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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104화 (10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0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04화

104화

* * *

병력의 체질 개선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어 갈 때쯤 나를 찾아온 방문객이 있었다.

카타리나라는 이름의 귀족 여성으로, 그녀는 여성임에도 한 가문을 이끄는 가주였다.

마법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타이온 백작의 지지를 받아 남동생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백작 각하의 소문이 안 들려오는 날이 없어요.”

“그렇습니까?”

난 그녀의 방문을 상당히 흥미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타이온 백작의 가신 중 한 사람으로서 나를 따르지 않고 황금십자회에서 나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어떤 소문인지 궁금하군요.”

“너무 많은걸요.”

카타리나는 몇 가지 예시를 들었다.

딱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관심 가질 만한 소문들.

그러나 딱히 내 흥미를 끄는 내용은 없었다.

카타리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대충 설명만 할 뿐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소문은 좀 무게가 다르죠.”

그때 카타리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무게?”

“엄밀히 말하면 소문이라기보다는 예측일까요? 백작 각하께서 이 왕국의 새로운 주인이 되신다는 내용인데.”

“흠.”

나는 남부 연합의 수장이지만 공식적으로 왕위를 노린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물론 남부 연합의 영주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외부에 선언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남부, 동부, 중부.

왕국의 다섯 개 지역 중에 세 곳을 점령한 세력의 수장이면 가장 왕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래서 소문의 진위라도 궁금한 겁니까?”

“진위라고 할 게 있나요? 백작 각하께서 바라신다면 이루어질 것이고 싫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카타리나는 내가 왕이 되는 게 내 마음에 달렸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나는 왕위를 노리기에 필요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귀족들과 강력한 군대, 개인의 명성과 레일리의 존재로 인한 정통성까지.

솔직히 지금 당장도 왕을 자칭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아직 서부와 북부가 남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라 생각하고 있기에 그러지 않을 뿐.

“날 너무 높이 평가하는군요.”

“정확하게 평가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이제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이야기가 겉돌고 있었다.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떻든 내가 야심이 있든 없든.

카타리나에게는 관심거리가 될지 모르나 나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이미 정해진 일에 불과했으니까.

“왕위에 오르려면 당연히 왕비도 필요하겠죠.”

“그래서요?”

“그 자리를 저에게 주세요.”

그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여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제게 약혼녀가 있다는 걸 아십니까?”

“물론이죠.”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내 물음에 카타리나는 상당히 당돌한 태도로 답했다.

“어떤 이유로 바이든 자작의 조카와 약혼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왕비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요.”

“직접 본 적도 없을 거면서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 나라에 저보다 더 어울리는 여자는 없을 테니까.”

카타리나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대영주도 아니고 고작 작은 가문을 이끄는 주제에 왜 이렇게까지 자신만만인지 오히려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있겠지요?”

“당연하죠.”

내 물음에 긍정한 카타리나는 품속에서 조그마한 열쇠 하나를 꺼내 들었다.

꽤 귀해 보이는 물건 같은데 어디의 열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피의 연회 이후로 왕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니요. 전혀 모르겠군요.”

중부에는 왕궁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친왕실파들은 타이온 백작에게 밀려났고, 백작은 왕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왕궁도 찾지 않았다.

“왕족이 없다고 해서 왕궁을 방치할 수는 없죠. 그래서 제가 왕궁을 잠깐 관리했는데, 그때 재미있는 걸 찾았지 뭐예요?”

“그게 이 열쇠입니까? 귀하게 생기기는 했군요. 열쇠로 열 수 있는 방에 보물이라도 있나 봅니다.”

왕궁 보물 창고의 열쇠라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저 열쇠가 그녀의 자신감의 근거라고 보기에는 빈약했다.

재물이 아직 남아있을지도 의문이고 있다고 해도 긴 전쟁으로 왕가가 쓴 물자가 상당할 테니까.

무엇보다 재물 좀 있다고 왕비 자리를 탐낸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이 열쇠는 국새가 보관된 금고의 열쇠거든요.”

국새.

크레시안 왕국의 왕이 대대로 사용해 왔을 도장이었다.

“국새라. 그게 어떻단 겁니까?”

그러나 이미 내전으로 쑥대밭이 된 나라에 국새가 크게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국새가 없으면 새로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아, 얼마든지 새로 만들면 된다는 그 표정.”

그런 내 생각이 표정에도 묻어났는지 카타리나가 바로 반응했다.

“틀린 생각이에요. 크레시안 왕국의 국새는 꽤 특별한 물건이라고요.”

“특별하다?”

“네. 건국 설화는 알고 계시죠?”

그녀의 물음에 미간이 좁혀졌다.

이 왕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내가 알 턱이 없으니까.

신성수니 뭐니 하는 나무와 관련되었다는 이야기도 얼마 전에 들었을 뿐이다.

내 반응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카타리나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어휴. 이래서 변방의 귀족이란.”

“남부 연합의 수장에게 도발을 하는 거라면 성공적이군요.”

진짜 변방의 귀족이었으면 그녀의 태도에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니었다.

애초에 이 왕국 사람도 아닌데 건국 설화를 알 턱이 있나?

지구에서 온 입장에서 그녀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건 아인에 대한 욕이지 나에 대한 욕은 아니었다.

“아, 미안해요. 그래도 왕국의 귀족이라면 국새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죠.”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로 봐서 국새라는 게 상당히 대단한 모양이기에 의문이 들었다.

만일 국새에 어떤 특별함이 있다면 레일리가 나에게 무언가를 말해 주지 않았을까?

아무리 중부의 귀족이라고 해도 국새에 대해 왕녀보다 더 잘 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국새의 비밀이라. 조금 흥미가 생기기는 하는군요.”

“그렇죠?”

카타리나는 신난 얼굴로 크레시안 왕국의 건국 설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초대 군주 발리언트 크레시안이 신성수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누가 봐도 헛소리가 분명한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줄 수는 없었다.

“핵심만 짧게 하시죠.”

짜증이 서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카타리나가 당황하며 내용을 줄였다.

“국새는 신성수로 만들어졌어요.”

“그래서요?”

“그 신성수는 이제 없고 국새는 제가 가졌어요. 이 국새가 없다면 크레시안 왕국이라는 이름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겠죠.”

국새를 가지고 나와 협상을 해보겠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기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작 국새 따위가 가지는 상징성은 나에게 별다른 가치가 없었다.

어차피 국가의 이름이 완전히 바뀌게 될 텐데.

“고작 그게 답니까?”

무슨 대단한 소리를 하려나 했더니.

결정적으로 레일리의 존재가 있는 이상 국새의 가치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왕실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그런 인물이 내 곁에 있는데 국새 따위가 무슨 대수가 될까?

“고작이라니요? 왕국민들에게 국새가 어떤 의미인데요. 대영주파인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왕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충성심은 꽤 높은 편이에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었다면 타이온 백작이 당신이 가져가도록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일찌감치 챙겼겠죠.”

내 반문에 카타리나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타이온 백작이 너무 허망하게 죽어서 그렇지 그의 정치력은 뛰어난 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인물이 국새를 직접 회수하지도 않고 심지어 다른 귀족에게 넘어가게 방치했다?

이건 타이온 백작 역시 국새가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소리다.

“그래서 국새가 필요 없으시다는 건가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확언을 해주자 카타리나는 모욕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나름 회심의 한 수라고 준비했을 국새가 사실은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무시당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로선 고작 그거 하나 믿고 왕비 자리를 달라고 찾아온 것이 어이없었지만.

‘시간만 낭비했군.’

아까운 시간을 축냈다.

그렇게 생각하고 축객령을 내리려는데 카타리나가 발악하듯이 따지고 들었다.

“하! 남부의 귀족들이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다른 지역의 귀족들도 백작 각하의 뜻에 동의할까요? 크레시안 왕가는 불명예스럽게 지워진 게 아니에요.”

그녀의 말대로 민중이나 귀족에게 크레시안 왕가는 절대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왕가가 무너지고 내전이 찾아오면서 크레시안 왕가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문제는 레일리의 존재로 해결될 문제에 불과했다.

“뭘 그럽니까. 충신들을 죄다 죽이고 멋대로 국새를 약탈한 귀족도 있는데.”

그녀를 비꼬는 이야기에 카타리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주먹을 움켜쥔 채 파르르 떨리는 손을 보자니 가소로웠다.

“용무가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다시 마법사들을 봐줘야 할 시간이었다.

마법사 협회의 장악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인지라 빠트릴 수 없었다.

내가 열성적으로 가르쳐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마법사들이 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을 테니까.

“아직 해야 할 업무가 한참 남아있거든요.”

“그럼 정말 바이든 자작의 조카라는 여자와 혼인하실 생각인가요?”

그런데 카타리나는 끈질겼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레일리와 정말 혼인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국새를 가졌고 한 가문을 이끄는 나에게 자격이 없는데, 그 여자에게는 자격이 있단 말인가요?”

거듭 물어오는 행동에 조금 짜증이 일었다.

헛된 망상을 품고 나를 귀찮게 한 것만으로도 곱게 보아주기 힘든 상대였다.

하물며 이 여자는 나를 따라온 것도 아니고 타이온 백작가의 가신으로서 남은 몸이다.

이렇게 독대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녀를 배려해 주었다.

이런 무례를 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충분합니다.”

“뭐라고요? 대체 그 여자가 뭔데요!”

“적어도 당신보다는 똑똑한 여자지.”

레일리는 내가 배신할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원망하기보다 나를 같은 편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냈다.

분수에 맞지 않게 높은 자리를 원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낼 줄 알았다.

눈앞의 머저리와는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로 수준이 다른 여자였다.

“하!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오늘 내 손을 잡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카타리나는 표독스럽게 나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서 문으로 향했다.

‘후회하게 될 거라고.’

그냥 감정에 못 이겨서 한 소리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쩌면 무언가를 준비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가 국새를 가진 건 사실일 테고 혹시나 그게 서부나 북부로 넘어가면 귀찮아지는 건 맞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국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일단 국새는 내가 손에 넣어서 없애든 새로 만들든 하는 게 훨씬 깔끔했다.

“다니엘 경.”

나직이 다니엘을 부르자 방 한쪽에 숨어있던 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독대처럼 보였겠지만, 동맹도 뭣도 아닌 상대를 뭘 믿고 방비 없이 만나겠는가?

방에는 처음부터 다니엘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모두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저 여자를 정리하고 국새를 회수하도록.”

“알겠습니다.”

* * *

“하! 기가 막혀서.”

카타리나는 성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 기회에 왕비가 될 수 있을 거라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

세상은 그녀에게 친절했다.

귀족으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마법적 재능을 주었고, 타이온 백작의 도움을 받아 동생을 밀어내고 가주 자리에 앉았다.

다만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고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귀족의 신분이 아무리 높아도 왕족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그러나 결국 그 왕족들은 모두 죽었고 카타리나는 그 비극마저도 자신을 위한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좋은 혼인 상대가 나타났다.

아인 네패스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마법사이자 내전의 혼란을 뚫고 힘을 키운 대영주였다.

그가 자신의 마법을 봐주었을 때 카타리나는 아인과 이어지는 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확신했다.

이 남자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왕비로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타이온 백작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국새는 그녀의 품에 있었고 이것을 통해 왕비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정작 아인은 그녀가 운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국새를 무시하고 흔한 귀족 영애에 불과한 상대와 혼인하겠다고 말했다.

카타리나로서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당신은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거야!’

마차를 타고 영지를 벗어나며 카타리나는 어떤 방식으로 복수를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영지를 벗어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덜컹!

갑자기 마차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야?”

카타리나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옆에 앉은 시녀에게 눈짓했다.

시녀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문을 열었다.

푸욱!

그 순간 날아든 화살이 단숨에 시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어?”

눈앞에서 나자빠지는 시녀의 모습에 카타리나는 허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전을 겪었지만 이렇듯 눈앞에서 직접 죽음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전쟁은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황금십자회의 동료들이 대신 해주었기에 그녀가 직접 전투에 나선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마저 앞에서 그녀를 보호해 줄 이들이 수두룩했기에 이렇듯 코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게 무슨…….”

마차 밖을 내다본 카타리나는 넋이 나가고 말았다.

시커먼 복색을 한 자들이 한둘도 아니고 무더기로 마차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야 할 기사들은 벌써 모두 죽어서 나자빠진 상태였다.

아마 기습으로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하고 살해당했으리라.

“가,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위기의 순간에 카타리나는 두려움을 애써 누른 채 상대를 위협했다.

그녀는 한 가문을 이끌 뿐 아니라 자신만의 영지를 가진 영주였다.

게다가 중부의 귀족들은 남부 연합과 동맹을 맺었으니 그녀를 해친다는 건 왕국에서 세 개 지역을 차지한 이들과 적대한다는 의미였다.

제정신이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

“이곳 바로 옆이 네패스 백작 각하께서 계시는 영지다! 이런 짓을 한다면 남부 연합에서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남부 연합은 나서지 않는다.”

다니엘은 기가 막혀서 대꾸했다.

원래 신속하게 처리해야 했지만, 저 머저리 귀족에게는 꼭 말해 주고 싶었다.

“뭐라고?”

“동맹 계약서를 제대로 안 봤군. 그건 남부 연합과 황금십자회의 계약이었지, 남부 연합과 중부 귀족의 계약이 아니었다. 황금십자회에서 나간 순간 동맹 대상에서 제외된단 말이다.”

카타리나는 당황했다.

그녀는 동맹 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과 남부 연합의 동맹이라고만 들었을 뿐.

“그렇다고 해도 영지 바로 옆에서 귀족이 죽으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을 텐데?”

“안심해라. 시신이 발견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단순한 실종이지.”

다니엘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무렴 그 정도도 대비하지 않고 움직였을까.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건지, 단순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어느 쪽이라도 미련한 귀족이었다.

‘하긴, 이게 보통이지.’

다니엘은 주변에 있는 이들을 돌아봤다.

아인은 그처럼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암살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모았다.

암살자들조차 서로 알아보기 힘든 게 보통임을 생각하면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다니엘이 칼을 빼 들고 다가오자 카타리나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마차 안에서 그녀가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아, 이건 챙겨야지.”

다니엘은 카타리나를 제압하기 전 그녀의 품에 손을 집어넣어 열쇠를 끄집어냈다.

자신이 열쇠를 감춘 장소를 정확히 짚어내는 모습에 카타리나의 눈이 부릅떠졌다.

다니엘을 보낸 흉수가 누구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 남자가 나를…….”

“그럼 지금부터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 잘 알 거야.”

다니엘의 눈동자가 서슬 퍼렇게 빛났다.

“국새는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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