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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88화 (8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8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88화

88화

6티어가 아니다.

자그마치 두 자릿수에 달하는 등급인 16티어였다.

5티어조차 불세출의 천재라고 표현되는 마당에 그 3배나 높은 숫자의 등급이라니.

나로서는 위니스를 측량조차 할 수 없던 게 도리어 당연하게 느껴졌다.

‘전략 따위를 짓밟는 존재.’

6티어나 7티어의 존재가 있다면 그 무력은 혼자 수천을 감당할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전략도 통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위니스는 그러한 경지를 아득하게 넘어서고 있었다.

티어가 올라갈수록 그 격차가 커진다는 걸 고려하자면 그녀는 단신으로 이 대륙을 멸망시키는 것조차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위니스만 가능한 것도 아니겠지.’

위니스는 임원 회의를 언급했다.

타르타로스의 임원이 몇 명인지는 모르나 회의를 한다면 적은 수는 아닐 터.

타로타로스에는 위니스와 맞먹는 수준의 괴물들이 존재할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해 주지. 타르타로스에서 나는 그럭저럭 실력자 축에는 들어가지만 최상급에는 한참 못 미쳐. 우리가 했던 게임을 기준으로 보자면 3티어나 되겠지.”

위니스는 자신이 게임을 기준으로 고작 3티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3티어는 본격적인 고티어의 영역으로 마족과의 싸움에서도 활약할 만큼 나름대로 뛰어난 실력이다.

소규모 영지의 싸움에서는 3티어 영웅의 보유 여부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영주들의 싸움이나 지역 규모의 싸움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강한 전력인 것은 맞지만 혼자서 전장을 뒤집을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한다.

하물며 범차원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타르타로스에서라면 그보다 더할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강하거나 대등한 존재는 타르타로스에 한정해도 수천이야.”

단신으로 대륙을 뒤집어버릴 존재가 자그마치 수천이라.

확실히 아득한 수준이었다.

위니스가 왜 그렇게까지 절대군주를 찬양하며 광신적인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그러한 세력을 본래라면 아무런 힘도 없을 지구인이 만들어냈다?

나처럼 그 과정에서 힘을 키웠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나도 낮은 위치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맨바닥에서 모든 걸 쌓아 올린 위업.

신화라고 표현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아는 지구의 어떤 신화에서도 그 정도로 엄청난 위업을 이뤄낸 존재가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이제 좀 알겠어?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는지를?”

“그래. 엄청 대단해.”

위니스보다 강한 존재라면 20티어에 달하거나 어쩌면 그마저 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위니스의 행동을 봤을 때 분명 20티어마저 상회하는 엄청난 존재들이 있겠지.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너무 터무니없다는 걸 알고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버렸다.

결국 절대군주는 지구인에 불과했다는 것.

바닥에서 정점까지 쌓아 올린 이가 있다는 것.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도전하지 않기에는 내가 가진 심장이 너무 뜨거웠다.

“그 정도는 되어야 도전할 보람이 있지.”

“이거 진짜 골 때리네?”

“이런 대답을 바라던 게 아니었나?”

내 대답에 위니스는 어처구니없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위니스에게 되물었다.

그녀가 기대하는 건 결국 이런 내 욕망이 아니냐고.

처음부터 그것을 보고 나를 선택했을 테니까.

“그래. 내가 선택한 거지.”

위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해봐. 어차피 만류할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이 세계부터 제대로 손에 넣어야 할 거야. 자신이 다스리는 행성 하나 없는 피라미가 감히 입에 담을 정도로 타르타로스의 이름은 값싼 게 아니니까.”

다음 순간 아무런 전조도 없이 위니스의 손에 새빨간 창 한 자루가 쥐어졌다.

그리고 그 창날은 정확히 내 심장을 겨누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널 살려둔 값을 해야 할 거야. 실망스럽다면 지금 몸뿐만 아니라 네 원래 육체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으니까.”

“그러지.”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위협을 받아도 어떤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이미 눈이 멀어버렸으니까.

“이미 대화는 안 통할 정도네. 너도 진짜 만만치 않구나?”

이런 내 상태를 알아차린 위니스가 이번에도 나를 질색하는 눈으로 보았다.

광신도에게서 이런 시선을 받고 싶지는 않은데.

“너만 할까?”

“입만 살아선. 더 질문할 거 있어?”

“별도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궁금한 것들은 대부분 풀린 상태였다.

나머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위주였지만 혹시 놓치는 게 있을까 싶어서 위니스의 의견에 맡겼다.

“내가 너에게 준 보주는 그 정도면 충분해서가 아니라 시시하게 무너지지 않기 원해서야.”

이만한 보주로도 승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확실하다는 소리였다.

“방심하지 말란 말을 복잡하게도 하는구나.”

“말귀는 잘 알아먹어서 좋네.”

이제 돌아가려는 듯 위니스가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뭐, 힘내 봐. 기대해 줄 테니까.”

다음 순간 위니스는 온데간데없이 모습을 감췄다.

바로 눈앞에 있었음에도 흔적도 없었다.

덕분에 마치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불쑥 찾아오더니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위니스가 돌아가고 얼마나 지났을까.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타르타로스의 거대함과 그것을 쌓아 올린 존재가 지구인이라는 것에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가 차갑게 식으며 나에게 들이닥친 위험이 떠올랐다.

‘일단은 내 앞가림부터 해야 할 때지.’

남이 이뤄놓은 영광에 매몰되기에는 내 상황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마족들은 그 자체로도 만만찮은 위협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배후에 가이스트라는 타르타로스에 준하는 조직이 있었다.

위니스는 타르타로스가 최고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게 광신도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건지 객관적인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설령 객관적으로 평가를 한 것이라도 범차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세력이라면 나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아득한 힘을 가졌을 테고.

‘일단 보주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아무리 열심히 모아봐야 천 단위를 넘기기도 쉽지 않던 게 거짓말처럼 무려 수십만 개다.

위니스는 이것 모두가 자신의 힘을 쪼갠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정도로 힘을 주는 것 정도는 그리 부담도 아니라는 듯이.

‘우선 등급부터 올려야겠지.’

왕국을 통일하더라도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보주를 요구하는 상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사고도 남았다.

그 정도로 많은 보주가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위니스는 가이스트가 얼마나 큰 힘을 마족들에게 주었을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쉽게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나에게 보주를 줬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레이드도 빡빡하게 해야겠군.’

장비의 수준도 지금보다 한층 더 높여야 한다.

루안이라는 장인은 있으나 아무리 루안이라도 지금 나에게 준 성천의 레비아탄 같은 수준의 장비는 쉽게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더 좋은 재료를 구해서라도 어떻게든 대량 양산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 혼자서 마족들과 싸울 수는 없으니까.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중부 원정이 코앞이다.

하지만 준비해야 할 건 산더미였다.

내 목표는 중부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대륙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생각을 좀 바꿔야겠어.”

그래서 예정된 중부 원정의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거대한 방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귀한 것들로 자신을 치장한 마법사들이었다.

“황금십자회 멤버 전원이 모인 건 무척 오랜만이군.”

가장 상석에 자리한 타이온 백작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멤버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중부의 내전이 워낙 다급하게 진행되었던 터라 대부분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못한 채 마나 파장으로만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는 1년 이상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반가운 멤버들도 다수 있었다.

“좋은 이유로 만났다면 더욱 반가웠을 텐데.”

타이온 백작의 말에 멤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들도 이번 만남이 영 좋지 못한 이유라는 걸 알고 있었다.

중부 내전에서는 승리를 거뒀고 친왕실파의 잔당들이야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에 있었다.

“확실히 남부 연합에 이어 북부 연합까지. 상황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가장 큰 위협은 남부 연합이었다.

말이 남부 연합이지 동부까지 장악해 버린 그들은 이미 크레시안 왕국 최대의 세력이 된 상태였다.

더구나 북부에도 새로운 위협이 생겼으니 북부 연합의 존재가 그랬다.

그나마 서부에서는 그럴듯한 거대 세력이 나타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중부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그래.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상황이 절대 긍정적이지는 않네.”

타이온 백작은 어리석지 않았다.

이대로 무리해서 침략해 올 다른 세력과 맞서봐야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중부가 풍부한 인구와 자원을 가졌다지만 적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내키지는 않지만 동맹을 했으면 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떤가?”

“동맹이라고 하시면?”

황금십자회의 멤버들이 의문을 표했다.

친왕실파 귀족들이 몰락한 지금 중부는 타이온 백작을 중심으로 통일된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황금십자회 자체가 모두 귀족이기에 그들의 세력은 이미 연합과 다름없었다.

즉 동맹을 하려면 상대는 외부 세력이어야 했다.

“서부와의 동맹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천만에. 그놈들은 누군가가 손에 넣게 될 전리품이나 다름없지.”

서부는 내전의 진행이 워낙 더뎠고 힘을 키운 독보적인 세력도 나오지 않았다.

오합지졸들이 서로 모여도 하나의 단일 세력만 못하다는 건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

사실상 서부는 다른 모든 지역으로부터 최약체 취급을 받는 중이었다.

그러니 동맹을 맺어도 메리트가 없었다.

“내가 말하는 건 남부 연합 또는 북부 연합일세.”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멤버들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타이온 백작이 이러한 제의를 꺼낸 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중부를 손에 넣은 입장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이 안정되는 게 더 빨랐으니까.

괜히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나누더라도 내실을 다지는 쪽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다른 세력들이 그럴 의향이 있느냐는 것이다.

크레시안 왕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중부의 땅을 탐내지 않을 이는 없을 테니.

“제안이 들어온 게 있습니까?”

“우리 쪽에서 먼저 해야겠지. 적들이 먼저 우리를 노리기 전에.”

타이온 백작의 말에 멤버들은 남부 연합과 북부 연합을 두고 저울질에 들어갔다.

세력을 보자면 남부 연합이 크다.

그러나 이게 꼭 좋은 소식만은 아니었다.

나누어야 할 것도 더욱 크고 거절당할 가능성도 높았다.

북부 연합은 다른 문제가 있었다.

“북부인들은 좀…….”

지역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북부는 특히 왕국에서 이질적인 땅이었다.

같은 언어권은 맞으나 통용되는 단어나 문화가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고 외모에도 차이가 있었다.

북부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거대한 덩치였으니까.

그들은 문명이 상대적으로 뒤처진 야만인들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귀족으로만 결성된 황금십자회로서는 북부인들을 반길 수 없었다.

“그놈들은 야만인입니다.”

“어떤 북부인들은 몬스터랑 맨몸으로 싸운다고 하더군요. 뭐 하러 옷까지 벗습니까? 무장한 기사가 훨씬 강한데.”

“천박한 이들입니다. 어리석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용하기 쉬운 건 사실이지요.”

반대되는 의견이 나열되는 도중에 한 멤버가 발상을 바꾸었다.

남부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귀족이다.

변방의 귀족이라는 인식은 있으나 어쨌든 문화나 언어적으로는 딱히 차이가 없고 외적으로도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기에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다.

“남부 연합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르지요. 그들은 간악한 계략을 쓸 줄 아니까요.”

“흠. 그 말은 일리가 있군요.”

“쉽게 믿을 수 있는 작자들은 아니지요.”

아무리 명예와 명성을 등에 업었더라도 결국에는 적.

그들이 친왕실파 귀족들과 싸운 건 상대가 무례하거나 천박해서가 아니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네.”

북부 연합과 남부 연합 모두 손을 잡기에는 서로 다른 장단점이 있었다.

북부 연합은 세력은 작지만 그만큼 자신들이 먼저 동맹을 제의해서 내줄 것도 적을 것이다.

또 그들은 정쟁에 약해서 이용해 먹기에 쉬울 거라고 생각되었다.

반대로 남부 연합은 세력이 커서 동맹을 맺으면 안전은 확보되는 셈이지만 그걸 믿을 수가 없었다.

설령 안전하더라도 내주어야 할 게 얼마나 될지도 예상할 수 없었고.

“동맹을 맺을 거라면 약하더라도 믿을 수 있는 세력과 맺는 쪽이 맞겠지요.”

“아무리 그래도 북부인들은 싫습니다. 그놈들은 지저분해요. 심지어 귀족들조차 같은 귀족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 감정을 내세울 문제가 아닙니다.”

“귀족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품위라는 게 있어요.”

회의는 한참이나 진행되었다.

워낙 장단이 뚜렷하다 보니까 섣불리 결론이 나지 않았고 그만큼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그러던 도중 회의를 방해하는 소음이 있었다.

“지금은 중요한 회의 중이다.”

회의실에 들어온 난입자의 모습에 타이온 백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바깥에 세워두었던 마법사였다.

“중요한 사안이라 서둘러 보고를 올리라고 헥스 단장이 말했습니다.”

“헥스가?”

헥스는 타이온 백작의 사촌 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이온 백작을 잘 따라서 백작 자리를 두고 다퉜던 친동생들보다도 더 애틋한 상대였다.

비록 마법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대신 기사로선 그럭저럭 괜찮은 자질이 있어 기사단장 자리에 앉힌 상태였다.

그런 헥스가 저렇게 말했다면 정말 중요한 일일 것이다.

“무슨 일인지 말하라.”

타이온 백작의 허락에 마법사는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렸다.

“남부 연합으로부터 동맹 제의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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