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11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18화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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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 전하가 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고생 많았네.”
다니엘이 돌아왔다.
맞춰서 북부 연합을 공격하려던 나는 다니엘의 복귀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학살자의 가족을 찾으면 예정된 안전한 장소로 보내거나 사는 곳을 떠나기 싫어하면 다른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라고 했는데…….
“그런데 왜 직접 데려왔지?”
다니엘은 내가 지시한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쪽도 아닌 상대를 데려온다는 세 번째 방법을 사용했다.
생각도 못 한 선택이었다.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대공 전하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뛰어나?”
난 모르타르라는 이름의 사내를 살폈다.
확실히 덩치만 봐도 어지간한 기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확인한 영웅 정보는 놀라웠다.
모르타르는 4티어 영웅이었으니까.
“잘 데려왔군.”
이 크레시안 왕국 전체에서 4티어 영웅이 몇 명이나 되던가.
전투형 영웅 중에서는 카이로스 백작가의 세 기사를 포함해도 손가락을 다 쓰지 않고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마법형 영웅은 협회의 원로들과 황금십자회의 타이온 백작, 제명된 인물인 자크론이 전부였고.
5티어 영웅은 내가 직접 만든 탈론밖에 없었다.
‘자크론도 5티어로 만들고 싶었는데…….’
자크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을 때 그는 이를 거절했다.
이유를 물으니 이미 힘에 집착할 시기는 지났다는 답을 해주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자크론은 스스로 하는 성장이 아니면 의미 없다고 내 요청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뜻을 알 수 없었다.
‘물론 걱정할 나이이기는 하지.’
플레턴도 자크론도 그렇고 협회의 원로란 인물들은 하나 같이 나이가 상당하다.
그 때문인지 자크론은 전장에 나갈 때마다 나에게 한 번씩 늙은이를 고생시킨다며 쏘아붙이고는 했다.
그러나 정작 편히 쉬라고 하면 방구석 늙은이 취급한다고 도로 역정을 내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밑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가?”
“오는 길에 들은 바에 의하면, 대공 전하께서는 강력한 마법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엉뚱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니엘의 표정은 창백하게 물들고 있었다.
“무례한 소리 하지 마라!”
“아, 놔봐.”
다니엘이 모르타르를 말리려고 했으나 모르타르는 다니엘의 손길을 가볍게 쳐냈다.
근력에서 전혀 상대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
“전 저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습니다.”
“그 덩치로 나랑 힘 싸움하자는 건 아니겠지?”
불끈불끈하는 근육이 당장이라도 내 연약한 몸 정도는 순식간에 비틀 수 있을 거 같았다.
“마법사에게는 마법사의 싸움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티아라 이후로 나한테 결투 신청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군.”
“오, 저 이전에도 있었습니까?”
내 이야기에 모르타르는 티아라에 대한 상당한 호감을 보였다.
“그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전사로군요!”
“마법사다.”
“아, 그렇습니까?”
모르타르는 다소 실망하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대단한 사나이 아닙니까?”
“여자다. 매우 젊고.”
어떻게 생각하면 티아라라는 이름을 듣고도 성별을 남자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어쨌든 나랑 겨뤄보잔 말이지.”
3티어 정도라면 쉽게 이기겠지만 상대는 4티어.
게다가 근접 전투에 기사보다도 더 특화된 것처럼 보이는 육체를 지녔다.
스킬을 살펴봐도 훌륭한 전사였다.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에 피떡이 되기 딱 좋아 보인다.
“알고 있나? 내 마법은 공격적이라서 적당히 제압하기가 어렵다.”
마법사를 상대로는 플레턴의 비전 마법인 마나 쇼크를 사용해서 손쉬운 제압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투형 영웅에게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상대가 강한 전투형 영웅일수록 제압해야 하는 내 부담은 매우 커지는 것이다.
티아라는 마법사였기에 쉽게 찍어 누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그러니까 겨루기 전에 내 최대 마법을 보여주지. 막거나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항복하게. 송장 치우기는 싫으니까.”
“받아주시는 겁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모르타르는 결투를 받아준다는 것에 환호했다.
내용은 별로 귀담아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후회할 텐데.
티어로는 고작 한 단계 차이.
확실히 마법형 영웅인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약점에 대한 보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였다.
“라이트닝 플레어!”
준비된 표적에 마법을 날리자 모르타르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마족인 오차드가 썼던 이 마법은 이제 내 주력기라고 해도 다르지 않다.
여기에 네패스 가문의 비전인 마나 가속을 더해주면 그야말로 절륜한 위력이 나온다.
“이걸 상대할 수 있나?”
아쉽게도 아직 삼중 마법과 조합하기에는 내 숙련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금방 해결될 문제다.
나중에는 여기에 다른 마법을 조합해서 삼중 마법과 마나 가속으로 위력을 대폭 뻥튀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저거 번개인 거 같은데.”
새까맣게 잿더미만 남은 표적을 본 모르타르는 식은땀을 흘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졌습니다.”
“다행이군. 기사 작위부터 주지. 공을 세우면 귀족 자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업무를 도와줄 상대로 탈론 경을 붙여주지.”
본래라면 탈론에게는 이미 귀족 작위가 내려졌어야 한다.
내가 대공이 된 것도 있고 말릭을 잡은 공을 정산해 줘야 하니까.
그렇지만 탈론이 개인적으로 북부에 있는 영지를 원했기에 내정만 한 채 미루고 있었다.
작위를 주는데 영지를 주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불가능한 건 아닌데 나중에 따로 주려면 번거롭고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탈론이 제 동생과 함께했다는 그 사람입니까?”
“그래. 내 밑에 있는 기사 중 최고의 활 솜씨를 가졌지.”
탈론은 5티어 전투형 영웅이지만 주무기가 활인 만큼 근접전으로 들어가면 루시우스나 로크에게 밀리는 편이었다.
반대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면 루시우스나 로크도 속수무책으로 탈론에게 당했다.
루안이 만든 방패나 갑옷 등 네임드 장비로 무장해도 탈론이 쏘는 활이나 화살 또한 절대 수준이 낮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기사와 달리 탈론이 날리는 화살은 내가 따로 마법을 부여해 주는 게 가능했다.
기사의 경우 백병전을 하다 보니까 마법을 부여하려면 내가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반면 탈론은 멀리서 쏘기에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와 탈론의 조합은 6티어였던 말릭조차 비교적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물론 말릭이 나와 탈론을 직접 노리지 못하도록 앞에서 막아주는 기사가 있기에 가능했지만.
“최고라. 한번 겨뤄보고 싶군요!”
모르타르는 탈론을 향해서 호승심을 드러냈다.
제 동생의 친구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면서.
콰앙!
그리고 탈론이 날린 화살이 과녁을 꿰뚫고 뒤에 있던 건물의 벽을 관통하여 내부를 헤집는 걸 보고는 침묵했다.
“죄다 괴물들인데? 혹시 네가 제일 약한 건 아니겠지?”
모르타르가 다니엘에게 조심스레 질문했다.
이에 다니엘은 씩 웃었다.
“이젠 네가 있잖냐, 막내야.”
모르타르의 호승심이 완전히 꺾이는 순간이었다.
이후로도 모르타르는 제법 고난을 맛봐야 했다.
루시우스나 로크 등에게 치열한 결투 끝에 패배.
릴리아나와도 겨뤘는데 그녀가 도중에 4티어로 올라가면서 또 패배.
다니엘부터 시작해 5연패를 적립하였다.
“정말 네가 제일 약했어.”
“난 암살자니까 정면 승부에서 핸디캡이 있었던 거지.”
다니엘은 자신의 패배를 적당히 변호했다.
확실히 암살자가 정면에서 싸웠다면 그걸 제대로 힘을 발휘했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다니엘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반면에 나와 탈론은 모르타르가 접근하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한 방이 있었고, 나머지도 전면전에 자신 있는 이들뿐이었다.
“왕국 통일할 만한데?”
이후로도 자크론이 불을 쓰는 것으로 모르타르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뚫고 공격할 수 있겠지만 결국 숯덩이가 되어 후유증이 심각하게 남을 거 같다고 모르타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전장에서라면 싸우겠지만 대련으로는 도저히 못 싸울 상대라는 평가와 함께.
그렇게 내리 6연패를 거듭한 모르타르가 처음으로 1승을 거둔 상대는 빅터였다.
콰드득!
“큭!”
빅터는 인상을 찡그리며 망가진 방패를 내던졌다.
모르타르의 무지막지한 근력은 기사가 되면서 보급해 준 건틀렛이 더해지자 무시무시한 결과를 만들었다.
루안이 만든 네임드 방패를 한낱 고철 덩어리로 전락시키다니.
“후우! 이쪽도 쉽지 않네.”
그러나 그렇게 승리를 따낸 모르타르의 상태 역시 그리 좋지는 않았다.
빅터는 대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용병의 개싸움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어떻게든 상대를 물어뜯으려는 공격성을 보였다.
라이언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에 모르타르도 피를 좀 봐야 했다.
치명상은 없었지만 깔끔한 승리라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다음에 다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모르타르는 빅터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새로운 강자의 출현에 빅터는 뭐라도 배우기 위해서 마구 덤벼들었다.
모르타르가 맨손으로 싸우기를 선호하는 타입인 게 빅터의 개싸움과도 어느 정도 상통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연히 말하자면 모르타르는 개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무술을 구사했지만, 빅터도 기사로서 최소한의 격투 소양은 가진 상태였다.
덕분에 빅터는 모르타르를 상대하며 격투 능력이 향상되었고 모르타르는 끈질기게 덤비는 빅터에게 조금 질린 눈빛이었다.
“겨우 한 번 이겼다 싶으니까 웬 미친개가 붙은 거야?”
“입조심해라.”
모르타르가 빅터를 미친개라고 표현하자 스산한 목소리가 연병장을 짓눌렀다.
빅터의 분투를 감상하던 나와 다른 기사들이 그 차가운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릴리아나였다.
그녀가 이토록 분노하는 걸 전혀 본 적이 없던 나와 기사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동료 기사를 미친개라고 부르다니. 아직도 자기가 용병이라고 착각하는 건가?”
“아, 그게 아니라…….”
“선배 기사에 대한 존중부터 배워야겠군.”
릴리아나의 쌀쌀한 태도에 모르타르는 완전히 기가 죽은 거 같았다.
북부의 혹한보다 더 차갑다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왜 저렇게 과민 반응하지?”
릴리아나의 태도는 상당히 이상했다.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모르타르가 제대로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했고, 이런 문제는 제법 숱하게 있어왔다.
내가 출신을 가리지 않고 기사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릴리아나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던 라이언조차 아직 말버릇을 다 고치지는 못했다.
“왜 이리 눈치가 없으십니까?”
의아해하는 나에게 라이언이 다가와 손을 들어 보였다.
정확하게는 새끼손가락만 편 채 꼼지락거리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이거. 이거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게 뭐지?”
“엑?”
“대공 전하께서 그런 걸 알 리가 없잖아.”
로크가 라이언의 머리를 가볍게 때리며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 정말인가? 릴리아나 경과 빅터 경이?”
“릴리아나 경 복귀하고부터 둘이 눈맞았다니까? 대련 한 번 하고는 눈빛으로 서로 물고 빨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라이언의 증언에 의하면 최근 들어서 릴리아나와 빅터의 관계가 크게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빅터가 릴리아나를 피하고 어려워하던 낌새였는데, 크게 성장한 다음부터 릴리아나와 적극적으로 대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릴리아나도 이상할 정도로 빅터를 상대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고 있다는 듯하고.
이것만으로는 확신하기에 어렵지만 수백이나 되는 기사 중에서 서로를 조금 더 가깝게 생각하는 건 맞는 듯했다.
덕분에 라이언은 외로워졌다고 갑자기 나에게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대공 전하께서도 짝을 찾으셨는데 저도 짝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귀족 영애라도 소개해 줄까?”
“아닙니다! 제가 준남작이 됐기는 한데, 귀족 영애랑 맞을 리가 없지요.”
라이언은 상대로 귀족은 절대 사양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물론 귀족 영애들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분명 다툼이 일어날 거라는 게 이유였다.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기사가 되고 준남작이 되어도 라이언의 생활 방식은 여전히 용병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평생 그럴 것이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라이언처럼 자아가 강한 사람한테는 무용했다.
“그럼 평민을 원하나?”
라이언의 결혼에 대해 나는 꽤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다.
아무렴 라이언은 준남작 작위도 있는 가신이니까.
일반 기사와는 대우가 다를 수밖에.
게다가 나는 라이언을 대하는 게 제일 편했다.
“그런데 그러면 평민 쪽이 부담일 텐데.”
라이언의 행동이야 어쨌든 신분은 준남작이다.
엄연히 귀족이고 자신의 영지도 있다.
평민이 혼처로 삼기에는 굉장히 부담될 것이다.
“몰락 귀족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그러고 보니 게일 남작이 루카인 남작의 혼처를 찾아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기억난다.
라이언에게도 몰락 귀족이 딱 아닐까?
물론 혼인해야 하는 상대가 조금 힘들어할 수는 있는데 다시 귀족으로 복권될 수 있고 라이언이 영지 운영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권리도 다 위임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라이언이 마냥 나쁜 상대인 건 아니었다.
“아, 대공 전하께서 소개해 주는 상대는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 이야기에 라이언이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나로서는 할 만한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반응이 이상하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왜지?”
“대가로 또 뭘 뜯어내시려고.”
라이언은 나에게 절대 공짜가 없으리라고 확신했기에 상대를 찾아준다는 말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에 난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내가 답지 않게 고민해 주는 게 웃긴 거였지.
“나에 대한 경의 마음은 잘 알았네. 꼭 기억해 두지.”
“지금 뭔가 실수한 거 같은데.”
라이언이 뒤늦게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늦었다.
“뭐, 휴식은 여기까지 하지.”
모르타르라는 뜻밖의 영웅을 얻어서 잠깐 시간을 냈지만 여기까지였다.
타이온 백작가도 끝났으니 이제는 왕국 정복까지 단 한 걸음만 남겨둔 상태였다.
더는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각자 돌아가서 마지막으로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도록.”
다니엘과 암살자 출신 기사들이 가져온 정보를 바탕으로 북부 공략에 나설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