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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92화 (92/250)

VVIP 영주님의 품격 9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92화

92화

* * *

“다시 보는 타이온 백작은 어떤가?”

푹신한 소파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다니엘을 불렀다.

다니엘은 과거 암살자로서 친왕실파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타이온 백작을 죽이려 한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

동료들은 죽고 소속되어 있던 집단의 미래가 불안정해지자 다니엘은 조직을 나와 남부로 왔다.

하지만 이러한 다니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오차드와의 싸움에서 다니엘이 순수한 기사가 아니라는 건 다른 기사들과 자크론 모두 알아차렸지만 그뿐이다.

직접 위협을 받았던 타이온 백작은 다니엘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당시에 실패를 대비해 얼굴을 숨기고 암살에 나선 덕이었다.

“여전히 만만치 않은 상대 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드물고, 그마저 방 주변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난 시간 황금십자회 멤버들과 희희낙락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니엘은 은밀하게 타이온 백작의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오랜 정치 싸움에 잔뼈가 굵은 타이온 백작은 제 목숨을 지키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의 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무수한 호위들과 침입자를 막기 위한 함정이 있었다.

아무리 실력자라 할지라도 존재가 발각되지 않고 타이온 백작을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조금만 지체할 경우 온갖 마법사와 기사들이 몰려들 테니.

“이것을 보고도?”

하지만 나는 다니엘의 실력을 굳게 믿었다.

근거 없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황금십자회의 마법사들에게 주워들은 정보를 취합해 타이온 백작의 신변 경호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내가 준 정보를 확인한 다니엘은 목소리가 달라졌다.

암살자로서의 경험으로 지금 이 순간 암살 성공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갔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당장 오늘 밤이라도 죽일 수 있습니다.”

“기대하지.”

원래 절대군주에서도 마법사의 천적은 기사가 아니라 암살자였다.

물론 암살의 위협을 알고 있다면 마법사에게도 저항할 수단은 있었다.

방향을 가리지 않고 막아내는 마나 실드는 암살자에게 매우 까다로웠으니까.

그러나 마법을 펼치기 전의 마법사는 일반인과 다름없다.

하물며 고티어 암살자의 경우에는 마법사의 마나 실드도 깨부술 역량이 있었다.

‘조금 서두르는 느낌이 있지만 어쩔 수 없지.’

황금십자회를 원활하게 흡수하려면 타이온 백작을 자연스럽게 실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레일리의 존재가 알려질 수 있는 이상 중부까지는 확실하게 손에 넣어야 한다.

그 때문에 아직 내 입지가 완벽하지는 않으나 타이온 백작을 제거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이 내 휘하에 들어온 건 행운이었다.

실제로 타이온 백작의 암살에 나선 경험이 있기에 친왕실파 잔당들의 소행으로 꾸미기 쉬우니까.

암살 가능성이 높은 것도 호재다.

과거에 암살 시도가 있었다지만 몇 달이 흐른 지금 경계가 옅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나를 비롯해 외부 병력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호위를 위한 소수의 병력이기에 경계가 심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동맹을 상대로 대놓고 경계하는 분위기를 보일 순 없었을 테고.

‘물론 이것만으로 중부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치명적인 타격은 되겠지.’

아이러니하게도 타이온 백작의 황금십자회는 네패스 백작가와 비슷한 경향이 있었다.

바로 우두머리에게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

네패스 백작가에서 내가 대체 불가의 존재인 것처럼 황금십자회에서도 타이온 백작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온 것이다.

그의 빈자리를 내가 얻으면 중부와의 동맹을 깨트리지 않고도 중부를 그대로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레일리의 정체가 문제가 되기는 할 테지만 그때는 이미 게임 끝이지.’

타이온 백작을 없애고 황금십자회를 내가 장악하면 남부 연합의 군대를 중부로 들일 수 있다.

뒤늦게 진실을 알아차리고 저항하려고 해봐야 힘의 차이가 뚜렷하다.

게다가 타이온 백작에게 충성하는 이들은 진심으로 그를 존경하거나 해서 따르는 게 아니었다.

귀족이 뭐가 아쉽다고.

중소영주들이 대영주들에게 충성하는 건 결국 떨어질 콩고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타이온 백작보다 많은 것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측근들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타이온 백작의 친인척들은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뿐이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나에게 순순히 고개를 숙일 것이라는 계산을 이미 마쳤다.

이는 타이온 백작이 그렇게 의도하여 키워온 황금십자회로선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 * *

“허! 어이가 없어서!”

방으로 돌아온 타이온 백작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었다.

아인이 고의적으로 한 행동인지 우연찮게 한 행동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행동은 황금십자회 멤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이끌었다.

- 그럼 저희가 남부로 직접 가는 건 어떻습니까?

그라시아 남작이 직접 나서서 꺼낸 말.

아인이 바빠서 중부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면 자신들이 남부로 가면 된다는 거였다.

이미 아인이 먼저 찾아온 마당에 이를 반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내세울 변명거리라면 아직 남아 있는 친왕실파의 잔당이나 중부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에게 이미 아인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된 상태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마법에 열성적이었다고?”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에게 마법이란 정치적인 수단의 일종에 불과했다.

타이온 백작이라는 대영주의 눈에 들어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것.

그 때문에 처음에는 어떨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마법에는 소원해지고 한눈을 팔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타이온 백작은 딱히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자신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나온다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마법을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뭐에 홀린 것처럼 열성적으로 마법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진 않았다.

아인 네패스.

그 천재적인 마법사가 보여주는 뛰어남과 그에게 마법을 배우는 것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여성 멤버들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한 구석이 있었다.

- 생각해 보면 혼처로 딱 좋지 않아? 남편으로 그만한 사람이 없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때는 변방의 자그마한 영지의 막내에 불과했으나 이제 아인은 크레시안 왕국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신랑감이다.

약혼녀가 있다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되었다.

귀족이 첩을 들이는 경우는 흔해빠져서 이야깃거리도 되기 힘들었고, 대영주라면 첩이 없는 경우를 찾는 게 더 힘들다.

물론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지만 아인은 약혼을 했을지언정 아직 정식으로 혼인을 한 몸은 아니었다.

- 약혼은 깨버리면 돼.

그 상대라는 라일이라는 여성은 바이든 자작의 조카라고 알려져 있었다.

바이든 자작은 마이어드 후작의 가신으로 남부에서는 제법 힘을 가진 귀족이지만 대영주는 아니었다.

아예 넘보지 못할 상대는 아닌 것이다.

남성 멤버들도 아인에게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굳이 남작이라 부르며 백작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조차 이제는 아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닐 지경이었다.

그는 마법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나 아인의 선물 공세에는 환장했다.

“그 많은 것들을 내주는 게 정말 호의일까?”

타이온 백작은 아인의 진위가 의심스러웠다.

겉으로는 지식의 교류가 즐거워서 심지어 눈물을 쏟으며 가족같이 화기애애해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의 눈물에 속는 건 하수나 하는 짓.

수십 년 동안 정치판에서 굴러본 타이온 백작에게 눈물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의도이든 아니든 네패스 백작의 행동은 나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타이온 백작의 입지는 철옹성과도 같았다.

유일한 대영주이자 뛰어난 마법사로 중부의 다른 귀족 가문의 후계 구도에 간섭할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힘이 있는 자 앞에 고개를 숙이는 건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르지 않은 본능이다.

그러나 아인이 나타나면서 그 입지가 무너졌다.

아인은 중부에 한정된 타이온 백작을 넘어 남부와 동부 두 지역을 점령했다.

거기에 서부 원정을 앞두고 있었고 그것을 실패하리라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어마어마한 선물 공세로 재력까지 아낌없이 뽐냈다.

마법적인 능력마저 뛰어났고 남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에도 헌신적이었으니 아인은 그야말로 타이온 백작의 상위 호환이었다.

“설마 계획된 건가?”

순간 타이온 백작의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것이 그저 우연일까?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조건을 모두 갖춘 존재가 우연하게 황금십자회와 접촉한 걸까?

정치판을 뒹굴었던 타이온 백작의 감이 절대 아니라고 소리쳤다.

이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인은 고의적으로 그의 입지를 좁히면서 자리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내 자리를 빼앗고 내가 이끄는 황금십자회를, 중부를 통째로 잡아먹으려고?’

그러나 확신을 내리는 건 쉽지 않았다.

아인은 남부 연합의 수장이다.

그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러한 일에 직접 나서서 눈물까지 쏟는다는 건 타이온 백작으로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힘으로 무너트리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한 상대에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일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인가? 아직 젊으니까 체통을 염두에 두지 않고 행동하는? 아니, 그렇지만 그러한 자리에 있는 인물이 직접 나서는데 주변에 반대하는 귀족이 없나?’

타이온 백작은 자신의 상식과 어긋나는 상황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만일 자신이 아인의 입장이라면 결코 그러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된다. 무언가 조치가 필요해.’

필요하다면 아인을 제거하기라도 해야 했다.

타이온 백작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입지를 되찾고 아인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군!’

아인의 입지를 줄일 만한 좋은 방법을 떠올린 타이온 백작은 통쾌하게 웃었다.

수십 년간 정쟁을 헤쳐온 그의 영민한 두뇌는 아직도 현역이었다.

“밖에 누구 있는가?”

타이온 백작은 명령을 내리기 위해 바깥에 대기하고 있을 이들을 불렀다.

기사도 있을 것이고 시종도 있었다.

그러나 타이온 백작의 부름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뭐지?’

기이한 상황에 타이온 백작은 의문을 품었다.

분명 방금 방에 들어오기 전에 바깥에 있는 이들을 봤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냐?”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타이온 백작은 좀 더 크게 사람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적막에 타이온 백작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감지했다.

‘어떻게 된 거지?’

자신을 노리는 침입자를 떠올렸지만 이 방 앞까지 침입자가 온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준비되어 있는 함정이 몇 개고 배치되어 있는 기사가 몇 명인데.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조차 타이온 백작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었다.

서로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두 모아본다면 윤곽이 잡힐지도 모르나 설마 모두가 그를 배신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어지간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었다.

‘문 너머에 있는 기사들을 소리 없이 제거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렇게 자신하면서도 타이온 백작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콰앙!

다음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좌우로 젖혀졌다.

타이온 백작은 다급하게 거리를 두고 문가에서 떨어졌다.

문을 열고 날아온 것은 피투성이가 된 시종이었다.

“이런!”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타이온 백작은 서둘러 마나 실드를 펼치며 문 너머에 있을 암살자의 등장을 경계했다.

하지만 복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암살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긴장을 놓지 마라.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정면을 응시하던 타이온 백작은 문득 뒤가 너무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등 뒤에 놓인 창문으로부터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창가에서 떨어져야겠군.’

어쩌면 암살자가 정면에서 시선을 끌고 창가로 침입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타이온 백작은 옆으로 발을 디뎠다.

공교롭게도 복도에서 날아온 시종이 쓰러져 있는 방향이었다.

꿈틀!

시종은 몸을 경련하며 떨고 있었다.

전쟁에서 익숙하게 봐온 광경이었기에 타이온 백작은 놀라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죽었더라도 상처가 신경을 건드리면 이런 일이 빈번했다.

‘그래도 살아 있으면 좋겠군.’

딱히 희생될 시종이 안타까워서가 아니었다.

암살자의 신경이 조금이라도 분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타이온 백작의 시선이 잠깐 떨어졌을 때 시종이 벌떡 일어났다.

‘뭐?’

타이온 백작은 눈을 부릅뜬 채 시종을 보았다.

그의 시종이 아니었다.

복장이 같아서 착각했으나 상대는 암살자였다.

암살자가 검을 휘둘렀다.

타이온 백작은 이를 악물며 마나 실드에 집중했다.

‘괜찮다! 잠깐이라면 버틸 수…….’

콰창!

뛰어난 마법사로서 타이온 백작이 자랑하던 마나 실드가 암살자의 일격에 짓뭉개졌다.

순간 타이온 백작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기사들조차 마나 실드를 이리 쉽게 망가트릴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푸욱!

어느새 암살자의 칼날이 타이온 백작의 심장을 파고들고 있었다.

타이온 백작은 믿기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다.

촤악!

성공적으로 암살을 마친 다니엘은 피를 털어내며 표식을 남겼다.

과거에 몸담았던 조직의 표식이었다.

황금십자회에서 과거에 이 표식을 확인했을 테니 암살의 배후로는 친왕실파가 의심받게 될 것이다.

‘이거 참 믿기지 않는군.’

방에서 빠져나가며 다니엘은 자신이 사용한 무기를 보았다.

다니엘에게는 두 종류의 무구가 있었다.

하나는 평상시에 기사로서 쓰는 장비였고 또 하나가 이 암살자일 때의 장비였다.

아인이 별도로 마련해 둔 이 장비는 기존에 쓰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물론 그것만으로 이런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언질은 받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강해지다니.’

아인은 황금십자회를 장악할 계획을 짜면서 다니엘을 불러내 의문의 약을 먹였다.

아주 특별한 약이라는 설명대로 먹고 보니 기이할 정도로 능력이 향상되었다.

단순히 힘이 세진 정도가 아니라 기술은 보다 정밀해졌고, 감각은 보다 예민해지고, 머리까지 맑아졌다.

약을 받는 자신을 기사단장인 로크가 굉장히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이상한 재료를 썼나?’

이러한 약의 재료가 평범할 리 없었다.

암살자 집단 중에는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겠다며 독충을 먹이는 곳도 있었으니까.

다니엘은 로크의 표정을 그러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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