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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99화 (9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9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99화

99화

* * *

“이런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위니스는 돌아가는 전황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파르티아 요새라는 거대한 장벽이나 숨겨진 밀실 같은 건 그녀의 시야에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덕분에 위니스는 이 싸움의 승패를 가른 게 아인의 기지나 협회의 전력이 아니라 한 기사의 목숨이란 것에 놀랐다.

“확실히 이런 결말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역시 전장의 변수란 다 계산할 수 없군요.”

사내도 당황했다.

아인이 어떻게 요새에 숨겨진 비밀을 눈치챈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말릭에게는 흔적을 지우고 달아날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걸 빅터라는 기사가 우연히 알아차려 먼저 도착했고, 제 목숨을 버려서 이길 수 없는 적으로부터 승리를 거뒀다.

물론 빅터와 말릭의 싸움 자체만 놓고 보면 빅터의 완패였다.

빅터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죽음이 확실했다.

반면에 말릭은 다시 부활한다.

그러나 그사이 빅터가 번 시간.

라이언이 기사들을 데려오고 아인을 비롯한 정예들이 비밀 통로와 밀실 주변을 포위했다.

저 장소에 있는 제물이 무한한 것도 아니니 말릭은 금세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라고 해서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

타르타로스를 지배하는 절대군주조차 스스로의 전능함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위니스 같은 광신도가 자주 혼나는 것이었다.

그녀를 비롯한 일부 과격한 이들은 절대군주를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해 신앙심을 보이고는 했으니.

자신이 평범한 인간임을 주장하는 절대군주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조건적인 신앙은 그에 대한 기대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을 경우 부메랑이 되어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신앙이 벗겨지는 순간에 받을 어마어마한 충격은 그야말로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을 테니까.

지금까지 절대군주에게 그러한 일은 없었으나 그가 왜 자신을 신앙하려는 부하들을 만류하는지 이번 일로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절대군주는 부족한 존재여야 했다.

완벽한 존재로서 충성 대신 신앙이 그 자리를 채운다면 완벽한 존재를 위해 누가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승리가 뻔하다고 믿으며 안일한 마음을 품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까?

“이사님, 이 싸움은 이사님께서 꼭 깊이 새기셔야 할…….”

“다녀오지.”

“네?”

위니스는 지금껏 사내가 본 적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흡사 쾌락에 빠져 이성을 상실한 것 같은 색정적이면서도 섬뜩한 미소.

그에 사내는 공포를 느꼈다.

저 처절한 모습의 어디에서 저런 느낌을 받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신다니, 어디를 말씀입니까?”

“놀라운 투지를 보여준 충신이다. 그 대가로 선물을 베풀어도 좋겠지. 아니, 오히려 그냥 넘어간다면 절대군주의 신하를 자처하는 입장에서 실책이다.”

“그런 억지가…….”

그녀를 막으려고 했으나 이미 위니스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애초에 위니스는 겨우 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세울 명분이야 많지만, 그녀가 듣지 않겠다고 한다면 무용지물이었다.

“하아.”

윗선으로부터 받을 갈굼을 생각하며 사내는 눈물을 훔쳤다.

* * *

빅터는 정신이 몽롱했다.

말릭은 움직임을 멈춘 채 머리가 깨져서 죽었으나 빅터의 상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참혹하기로는 빅터가 더했다.

녹아내린 갑옷에 전신이 눌어붙어서 산 채로 익어버렸다.

‘죽는구나.’

아인에게는 외상을 치료할 수 있는 마법이 있었지만 빅터는 이게 그 정도로 치료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 역할을 제대로 한 건가?’

마지막 순간 빅터는 아인과 함께한 지난 1년의 행적을 떠올렸다.

갑자기 기억을 잃었다는 말.

처음에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빅터는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

아인의 달라진 모습은 단순히 기억을 잃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의 아인과 지금의 아인은 명백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빅터는 차마 그것에 대해 물을 수 없었다.

정말 아인이 다른 사람이라면 자신이 지키기로 맹세했던 자신의 진짜 주군이자 소꿉친구였던 아인은 이미 죽었다는 소리였기에.

자신의 무능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빅터는 진실을 외면했다.

아인은 그저 기억을 잃어서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곁에서 잘 보필하면 언젠가 기억을 되찾으리라 스스로를 속이고 그 옆을 지켰다.

그러나 그마저 빅터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된 아인은 빅터가 따라가기에는 너무나도 먼 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바라보는 이상과 지닌 능력이 그러했다.

빅터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무력감을 맛봐야 했다.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직 기사가 되기 위해서 평생을 갈고닦았는데 이제 와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이는 자신의 인생 전부가 부정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노력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따라가고 싶었다.

아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빅터는 자신의 인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증명을 받고 싶었다.

“끄으…….”

하지만 모르겠다.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

젊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위안하기에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의 젊음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릴리아나.

그녀와 검을 맞댄 이후에 빅터는 끝없는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몇 번이고 검을 겨뤄달라고 요청했지만, 대련이 거듭될수록 벌어져 가는 간격을 느꼈다.

처음에 겨뤘을 때는 서로 최선을 다해야 했으나 이제 릴리아나는 빅터를 상대로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원할 때 빅터를 이길 수 있을 정도의 격차를 만들었다.

로크나 루시우스, 다니엘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마족 오차드와 싸움에 나섰던 이들은 아인의 최측근으로서 말도 안 되는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아인의 수준에 걸맞은 유능하고 재능 있는 인재들.

빅터로서는 뒤를 따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그들은 멀어져만 갔다.

아마 앞으로도 그들은 아인과 함께 엄청난 활약을 할 것이다.

어쩌면 이 크레시안 왕국을 넘어 외부에까지 그 명성을 떨칠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은 여기까지였다.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만이 목숨을 내걸어서 얻을 수 있는 전부였다.

짝짝짝!

그때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

빅터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수 소리는 점차 선명해져 어느새 빅터의 바로 앞에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만나서 반갑군.”

빅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여성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러나 시커먼 제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자신을 맞이하러 온 죽음의 사자 같았다.

“멋대로 착각하면 곤란한데.”

위니스는 빅터의 생각을 읽어낸 것처럼 대꾸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생사의 경계에 들어가면서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말도 제대로 전달될지 의문이었다.

“위대한 군주를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 하물며 그 결과 이기지 못할 상대를 꺾고 자신의 군주가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된다면 말할 필요도 없어.”

위니스는 빅터의 헌신으로 얻은 승리야말로 신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랫사람을 진심으로 아끼는 군주라면 자신을 위해 희생하여 승리를 가져온 신하를 잊지 못할 테니까.

비록 목숨을 잃으나 그 대가로 군주로부터 영원히 기억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아쉽지.”

그러나 이 영광에도 부작용이 있었다.

바로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서 만들어낸 군주의 승리와 앞으로 다가올 번영을 두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위니스는 그 사실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물론 그렇기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헌신이 더욱 빛난다는 걸 알지만.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져야 하는 게 어찌 아쉽지 않을까.”

어느새 위니스의 눈가는 촉촉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운명의 존재를 믿었다.

물론 세상을 이루는 건 운명이 아니라 무수한 우연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우연들이 짜이고 짜여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 지구인이 그 드문 차원의 구멍에 휘말려 타르타로스에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과 그를 따르는 이들의 헌신, 거기에 때로는 운이 더해져 신화를 이룩해 냈다.

이것을 과연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절대군주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의 발자취에는 그의 이상을 위해서 희생되어 간 많은 이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러한 자발적인 희생을 끌어낸 것은 결국 군주의 능력이며, 그로 인해 지금의 타르타로스가 만들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운명이다.

아무리 비범한 존재라고 해도 기회가 없다면 산골에서 썩어갈 뿐.

세상에 비범한 존재가 나타나서 업적을 이룩해 가는 과정은 그 존재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 위니스가 보기에 그녀가 고른 후보자 신현우에게도 그러한 운명의 흐름이 엿보였다.

마치 그 옛날 절대군주가 그러했듯이.

“그러니 기회를 한 번 주지.”

딱!

위니스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것만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빅터의 안색이 편안해졌다.

달궈졌던 피부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뻘겋게 물들었던 눈동자도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피부에 눌어붙었던 갑옷이 떨어져 나와 원래 형상을 갖추고 빅터의 몸 역시 온전해졌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운명이란 우연의 겹침이 발생해서 만들어지는 것.

그렇기에 아무리 비범한 존재라도 혼자서는 결코 운명을 완성할 수 없다.

위니스는 운명의 완성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빅터와 같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오히려 내 쪽이 더 고마우니까.”

자신이 여기에 있는 빅터와 같은 최후를 맞이한다면 절대군주께서는 자신을 기억해 주실 것인가?

위니스는 그 상상에 가슴이 뛰었다.

자신이 고른 후보자는 틀림없이 자신들의 절대군주를 꿰뚫을 창이 될 것이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라이언의 보고를 받았을 때 난 빅터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릭의 전투력은 빅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도착한 밀실에 있는 건 빅터가 아니라 말릭의 시신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말릭은 부활을 하고 있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산 제물을 이용해서 다시 육신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모습이 말릭의 털복숭이 형태로 변하는 건 징그럽고 놀라웠다.

그러나 말릭은 그대로 붙잡혀서 제거당했다.

제물을 마법진에서 모두 빼내자 더는 부활하지 못했으니 확실하게 죽은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말릭의 처리가 일단락되고 협회에서는 해당 장소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나도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으나 내 관심은 다른 쪽을 향했다.

바로 말릭과 단독으로 싸웠다는 빅터에 대한 것이었다.

[영웅 정보]

이름 : 빅터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네패스 백작가

유형 : 전투형

등급 : 3티어

칭호 : 뛰어난 기사

스킬 : 검술(3), 기마(2), 격투(2), 지휘(1)

가장 최근에 빅터의 정보를 확인했던 게 벌써 석 달 가까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빅터는 막 2티어에 올라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빅터의 나이에서는 상당한 재능이었고 장래가 기대된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마족과 일대일로 겨뤄서 승리를 거뒀다고 해도 빅터의 이번 성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왜 아무런 상처도 없지?’

말릭을 상대로 맞섰다면 죽었어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데 아무런 부상도 없다.

빅터는 그저 의식을 잃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전투가 없었다고 볼 수도 없는 게 마법을 썼던 흔적은 명백히 존재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말릭과 빅터 외에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빅터가 말릭을 이겼다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이뤄냈더라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러니 외부에서 뭔가가 개입했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어디 소속일까?

이 세계에 있는 세력일지 외부 세력일지도 불명확하지만, 결과만 보면 말릭은 죽었고 빅터는 살았다.

그 존재는 빅터의 편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으니 우호 세력일 가능성이 높았다.

‘타르타로스. 혹시 위니스인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위니스였다.

그래서 며칠 동안 위니스가 찾아와 설명해 주기를 기다렸지만 위니스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설명해 줄 생각이 없거나 위니스가 아니란 의미일 것이다.

‘알 수 없군.’

설명을 듣지 못하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밀실을 조사하던 마법사 협회에서 마침내 비밀을 밝혀냈으니까.

“파르티아 요새가 지어진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느냐?”

조사를 마친 플레턴이 설명에 앞서 물음을 던졌다.

이에 답한 건 내가 아니라 자크론이었다.

“거기라면 원래 신성수가 있던 곳 아닌가?”

“너한테 물은 건 아니지만 맞다.”

플레턴이 긍정하자 자크론이 피식 웃었다.

“신성수가 무엇입니까?”

하지만 난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성수 같은 건 게임에서도 등장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성수는 이름 그대로 신성한 나무다. 여러 신화와 전설에 얽혀 있지. 그리고 신성수가 자라는 땅들은 실제로 특별한 장소들이고.”

“특별하다고 하시면?”

“자연에 있는 마나가 어디서 오는 줄 아느냐?”

플레턴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5티어 마법사지만 경력으로 치자면 1년이 조금 넘는 어설픈 마법사인 나다.

마법을 배우기에도 급급한데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같은 기본 원리를 하나하나 배울 기회는 없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마나는 저 깊은 땅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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