건 무리인 듯했다.

화악!

다행히 협회는 그들이 싸울 동안 후속 공격을 준비한 상태였다.

일대를 초토화시킬 엄청난 크기의 화염이 넘실거리는 광경이 보였다.

“믿음직하군!”

군대가 모두 물러나고 저 화염이 떨어지면 사교도 무리도 깔끔하게 제거되리라.

헤이란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하였으나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화르륵!

아직 군대가 채 후퇴하지 않았는데 협회에서 냉큼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돌발 사태에 헤이란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머, 멈춰라! 아직 제대로 후퇴하지 못했…….”

당황하며 소리치던 헤이란트는 순간 브레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싸늘하게 식어있는 브레인의 시선을 목격한 헤이란트는 이 상황이 절대 사고가 아님을 깨달았다.

콰콰쾅!

화염은 사교도와 라파엘 백작가의 기사단, 이웃 영주들의 군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게다가 그 화력은 예상보다 엄청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의 원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화력이었다.

“이, 이게 대체?”

헤이란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배신과 휘하 기사들이 타 죽어가는 광경.

이렇게 엄청난 화력을 고작 저 정도 규모로 발휘한다는 건 이상했다.

“저게 뭐지?”

이 광경에 당황하는 건 헤이란트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전장을 주시하고 있던 아스카교의 사제장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는 전투가 무르익을 때쯤에 비밀 병기를 투입하기 위해서 대기하던 상태였다.

주민들로 구성된 일반 신도들 따위는 어차피 소모품.

핵심은 저들이 아니라 심장이 적출되고도 움직이는 특수한 존재, 구울이었다.

이 구울은 잘만 크면 기사조차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괴물이 되는데 투입할 시기를 가늠하다가 그만 때를 놓치고 만 것이다.

“협회가 왜 라파엘 백작가를 공격하는 거야?”

애초에 협회의 등장부터 예정에 없던 일이기에 사제장은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신도들을 버리고 구울만 회수해서 달아날 생각까지 했는데.’

사제장은 머리를 털어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어쨌든 협회의 전력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어디 가는 거냐?”

그런데 막 움직이려던 사제장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위치를 순식간에 파악하고 나타난 상대의 모습에 사제장은 눈을 부릅떴다.

‘원로급 마법사!’

고등한 수준의 마법사는 먼 거리에서도 마나의 흐름을 파악하여 상대 마법사의 위치를 포착할 수 있었다.

사제장은 그러한 지식이 있었기에 상대가 원로이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이라는 걸 깨닫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협회의 마법이 너무 강했어.’

머릿수에 비해서 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원로가 다수 투입된 듯했다.

이런 사제장의 생각은 거의 정답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 가지 틀린 부분도 있었다.

“너 때문에 좋았던 시간도 다 가버렸는데 책임을 져야지?”

사제장을 가로막은 마법사의 정체는 자크론이었다.

라파엘 백작의 요청에 따라 협회에서 이동한 마법사들과 별개로 아인은 일부 병력을 은밀하게 로베른 왕국에 침투시켰다.

목적은 사제장을 비롯한 사교도를 남김없이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큭! 우습게 보지 마라!”

사제장은 서둘러 구울을 불러냈다.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40여 마리의 구울이 나타나 자크론을 포위했다.

“구울이라……. 희귀한 놈을 보는구나.”

자크론은 구울의 정체를 알아보고 신기해했다.

문헌에서나 보던 놈인데 하나하나가 능히 기사급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원로급 마법사라도 구울 40마리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내가 나선다면 더욱 그렇겠지!”

사제장은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 있었다.

원로 마법사와 일대일로 승부하는 거라면 몰라도 구울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엄호하는 거라면 자신에게도 승산은 있었다.

“이대로 죽여주마!”

“할 수 있다면 해봐라.”

자크론은 구울에게 포위당한 상태로도 여유로웠다.

화력에 특화된 마법의 특성상 근접전투에 딱히 약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구울은 자크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콰앙!

뭉쳐 있던 구울 사이로 날아든 무언가가 단숨에 구울들을 바닥에 처박았다.

알 수 없는 공격에 나자빠진 구울들은 머리가 산산이 조각난 상태로 몸을 꿈틀거렸다.

“이게 무슨?”

사제장은 구울들이 순식간에 당하자 당황했다.

무슨 공격인지 제대로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

쓰러져 있는 구울을 보고 나서야 간신히 어떤 공격을 당했는지 깨달았다.

그건 믿기지 않게도 고작 한 발의 화살이 만든 참상이었다.

“어떻게 화살 따위로?”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위력이었다.

화살이 어떻게 저만한 위력을 내고, 또 반동을 견딘 것인지도 의문인 상황.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를 상대의 화살 앞에 사제장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저 위력이라면 자신이 사용하는 마나 실드를 단숨에 꿰뚫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직접 당해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화르륵!

자크론의 주위로 붉은 화염이 넘실거렸다.

이성이 없기에 두려움이란 감정 또한 존재하지 않는 구울들은 흉성을 드러내며 자크론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엄청난 온도의 화염의 벽 앞에 그 몸을 내어줘야만 했다.

자크론은 구울의 생전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도록 모두 바싹 태워버렸다.

매캐한 냄새가 한참 퍼지더니 이내 잿가루만이 남아 구울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끝이냐?”

“이, 이럴 리가. 내가 준비한 구울들이 이렇게 쉽게 당할 리가…….”

사제장은 엄청난 공포에 넋이 나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죽음조차 극복하는 힘으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고작 한순간의 꿈에 불과했다.

“세상은 넓은 법이지.”

자크론은 마지막으로 사제장을 노리고 손을 뻗었다.

거센 화염이 그의 육신을 남김없이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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