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9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94화
94화
친왕실파 잔당과의 결전은 중부를 집어삼키는 계획에 있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메디치 후작이라는 유능한 귀족을 영입 후보로 두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중부 전체의 영토에 비하자면 메디치 후작의 가치가 그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으니.
그런데 방금까지 가볍게 여기고 있던 메디치 후작에 대한 평가를 바꾸게 생겼다.
‘착각인가? 아니면 진짜일까?’
의혹이 생기자 행동은 즉시 이어졌다.
‘확인해 보면 되겠지.’
라닌 후작 때에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이미 마족과는 한 번 겨뤄봤고 더구나 위니스로부터 가이스트라는 집단이 마족과 접촉해 힘을 주었다는 걸 들었다.
나로서는 마족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었고 피해서도 안 된다.
“마나 블래스트, 윈드 불릿, 파이어 스피어.”
삼중 마법까지 사용하며 반격을 가했다.
절대 간 보는 용도가 아니라 여차하면 죽이겠다는 의도를 담은 일격이었다.
콰콰쾅!
“허억!”
“이게 무슨!”
튼튼했던 요새가 걱정될 정도로 힘을 담은 공격이었다.
그에 황금십자회 멤버들은 내 실력에 화들짝 놀랐다.
그동안 함께 교류를 나눴으나 실제로 내 전력을 보인 적은 없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중부의 다른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마족과의 전쟁을 직접 목격했던 나의 기사단만이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군.”
하지만 이런 내 공격은 상대에게 가로막혔다.
거리가 멀어서 영웅 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메디치 후작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내 공격을 막았다.
최소 4티어의 마법사.
그러나 내 감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럼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지금껏 써보지 않았던 새로운 마법을 준비했다.
숙련도는 다소 낮지만 마법 자체의 위력이 확실하기에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마법이라 봐도 좋았다.
“라이트닝 플레어!”
그건 바로 오차드가 썼던 마법이었다.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게 아니고 마법서를 통해 익힌 것도 아니다.
그저 상대가 쓰는 걸 몇 번 보고 감지한 게 전부.
그래서 나도 이걸 익히는 게 가능할지 확신하지 못했으나 의외로 라이트닝 플레어 자체는 그리 어려운 마법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5티어라는 시스템의 보조 앞에서는 그러했다.
‘사람들을 조종하던 마법 같은 건 도무지 모르겠지만…….’
마족 특유의 이질적인 마법과 달리 라이트닝 플레어는 그저 강력한 마법일 뿐이었다.
번쩍!
한순간 강렬한 불빛 앞에 시야가 가로막혔다.
그러나 마법사의 감각은 정확하게 메디치 후작의 대응을 읽어냈다.
콰아아앙!
그야말로 낙뢰와 그를 따르는 천둥을 연상시키는 굉음.
그 속에서 메디치 후작은 라이트닝 플레어를 막아냈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지켜낸 것에 성공했을 뿐 주변의 초토화까지 막지는 못했지만.
‘이것도 막았다고?’
자신 한정이라지만 라이트닝 플레어를?
이 정도라면 4티어 중에서도 그야말로 독보적인 경지였다.
어쩌면 5티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이상한 일이었다.
“어어…….”
“이럴 수가…….”
라이트닝 플레어의 위력에 경악하는 이들을 뒤로한 채 경계심을 한껏 높였다.
메디치 후작이 이렇게 강하다면 타이온 백작을 상대로 밀릴 이유가 없다.
타이온 백작이 아무리 황금십자회의 수장이라지만 그가 지식을 얻을 경로는 한정되어 있었다.
대대로 쌓아온 비전 마법을 익히는 협회의 원로에 비해서 타이온 백작은 수준이 확실히 떨어진다.
사실상 등급만 4티어일 뿐이고 처음 내가 5티어부터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반쪽짜리에 가깝다.
물론 연륜이 헛된 것은 아닌지라 나름대로 마법을 배웠지만 그 구성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타이온 백작에게는 이걸 왜 배웠지 싶은 쓸모없는 마법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타이온 백작에게 패배해서 여기까지 몰린 게 메디치 후작이다.
애초에 4티어라는 것도 기이한데 하물며 그 수준이 4티어에서도 범상치 않다는 건 명백하게 이상했다.
“로크 자작!”
일부러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근처에 있던 로크를 목청껏 불렀다.
“대비 태세 5단계!”
내 외침에 로크의 표정이 굳어졌다.
위니스로부터 가이스트와 마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이후에도 몇 번이나 마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기사단에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오차드 때처럼 상정 외의 위험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춘 대응을 짜낸 것이다.
5단계는 상대가 최소한 오차드 수준이란 의미였다.
“5단계다!”
로크의 외침에 오차드와 직접 겨뤘던 기사들과 그 전투를 목격했던 기사들 모두가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속한 대응이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상대의 범상치 않음을 눈치챘듯이 상대 역시 내 수준을 인지했을 테니까.
화르륵!
아니나 다를까, 지금껏 알려진 메디치 후작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할 대응이 시작되었다.
요새 위를 장악하는 시뻘건 화염의 모습에 중부의 귀족들이 주춤거렸다.
“저게 무슨?”
“그 공격을 맞고도 반격할 여력이 남았단 말인가!”
“전원 퇴각하라!”
놀라는 황금십자회 멤버들에게 퇴각을 명령했다.
그래도 상대가 오차드와 같이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없다면 머릿수로 체력이나 마나를 소진시키는 전략은 유효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내 파벌에 속한 이들이기에 그런 식으로 소모해선 곤란했다.
콰콰콰쾅!
거대한 불길이 마치 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최대한 막으려 해봤지만 어느 정도의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확실하군.”
하지만 덕분에 확신을 얻었다.
상대인 메디치 후작은 인간이 아니었다.
* * *
“쓰읍!”
메디치 후작은 쓰라린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라이트닝 플레어를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방어가 조금 늦었고 덕분에 작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의 실력은 오차드 이상이지만 육체적인 능력만은 오차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부에서 치고 들어올 줄 알았는데 왜 중부 떨거지들이랑 같이 오는 거야?”
메디치 후작의 정체는 말릭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의 메디치 후작이 그랬다.
진짜 메디치 후작은 마족과의 전쟁에서 이미 사망하였고 어느 마족이 그로 위장해 암약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 마족은 메디치 후작의 역할에만 충실했지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다.
마족들의 계획은 중부가 아니라 동부에서 시작될 예정이었고 이를 위해 라닌 후작가에 접촉한 것이니.
그러나 라닌 후작가에서 암약할 예정이던 오차드가 남부 연합이라는 변수로 인해서 실패했다.
그래도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스페어로 메디치 후작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나만 곤란해졌잖아.”
말릭은 메디치 후작으로 위장한 채 아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어차피 남부 연합의 다음 타깃이 중부가 되리라는 건 마족들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행 방식은 마족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아인은 중부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대신에 내부에서 무너트리고 흡수하려 했다.
덕분에 남부 연합의 군대는 애꿎은 서부 쪽 경계에 밀집했고 말릭도 이에 당황했다.
기껏 기다렸던 게 무색하게 남부 연합이 중부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애써서 준비한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세월아 네월아 아인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상황.
그런데 갑자기 아인이 중부의 세력인 황금십자회를 이끌고 나타났다.
게다가 아인의 역량이 예상을 능가하여 말릭은 제힘을 드러내야만 했다.
남부 연합과 충돌할 때 전장의 혼란을 틈타서 아인을 죽이려던 계획이 망가진 것이다.
“어쩔 수 없네.”
우드득!
말릭은 메디치 후작으로 위장하고 있던 육신을 벗어 던졌다.
깐깐해 보이는 늙은 귀족의 육체가 뒤틀리며 가시처럼 날카로운 털로 뒤덮인 본모습이 드러났다.
“마, 마족이다!”
“메디치 후작이 마족이었다!”
이를 본 친왕실파 잔당은 경악했다.
지금껏 자신들이 따라왔던 이의 정체가 설마 마족이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시끄러!”
말릭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친왕실파 잔당들을 향해 마법을 퍼부었다.
시뻘건 광선이 번쩍이며 요새 위를 순식간에 죽음으로 뒤덮었다.
“뭐, 됐어. 애초에 인내심을 가지는 게 나한테는 안 맞았던 거지.”
말릭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기껏 준비한 스페어까지 망가졌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인이 라이트닝 플레어를 쓰는 순간에 말릭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크레시안 왕국에서의 계획보다 아인을 처치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아인을 죽일 수만 있다면 크레시안 왕국 장악에 실패하더라도 딱히 손해는 아니었다.
“어쨌든 싸울 기회는 왔으니까.”
말릭은 잔혹한 미소와 함께 요새 아래로 뛰어내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아찔한 높이였으나 말릭은 바닥에 닿기 직전 요새에 팔을 박아 넣어 속도를 떨어트렸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착지했을 무렵 말릭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
처처척!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수백의 기사들.
갖추고 있는 장비부터 내뿜고 있는 기세 모두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없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자신 있다는 건가?’
이러한 자신감의 근거는 오차드를 죽였던 전적이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에 말릭은 그들을 비웃었다.
감히 오차드 따위와 자신을 비교하는 우를 범하다니.
“크큭!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오차드가 다른 마족보다 약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애초에 강자보다 약자 여럿을 상대하는 데 특화된 조종 능력.
그리고 또 하나.
오차드는 가이스트와 접촉했던 당시에 일행에 합류하지 않았기에 그들로부터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였다.
가이스트가 준 힘을 제대로 다루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는데 오차드는 그 시간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너희에게 공포가 뭔지 알려주마!”
* * *
[마족 정보를 불러옵니다.]
마족의 모습을 드러낸 상대를 향해 영웅 정보를 쓰자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오차드 때와 달리 제대로 정보가 나온 것이다.
위니스의 도움에 감사하며 게임에서조차 확인할 수 없던 마족의 정보를 눈에 담았다.
[마족 정보]
이름 : 말릭
국적 : 없음
소속 : 크로노스
유형 : 복합형
등급 : 6티어
칭호 : 거신
스킬 : 콜로서스 브레이크(6), 마나 블래스트(6), 플레임 인페르노(5)…….
마족의 이름은 말릭이었고 국적은 없었다.
하긴 마족들은 애초에 국가를 이룬 역사가 없었으니 당연했다.
소속인 크로노스는 아마 현재 마족 잔당이 속한 집단이라 추정되었다.
오차드와 비교할 수 있었다면 확실해졌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유형은 복합형이라.’
마족은 전투형과 마법형이 분명하게 분류되는 인간 영웅들과는 달랐다.
어쩌면 인간도 마법과 육체를 함께 단련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쪽에 몰두해도 성공하기 힘드니까.’
마족의 경우에는 육체 능력은 거의 타고나는 쪽이었다.
보통 인간이 수십 년을 수련해서 쌓는 기술과 단련된 육체를 마족은 그저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마법 또한 타고났다.
그야말로 불합리할 정도로 강한 종족.
하지만 결국 전쟁의 승자는 인류였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지.’
혹시나 하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지만 말릭 외의 다른 마족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군대의 수가 3천이다.
중부의 군대는 남부 연합보다 수준이 조금 낮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상관없었다.
여기에 내가 있고 내 기사단이 있으니까.
게다가…….
우웅!
허공으로 신호를 쏘아 보내자 곳곳에서 화답하는 신호가 돌아왔다.
공식적으로는 기사단만 중부로 불러들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릴리아나와 티아라라는 고급 전력이 빠진 상황에서 마법사들마저 제외했을 리 없지 않은가?
마나 파장으로 신호가 닿는 범위 안에 그들을 숨겨두었었다.
‘이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만약을 대비해서 준비한 마법사들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말릭이라는 마족 때문에 황금십자회 몰래 마법사들까지 동원했다는 걸 걸리게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본모습을 드러낸 마족에게서는 정말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엄청난 숫자의 마나 파장은 설마?”
그라시아 남작이 경악한 눈으로 나를 봤다.
그는 타이온 백작의 측근이면서 유일하게 내 파벌에 들어온 이였다.
“우리 몰래 마법사들을 배치해 뒀던 겁니까?”
“그저 만전을 다했을 뿐이다.”
그라시아 남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타이온 백작의 암살까지 알아차리지는 못했겠지만 순수해 보였던 아인의 모습과 다르다는 건 깨달은 모양이다.
“남부와 동부를 아우르는 연합의 수장으로서 마땅한 일이지.”
그라시아 남작은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 덕분에 꽤 든든한 상태였다.
마법사 협회에도 지원 요청이 들어갔고.
“그리고 그대가 진정으로 명예를 아는 귀족이라면 그런 하찮은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말릭의 등장은 내 연기가 어느 정도 들통날 위기를 불러온 것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기존에 내가 쌓고 있던 명성도 그렇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마족을 토벌하는 것만큼 내 장악력을 높이기 확실한 방법도 없으니까.
“인류의 적이 눈앞에 있다. 마법사라면 무엇을 해야 할지, 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봐라!”
내 호통에 그라시아 남작이 주춤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황금십자회의 멤버들도 두려워하면서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타이온 백작이 죽은 이상 황금십자회에서 마족과 맞설 만한 마법사는 없다.
모두 그 사실을 알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내가 있었다.
“나에게 이야기했던 명예가 무엇인지를 답하라.”
“마족을 무찌르는 것입니다.”
황금십자회의 전력이 그리 뛰어난 건 아니다.
그들이 피해를 입어도 곤란했고.
하지만 뒤에서 엄호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시작해 보자고.”
로크, 다니엘, 탈론, 루시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이들의 실력은 이전보다 월등하게 향상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주를 아껴둘 이유가 없었지.’
다니엘만 등급을 높인 게 아니다.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모두의 등급을 한 티어씩 높여두었다.
로크, 다니엘, 루시우스는 4티어가 되었고 탈론은 무려 5티어였다.
상대가 6티어의 마족이라도 능히 겨뤄볼 만했다.
‘내가 6티어가 아닌 건 아쉽지만.’
5티어까지는 상점에서 승급권을 팔고 있다.
보주만 넉넉하다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6티어.
내가 내 성장을 제쳐둔 건 6티어 승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랜덤 상자라니, 미친 거 아니야?’
6티어 승급권은 랜덤 상자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