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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09화 (10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0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09화

109화

* * *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어째서인지 아무 이유도 없이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뭔가 실수를 저지른 부분이 있나 싶어서 서류도 다시 검토하고 시스템도 확인했지만 마땅히 짚이는 부분은 없었다.

“서부의 일로 신경이 예민해지신 듯합니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던 탈론은 그런 나를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확실히 남부 연합이나 파견한 기사단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지 신경 쓰이기는 했다.

게다가 이전부터 해온 일들의 피로가 누적된 상태기도 하고.

“듣고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마법형 영웅이라도 육체 능력이 어느 정도는 향상되지만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쉬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바쁘게 달려왔으니, 잠깐은 쉬어주는 게 맞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정리한 서류들을 행정 관료들에게 전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행정 관료들이 부럽게 쳐다보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기사단 생활은 어떤가? 종족이 달라서 적응에 불편한 점은 없던가?”

“모두 좋습니다. 아직도 신기하게 쳐다볼 때는 있지만 그런 시선이야 옛날부터 익숙합니다.”

탈론은 자신을 보는 시선을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병이었던 시절에 모습을 숨겼던 것도 어디까지나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고.

실제로 드래고니안이라는 희귀 종족이라고 해도 내 기사인 이상 누구도 탈론을 건드릴 수 없었다.

건드린다고 당할 수준도 아니었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가?”

내가 탈론에게 제시한 건 복수였다.

그리고 탈론은 그 복수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자신의 연인을 죽이고 달아났던 동족에게 복수를 성공한 순간 고향을 떠나 밖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탈론은 복수를 마치고 돌아가지 않고 약속대로 나를 찾아왔다.

게임에서는 원래 그런 설정이니까, 하고 넘기겠지만 이곳에서도 그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가끔 그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애타는 건 아닙니다. 전 원래 고향에서 나오고 싶어 했으니까요.”

“왜지?”

“이렇게 실력을 갈고닦았는데 써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탈론이 자신의 활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하긴, 그냥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다면 5티어에 오를 정도로 자신을 단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부까지 점령한다면 다음 목표는 북부가 될 거다.”

내 말에 탈론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드래고니안들의 마을은 북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숨어서 사는 만큼 내전에 휩쓸릴 가능성은 낮으나, 혹시 외부에 지인이 있다면 적으로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북부는 두 대영주를 중심으로 결성된 북부 연합이 내전을 평정한 상태였으니.

“혹시 신경 쓰이는 상대라도 있나?”

“동족이 아니라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 동족들은 내전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고요.”

“마이어드 후작가에 고용되었을 때 북부인과 함께했던 것으로 아는데.”

“바깥으로 나와 용병 일을 하다가 알게 된 동료였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죽었으니까요.”

탈론과 함께 활약한 학살자라 불리는 용병이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카이로스 백작과의 싸움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나로서는 매우 아쉬운 일이었다.

탈론의 평가에 의하면 3티어에서 상위권이거나 4티어일지도 모르니까.

“정 껄끄러운 상대라면 그 친구의 가족이나 지인 정도입니다.”

“정보가 있나?”

탈론은 나와 동등한 5티어 영웅이다.

실력에 따른 차등을 실현하는 나로서는 가장 우대해 줘야 할 상대.

그래서 세세한 부분에도 신경 쓰고 싶었다.

“자세히는 모르고 고향이 어디인지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됐어.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전까지 남부 연합에서는 게일 남작을 통해 정보를 얻어왔다.

그리고 그는 마이어드 후작가의 가신으로서 따지자면 마이어드 후작가의 정보망을 이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 독자적인 정보 조직을 구성한 상태였다.

그들의 실력을 테스트할 겸 학살자의 가족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 경이 고생 좀 해줘야겠군.’

아, 정정하자.

정보 조직이 아니라 정보 조직을 겸하는 암살단이다.

사방에서 사람을 모으다 보니까 정체를 숨긴 암살자가 병사나 기사로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암살자들도 같은 조직이 아닌 이상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영웅 정보를 볼 수 있는 나에게는 무의미했다.

당연하지만 기껏 들어온 인재를 내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암살자 출신을 모아서 새롭게 암살단을 만들었다.

물론 공식은 아니다.

귀족이고 영웅이라는 명성이 자자한 내가 대놓고 암살단을 운영할 수는 없으니까.

그들은 평상시에는 일반 기사로 위장하고 있다가 지령을 받았을 때만 활동한다.

‘곧 분리해야겠지만.’

암살단의 운신을 자유롭게 하려면 기사단에서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다니엘 같은 케이스가 이렇게 많이 나올 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의 보안에 대해 허술하게 한 감이 있었다.

지금 갑자기 다니엘을 중심으로 기사들을 빼낸다면 내가 암살단을 결성했다는 걸 눈치채는 기사가 나올 것이다.

그 경우 휘하 기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기사단을 나누기로 계획을 짠 거지만.’

몇 명만 따로 빼내면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기사단을 여럿으로 쪼개기로 했다.

단순히 눈속임을 위해서는 아니고 실제로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운영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로크 혼자서 500명에 이르는 기사들을 지휘할 수는 없으니까.

로크, 루시우스, 다니엘, 릴리아나 등 실력 있는 기사들을 중심으로 기사단을 나눌 것이다.

그러면 단장이 여럿 늘어나는 거지만 로크 입장에서도 썩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따라잡혀서 밀려나는 것보다는 받아들일 만할 테니까.

“그럼 편히 쉬십시오.”

침실에 도착하자 탈론은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홀로 방으로 들어서 곧장 침대에 몸을 눕혔다.

정말로 몸에 피로가 상당했는지 눕자마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몸이 먼저 축날지도 모르겠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점에서 쓸 만한 영약이 있는지를 찾아봤다.

그러나 온갖 다양한 아이템들이 구비된 상점에도 피로를 풀어줄 아이템은 잘 보이지 않았다.

‘피로, 기력, 활력…….’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두 번이나 상점 페이지를 확인했지만, 성과가 없자 한숨이 나왔다.

왜 이런 아이템은 안 넣어둔 걸까?

설마 타르타로스의 존재라면 육체적 피로 따위는 느끼지도 않는 초인이라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건 아니겠지.”

너무 과한 생각이다.

아무리 그래도 타르타로스의 존재도 살아있는 생명체들일 텐데.

“정말 아니겠지?”

생각해 보면 내가 본 타르타로스의 존재는 위니스가 유일했다.

그나마 알게 된 정보에 따르면 절대 군주는 지구인 출신이라고 하고.

그렇지만 이게 전부다.

타르타로스를 이루고 있는 중심 종족이 인간이라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었다.

이 세계에만 해도 드래고니안인 탈론처럼 여러 종족이 있는데.

타르타로스 같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조직에 인간만 있다면 오히려 그쪽이 이상하다.

“음…….”

거대한 괴수와 촉수가 달린 이상한 괴생명체가 득실거리는 광경을 상상하니 소름이 끼쳤다.

* * *

아인을 방으로 안내한 탈론은 홀로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이들이 있으면 간간이 눈인사하던 와중에 돌연 그의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탈론은 즉시 눈을 치켜뜨며 활시위를 당겼다.

끼리릭.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의 궤도에는 다니엘이 서 있었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겨눠진 활을 보고 멈칫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짓이지?”

“이쪽이 할 소리다. 대체 뭘 하다가 왔기에 그렇게 피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거지?”

탈론은 숙련된 경험과 드래고니안 특유의 감각으로 다니엘에게서 나는 피 냄새를 인지했다.

짐승의 것이 아닌 명백한 사람의 피 냄새였다.

“후각이 상당히 좋군. 냄새를 지우는 약을 썼는데도 알아차리다니.”

상황을 알아차린 다니엘은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안심해라. 그저 영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온 것뿐이니까.”

“명령?”

“그것까지 내가 설명해야 하나? 주제 넘는군.”

다니엘의 이야기에 탈론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일단 활을 거두었다.

단순히 피 냄새가 난다는 것만으로 추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탈론의 위치가 다니엘에 비해 높은 위치가 아니었다.

“이번에 마족 토벌에 큰 공을 세웠으니 그쪽도 금방 귀족 작위를 받겠지만 아직은 평기사에 불과하다는 걸 유념해 줬으면 좋겠군.”

“기사니까 피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영주님께 가는 걸 막는 거다.”

“할 말 없게 만드는군.”

다니엘은 약까지 썼기에 상당히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피를 묻힌 건 사실이었으니까.

다니엘은 귀찮은 티를 내며 대꾸했다.

“기사가 받을 명령이 뻔하지 않나?”

“세상에 어느 기사가 그렇게 소리 없이 다니는지 모르겠군.”

탈론은 다니엘의 걸음걸이를 지적했다.

다른 기사들과 달리 다니엘에게서는 걸을 때 기척이 전혀 나지 않았다.

실제로 탈론이 다니엘의 존재를 파악한 것은 어디까지나 냄새를 통해서였다.

일반인이라면 아무리 멀어도 금방 포착해 내는 청력이 다니엘만큼은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그 탓에 탈론은 다니엘이 암살자라는 걸 싸우는 모습을 보기 전에 알아차렸다.

“내 정체가 수상하면 영주님께 항의하지 그러나?”

다니엘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암살자라는 이유로 경계를 사는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당장 로크나 루시우스, 릴리아나도 자신의 정체 정도는 파악해 뒀을 테니까.

“암살자라는 걸 모르시진 않겠지.”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군.”

탈론의 말에 다니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모든 결정은 아인이 내릴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다니엘이 암살자라는 걸 알고도 기사로 거둔 것도 아인이었다.

거기에 다른 기사가 무슨 자격으로 참견할 수 있을까?

말한다고 해서 들어주지도 않을 텐데.

아인은 아랫사람에게 관대한 편이지만 자신의 권리까지 침해하는 걸 두고 볼 정도로 무르지는 않았다.

아인의 기사 중 가장 파격적인 언행을 가진 라이언조차 일단 지시는 누구보다 충실히 이행하는 것 역시 그런 성향을 알기 때문이었다.

“경은 영주님께 충성하나?”

하지만 탈론은 다니엘을 순순히 믿을 수 없었다.

“그리 오래 복무한 건 아니지만 기사단 선배로서 충성심을 의심받는 건 기분 나쁘군.”

“암살자에게 충성심이란 게 있나?”

“용병에게는 충성심이 있나?”

다니엘은 탈론의 말을 그대로 받아쳤다.

용병이나 암살자나 돈을 대가로 무력을 파는 것은 같다.

실제로 일부 용병들은 암살자와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기도 하고.

둘의 차이는 그저 양지냐 음지냐 정도였다.

“난 은혜를 입었다. 그걸 모두 갚기 전까지는 영주님을 따를 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탈론이 원수를 갚는 과정에서 아인의 도움을 받았다면 다니엘은 귀족이 된 것 자체가 큰 은혜였다.

제 부모조차 모르던 고아로 길거리를 떠돌다가 암살자가 된 막장 인생을 살아온 다니엘이었다.

그런 자신이 귀족이 되어 영지를 하사받는다는 건 본래라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 다른 기사들도 그렇겠지.”

아인은 실력만 된다면 상대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고 받아들이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보통은 어렸을 때부터 기사 훈련을 받아온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분명 밑바닥 인생도 존재했다.

“알고 있나? 다들 모르는 척 쉬쉬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기사단에는 농노 출신도 섞여 있다. 제 딴에는 숨기려고 해도 곁에서 보면 티가 나기 마련이지.”

다니엘의 말에 탈론은 깜짝 놀랐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받는다는 건 알지만 설마 농노까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농노가 기사가 될 정도의 실력을 키웠다는 부분에서 놀랐다.

“새삼스럽게.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거야 마법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니까. 기사와는 경우가 다르다.”

“기사의 재능도 후천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그러나 영주님이 아니고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란 건 분명하다.”

수긍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아인의 파격적인 기사 영입도 결국에는 내전이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사단에서 반발하거나 다른 귀족들이 항의했을 것이다.

기사의 임명은 영주의 고유 권한이지만 출신을 가리지 않고 마구 뽑는다면 분명 간섭하려는 영주가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아인도 상당히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이웃 영지와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

“난 그 행운을 제 발로 걷어찰 멍청이가 아니야. 그러니 영주님이 패배하고 가문이 망하지 않는 이상 충성심은 변하지 않을 거다.”

“망한다면?”

“그땐 재산을 갖고 튀어야지.”

다니엘의 숨김없는 진심에 탈론은 어이가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신뢰가 되었다.

아인이 패배하지 않는다면 다니엘의 충성심에 변화가 생길 리는 없다고.

하지만 영원히 승리하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때로는 패배도 겪고 어쩌면 다른 가문이 그러하듯 완전히 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니엘은 그러한 탈론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조언을 건넸다.

“패배를 먼저 두려워해서야 아무것도 못 하지. 기사라면 어떻게 영주님을 승리로 이끌지를 먼저 생각해라.”

탈론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니엘을 보았다.

자신보다 먼저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그 기간이 길지는 않는데 몹시 기사다운 상대였다.

정확히는 아인이 다니엘에게서 충성심을 끌어낸 쪽이겠지만 그조차 아인의 능력이라 볼 수 있었다.

‘그저 잘 대해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인이 많이 베풀어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두가 그를 따르는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아인이 쌓아온 드높은 명성과 업적들이 아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암살자마저 감화될 정도로.

‘하지만 위태롭다.’

언뜻 철옹성 같아 보이지만 아인이 한 번만 패배해도 분명 금이 가게 될 것이다.

아니, 그래도 쌓아온 게 있으니 한 번은 괜찮겠지만 연패가 일어난다면 그때부터 도미노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언제나 이기는 싸움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사의 역할이었다.

‘그 정도라면 은혜를 갚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지.’

탈론은 자신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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