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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91화 (91/250)

VVIP 영주님의 품격 9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91화

91화

* * *

“너무 좋은 소식을 들고 왔군.”

타이온 백작은 그라시아 남작의 보고를 들으며 눈을 빛냈다.

설마 마법사 협회의 상징이 되어버린 아인이 협회와 사이가 나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이건 기회입니다.”

그라시아 남작은 황금십자회에서 아인을 영입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타이온 백작을 설득하였다.

아무리 아인이 모든 공을 전사한 이들에게 돌렸지만 그렇다고 실력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살아남은 것이고 기사들이 충성을 바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란 소리니.

“그를 우리 황금십자회의 품으로 끌어들인다면 그가 이룬 모든 것이 우리 황금십자회의 것이 될 겁니다.”

협회와의 불화가 심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마법사 협회가 더 큰 세력이라고는 해도 황금십자회는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신분이 낮은 협회로서는 결코 황금십자회에 덤벼들 수 없었다.

“우리 황금십자회의 품이라…….”

타이온 백작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협회와는 솔직히 사이가 더 나빠질 것도 없고 아인을 영입함으로써 얻을 이득은 막대했다.

문제는 과연 모든 것이 그의 의도대로 원활히 흘러갈지에 대한 것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봤어야 하는데.’

아인이 어떤 인물인지를 그라시아 남작의 입을 통해서만 전달받은 게 불안했다.

일이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 알았다면 자신이 직접 아인을 만났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남부 연합을 너무 과하게 경계한 탓이었다.

“일단은 시간을 들여서 지켜보도록 하지. 네패스 백작을 우리 황금십자회에 초청하게. 마법사로서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걸 강조해서.”

“즉시 진행하겠습니다!”

그라시아 남작은 체통도 잊고 뛰듯이 떠났다.

타이온 백작은 그런 그라시아 남작의 행동에 당황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만은 않은데?’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 * *

나와 타이온 백작과의 만남은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다.

동맹을 맺었다지만 아직 신뢰할 만한 사이가 아님에도 내가 최소한의 호위만 이끌고 직접 중부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타이온 백작은 그라시아 남작을 통해서 받은 마법서들 때문인지 나와 협회의 관계가 나빠 보여서인지 나를 아주 성대하게 환영해 주었다.

“남부의 영웅을 만나니 참으로 기쁘네.”

“마법의 길을 걷고 계시는 선배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같은 백작의 작위를 가졌지만 타이온 백작이 마법계의 선배라는 것을 이유로 들어 깍듯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에 타이온 백작을 비롯한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은 나에게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왔다.

“그라시아 남작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황금십자회에서는 서로의 마법을 시연하고 지식을 나누며 함께 실력을 키워나간다고.”

마법사 협회의 단점 중 하나는 사제 관계가 아닌 마법사끼리는 교류할 기회가 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젊은 마법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을 때 귀족에게 내빼는 걸 우려해 실제로 가르침에 인색한 편이기도 했다.

예외가 있다면 티아라처럼 재능이 확실해서 협회에서 작정하고 키우는 경우.

그러나 이 경우에는 협회에 계속 묶어두지 절대 귀족 가문으로는 보내지 않았다.

“물론이지.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나아가고 있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저에게도 그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물론이네. 그러기 위한 초대였으니.”

일부러 가르침을 청하자 타이온 백작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그가 황금십자회에서는 유일하게 협회의 원로와 대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4티어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아예 내친김에 타이온 백작은 마법을 시연하며 솜씨를 자랑했다.

“참으로 훌륭한 마법입니다.”

타이온 백작이 시연으로 펼친 마법은 분명 수준급이었다.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이 모두 대단했다며 입을 놀릴 정도로.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같은 티어지만 플레턴이나 자크론과 비교하기에는 모자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입은 어느새 황금십자회 멤버들처럼 그에게 아부를 하고 있었다.

“그대도 한번 해보시게.”

“선배님 앞에서 보이기엔 부끄러운 성취인지라…….”

“하하. 괜찮으니 해보게.”

내 마법 시연이 이어지자 황금십자회의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눈을 빛냈다.

겉으로 겸양을 떨었던 것과 달리 난 상당한 진심을 내보이며 성취를 뽐냈다.

“대단하군.”

이런 내 모습에 타이온 백작도 감탄했다.

마법사로서 내 역량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부족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니, 아주 훌륭했네. 이래서야 오히려 명성이 과소평가된 것 같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자신감이 붙는 거 같습니다.”

“애초에 이런 실력인데 자신감이 없을 수가 있나?”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어서 제 성취를 잘 알지 못합니다.”

“아니, 그런 안타까운 일이!”

제대로 된 가르침 없이 독학한 마법사라는 점을 재차 어필하자 타이온 백작은 그 자리에서 직접 나를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남부 연합의 맹주를 가르침으로써 자신을 따르는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에게 위엄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수였다.

“이걸 이렇게 하면 되네.”

“잘 가르쳐주셔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습니다.”

“대단하군. 다음에는 이것도 해보게.”

“이렇게 말이군요? 어떻습니까?”

“혹시 이것도 할 수 있나?”

“해냈습니다.”

나는 그야말로 가르치는 모든 것을 천재적인 재능으로 흡수해 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마법사들 모두가 경악했다.

그들도 모두 같은 마법의 길을 걷고 있기에 내가 보여준 재능이 어느 정도로 뛰어난 건지를 이해한 것이다.

“이거 내가 가르칠 게 많지 않겠군.”

타이온 백작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황금십자회에서 타이온 백작은 비견될 존재가 없는 최고의 마법사였다.

실제로 다른 멤버들 중에 그와 같은 4티어의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데 내가 그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지.’

지금까지는 타이온 백작에게 어울려줬으니 이제는 황금십자회가 나에게 어울려줄 때였다.

“그럼 저도 제 지식을 나누겠습니다.”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는 마법사를 곁으로 데려와 그에게 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마법의 가르침이란 절대 쉽게 내려주는 게 아닐뿐더러 배우더라도 단시일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마나를 옮기는 방법을 조금 바꾸어야겠군.”

가르침을 받는 마법사가 어떤 식으로 마나를 다루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어 교정을 해주었다.

아무리 원로 수준의 마법사라도 이렇게 쉽게 문제를 찾아서 수정해 줄 수는 없다는 상식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예행연습을 해두길 잘했군.’

마냥 5티어의 재능과 지식만 믿은 게 아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휘하에 있는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가르침을 주었고 그들의 의견을 모아 어떻게 가르치는 게 효율적일지를 연구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재능이 받쳐주니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자, 이렇게 하면 어떤가?”

“정말 훨씬 편해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이 마법을 익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 방금 보셨습니까? 잠깐이지만 마법이 나왔었습니다!”

“이것 좀 보십시오! 제가 해냈습니다! 이게 전부 네패스 백작 각하 덕분입니다!”

그렇게 며칠.

서로 간의 마법에 대한 교류가 이어지고 단 며칠 만에 황금십자회에 내 영향력을 늘려나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마법사 협회가 가르침에 인색하더라도 명확한 사제 관계가 있는 것과 달리 황금십자회에서는 타이온 백작을 중심으로 관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이들을 협회와 달리 마법을 잘 가르쳐주는 친근한 사교 단체처럼 표현했지만 사실 이들도 협회와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상대에게 따라잡히는 걸 좋아하는 이는 드무니까.

귀족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상대와 비교해서 자신이 뒤처지는 걸 받아들이기에 귀족으로 살아온 그들의 자존심은 가볍지 않았으니까.

설령 그러한 사심을 접고 진심으로 남을 가르칠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타이온 백작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할 황금십자회에서 타이온 백작의 영향력을 위협할 존재를 내버려 뒀을 리가 없으니까.

작은 조직이라고 해서 위계질서가 무를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귀족이라면.

“잠깐 나와 이야기를 좀 하지 않겠나?”

결국 타이온 백작이 급하게 나를 호출했다.

“그대가 열성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건 감사하네만, 남부 연합의 맹주로서 바쁜 일은 없나? 자리를 오래 비워두는 게 좋지는 않을 텐데.”

“하하. 서부의 상황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북부 연합이 있지 않나? 그 북부의 야만인들이 동부로 침공할지도 모르네.”

“그렇다면 그때 가서 응징하면 될 뿐인 이야기입니다.”

내 자신감 앞에 타이온 백작의 말문이 막혔다.

* * *

“네패스 백작 각하께서는 참으로 좋은 분이십니다. 게다가 마법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타이온 백작은 황금십자회 멤버들의 모임에서 내 칭찬이 나오는 것을 듣고 있었다.

당연히 원해서 듣는 건 아니고 갑자기 대화 주제가 그렇게 흘러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해 멤버들은 하나같이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단지 내가 잘 가르쳐줘서만은 아니다.

나에 대한 경계심을 가진 이들도 분명하게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도 가리지 않고 다가가는 정성을 보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피로는 크지 않으나 대신 정신적인 피로가 엄청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못 할 일인 건 아니지.’

목표가 확고해지니 이런 것쯤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위니스 덕분이다.

“저는 정식으로 네패스 백작 각하를 황금십자회의 일원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찬성입니다. 그는 훌륭한 마법사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아예 한 마법사가 나를 정식 멤버로 제안하자 지금껏 나에게 배운 마법사들이 서로 동의하며 나섰다.

그 압도적인 여론은 타이온 백작이라도 도저히 반대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에이든도 이런 방식이었다지?’

임시라지만 에이든에게 협회장의 자리를 준 것을 반대하는 원로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에이든이라는 영웅이 나올 수 있던 건 찬성의 여론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반대파의 목소리를 눌러버릴 정도로.

게다가 여론이 압도적이라면 반대파는 목소리를 내는 것마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명분이나 실적이 확실한데 생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면 그건 체면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귀족이라면 그런 부분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반대 의견 있는 사람은 없나?”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지요!”

유독 나를 잘 따르고 있는 멤버가 한 말에 타이온 백작의 표정이 똥 씹은 사람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타이온 백작은 차마 호통을 치지 못했다.

여론이 나에게 우호적인 상황에서는 아무리 그라도 어쩌기 힘들었으니까.

“참. 남부 연합은 요즘 어쩌고 있나?”

“서부로 진격을 앞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남부 연합은 서부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부를 안에서부터 침략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남아도는 군사력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덕분에 서부는 난리가 났다.

대영주들을 몰락시키고 자신들끼리 굳건한 단결을 자랑하던 서부의 중소영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전을 해오며 남부 연합 같은 거대한 세력과 맞선 경험이 없었다.

전형적인 오합지졸의 구성이다.

“자네가 황금십자회에 온 것으로 협회에서 항의하지는 않나?”

“그들이 뭐라고 해도 이젠 제가 알 바 아니지요.”

실제로 협회는 조용했다.

정확히는 아직 마족에 대한 단서를 잡느라 정신이 없는 쪽이지만.

“그래서 신경 안 쓰고 있습니다. 이미 저를 찾더라도 무시하라고 해두었지요.”

“그, 그런가?”

타이온 백작이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원래 그는 이러한 잔꾀에 놀아날 만큼 무능한 귀족이 아니었다.

게일 남작이 카이로스 백작의 전성기와 비견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였다.

마법도, 정치도 모두.

그러나 온갖 귀한 것들과 가르침을 아낌없이 내주는 나를 상대로는 타이온 백작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에 한계가 있었다.

“참, 오늘도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게다가 나는 다른 이들을 가르치면서도 타이온 백작에게 여유를 주지 않았다.

계속 그의 곁에 달라붙어 이런저런 대화를 걸거나 지식을 나누면서 수작을 부릴 여지를 차단해 버렸다.

그래서 타이온 백작은 어떻게든 나를 돌려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미안하군. 요즘 몸 상태가 영 아니라서…….”

“제가 약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괜찮습니다. 후배로서 선배님을 마땅히 챙겨드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거절하신다면 제가 무안해질 겁니다.”

거부하는 타이온 백작에게 기어이 값비싼 약재까지 떠넘겼다.

지금까지 이렇게 쏟아부은 지출은 아무리 남부 연합의 맹주라도 가볍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중부를 얻을 대가로는 한참이나 싼 편이었다.

실제로 남부 연합의 영주들이 나를 지원해 주기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나서고 있었고.

“네패스 백작. 이제 교류도 어느 정도 했고 잠시라도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그대는 혼자가 아니라 남부 연합을 이끄는 수장이야.”

타이온 백작이 나를 내보내기 위해 다시 한번 애를 썼다.

황금십자회의 멤버들도 수긍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마법이 좋아도 남부 연합의 맹주가 마법에 정신이 팔려 진영을 비우는 게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게다가 이렇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말한다면 거절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타이온 백작이 해준 옳은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되니까.

지금 내 영향력이 크다고 지금까지 타이온 백작이 이뤄놓은 것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아인 네패스로서의 무기를 꺼냈다.

“아, 그랬지요.”

눈앞이 뿌옇게 변하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내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모습에 귀족들이 당황했다.

“네, 네패스 백작?”

“죄송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 즐거워, 마치 가족들과 함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인은 피의 연회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다 극복하기도 전에 내전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배경을 지금까지는 써먹을 구석이 없었다.

영주로서 아랫사람들을 다스리는 데 약한 모습은 도움이 안 되니까.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마냥 천재적이고 완벽하게 보이던 이의 약한 모습은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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