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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93화 (9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9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93화

93화

【 마족 말릭 】

“타이온 백작 각하께서 돌아가셨다!”

타이온 백작의 죽음이 알려지자 황금십자회는 혼란에 빠졌다.

중부 내전이 사실상 그들의 승리로 끝난 데다 친왕실파의 잔당은 외각으로 밀려나 암살을 시도할 여력조차 없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조사하던 이들은 범인을 친왕실파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 표식은 예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그라시아 남작이 과거 있었던 암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은 모두 그 사건을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해 당시 암살자들과 같은 조직에서 왔다고 확신을 가졌다.

“저도 기억합니다. 그 간악한 놈들이 기어이!”

“참을 수 없습니다! 잔당들을 모두 죽여 타이온 백작 각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장작이 들어간 불꽃처럼 황금십자회는 격렬하게 타올랐다.

나 또한 그에 어울려주었다.

“귀족의 명예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감히 황금십자회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지요.”

“네패스 백작 각하께서 함께해 주신다니, 든든하군요.”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복수는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타이온 백작의 죽음으로 황금십자회의 수장 자리가 비어버렸고, 중부의 대영주 자리도 공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이어드 후작과 달리 타이온 백작에게는 후계자가 있었지만, 그 능력에는 많은 의문이 붙어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타이온 백작의 후계자인 장남이 마법사가 아니란 것이다.

‘그야 마법사의 재능은 드무니까.’

타이온 백작은 마법적인 역량도,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난 귀족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버지가 훌륭해도 자식이 이를 이어받는 건 쉽지 않다.

하물며 오직 선천적으로 그 재능을 타고나야만 하는 마법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때문에 타이온 백작의 장남은 타이온 백작가를 이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황금십자회를 이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황금십자회는 누가 이끌어야 하겠나?”

“연륜으로 정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그분은 마법 실력이 너무 낮아.”

“차라리 네패스 백작 각하가 낫지 않나? 우리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그분을 모시는 게 낫다고 보는데?”

“유지 정도가 아니지. 네패스 백작 각하는 남부와 동부를 다 장악하셨는데. 게다가 서부까지 장악하고 나면…….”

황금십자회의 귀족 중 타이온 백작의 측근을 뺀 이들이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측근들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장남을 지지하려고 했으나 여론에 밀렸다.

마법사도 아닌 이를 황금십자회에 받아들일 수는 없거니와 그를 선택할 경우 오히려 황금십자회의 영향력이 감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황금십자회는 나를 주축으로 한 세력과 타이온 백작의 장남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분열되었다.

“원통하게 돌아가신 타이온 백작 각하의 원수를 갚자!”

아이러니하게도 타이온 백작의 원수를 갚는 데 집중하는 건 나를 중심으로 한 파벌이었다.

장남의 경우에는 갑작스러운 타이온 백작의 죽음 때문에 가문을 수습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황금십자회 멤버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중부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남부 연합의 군대 일부를 불러오겠습니다.”

“그건…….”

“확실하게 원수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안심하십시오. 정예들만 데려올 테니.”

타이온 백작의 복수를 명분으로 서부를 노릴 듯했던 남부 연합의 군대가 중부로 발을 디뎠다.

황금십자회 멤버들은 잠시 망설였지만 내 적극적인 설득에 이를 승낙했다.

실제로 많은 병력이 넘어온 건 아니었다.

목표로 한 친왕실파 귀족들의 요새만 공략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기세가 대단하군요.”

중부로 올라온 내 기사단을 본 이들이 눈을 반짝 빛냈다.

현재 중부에는 이름난 기사단이 없었다.

원래는 크레시안 왕가를 지키는 근위기사단이 자리해 왕국 최정예라 평가되며 용맹을 떨쳤으나 그들은 피의 연회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왕족들의 죽음으로 모실 군주가 사라지자 흩어져 버렸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은 친왕실파의 편에 붙어 타이온 백작의 세력과 맞붙는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이리 뛰어난 기사들을 보는 건 오랜만입니다.”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은 모두 마법사였으나 기사들을 상대로 모두가 호의적이었다.

마법사 이전에 귀족으로서 충성스럽고 용맹한 기사를 부리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명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도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기사들만 불러들인 것이었다.

내 휘하의 마법사는 모두 협회 출신이니 황금십자회와 접촉하면 자칫 불화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로 그렇습니다. 네패스 백작 각하께서 그토록 자신의 기사단을 아끼셨던 이유를 알겠습니다.”

“마법사 협회는 이런 기사들의 희생을 자신들의 치적으로 삼았었으니…….”

“놈들의 비열함은 저 친왕실파 귀족들과 다를 게 없군요!”

아부를 하던 이들의 주제가 어느새 협회에 대한 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중부에서 지내는 동안 이미 익숙해진 상황이기에 적당히 받아주었다.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지. 우리는 비겁한 암수를 쓴 친왕실파 귀족들을 소탕하고 이 왕국의 평화를 되찾아야 하지 않겠나?”

“옳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자 황금십자회 멤버들이 결연히 소리쳤다.

그렇게 나의 기사단이 합류한 중부의 군대는 친왕실파의 마지막 거점이라는 파르티아 요새로 진군했다.

“저곳이 파르티아 요새입니다.”

무수한 마법사들을 보유한 타이온 백작과 황금십자회가 친왕실파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던 까닭.

그것은 바로 파르티아 요새의 견고함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미 게일 남작에게 요새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으나 직접 본 나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파르티아 요새는 지금껏 봐왔던 요새들과는 전혀 달랐다.

대부분의 요새들이 아주 옛날에 지어져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던 것에 비해 파르티아 요새는 마치 새것처럼 깨끗했다.

이곳에서 타이온 백작과 친왕실파의 전투가 여러 번 발생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파르티아 요새는 지금까지 봤던 어떤 요새보다도 튼튼하고 거대했다.

위치도 하필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아 공격하기에 어려웠다.

“백작 각하, 파르티아 요새에 대해서 아십니까?”

“마족과의 전쟁에 대비해 지어졌다고 들었네.”

이렇듯 파르티아 요새가 여타의 요새들과 다른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파르티아 요새는 크레시안 왕국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것이었다.

본디 요새의 건설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가기에 쉽게 지어지지 않고 반대로 없애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오랜 옛날에 지었던 요새들을 보수해 가며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마족과의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크레시안 왕가에서는 마족들의 위험성을 높이 평가했고 타국의 전장이 밀려 국내까지 마족이 쳐들어올 가능성을 염려했다.

그 때문에 지어진 것이 바로 이 파르티아 요새.

크레시안 왕국을 지켜내기 위한 최종 방어선이었다.

정작 경계했던 마족들은 인류에게 패배해 크레시안 왕국에는 발도 디디지 못했지만.

“그렇습니다. 이 요새 때문에 왕가에서 얼마나 많은 재물을 거뒀는지 모르실 겁니다.”

“요새의 건설에 강제로 동원되었다가 죽은 이들의 수도 엄청납니다.”

황금십자회 멤버들은 파르티아 요새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를 갈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 요새에 얼마나 큰 원한을 품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하긴 이 요새가 아니었다면 타이온 백작은 중부를 확실하게 점령하고 나에게 암살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 요새는 비록 마족과의 싸움에 이용되지는 않았으나 제 몫은 충분히 한 셈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 왕가의 혈족인 레일리를 위한 일에 사용되었으니 말이다.

“만만찮은 요새입니다. 타이온 백작 각하께서 몇 차례나 공략을 진행하셨지만, 하필 친왕실파 귀족 중에 그 남자가 남아 있는 바람에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그 남자라면?”

“크레시안 왕가의 조언자라고 불리는 메디치 후작입니다.”

친왕실파 귀족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꼽으라면 세 사람을 들 수 있었다.

하나는 크레시안 왕가를 마지막까지 지키던 근위기사 단장.

그러나 그는 이미 죽었다.

피의 연회에서 사경을 헤맬 정도의 중상을 입은 상태로 목숨만 간신히 연명하다 내전 도중에 악화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현재 친왕실파 잔당을 이끄는 요크 공작이다.

작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요크 공작은 크레시안 왕국 최고의 작위를 가진 귀족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위는 세력에 비례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왕가의 아주 머나먼 방계로서 이어지는 작위에 불과했으니.

레일리조차 요크 공작이 자신과 얼마나 먼 친척인지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라고 했으니 친척이란 말을 쓰는 것도 우스울 정도였다.

오죽하면 정통성이 확실한 왕족이 모두 죽은 상황에서도 그에게 왕위가 넘어가지 않았겠는가.

그는 왕가에 빌붙던 소인배지 스스로 세력을 일구어갈 능력 있는 군주는 아니었다.

이렇듯 앞의 두 사람이 이미 고인이거나 무능함으로 정점을 찍은 반면 메디치 후작은 달랐다.

그는 타이온 백작의 라이벌이라 불리며 정쟁과 내전을 이끌어온 친왕실파의 실세였다.

특이한 이력으로는 협회에 소속된 경력이 있는 마법사라는 것.

그렇다고 신분이 낮다는 의미는 아니다.

메디치 후작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피를 잇던 자로서 엄연한 귀족이었다.

협회 소속이지만 중립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협회 내에 자신의 파벌을 꾸렸다가 그들을 데리고 그대로 왕가에 투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야망을 갖고 협회에 들어가 힘을 키워왔던 것이라 평가했다.

‘그 때문에 하마터면 내가 협회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뻔했지.’

황금십자회와 더불어 마법사 협회와 사이가 안 좋은 귀족의 대표.

그나마 황금십자회는 협회에게 번번이 물을 먹는 것에 반해 메디치 후작은 반대로 협회에게 물을 먹인 자였다.

그를 도와준 협회의 뒤통수를 때렸으니.

메디치 후작도 그 일이 신경 쓰였는지 후작이 되고 나서 협회에 많은 선물을 보냈지만 협회는 이 모든 것을 반려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메디치 후작의 화해 요청을 받아준다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그런 것치고 나에게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지만 이는 내 스승인 플레턴과 여기에 협조해 주는 남부 지부장 가이트 덕분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영입 1순위 후보지만.’

타이온 백작은 대영주파라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황금십자회 장악을 위해서는 제거해야만 했다.

그러나 메디치 후작은 입장이 다르다.

그는 친왕실파의 최후의 상징과도 같았다.

마지막까지 대영주파 귀족인 타이온 백작과 겨뤘고 패배했을지언정 항전을 멈추지 않았다.

항복하지도 않고 꼿꼿하게 고고하게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자.

그러면서도 정작 남은 기반이 없어 남부 연합에 별도의 파벌을 형성할 수 없는 처지인 자였다.

‘딱 좋은 상대지.’

친왕실파의 상징이면서도 파벌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인물.

연합의 분열을 우려할 필요는 없으면서도 레일리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게 가능했다.

“저기 요새 위를 보십시오! 메디치 후작이 보입니다!”

요새를 포위해 가는 도중에 우리를 발견한 친왕실파 잔당이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가 그들을 살피듯 우리를 살피기 위해 요새 위에 몇몇 이들이 나타났다.

거리가 멀어서 얼굴까지 보는 건 불가능했으나 주변을 따라다니는 사람을 통해 높은 신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무능하다는 요크 공작이 굳이 적의 동태를 살피면서 대비를 갖출 실력은 없을 테니 그가 메디치 후작이 맞을 것이다.

“쪽지를 보내라.”

내 명령에 탈론이 앞으로 나서서 미리 준비해 둔 쪽지를 매단 화살을 쏘았다.

터엉!

그저 쪽지를 보내기 위한 사격이었으나 과연 탈론의 활 솜씨는 수준이 달랐다.

어마어마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요새 위에 있던 메디치 후작 바로 옆의 기둥으로 정확히 날아갔으니.

심지어 그 힘이 얼마나 매서운지 화살이 기둥에 박히는 소리가 요새 아래까지 들릴 정도였다.

실제로 쪽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메디치 후작을 저격한 것으로 착각한 요새에서 급히 메디치 후작을 피신시키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대, 대단한 활 솜씨입니다.”

황금십자회의 멤버들도 탈론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나도 지금 탈론의 활 솜씨는 거의 신기에 가깝다고 여기는 중이었다.

‘활로 고티어 영웅이 되면 이런 수준이 되는구나.’

기사 중에도 나름 활을 잘 다루는 이들이 있었으나 결국 주력은 백병전과 기마전이었다.

게임에서도 탈론을 입수한 유저는 거의 없다 보니 탈론의 정확한 실력을 파악한 자들은 드물었다.

휘이잉!

“음?”

그런데 탈론의 사격이 있고 얼마나 지났을까.

요새 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탈론이 쏜 화살에 매단 쪽지에는 타이온 백작의 죽음과 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연히 암살과 아무 연관이 없는 만큼 당황하면서 혼란을 일으킬 줄 알았는데 메디치 후작의 대응은 남달랐다.

“저쪽에서 공격해 오는군.”

“네?”

“받은 건 돌려준다는 건가?”

내 말에 황금십자회 멤버들이 당황하며 요새를 살폈다.

마나의 이동이 감지되더니 나를 노리고 윈드 불릿이 날아들었다.

콰앙!

감지와 동시에 반응해 마나 실드를 펼쳤지만 만만찮은 힘이 실려 있었다.

“저런 파렴치한 작자를 봤나!”

메디치 후작의 선물에 황금십자회 멤버들이 이를 간 건 당연했다.

화살을 쏘아 보낸 건 어디까지나 연락용.

물론 전투를 앞두고 명분을 내세워서 상대를 욕하는 선전 포고였지만 어쨌든 이쪽은 암살로 타이온 백작을 잃은 상태다.

아무리 서로의 감정의 골이 심하더라도 이런 태도는 좋은 반응을 이끌기 어려웠다.

물론 서로 싸울 입장에서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쓸 까닭은 없겠지만.

‘지금 이건?’

실제로 나도 이 공격 자체에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다.

상대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기니까.

문제는 메디치 후작이 마법을 쓸 때 잠깐 느낀 어떤 익숙함이었다.

‘오차드 때의 느낌. 설마 마족?’

이상하게도 메디치 후작에게서 오차드와 겨룰 때와 비슷한 마족 특유의 느낌이 들었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가볍게 넘기기에는 찝찝했다.

실제로 마족과 전투 경험이 많은 자크론은 마족과 접촉하기도 전에 마족의 기운을 간파해 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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