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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87화 (87/250)

VVIP 영주님의 품격 87화

VVIP 영주님의 품격 87화

87화

“나보고 놈들을 막으라고?”

“네가 마족을 막으면 그 시점에서 가이스트는 개입할 명분이 없지. 놈들의 계약은 대륙을 정복할 힘을 지원하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정복에 실패하면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못한 셈이잖아?”

그렇긴 했다.

마족들이 계약을 한 것은 원하는 게 있어서이고 가이스트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족들이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마족의 책임도 있지만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못한 가이스트 역시 문제가 있다.

범차원적인 세력이 도와줬는데도 이기지 못했다면 그 지원이 제대로 이뤄진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그런 상식적인 게 그러한 조직들에게도 통용될 줄은 몰랐다.

“그런 걸 놈들이 납득할까?”

“그 압박은 우리 타르타로스가 할 일이야. 사실 우리 타르타로스가 계약자를 차원마다 만들어두는 건 가이스트 같은 놈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위니스는 내 앞에 손을 흔들었다.

자세히 보니 위니스의 손에는 명함이 한 장 들려 있었다.

범차원적 기업 타르타로스 소속 이사라고 적힌 명함이었다.

“아까 말해서 알겠지만, 우리 타르타로스는 절대군주를 따르는 엄연한 국가야.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그래야 다른 차원에 간섭하기 쉽거든.”

“명분 때문에 기업을 흉내 낸다고?”

“그래. 애초에 국가라는 것도 기업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어. 상하로 계층이 나누어진 조직은 다 거기서 거기거든. 그 반대도 성립하고.”

위니스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명함에서 이사라고 적힌 부분을 가리켰다.

“대기업의 이사는 공무원으로 어느 수준인가? 여기서 기업과 국가의 비교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사실 둘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증거 아니겠어?”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지금 네패스 백작가라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비슷했으니까.

규모가 작으면 사람이 적어서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지만 딱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가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궁금한 게 더 남아 있어?”

“타르타로스에서 나에게 추가적인 지원 같은 건 없는 건가? 마족들이 외부의 개입으로 힘을 받았다면 그 수준이 평범하지 않을 텐데.”

“두 가지 정도는 지원해 줄 수 있지.”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진행합니다.]

위니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에 새로운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우선 마족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이전에는 안 됐지? 넌 마족이 게임에서 등장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고 추측했던 모양인데 그건 아니야.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건 가이스트의 개입 때문이거든.”

“그럼 지금 하는 업그레이드는 그 녀석들의 영향을 무시하고 정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건가?”

“그래. 그리고 두 번째.”

[보주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주가 지급되었습니다.]

[보주가 지급되었습니다.]

순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모두 똑같았다.

보주가 지급되었다는 것.

지금까지 보주는 일일 퀘스트와 같은 것들을 해야만 얻을 수 있었는데 위니스가 갑자기 나에게 보주를 퍼준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VVIP치고 화끈하게 돈 쓰는 맛이 없었지? 뭐, 시험을 위해서 어느 정도 제한을 뒀으니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시험이 문제가 아니게 됐으니까.”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힘을 주는 건 엄연한 외부 세력의 개입이지. 그렇지만 이미 준 힘을 좀 더 보태는 건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미미해. 어차피 이 보주라는 건 이 세계에 실존하는 물건이기도 하고.”

위니스의 손바닥에서 갑자기 보주가 솟아났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설마 네 힘으로 보주를 만든 건가?”

“보주는 생물이 품고 있는 힘이 응축된 덩어리야. 원리를 안다면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게 아니지.”

“그럼 지금 들어온 보주들은 설마?”

“내 힘을 잘게 쪼개서 굳힌 거야.”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이 세계에서 알아본 보주라는 건 절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제작에 막대한 시간이 필요했다.

강력한 존재가 품은 마나에서 티끌 같은 불순물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사람으로 치면 담석 같은 거다.

신비한 외관과 보주가 품은 가치 때문에 누구도 업신여기지는 않지만.

“뭐, 이건 어디까지나 보여주기고 진짜는 시스템에 지급된 것들이니까. 확인해 봐.”

위니스의 말에 보주가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지금까지 내가 모아왔던 보주들을 아무리 합치더라도 발끝에도 닿지 못할 무시무시한 양이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돈으로 상대를 후려치겠다는 강력한 집념이 느껴졌다.

“이만한 양이 필요할 정도인가?”

오죽하면 공짜로 받은 입장에서 이런 소리까지 했을까.

“가이스트가 어느 정도의 힘을 지원했는지는 나도 몰라.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야지. 우리 영역을 가이스트 놈들에게 넘겨줄 마음은 없거든.”

“영역 다툼?”

“실리보다는 자존심 문제야.”

자존심.

그렇게 말하는 위니스의 눈가에 강렬한 투지가 불타고 있었다.

“감히 타르타로스가 손대고 있는 차원에 끼어들었다는 건 우리 타르타로스를 무시했다는 소리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 않나?”

“절대 아니야. 너야 모르겠지만 각 차원마다 선점한 세력들이 표시를 해두거든. 범차원적 세력이라면 모를 수가 없지.”

즉 가이스트가 마족들에게 개입한 것 자체가 타르타로스를 도발한 것과 다름없단 소리였다.

그 때문에 위니스뿐 아니라 타르타로스 전체가 상당히 분노한 모양이고.

“주제를 모르는 것들이야. 마음 같아서는 아예 이걸 빌미로 전쟁이라도 하고 싶은데.”

“전쟁까지 할 정도의 문제야?”

전쟁이라는 말에 당황해서 묻는데 위니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조금 곤란하기는 해.”

“역시 전쟁은 그렇지?”

“아직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거든.”

“준비?”

곤란하다면서 막상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위니스는 전쟁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궁금하다면 어디 이 세계에서만 통용될 자리지만 절대군주가 되어 보라고. 그때가 되면 너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될 테니까.”

자격이란 말에 직감적으로 위니스가 언급한 전쟁이 그녀가 나를 시험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엇을 꾸미는 걸까?

알려줄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묻고 싶었다.

“나를 통해서 뭘 얻으려는 거지?”

“지금 넌 들을 자격이 없어.”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우회해서 묻기로 했다.

“그럼 왜 나를 선택했지?”

위니스가 나를 높이 산 부분은 내심 기쁘다.

그녀는 평범한 게이머 따위가 아니었고 엄청난 존재였으니까.

그런 위니스가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건 내가 그만큼 재능이 있는 존재란 소리일 것이다.

비록 아직 시험을 통과한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봤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위니스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보다 위에 있던 랭킹 1위다.

더구나 평범한 지구인이었던 나와 비교할 수 없는 타르타로스라는 조직의 일원이며 지금의 나로서도 감히 어쩌지 못할 힘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나를 시험한다는 건 위니스 자신으로서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거든.”

“닮아?”

“뭐,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한 번쯤 시험을 해보고 싶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위니스는 자신만 아는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왜 내가 지구에 있었다고 생각해?”

“알 턱이 있나?”

나에게는 아직 위니스나 타르타로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이번에 조금 듣기는 했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구에서 6개월이나 게임을 했지. 보통 직장인이 그럴 수 있을까?”

“아니.”

절대군주는 절대 잠깐 시간을 내서 할 만한 게임이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깰 때는 그럴 수도 있지만 절대군주에는 유저끼리의 경쟁도 어느 정도 있었다.

위니스가 랭킹 1위를 유지하려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꾸준하게 게임을 해야 했다.

“내가 지구에 있던 건 장기 휴가를 나갔기 때문이야.”

과연 범차원적 기업이라고 할까.

휴가를 다른 차원으로 떠나다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지구는 우리 타르타로스에서 휴가를 떠날 정도로 메리트가 있는 곳이 아니지. 그곳보다 더 좋은 관광에 특화된 차원은 우주에 널렸거든.”

“그럼 왜?”

더 좋은 곳이 있는데 구태여 지구를 골랐다는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단 소리다.

“그분의 고향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

“그분?”

명함에는 이사라고 적혀 있었고 임원 회의에도 참가할 정도로 위니스는 타르타로스 내에서 나름 높은 위치에 속하는 거 같았다.

그런 위니스가 공경하는 모습을 보인 대상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추측이다.

지구와 타르타로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를 가진 문명이니까.

“설마 절대군주를 말하는 건 아니지?”

“왜 아니겠어?”

위니스의 긍정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타르타로스를 지배한다는 절대군주가 지구 출신이라고?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지구는 기껏해야 인공위성 몇 개 띄우는 게 전부인 행성이다.

차원을 넘나드는 거대한 집단의 지배자가 지구 출신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후후후. 글쎄?”

위니스가 머리를 기울이자 풍성한 금빛 물결이 휘날렸다.

“평범한 지구인이었던 그분이 마침 우리 차원에 표류했던 건 우연일까 운명일까.”

“표류?”

위니스는 절대군주가 표류해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다도 아니고 다른 차원에서 표류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평범한 지구인이?

“차원의 구멍이라고 어쩌다 가끔 두 차원을 잇는 통로가 만들어져. 하지만 극히 드문 일이라서 보통은 문헌으로나 볼 수 있지.”

설명을 하면서 위니스는 두 눈을 감았다.

마치 절대군주의 여정을 떠올리려는 듯이.

“절대군주는 그 차원의 구멍에 휩쓸린 건가?”

“그래. 아무런 권능과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 아무 지원도 없이 바닥부터 시작해 타르타로스를 이끄는 절대군주가 되기까지. 그건 이 우주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신화였지.”

절대군주의 과거를 설명하면서 위니스는 마치 접신이라도 된 무당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감격과 전율에 환희하며 심지어 눈물까지 쉼 없이 흘렸다.

그야말로 광신도 그 자체였다.

“왜 그분이 절대군주라 칭해지는지 알겠지? 바닥에서 시작해 정점에 오른 존재. 그러한 분의 고향을 찾는 건 신을 좇는 자들이 성지를 방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하지만 지구는 그냥 행성일 뿐이야.”

“나도 그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멀리 달아날 필요 없다고.”

위니스의 말에 나는 민망함을 느꼈다.

사실 위니스가 눈물을 흘릴 때 사이비 종교인을 보는 거 같은 거부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내가 너를 시험해 보려는 건 그 때문이야. 그나마 네가 그분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했거든.”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내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그런 존재가 한 행성에서 둘씩이나 나올 확률이란 건 계산조차 불가능하게 낮은 일이겠지.”

위니스의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그녀가 정말로 그런 일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어떠한 기대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니스는 나에게서 절대군주라는 존재의 그림자를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나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와 비견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더 나쁜 상황에서 터무니없는 일들을 해낸 것 같으니까.

하지만 나와 같은 지구인이라는 시점에서 이미 넘어가고 말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가슴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 타르타로스와 같은 범차원적인 세력이 사실은 어느 지구인의 손에서 시작된 거라고?

한없이 아득한 무언가라고만 생각된 것이 사실은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린 것이라고?

물론 절대 단시일에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인간의 수명으로는 불가능하겠지.

그러나 타르타로스의 기술은 분명 인간의 수명에 제약되지 않을 수준으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네가 나에게 절대군주가 되라고 했던 건 게임에서 말하는 절대군주가 아니었군? 넌 너의 군주와 대등한 존재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거야.”

난 확신을 담아서 물었다.

힌트를 이 정도나 줬는데 모를 수 없었다.

“하, 이건 실수했네. 그분의 위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어.”

위니스는 실수했다면서도 딱히 아쉬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아서 어쩔 거냐는 듯 업신여기는 기미를 보였다.

“그래, 맞아. 난 네가 그분의 발끝에라도 닿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어. 그 이유까지는 알려주지 않을 테지만.”

“그건 궁금하지도 않아.”

위니스가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과연 그럴 만한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

지금까지는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

위니스와 타르타로스라는 절대적인 벽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그 벽을 세운 것이 결국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건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해주지. 진짜 절대군주라는 거.”

“제대로 이해한 거야? 너 따위가 함부로 입에 담을 만한 위치가 아니라고?”

“그래 봤자 나와 같은 지구인 아니야?”

“푸핫!”

위니스는 내 말이 우스웠는지 배를 잡고 끅끅거렸다.

“넌 몰라. 그분이 어떤 것들을 넘어서 지금의 영광을 이룩했는지를.”

“그러는 너는 내 미래를 알 수 있어? 절대군주가 너희 세계에 처음 표류했을 때 그의 성공을 누가 확신한 적이 있어?”

위니스의 눈꼬리가 살며시 올라가는 게 보였다.

그녀는 절대군주에 한정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도전은 자유지. 하지만 넌 알아야 해. 그분이 쌓은 것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영웅 정보가 갱신됩니다.]

위니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사람의 영웅 정보가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위니스의 영웅 정보였다.

그리고 난 거기에 나온 위니스의 등급을 보고 시선을 빼앗겼다.

“미친…….”

절로 욕이 나왔다.

고작 두 자릿수의 숫자가 이 정도로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으니까.

[등급 : 16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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