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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11화 (11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1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11화

111화

* * *

협회는 현재 두 개의 파벌로 나눠진 상태였다.

아인을 인정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급진파와 원칙에 따르고 아인을 제명해야 한다는 보수파였다.

두 파벌의 대립은 점차 아인을 지지하는 급진파 쪽으로 힘이 실리고 있었다.

균형이 깨진 결정적인 계기는 말릭과의 싸움이었다.

그 강력한 마족은 협회의 총력을 퍼붓고도 쉽게 어찌할 수 없는 전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그런 말릭을 아인이 또다시 잡아냈다.

휘하의 기사인 빅터의 공이 컸지만 결국 그것 역시 귀족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협회에서는 이를 아인의 공으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마족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까지 알아냈으니 원로들도 이제는 아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세의 영웅이 될 자질을 지닌 건 분명해.”

그만한 마법 실력과 자신을 따르는 실력자들.

누가 보아도 이제 아인이 왕국을 통일하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까지는 소문과 보고 등 간접적으로만 정보를 얻어야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확실했다.

그러자 원로들은 고심에 빠졌다.

그 왕이 될 인물인 아인이 지금 마법사 협회 소속이다.

플레턴의 제자이며 계속해서 협회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어쩌면 이 기회에 마법사 협회도 지긋지긋하게 귀족들에게 눈치 보던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롭게 부흥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이러한 권력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는 원로는 많지 않았다.

예전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원칙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놓치기 아까운 기회라는 건 분명했다.

게다가 플레턴의 설득도 효과적이었다.

아무리 협회에서 집중적으로 나서도 마족에 대한 단서조차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오차드에 대한 조사는 결국 제대로 된 소득을 내지 못한 채 끝났고, 말릭의 경우에도 아인이 모든 정보를 물어왔다.

마족을 무찌르려면 권력자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인만큼 적당한 상대는 없었고.

“다들 정신 차리시오!”

물론 반발 역시 컸다.

벨로스를 주축으로 한 보수파는 이대로 협회가 중립을 어기는 것을 우려했다.

원래 협회가 추구했던 정신을 상실하고 권력 집단으로 변모할 거라며 그래서는 귀족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족을 어떻게 상대할 거냐는 물음에 대해서 보수파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기껏 협회에서 작정하고 준비한 회심의 마법은 그 첫선을 보인 자리에서 바로 삐걱거렸다.

말릭이라는 마족이 워낙 표준을 상회하긴 했지만, 결국 그 마족은 아인과 기사단에게 죽었다.

협회가 다소 위협적인 힘을 가진 건 사실이나 아인보다는 아래라는 게 증명된 것이다.

그런 아인이 협회가 계속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 젊은 마법사들의 이탈이 심각하오.”

한 원로가 협회에서 나가 아인을 찾아간 마법사들의 명단을 꺼냈다.

한두 장도 아니고 제법 두께가 상당하다고 느껴지는 숫자였다.

물론 이들은 협회에서 그리 재능이 높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원로의 제자나 지부장의 제자만 하더라도 귀족 밑으로 보내는 일은 잘 없었으니까.

허가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귀족 밑에 투신하는 것부터 그들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없이 협회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네패스 백작 휘하의 마법사들이 그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

협회에서 마법사들을 붙잡아둘 수 있는 건 지식을 독점하기 때문이었다.

마법사가 마법을 배우려면 스승과 마법서 모두 필요했는데 그 두 가지 모두 제공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협회뿐이었다.

그런데 그 당연했던 사실에 금이 갔다.

황금십자회를 흡수한 아인이 휘하 마법사들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협회는 여기에 항의할 수 없었다.

지식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간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은 아인의 제명을 놓고 다투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귀족이 하겠다는 걸 우리가 함부로 관여할 수는 없지. 거기에 간섭하면 상대를 협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꼴이고.”

급진파로서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어차피 아인도 협회 마법사고 배우는 쪽도 협회 마법사다.

비전 마법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 마법은 원래부터 배우는 데 제한이 없었다.

문제는 보수파.

보수파로서는 아인에게 항의한다는 것 자체가 그를 인정하는 게 되어버리는 외통수였다.

그걸 항의하면 제명을 이야기하는 게 모순이 되어버린다.

“설마 진짜 마법사를 개인적으로 육성할 생각일까?”

“그게 쉽겠나? 본인이야 천재니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마법사들은 아니야. 게다가 네패스 백작한테 간 녀석들은 솔직히 재능이 좀 떨어지는 아이들이고.”

원로들은 아인이 마법사를 육성하는 상황 자체를 보수파에 대한 항의로 받아들였다.

자꾸 그를 받아주지 않으면 마법사 협회를 견제하겠다는 일종의 위협으로 느낀 것이다.

실제로 당장 아인 휘하의 마법사의 숫자만 100명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이 한꺼번에 이탈한다면 협회도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공격적으로 마법사를 빼가기 시작한다면 지부장이나 직계 제자들이라고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실제로 남부 지부장인 가이트는 급진파이기도 했고.

“어쨌든 외면하기에는 위협적이라는 건 분명하지.”

아인의 이 항의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협회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답을 준비해야 했다.

만약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젊은 마법사들의 이탈이 심화되고 협회의 성장 동력이 꺾이게 될지도 몰랐다.

게다가 아인이 협회를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만약 귀족들이나 상인들의 협회에 대한 지원을 끊게 만든다면?’

이전이라면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인은 크레시안 왕국의 통일을 앞두고 있는 몸이다.

왕이 될지도 모를 사람이 그 거대한 권력으로 압박하면 귀족이고 상인이고 눈 밖에 나기 싫어서 납작 엎드릴 것이다.

그러면 협회는 진짜 끝이었다.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과거라면 대영주파가 왕실을 견제하고 있었기에 둘 중 하나가 협회를 공격하면 반대쪽에 붙을 수 있었다.

중립이라는 건 그런 줄타기를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내전 이후로 크레시안 왕국에 남은 권력은 모두 아인에게로 모인 상태였다.

‘플레턴 원로의 예측이 맞았어.’

내전을 통일할 패왕의 앞에서 마법사 협회는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억눌리지 않으려면 직접 상대에 맞서야 하는데 그것도 협회 방침에는 맞지 않았다.

게다가 왕을 적으로 돌리면 귀족들의 집중포화를 당할 것이다.

아무리 협회의 저력이 대단하더라도 거기에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침묵을 선택한다면 지금처럼 압박에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다.

그러니 고개를 숙여야 한다.

살아남아야만 협회의 정신이든 역사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는 선택해야 하오.”

어느 원로가 확실하게 결론을 내렸다.

더는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언제까지 말이오?”

“아마 열흘 뒤까지가 최대 유예 기간이겠지.”

그때 플레턴이 입을 열었다.

최대 유예 기간이란 말에 원로들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뭐라 들은 게 있소?”

“초청장을 받았지. 왕궁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군. 그게 열흘 뒤다.”

“왜 그날까지가 유예 기간이라는 것이요?”

“서부, 남부, 중부에 흩어져 있던 모든 군대가 경계를 넘어 중부로 올라온다는군.”

플레턴은 최근에 받은 보고를 알려주었다.

그에 원로들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 그건 북부 연합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겠소? 그럼 아직 시간은…….”

“하지만 중부에 남은 세력이라고는 우리 마법사 협회와 타이온 백작가뿐이지.”

플레턴의 말에 원로들의 눈동자가 떨렸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중부에 다른 세력이라고 해봐야 황금십자회는 이미 아인을 따르고 있었고 남은 건 타이온 백작가의 잔당뿐.

잔당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규모가 있지만 아인이 군대를 이끌고 온다면 금방 짓밟힐 수준에 불과했다.

설마 그냥 지나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북부 연합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 구태여 후방에 위험 요소를 남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이다. 물론 답변을 위해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까지. 설마 참가 안 하지는 않겠지?”

아무리 중립을 말하더라도 귀족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종종 초청받은 행사에는 참가하는 편이었다.

하물며 왕이 될 것이 확실한 아인의 결혼식은 협회로서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아인이 적극적으로 답을 재촉하는 지금 불참 자체가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진짜 거절할 생각이라도 협회에서는 무조건 참석해야만 했다.

“벨로스, 너도 고집만 피우지 말고 제대로 원로답게 굴어야 할 때다.”

“‘원로답게’라고?”

“싫다면 다른 해결책을 내놓아야지. 생떼만 써서야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플레턴의 말에 벨로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반박할 수 없었다.

아인은 그들을 확실하게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거기에 맞서자는 건 자살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힘 싸움을 해봐야 협회 쪽의 피해가 월등히 클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협회를 둘로 나누길 바라느냐?”

플레턴이 은근한 어조로 위협하자 벨로스는 식은땀을 흘렸다.

평상시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겠지만 실제로 지금은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협회가 쪼개지는 순간 보수파에는 미래가 없었다.

황금십자회에서 떨어져 나간 타이온 백작가의 잔당처럼.

“네 마음은 안다. 한 번이라도 전례를 남기는 것 자체가 지금껏 협회를 지켜온 정신을 욕보인다고 여기겠지. 차라리 최후를 받아들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말이다.”

플레턴은 회의장 바깥을 돌아보았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지금 원로들이 내릴 결과를 기다리며 노심초사하는 마법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본부뿐 아니라 각 지부, 바깥에 나가 있는 마법사들도 모두 원로들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맞섬이 가져올 나쁜 전례도 생각해라. 아예 두 번 다시 마법사 협회라는 단체가 설립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의 마법사 협회가 서기까지 무수한 마법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귀족들이 아니면서 귀족들도 쉬이 어찌할 수 없는 단체가 어찌 쉽게 만들어졌겠는가?

그런데 이 모든 걸 잃게 된다면 이후 세대의 마법사는 쇠퇴하거나 귀족의 아래에서만 육성될 것이다.

“원칙 하나를 잃는 건 아프지만 협회 역사를 잃는 것보다는 낫다.”

“궤변이다. 그렇게 하나를 내주면 다음에도 또 내주지 않으리라 어찌 장담할 수 있지?”

“원칙 하나를 내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걸로 나머지를 지키면 돼.”

플레턴은 이미 아인과 암묵적인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구체적인 조항을 의논한 것은 아니지만 아인도 협회를 어느 정도 존중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게 고개 숙인 협회에게 마땅한 보상을 해줄 것이다.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아인이 꾸준히 항복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휘하로 거두었던 과정 자체가 그러한 것이었으니까.

“하아아.”

벨로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죽어도 싫었다.

끝까지 반대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고집만 부릴 수는 없었다.

정말로 협회가 무너지게 두는 것 또한 문제였으니까.

‘애초에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인이 협회에 받아들여진 순간부터 사실 결과는 정해진 셈이었다.

협회는 내전에도 중립의 원칙을 지켰고 아인의 성장을 제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면 달아줬지.

그 결과 아인은 협회마저 집어삼킬 힘을 키워버렸으니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협회의 실책이었다.

“난 마지막까지 동의할 수 없소.”

“벨로스.”

“정 귀족에게 알랑거리고 싶다면 당신들만 그러시오.”

벨로스는 품속에서 협회의 증표를 꺼냈다.

상아로 만들어진 증표는 협회의 원로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걸 반납한다는 건 협회의 원로 자리를 그만두겠다는 의미였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플레턴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게 너의 선택이냐?”

“그래.”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어째서 벨로스는 원칙에 집착하는가?

물론 원로들이라면 젊은 마법사에 비해 협회의 원칙을 좀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건 당연했다.

그들이 원로가 되기 위해 겪어온 인내의 시간이 지금 누리는 혜택을 만들었으니.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원칙의 최대 피해자였던 네가 왜 그렇게 매달리는 건지.”

플레턴은 벨로스와 눈을 마주쳤다.

스승이 둘 중 더 뛰어나고 나이도 많았던 플레턴에게 비전 마법을 전수한 건 협회의 원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벨로스는 그 원칙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원칙의 도움을 받은 플레턴은 그 원칙을 버리는 길을 선택했고 원칙으로부터 버림받은 벨로스는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고 싶어 했다.

“그건 정당하지 않았어.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으니까. 몇 년만 있었더라도 내가 널 넘어섰을 거야.”

벨로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플레턴의 실력을 인정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성장 역시 매우 대단했으니까.

벨로스는 언제고 자신이 플레턴을 따라잡고, 결국에는 넘어서리라 믿었다.

“지금까지 넘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그 일로 스승님의 아래에서 나왔다. 혼자 따라잡느라 시간이 걸렸지. 조건이 동등하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떻게 대답할 거냐? 스승님에게 애초에 너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거라면?”

플레턴의 물음에 벨로스의 말문이 막혔다.

처음으로 벨로스가 갖고 있던 자신의 재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넌 그 뒤로 몇 년 동안 밖을 떠돌았지. 그래서 알지 못했을 거다. 스승님이 병으로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병이라고?”

“병상에서도 나에게 비전 마법을 전수하시는 데 급급하셨다. 그러고도 나는 스승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비전 마법을 완성하지 못했지.”

당시 벨로스보다 한참 앞서고 있던 플레턴이 그랬다면 벨로스가 제대로 비전 마법을 익혀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장례조차 다른 사제들에게 맡기고 비전 마법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관을 묘지에 묻기 전에야 겨우 완성했지. 미친 듯이 뛰쳐나가 매장을 중지시키고 관 뚜껑을 열어서 마법을 시현했다.”

플레턴은 두 눈을 감았다.

아직도 그때의 절박함이 생생했다.

스승의 장례식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제자에 대한 비난과 경멸을 뒤로한 채 그 장례마저 억지로 중지시켰다.

그때 자신을 믿고 따라준 사제들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매장 직전에 겨우 비전 마법을 완성한 걸 보여드릴 수 있었다.

“스승님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리 빨리 떠나셨는지. 조금만 더 살아계셨다면 두 눈으로 보실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했는지.”

플레턴은 언제나 스승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승을 원망했다.

죽음을 앞둔 스승으로부터 급하게 비전 마법을 전수받으며 플레턴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단언컨대 그때처럼 절박하고 괴로웠던 나날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스승만큼이나 플레턴 역시 수척해졌으니까.

어쩌면 스승보다 자신이 먼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구나. 너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모든 부담을 나에게 주고 떠나신 게. 그 결과 너와 내 사이가 이렇게 멀어져 버렸어.”

뜻밖의 진실에 벨로스는 숨통이 턱하고 막혀왔다.

다시 협회에 돌아왔을 때 이미 스승은 한참 전에 죽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 연세가 있었기에 벨로스는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넌 스승님의 무덤을 한 번도 찾지 않았지.”

“더는 내 스승이 아니니까. 그래서…….”

벨로스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한 번이라도 무덤을 찾았다면 쉽게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질문만 했더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마음에서 스승을 지웠던 벨로스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주는 거지?”

“네 치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네가 너에게 자신이 있듯이 나도 내 재능에 자신이 있었다. 어떤 사형제들보다도 내가 뛰어나다고 확신했지. 그래서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죽기 전의 스승도 자신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주변의 평가도 그러했고 플레턴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벨로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원로가 된 그를 마주하고서야 알았다.

벨로스 역시 진심으로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는걸.

“그러니 네가 원로 자리를 버리고서라도 굽히지 않는 걸 본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플레턴과 벨로스는 서로 오만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가 네 부족을 인정할 리 없다는 걸.”

이어지는 플레턴의 말에 벨로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듭 말하지만 난 아래가 아니야.”

“아직도 그 소리냐.”

플레턴은 한숨을 내쉬었다.

벨로스는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플레턴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아래라 여기고 있었다.

“겨우 갓 원로가 된 녀석이.”

“이게 진짜!”

벨로스는 마지막까지 분통을 터트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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