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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27화 (127/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27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27화

127화

밝은 빛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라파엘 백작은 두 팔을 벌려 그들을 환대했다.

“나의 영지에 온 것을 환영하네.”

라파엘 백작은 휘하 마법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법사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사교도와 마족의 연관성을 밝혀낸 것이 협회였기에 사교도에 대한 문제는 곧 마족에 대한 문제였고 협회는 이를 금세 수락했다.

덕분에 라파엘 백작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영주들이 계속 패배해서 걱정이었는데.’

아스카교로 불리는 사교도의 단체는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미 두 개의 영지가 그들에게 넘어갔고 이웃한 영지들도 공격을 받는 처지였다.

해당 지역의 대영주인 라파엘 백작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영주들의 서신은 책상을 가득 채울 정도였는데 지금껏 변변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괜히 내 기사단이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까.’

라파엘 백작은 영주들의 군대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기사단을 보내지 않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의 기사단은 분명 매우 강력했지만, 사교도 따위에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내전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승냥이들을 견제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영주가 아래 영주들의 요청을 외면한다면 그것대로 문제였다.

아래 영주들의 이탈 역시 그의 전력이 깎인다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

그런데 혹시나 하고 지원을 요청한 마법사 협회가 별다른 조건도 달지 않고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자리에 와주었다.

“내가 로베른 왕국 서부를 다스리는 라파엘 백작이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마법사 협회의 원로인 브레인입니다.”

“그래. 참으로 잘 와주었소. 뒤의 마법사들은 그대의 제자들인가?”

라파엘 백작은 원로의 뒤에 함께 나타난 여러 마법사들을 살폈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도 그렇고 원로급 마법사는 눈앞의 브레인 한 사람인 듯했다.

‘너무 적지 않나? 원로가 둘이나 셋쯤은 와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마족이 관련되었다고 해서 협회에서 제법 많은 전력을 보내주리라 여긴 라파엘 백작은 인원을 세어보고는 의문을 가졌다.

고작 원로 한 명.

휘하의 마법사들도 나름 제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이겠지만 원로이냐 아니냐는 차이가 꽤 컸다.

협회의 명성이나 영향력 자체가 원로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모두 백작 각하께 인사를 올려라.”

라파엘 백작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레인은 제자들을 하나씩 인사시켰다.

모든 마법사들의 인사가 끝나자 라파엘 백작은 브레인만을 따로 호출해서 자리를 가졌다.

“손님이 왔으면 응당 대접을 해야 하는 법이지만 지금 상황이 급하다는 걸 이해해 주었으면 하네.”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족과 관련된 일을 우선하는 건 당연하니까요. 대접은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느긋하게 받겠습니다. 그게 마음도 편하지요.”

바로 본론을 꺼내는 라파엘 백작의 행동에도 브레인은 태연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 말해 주어 고맙네. 내 협회의 도움을 절대 잊지 않도록 하지.”

라파엘 백작은 휘하의 마법사를 시켜 브레인에게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

“그랬군. 딱 예상 범위대로야.”

협회에 처음 도움을 요청했을 때보다 더 나빠진 상황이 전달되었지만 브레인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그런 브레인의 태도에 라파엘 백작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럼 비책이 있는 겐가?”

“그전에 백작 각하께 한 가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사교도를 따르는 이들을 어떻게 처벌하실 생각입니까?”

브레인의 물음에 라파엘 백작은 고민에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인다면 곧 그만큼 노동력이 상실된다는 의미니까.

가뜩이나 내전으로 일할 사람이 부족한 판국에 그들마저 죽는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영주들의 군대까지 해치운 이들을 평화롭게 진압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사교도의 수뇌를 없앤다고 해서 그들이 옛날처럼 얌전히 영주들을 따를지도 의문이었고.

“항복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때를 보여주어야겠지. 다른 영지에서 사교도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훌륭한 결단이십니다.”

브레인은 라파엘 백작의 선택을 추켜세웠다.

“그럼 허락도 받았으니 사교도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군사들은 어느 정도 필요한가?”

“평범한 병사들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기사단의 출정을 요청합니다.”

“기사단을?”

자신의 기사단을 내어달라는 말에 라파엘 백작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적으로 사교도를 진압할 수 있다면 문제 될 게 없으나, 만약 기사단에 피해가 발생한다면 추후 벌어질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꼭 기사단이 나서야겠나?”

“기사단의 피해가 걱정되십니까?”

“아무래도 내전 중이다 보니…….”

기이한 힘을 쓰는 사교도가 상대이기에 라파엘 백작은 적의 전력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기사단이 얼마나 피해를 볼지도 짐작이 되지 않아 망설여졌다.

“저와 협회를 믿고 내어주십시오.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거듭된 요청을 라파엘 백작은 거절할 수 없었다.

협회는 어디까지나 문제를 돕기 위해서 왔을 뿐, 결국 백작 본인의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기사들을 보내겠네.”

라파엘 백작의 허락이 내려지자 기사단과 협회의 마법사는 출정에 나섰다.

기사들은 협회의 마법사를 우호적으로 대했다.

그들이 지원을 온 것도 있지만 사정이 급해 라파엘 백작이 재촉한 상황에서도 별다른 불만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거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파엘 백작가의 기사단장 헤이란트 역시 직접 나서 브레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뭘. 마법을 쓰면 금방인 것을.”

“그 마법을 쓰기 위해 막대한 재물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작 각하께서 그 정도는 내어주지 않겠나?”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쉬운 결정은 아니지요.”

브레인과 대화를 나누던 헤이란트는 이를 긍정하면서도 마법사 협회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협회와의 인연이 도움이 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레인은 그런 헤이란트를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 * *

“이제야 겨우 발을 뻗고 잠들 수 있겠군.”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자 라파엘 백작은 자신의 침실을 찾았다.

사교도의 발호 이후로는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없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라파엘 백작은 협회의 활약을 기대하며 밝아진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불러주셨네요.”

라파엘 백작의 침실에는 아리따운 외모의 여인이 들어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이젤리아!”

라파엘 백작은 환하게 웃으며 바로 여인을 끌어안았다.

여인의 정체는 바로 라파엘 백작의 애첩인 이젤리아였다.

평소라면 늘 함께 밤을 보냈을 테지만 사교도의 발호 이후로는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대외적인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젤리아는 안달이 난 상태였다.

평소에는 언제나 그녀를 찾던 백작이 갑자기 영지에 문제가 생겼다며 그녀를 찾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벌써 며칠째 자신이 눈독을 들인 아름다운 반지를 손가락에 끼지 못한 채 애타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저를 다시 찾으신 걸 보면 문제가 해결되셨나 봐요?”

“해결된 것과 다름이 없단다.”

라파엘 백작은 브레인으로부터 그들이 실패할 경우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그 약속에는 4명 이상의 원로를 비롯한 협회의 마법사 100여 명이라는 구체적인 규모까지 거론된 상태였다.

게다가 그것은 선발대에 불과하며 필요하다면 협회의 총력이 올 거란 말까지 들었기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다행이네요, 백작님의 근심이 해결되었다니.”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라파엘 백작은 이젤리아의 손을 붙잡았다.

“그야 백작님을 사랑하니까요.”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내 부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인이라는 말에 이젤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서렸다.

그녀는 지금의 백작 부인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미래를 생각했다.

“자, 어서 시작하자꾸나.”

“아이,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흐흐흐.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단다.”

* * *

라파엘 백작이 잠자리에 들었을 무렵 은밀히 저택을 가로지르는 자들이 있었다.

“순찰은?”

“이미 제압했다.”

시커먼 옷을 둘러 누가 봐도 수상한 남자들은 저택의 경비 몇 명을 제압한 상태였다.

그런 남자들의 곁에 라파엘 백작을 따르던 마법사가 서 있었다.

“라파엘 백작은 첩을 끼고 잠이 들었을 겁니다. 예상대로지요.”

“좋은 정보를 제공해 주어 고맙소.”

남자들은 마법사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기사들이 모두 빠져나간 덕분에 침입이 수월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릴 순 없었다.

안에서 순찰하는 이들이나 허술한 곳에 대한 정보는 내부자가 협력해 주지 않으면 얻기 어려웠으니.

수년간 라파엘 백작의 곁에 머물렀던 이 마법사의 협조가 아니었다면 분명 며칠은 더 지체했을 것이다.

“라파엘 백작을 배신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뭐,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법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라파엘 백작은 자신의 체면을 적당히 챙기면서 뒤로는 음흉한 짓을 하는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모시기에는 어렵지 않은 상대라 할 수 있으나, 진심으로 따르기에는 부적절했다.

게다가 이번 일에는 협회의 마법사들이 우상으로 삼는 아인의 요청이 있었다.

“네패스 국왕 전하를 위한 일이니까요.”

그 외에도 두둑한 보상을 약속받았기에 마법사로서는 딱히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럼 시작하지요.”

그들이 침입한 곳은 낮에 협회에서 순간 이동 마법을 통해 넘어온 장소였다.

추가적인 지원을 위해 낮에 사용된 마법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상태였는데 마법사는 그곳에 보주를 넣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보주에 담긴 마나를 빨아들이며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우웅!

한밤중에 일어난 불빛에 본래라면 소란이 일어났어야 하지만 순찰하던 이들은 이미 모두 당한 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앞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소환되었다.

순간 이동 마법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연달아서 몇 번이나 빛이 번쩍였고 넘어오는 침입자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스르릉.

“신속하게 움직여라.”

모든 인원이 넘어오자 선두에 선 사람이 지시를 내렸다.

쿵쿵쿵!

침입자들은 사전에 전달받은 정보에 따라 각자 맡은 구역을 향해 빠르게 흩어졌다.

그 소란스러운 발걸음에 잠에서 깬 하인 한 명이 바깥을 내다봤다.

“이게 무슨 소리…….”

콱!

“컥!”

그러나 하인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침입자가 주먹을 날려 그를 제압했다.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하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꾸라졌다.

“흐억!”

같은 방을 쓰던 다른 하인이 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침입자다! 침입자야!”

하인은 부디 누군가가 이 소리를 듣고 자신을 도와주러 오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 기도는 침입자의 주먹이 그에게 꽂힐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 *

“침입자다!”

애첩인 이젤리아와 함께 곤히 잠들었던 라파엘 백작은 소란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그의 영지에 침입할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교도의 무리는 그의 영지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다른 대영주가 그를 기습했다고 해도 저택을 직접 노리는 건 지리적으로 무리였다.

그래서 혹시 잠결에 잘못 들었나 생각했지만 바깥의 소란으로 보아 그건 아닌 듯했다.

“백작 각하!”

“꺄악!”

그때 바깥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문을 열어젖히며 침실로 들어왔다.

이젤리아는 기사가 불쑥 들어오자 비명을 지르며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기사는 그런 이젤리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서 대피하셔야 합니다!”

“대피라니?”

“적의 침입입니다! 무장한 병력이 저택에 침입했습니다!”

“그게 대체……. 상대는 누구냐?”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숫자가 상당한 듯합니다. 우선 비밀 통로를 통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지요.”

“내 가족들은?”

라파엘 백작은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물었으나 기사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기사들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말했겠지만 지금 기사 대부분은 사교도 진압을 위해 출정한 상태였다.

저택에 남은 기사는 그를 포함하여도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남은 기사들은 백작에게 집중된 상태였고.

“일단 피하시지요.”

기사는 라파엘 백작을 이끌었다.

“가, 같이 가요!”

이젤리아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휙 나가버리는 기사의 행동에 당황하며 뒤를 쫓았다.

알몸이었던 상태에서 겉옷만 대충 걸친 허전한 차림새였다.

이젤리아가 뒤를 따라오자 기사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저택 내 비밀 통로의 위치는 백작과 부인만이 알고 있었다.

일개 첩에게는 공개되어선 안 될 정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버리고 간다면 뭐라고 떠들어댈지 아무도 모르지.’

비밀 통로야 한 번 쓰면 그만이지만 그 너머에 준비된 말에 여유가 없었다.

만약 통로를 나간 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잡히거나 적들에게 백작이 달아난 방향을 말하기라도 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스르릉.

차가운 시선을 보내던 기사가 검을 뽑자 이젤리아는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백작님!”

이젤리아는 서둘러 라파엘 백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라파엘 백작은 지금껏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혹한 시선을 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보내주어라.”

“배, 백작님…….”

믿었던 라파엘 백작의 배신에 이젤리아는 경악했다.

자신에게 푹 빠져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사실 라파엘 백작에게 그녀는 잠자리 상대 이상의 가치는 없던 것이다.

“꺄아아아악!”

이젤리아가 비명을 내지르자 기사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촤악!

검광이 번뜩이고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그러나 그 피의 주인은 이젤리아가 아니었다.

“커억!”

단말마와 함께 기사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이젤리아는 이를 기뻐하지 못했다.

기사를 베어 가른 상대가 아무리 봐도 침입자로 보이는 무장한 병력이었기 때문이다.

라파엘 백작은 그 모습에 몸을 떨었다.

“라파엘 백작 맞군. 멀리 가지 못했어.”

“어, 어떻게 벌써?”

침입자가 어디로 들어왔는지는 모르나 라파엘 백작의 침실은 저택 깊숙한 곳에 있었다.

외부부터 들어온다면 침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내부의 지리를 모른다면 더욱 헤매어야 하는데 상대는 단시간에 라파엘 백작의 침실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백작 각하, 이 밤중에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그때 침입자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파엘 백작은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마법사가 침입자들 사이에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네놈이 날 배신해!”

상황을 파악한 라파엘 백작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침입자들이 앞으로 나서 라파엘 백작을 제압했다.

“이 여자는 어떻게 합니까?”

목표였던 라파엘 백작을 확보한 침입자들은 홀로 남은 이젤리아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이젤리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눈앞의 사내들에게 온갖 험한 꼴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침입자들은 이젤리아를 향해 심드렁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늙은이 상대하느라 고생이 많군.”

선두에 있던 침입자가 품을 뒤져서 돈이 든 주머니를 던졌다.

이젤리아는 영문도 모른 채 엉겁결에 돈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왜 갑자기 자신에게 돈을 주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 그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화대다. 이미 받았을지 모르겠지만 험한 꼴 당한 대가라 생각하고 챙겨서 꺼져라.”

화대.

그 말에 이젤리아는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백작 부인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꿰찰 거라고 믿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백작은 그녀에게 진심이 아니었으며 외부에서 온 침입자들은 그녀를 고작 창녀로 보았다.

이게 그녀의 진짜 위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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