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100화 (100/250)

VVIP 영주님의 품격 10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100화

100화

“아래에서 말입니까?”

바닥에서 마나가 솟는다는 말에 조금 의아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 행성이 뭔가 특별하기에 같은 인류가 사는 행성인데도 마법이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

반대로 지구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마법이 존재하지 않을 테고.

“아주 깊은 장소라서 누구도 그 아래를 파헤치지는 못했지. 하지만 땅 깊은 곳에 마나가 시작되는 장소가 대륙 곳곳에 있다.”

“신성수는 그런 마나가 풍부한 장소에서 자라나지.”

플레턴의 설명을 자크론이 이어받았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이번 일과 관련이 있습니까?”

“꽤나 깊다. 지금 그것 때문에 협회에 난리가 났으니까.”

플레턴의 어조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아무래도 가벼운 내용은 아닌 모양이다.

“전 대륙의 왕가가 가진 공통점이 뭔지 아느냐? 건국 설화에 신성수가 한 번은 꼭 나온다는 것이다.”

“왕가 말입니까?”

여기서 갑자기 왜 왕가가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족과 신성수에 대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설화들을 종합해 보면 형태는 달라도 각 국가를 다스리던 왕가에는 신성수의 축복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새를 그 위에 지었다는 건 신성수를 베었다는 것 아닙니까?”

특별한 힘이 진짜로 있다면 그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했을 리 없다.

내 지적에 플레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 주었다.

“그야 지금까지는 그저 전설로 취급되었으니까. 누구도 그 전설을 진짜라 믿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다르단 말씀이군요.”

“그 털복숭이 마족이 부활하거나 요새를 움직인 건 모두 땅에서 나오는 마나를 응축해서 한 일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원로 100명을 동원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지.”

플레턴은 마족이 어디서 지식을 얻어 그러한 게 가능했는지 의문을 표했다.

바닥에서 마나가 나온다는 건 모두 알았지만, 그것을 직접 활용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신성수 자체가 워낙 크고 단단해서 베어내는 게 쉽지 않고 왕가의 건국 설화에 나오는 만큼 보통은 건들지 않기 때문이다.

크레시안 왕국에서 신성수를 베고 요새를 지은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었다.

“신성수를 베어서 길을 트고 요새를 건설해서 외부의 시선을 가렸다. 이겁니까?”

“그래.”

“하지만 우연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신성수를 베는 일은 틀림없이 왕가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이다.

메디치 후작 정도의 인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메디치 후작이 당시에도 마족이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족들이 신성수가 있던 장소에서 나오는 마나를 쓸 방법을 알아냈다는 거지.”

“그건 확실히 큰일이군.”

플레턴의 말에 자크론도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서 나오는 마나가 어느 정도인지 아느냐? 그리고 그런 장소들을 여럿 독점한다면 얼마나 되는 마나를 모을 수 있을지도 아느냐?”

“모릅니다.”

“장담하는데 한 곳만 해도 이 왕국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이 쓸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마나를 매해 모을 수 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가 그런 곳들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로 채워져 있을 테니까.

얼마나 긴 시간에 걸쳐서 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나오는 양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럼 만약 마족이 그 장소들을 의도적으로 노린다면 어떻게 됩니까?”

“다룰 수만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해지지. 마나의 제한 없이 무한하게 마법을 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절로 입이 벌어졌다.

마나 무한이라니.

사기도 그런 사기가 없다.

마법사가 자신의 전력을 아낌없이 퍼부을 수 있다면.

하물며 그 출력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마족이라면 상대가 몇 명이라도 상관없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적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런 지식을 얻었는지 모르겠구나.”

플레턴은 말릭이 밀실에 설치해 둔 수식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협회에서도 어떻게 작동되는지 눈으로 본 결과만 그럭저럭 파악할 뿐 기반 지식과 원리에 대해서는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높은 수준이다. 어디서 그런 지식이 나왔는지 모를 노릇이야.”

플레턴의 말에 난 가이스트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범차원적 세력인 타르타로스를 상대로 멋대로 일을 진행하는 걸 보면 거기도 만만찮은 세력일 것이다.

아마 그들이 마족들에게 가르친 게 아닐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처럼 직접적으로 힘을 준 게 아니라 지식을 전수했던 거라면 분명 파고들 틈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어떻게 막아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신성수가 있는 장소가 한두 곳이 아닌 모양인 데다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타국에 있다.

국가들의 상태가 정상적이라면 마족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신성수를 보호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지금 각 국가들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족들이 신성수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혹시 사교도들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사교도란 말에 난 미간을 찡그렸다.

이 세계에서는 낯선 단어지만 지구에서는 자주 사교도란 단어를 접할 수 있었다.

절대군주 게임에서 등장하는 상대였으니까.

내전에서 서로의 영토를 정복하는 과정에 느닷없이 왕국들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집단이 있다며 등장했었다.

당시에만 해도 세계관의 일부이자 그저 영토 정복만 하는 것에 질리지 않도록 넣은 세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마족들과 무슨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살아 있는 이를 제물로 쓰는 계통의 마법은 모두 사교도 놈들에게서 비롯되었으니까.”

“그저 흉내 낸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흉내는커녕 어지간한 사교도도 엄두를 내지 못할 수준이다. 그런 걸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지.”

육체가 죽자 제물을 새 육체로 바꿔서 부활하는 방식.

확실히 사교도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게임에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발휘하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사교도는 여러 국가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교도에 대해서 이를 가는 영웅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다른 국가들이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 역시 사교도의 발호 때문이었다.

다행히 크레시안 왕국에서는 사교도 세력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니 피의 연회 자체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렇군. 당시에는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흘러가는 상황이 공교로워.”

플레턴이 피의 연회에 대해서 의구심을 드러냈고 자크론이 이에 긍정했다.

마법사 협회에서도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저 승리로 끝난 줄 알았던 마족과의 전쟁이 사실은 아직 제대로 끝맺음이 난 게 아니었다고.

어쩌면 앞으로가 진짜일 수도 있었다.

“그럼 협회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다른 국가의 사정을 살펴야겠다. 특히 신성수를 중점으로 하고 주변에 사교도가 발호한 곳들도 알아봐야겠지.”

“협회의 역량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마법사 협회는 강력한 세력이지만 그 영향력은 대부분 크레시안 왕국에 한정되어 있었다.

타국에도 지부가 몇 곳 정도는 있으나 흔치 않았다.

국외에 협회의 지부를 건설하는 건 여러모로 복잡한 문제가 많았으니까.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느냐?”

나에게 다른 방법을 묻는 플레턴의 어조가 미묘했다.

무언가 기대를 담은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지는 게 보였다.

“이 왕국 제가 먹어야겠습니다.”

그에 난 크레시안 왕국을 정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플레턴은 이에 대해서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그러한 야망을 가졌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대신 그것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를 물었다.

“옆의 국가들도 먹어야겠습니다.”

“흐음. 그리고?”

“이 대륙도 제가 먹어야겠습니다.”

마족들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내가 낸 답이었다.

이 대륙을 정복해서 모든 것을 내 발아래로 둔다면 각국을 뒤덮은 내전이라는 혼란도, 사교도의 존재도, 마족에 대한 것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허…….”

내 대답에 자크론이 혀를 내둘렀다.

“그런 방법으로 마족을 막겠다고?”

“겸사겸사입니다.”

내 목표는 처음부터 대륙을 점령하는 것이었지 마족 소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마족이 나에게 걸리적거린다면 그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저 그뿐이다.

“네 말대로 되기를 빌어주마.”

“협회도 먹어야겠습니다.”

플레턴이 마음대로 하라는 듯 관심을 보이지 않자 나는 협회를 거론했다.

한순간 플레턴의 눈가가 가늘게 휘어졌다.

“어디를?”

“협회 말입니다. 본부와 지부들 싹 다.”

나와 플레턴의 시선이 마주쳤다.

협회의 정신에서 명백하게 어긋나는 말이다.

정상이라면 여기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게 맞다.

그러나 플레턴은 그러지 않았다.

“말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지.”

암묵적인 긍정.

내 예상대로 플레턴은 처음부터 나를 계속해서 시험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몇 번이고 증명하겠습니다.”

“그래서 황금십자회에 들어간 거냐?”

플레턴이 추궁하듯 물었다.

그러나 문제 될 건 없었다.

“협회에 황금십자회에 들어가지 말란 조항은 없더군요. 이중 가입이 안 된다는 내용도 없었고.”

“그래도 실제로 행동에 옮긴 사람은 없지.”

애초에 마법사 협회와 황금십자회 사이의 문제는 신분에서 기인한다.

신분이 여럿인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둘 중 하나에 속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한쪽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다른 한쪽과는 사이가 나빠지고.

귀족이면서 협회에 들어가 있는 내가 특이한 경우였다.

“이제 한 명 있네요.”

내 대답에 플레턴의 입가가 씰룩였다.

“벨로스 녀석이 너를 제명시켜야 한다고 얼마나 난리인지 아느냐?”

“그분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혹시 부담스러우십니까?”

“건방진 소리 마라. 벨로스는 나한테 안 된다.”

내 말이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플레턴은 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두 원로 사이에는 모종의 감정이 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겠네요.”

“능글맞아졌구나. 이제는 협회에 아쉬울 게 없단 것이냐?”

“그럴 리가요. 정말로 탐나는데.”

이번에 협회가 보여준 전력은 비록 성과는 좋지 않았으나 엄청난 수준이란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마법사 협회가 어느 특정 세력에 편향되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만일 협회에서 대대적으로 내전에 개입했다면 나도 곤란해졌을 테니까.

물론 협회는 협회 나름대로 고충이 있으니 그러지 못한 것이지만.

“참 기가 막히지. 에이든 때와는 달라.”

내 당돌한 표현에 자크론이 웃으며 에이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플레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제자가 그런 구석이 있지.”

“너만 스승이냐? 나도 스승이다. 가르친 시간이나 마법의 가짓수는 내가 훨씬 많을걸?”

자크론이 스승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내자 플레턴의 눈가가 씰룩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플레턴에게서 가르침을 배운 시간은 계속 붙어 있는 자크론에 비해서는 한참 짧았다.

“널 잡은 마법이 내 비전이니 결국 내 덕이지.”

그러나 플레턴도 만만치 않았다.

자크론의 얼굴이 한순간 시뻘겋게 변했다.

과거 두 사람이 겨뤄서 자크론이 패배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내가 자크론을 꺾은 일까지 한꺼번에 꺼낸 셈이니까.

프라이드 강한 자크론으로서는 스승과 제자에게 나란히 당했으니 수치스러울 만했다.

“그걸 말했냐?”

“아닙니다.”

자크론을 스승으로 영입한 건 플레턴에게 알렸지만 내가 어떻게 자크론을 이겼는지 세세하게 설명한 적은 없었다.

“그때 근처에 나도 있었다.”

“뭣이!”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카이로스 백작가와 싸우고 있을 때 플레턴도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이건 나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내 제자에게 어떻게 지는지 두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봐두었지.”

“이이익!”

아무래도 이번 스승들의 싸움은 플레턴의 승리인 거 같았다.

* * *

“말릭까지 죽었군.”

상석에 자리한 이의 이야기에 마족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차드는 그럴 수 있었다.

오차드 역시 약한 마족은 아니지만 여기에 있는 마족들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마법사 협회에서 상대하지 못할 수준도 아니었고.

더구나 오차드는 가이스트로부터 받은 힘이 제대로 발아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말릭은 다르다.

게다가 말릭이 당한 장소에는 신성수와 같이 들키면 안 될 중요한 기밀이 함께 있었다.

“설마 말릭까지 당했다고?”

“도대체 누구에게? 그 네패스라는 놈인가?”

빛을 잃어버린 말릭의 보주까지 확인한 이들은 진심으로 동요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의 중요한 계획이나 행적에 대해 마법사 협회가 냄새를 맡았을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되면 준비하고 있는 계획 자체에 지장이 생길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나마 동요를 누른 마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 문제는 오차드의 죽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자칫 자신들의 정체를 발각당하고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협.

그렇다고 입막음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상대는 작은 세력도 아니고 마법사 협회와 대영주였다.

그것도 말릭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크레시안 왕국에서는 손을 뗀다.”

“역시 그런가.”

무리해서 일을 저지르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크레시안 왕국에서 마족들이 나타났다.

이번에 협회가 알게 된 정보가 공표된다면 주변 국가들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한 번 더 크레시안 왕국을 공격한다?

자신들이 켕기는 게 있다고 대륙에 광고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지금은 그저 후일을 기약해야 했다.

“처음부터 그만뒀어야 해. 괜히 말릭 녀석을 보내서 일만 망친 거잖아?”

“됐어. 그렇다고 아직 망가진 게 아니니까. 게다가 다른 국가들에까지 그 녀석들이 간섭하지는 못하겠지.”

마족들은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대륙에 있는 많은 국가 중에서 고작 한 곳을 실패했을 뿐이다.

자신들의 목적이 드러나는 건 위험했지만 어차피 이미 전 대륙은 내전으로 들끓고 있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을 경계한다고 싸움을 멈추지는 못할 것이다.

“…….”

상석에 앉은 이는 그런 마족들의 모습을 어두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 자리에서 차마 공개하지 못한 진짜 문제가 따로 있었다.

얼마 전 그의 앞으로 도착한 상자 하나.

거기에는 공포에 빠진 채 잘려 나간 누군가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문제는 그 잘린 머리의 정체.

‘가이스트에서 보내주던 협력자가 죽었다.’

그냥 죽은 것만 해도 문제인데 그 머리가 자신의 앞으로 왔다.

이는 가이스트를 발견한 또 다른 외부 세력이 보내오는 경고였다.

‘타르타로스라고 했던가.’

협력자에게 얼핏 들은 바 있던 세력의 이름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