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103화 (10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0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03화

103화

* * *

며칠 뒤, 릴리아나와 티아라가 복귀했다.

레일리의 마이어드 후작가 장악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게, 새로운 문제가 따라왔다.

현재 중부의 황금십자회는 친왕실파와 오래 맞서온 이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균형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남부 연합은 모두 레일리의 편이었고 황금십자회는 새롭게 수장이 된 내 뜻을 거부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리고 레일리는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왕족일 뿐 그녀가 크레시안 왕국을 재건하려는 건 아니었다.

결국 이 왕국을 손에 넣을 군주는 나였으니까.

‘그러니 설득이 어렵지는 않겠지.’

중부마저 넘어온 이상 레일리의 존재를 드러내는 게 더는 부담되지 않았다.

북부 연합이나 서부의 전력으로는 지금의 우리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 이미 나왔기 때문이다.

설령 두 지역이 힘을 합친다고 해도 말이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슬슬 혼인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됐는데.’

보통의 경우라면 약혼식까지 한 상황에 굳이 혼인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전이라는 혼란 속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죽으면 다음 연합의 수장은 누가 될 것인가?

레일리의 왕녀라는 신분은 분명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약혼 관계라는 이유로 그녀가 내 기사나 영지를 가질 수는 없으니까.

이를 위해서는 정식으로 혼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내가 죽는 경우를 대비하는 게 유쾌한 건 아니지만 후계자가 없어서 말년에 고생한 마이어드 후작의 사례를 떠올리면 영주들이 나를 재촉할 건 예정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릴리아나가 복귀하자마자 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왔다.

“남부 연합의 영주들이 왕녀 저하께 혼인을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하는 모양입니다.”

익히 예상할 수 있던 일이다.

최근 남부 연합의 영주들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사락.

옆에서 업무를 보던 행정 관료가 익숙한 손길로 내 옆에 쌓인 편지들을 치웠다.

중부의 귀족들이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며 보내온 여러 귀족 영애들의 소개장이었다.

엄연히 약혼녀가 있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함을 보여준 것이다.

“과연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릴리아나가 흥미로운 눈으로 편지들을 보았다.

“소문이라고?”

“네. 영주님께서 마족을 물리친 영웅적인 활약에 중부의 귀족 영애들이 가슴앓이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그런 소문까지 났나?”

가슴앓이한다는 건 헛소리다.

내가 직접 얼굴을 본 귀족 영애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마저 대화를 제대로 나눈 상대는 없다.

실제로 나에게 편지를 보내온 이들 중에서 내가 얼굴을 아는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런데도 이런 소문이 난 것은 결국 크레시안 왕국을 점령해 가는 내 옆자리가 그만큼 탐난다는 의미였다.

‘레일리의 정체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왕녀이자 마이어드 후작가의 후계자라는 신분과 바이든 자작의 조카라는 신분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전자의 경우에는 현재 왕국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여인이자 대영주라는 의미가 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냥 남부 어느 영주의 조카에 불과하다.

그러니 부담 없이 찔러보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실제로 혼인을 하는 것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도 끝나면 다행이지만.’

어쩌면 혼인으로도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이든 자작의 사례가 있듯이 첩으로라도 보내려는 귀족이 전혀 없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설마 편지를 그냥 버리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나.”

릴리아나는 편지를 모조리 모아 치우는 것에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이는 그녀의 착각이었다.

내가 중부를 우호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훌륭한 신랑감이라는 점도 한몫하고 있으니까.

결혼 적령기에 이른 귀족 영애를 둔 이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를 살갑게 대해주는 것이다.

이용하기 딱 좋은 상황인지라 그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전부 성실하게 답변해 주고 있었다.

단 그 답을 하는 게 내가 아닐 뿐.

쓱쓱.

편지를 거두어간 관료가 익숙하게 펜에 잉크를 묻히고 각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한 장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일일이 답변을 하려면 상당히 귀찮은 데다 시간도 부족하기에 작문 능력이 좋은 관료에게 대필을 시킨 것이다.

“세상에…….”

릴리아나는 대필의 현장을 목격하고는 아까보다 더 놀랐다.

“저래도 되는 겁니까?”

“내용은 확인하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편지는 모두 직접 읽어보고 관료가 대필한 답장의 내용까지 외우고 있었다.

그러니 직접 쓰지만 않을 뿐 제대로 편지를 주고받는 건 맞다.

“그래도 혹시 알려지면…….”

릴리아나는 귀족 영애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며 본 적도 없을 이들을 걱정했다.

하지만 약혼녀의 자리를 빼앗고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이들이 고작 이런 일로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제는 이 사실이 들켜서 괜한 구설수가 생기는 건데, 어차피 남부 연합의 영주들이 혼인을 서두를 걸 예상하고 대비했으니 들킬 확률은 낮았다.

알아차린다고 해서 이걸 따지기도 어려울 거고.

빨리 답장하기 위해 대필만 시키고 내용은 내가 생각했다고 하면 그쪽도 트집 잡긴 힘들다.

그걸 위해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다.

“내 걱정보다 릴리아나 경 본인 걱정을 먼저 하는 게 어떤가?”

“제 걱정이라니요?”

“다른 기사들의 실력이 크게 올랐거든.”

탈론은 5티어의 영웅.

로크와 루시우스, 다니엘도 4티어로 올라갔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릴리아나라고 해도 티어 사이의 격차를 생각하면 이를 따라잡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런 내 이야기에 릴리아나는 오히려 반기는 기색이었다.

자신이 뒤로 밀렸다는 것에 그녀는 전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럼 바로 따라잡겠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으니까.

재능을 자각하고 자신감을 가진 릴리아나는 오히려 자신이 따라잡을 상대가 생긴 것을 기뻐했다.

이는 그녀가 남에게서 배우는 능력이 특히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혼자 수련할 경우 릴리아나는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나에게 오기 전까지 1티어에도 닿지 못했으니까.

‘어떤 성과를 보여줄지 기대되기는 하네.’

내가 바꾼 훈련 방식과 시합에 제일 잘 맞는 인물은 릴리아나였다.

최대한 실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빅터 같은 케이스도 유도하기는 했지만 역시 훈련이 실전과 완전히 같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목숨이 위협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차이가 컸다.

‘그건 억지로 하게 만들 수도 없고.’

상대를 죽여도 좋다는 말을 하면 기사들은 오히려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훈련에서 동료를 죽일 수준의 공격을 날리지는 않으니까.

내가 치유 마법을 쓸 수 있어도 즉사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기사들의 훈련을 항상 곁에서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대하도록 하지.”

“실망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릴리아나는 위풍당당하게 연병장으로 향했다.

* * *

연병장을 돌아다니며 상대를 찾던 릴리아나에게 의외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기사가 다른 기사들 여럿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리 실력 있는 기사라도 상대를 둘 이상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쪽에서 동시에 들어오는 공격을 하나의 무기로 대응하는 건 매우 어려웠으니까.

그렇기에 혼자 여럿을 상대하려면 정말로 큰 격차가 있어야 했다.

‘누구지?’

릴리아나가 알기로 그러한 실력자는 기사단 내에서도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는 그녀가 알고 있는 실력자가 아니었다.

‘빅터 경?’

뜻밖의 얼굴에 릴리아나는 당황했다.

빅터의 실력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인의 밑으로 들어오던 당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겨뤘던 상대.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기에 똑똑히 기억했다.

“어떻게?”

그런데 눈앞의 빅터는 그녀의 기억에 남아있는 빅터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기사로서 정석이라고 할 만한 검술이지만 매우 빠르고 강했다.

덕분에 같은 검술을 쓰는 이들은 물론이고 변칙적인 검술이나 혹은 다른 무기를 쓰는 자들도 대응을 못 하고 있었다.

체계적인 검술을 배운 기사의 특징은 밸런스가 좋다는 것이고 그건 마땅한 약점이 없다는 의미니까.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는 이런 유형의 검술이 특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오! 릴리아나 경이 돌아왔군.”

릴리아나를 알아본 기사들은 그녀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얼마 전 자리를 털고 일어난 빅터에 의해서 나름 실력에 자신감을 가졌던 기사들이 연달아서 패배를 겪고 있었다.

그렇지만 릴리아나에게도 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을 모르는 기사는 없으니까.

그 때문에 기사단 내에서 유일한 여성임에도 그녀의 지위에 딱히 불만을 가진 기사는 없었다.

정확히는 불만을 말하는 순간 릴리아나에게 당해버렸다.

실제로 어느 기사가 릴리아나에게 왜 여자가 있냐며 재수 없다는 말을 했다가 처참하게 당한 전적이 있었고.

“릴리아나 경?”

빅터 또한 릴리아나의 등장에 크게 반응했다.

빅터가 처음으로 재능의 한계를 느끼게 했던 거대한 벽.

자신의 약함을 분하게 만들었던 상대.

빅터는 그런 릴리아나를 다시 마주한 것에 묘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상대와는 다르다.’

긴장 혹은 두려움.

그러나 내심 호승심이 들기도 했다.

마냥 뒤처지기만 했던 자신이 과연 얼마나 그녀를 따라잡았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대련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받아들이죠.”

릴리아나는 빅터의 대련 신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도 달라진 빅터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이 처음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뒀을 당시의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거 같았기에.

그렇게 두 젊은 기사의 검이 맞부딪쳤다.

휘릭!

릴리아나는 검을 흘려내면서 단숨에 파고들었다.

한 박자 빠르게 이어진 공격은 무척이나 치명적이었다.

상대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으니.

챙!

그러나 빅터는 이를 예상하고 가볍게 막아냈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릴리아나는 단 한 번의 공격조차 절대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상대가 검을 맞대는 걸 힘 싸움을 한다고 착각해서 마주 힘을 주는 순간, 오히려 상대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단번에 급소를 찌르는 게 그녀의 특기였다.

직접 검을 맞댄 횟수는 많지 않으나 몇 번이나 그녀의 대련을 보며 파악해 둔 사실이었다.

채채챙!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번의 공방이 오갔다.

빅터는 그 세 번의 공방이 오가는 동안 두 걸음을 물러나야 했다.

신체적인 능력으로 릴리아나에게 뒤처지는 건 아니지만 역시 검술에 대한 깊이가 전혀 달랐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능이다!’

최근의 급격한 성장이 아니었다면 두 번째나 세 번째 공격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라이언의 움직임마저 훤히 꿰뚫어 봤으나 릴리아나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검술이 정교했다.

최적의 움직임과 궤도로 휘두르기에 눈에 보이는 속도 이상으로 대처하기 까다로웠다.

쩡!

빅터는 검으로는 맞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방패를 들어 릴리아나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러나 곧장 반격을 개시하려는 순간 릴리아나는 자신을 밀쳐내는 힘을 역이용해 몸을 회전시키며 일격을 날렸다.

이를 본 빅터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균형을 잃기는커녕 밀려나는 힘마저 자유롭게 이용할 정도로 그녀의 감각은 천부적이었다.

이래서야 그녀보다 월등히 힘이 강한 상대라도 도리어 그 힘을 이용당할 뿐이다.

타악!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려 범위에서 벗어난 빅터는 어느새 자신이 연병장 끝까지 몰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역시 강해.’

그러나 이렇게 밀려날 때까지 버틴 것만 해도 빅터는 자신이 분명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릴리아나도 밀려날지언정 어떻게든 피해는 받지 않고 버티는 빅터의 단단함에 내심 까다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빠르게 승부를 보는 건 실패했네.’

릴리아나는 여성이라는 신체적 한계로 체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동급의 기사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 때문에 릴리아나는 장기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가 방심했을 때를 노려 승부수를 거는 게 그녀의 특기였고 잘만 하면 동급의 실력자라도 일격에 목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방패로 자신을 가리고 계속 물러나며 시간을 질질 끈다면 릴리아나로서도 공격하기 까다로웠다.

그녀에게 대응할 정도로 뛰어난 기사가 몇 없어서 잘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릴리아나는 방어력이 좋은 상대와 상성이 좋지 않았기에.

기사단에서 거기에 해당하는 상대는 지금까지 루시우스가 유일했는데, 거기에 빅터가 추가된 것이다.

“오오. 잘 버티는데?”

애초에 빅터가 이기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동료 기사들은 이만큼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빅터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성장했다는 걸 알았어도 결국 시간을 끌었을 뿐 승기가 자신에게 넘어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연병장 끝까지 몰린 이상 이전처럼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 한다.’

빅터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릴리아나도 빅터의 생각을 읽었다.

저기까지 몰린 이상 이제 피할 공간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승부를 보려고 할 게 당연했다.

훅!

그 순간 빅터는 릴리아나의 안면을 향해 방패를 내질렀다.

머리를 스쳐 가는 묵직한 방패의 무게감에 릴리아나는 살짝 소름이 끼쳤다.

만약 못 피했으면 꽤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방패를 던져?’

기사의 전투 방법 중에 방패를 무기로 쓰는 경우는 많지만 보통 힘으로 상대를 누르는 방식이지 이렇게 던지는 일은 흔치 않았다.

설령 눈앞의 적을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전장이라면 적들이 여럿일 테니 결국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련에서라면 충분히 유효했다.

눈앞의 한 명만 어찌하면 되는 것이니까.

타악!

릴리아나가 잠시 휘청이는 틈을 타서 빅터는 그녀에게 달려들며 검을 내찔렀다.

그러나 이는 속임수.

릴리아나가 이것마저 막거나 피할 것을 예상한 빅터는 검을 놓아버리고 주먹을 선택했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체격을 믿고 그녀에게 무모하게 덤비는 기사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릴리아나는 검을 피함과 동시에 작은 키를 이용해 재빨리 하단을 파고들었다.

콰앙!

다음 순간 릴리아나는 덤벼드는 빅터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메다꽂아 버렸다.

빅터는 이런 릴리아나의 대응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상대의 힘뿐 아니라 자신의 작은 체구마저 이용한다는 건가.’

검술에만 천재인 줄 알았는데 릴리아나는 자신이 대응할 수 없는 상황까지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상태였다.

아마 로크나 루시우스 등의 동급의 강자들과 겨루면서 이런 경우를 겪어봤거나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승리에도 불구하고 릴리아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완벽하게 파고들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빅터가 팔꿈치를 내리찍어 그녀의 어깨를 때렸다.

견갑이 있어서 멀쩡했지, 하마터면 어깨가 빠지며 힘을 제대로 싣지 못할 뻔했다.

그럼 빅터가 일어나서 반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어나시죠.”

릴리아나는 빅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훌륭한 대련에 만족스러웠다.

“감사합니다.”

빅터는 내밀어진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이길 수는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여기까지 쫓아간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것은 더 노력하는 수밖에.

“대단한 기술이었습니다.”

“경이야말로 훌륭했습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대련은 오랜만입니다.”

두 기사가 서로의 대련을 평가하며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을 때 라이언은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두 젊은 남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을 때다.”

그래서 그런지 문득 옆구리가 시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