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84화 (8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8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84화

84화

“하버 자작!”

곧장 마이어드 후작이 목소리를 높였으나 하버 자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이어드 후작 각하. 이 후작가와 저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일입니다. 부디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하버 자작의 말이 옳은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기사들을 폭행한 문제를 그냥 넘길 수는 없습니다.”

가신 대부분이 그런 하버 자작의 발언을 지지해 주었다.

특히 최근에 새로 가신이 되었을 기사단 소속의 가신들이 하버 자작을 적극적으로 따랐다.

마이어드 후작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가신들이 자신의 의견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발언을 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라 이건가.’

가신들의 말에도 틀린 부분은 없지만 먼저 무례를 저지른 쪽에서 이를 지적하는 건 화해할 생각이 없단 소리였다.

하물며 나에게 직접적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마이어드 후작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들이 지지하는 형태라면 몰라도 이건 완전히 후작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아무래도 후계자가 없는 게 치명적이었겠지.’

마이어드 후작의 뒤를 이을 사람이 있다면 절대 이런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후계자의 공백이 가져온 참사였다.

“모두 같은 생각인가?”

마이어드 후작은 최후통첩을 하며 가신들을 훑었다.

말년에 이르러 보게 된 가신들의 속내에 기분이 상당히 상한 듯했다.

“하버 자작님, 모든 것은 후작 각하께서 결정할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네패스 백작님께 사과하라 말할 수 있습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가신 모두가 하버 자작의 뜻에 찬성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게일 남작과 바이든 자작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게일 남작의 동생과 바이든 자작의 조카가 하버 자작을 나무랐다.

그러나 가신의 숫자로 보자면 2:6에 불과했다.

‘부인들 쪽도 마찬가지겠군.’

마이어드 후작이 들인 많은 부인과 첩들도 가신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게 그녀들의 출신 가문을 따지고 보면 대부분 마이어드 후작가의 가신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이어드 후작가는 긴 세월 이어진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그만큼 엄격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우세한 분위기에 하버 자작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걸렸다.

마이어드 후작은 그런 하버 자작을 노려보다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그간의 정 때문에 그대의 잘못을 눈감아 준 탓이야.”

“후작 각하?”

마이어드 후작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하버 자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는 단지 후작가의 명예를 위해…….”

“서기관.”

마이어드 후작은 하버 자작의 말을 끊어내고 서기관을 불러냈다.

대화를 통해 차근차근 설득한다는 이전의 계획을 마이어드 후작이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실력 행사를 하겠지.

마이어드 후작의 부름에 나타난 서기관이 곧장 유언장을 꺼내 들었다.

“모두에게 읽어주어라.”

“알겠습니다.”

서기관은 절제된 음성으로 유언장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앞에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심정이 잠깐 나왔고 거기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유언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사자가 살아 있는 유언장이라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유언장의 힘은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가문을 이끌어갈 후계자를 지명하겠다.”

유언장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당황했다.

마이어드 후작의 후계자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제 와 갑자기 후계자가 나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후계자라니?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껏 후계자는 없지 않았습니까?”

수십 년 동안 비어 있던 자리를 갑자기 채우겠다는 것에 가신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마이어드 후작의 편을 들던 가신들마저 같은 반응이었다.

“아니, 대체 누가 후계자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나의 남아 있는 혈족이다. 그리고 이 왕국 누구보다 고귀한 신분이지.”

남은 혈족이란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마이어드 후작가를 이끌어갈 후계자는…….”

서기관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유언장을 읽는 서기관마저 후계자가 누군지는 모르고 있었기에 상당히 당황하는 눈치로 마이어드 후작을 보았다.

“계속하게.”

그러나 당황과 별개로 행동을 멈출 순 없었다.

마이어드 후작의 말에 서기관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유언장에 적힌 후계자를 발표했다.

“크레시안 왕가의 고귀한 혈통을 잇는 레일리 왕녀 저하십니다.”

“왕녀 저하라고?”

“이게 무슨?”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름 앞에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이들과 당사자를 제외하고.

또각.

충격에 빠진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듯이 레일리는 사뿐사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나서는 이유를 깨달은 모든 이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설마 저분이?”

마이어드 후작은 의혹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왕녀 저하를 뵙습니다.”

가주인 그가 고개를 숙였다.

본래라면 이것만으로도 어떤 의심이 없어야 한다.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곧장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나라의 왕족은 피의 연회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콜린 남작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그에 레일리가 콜린 남작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지금껏 내가 레일리에게서 본 적 없는 더없이 싸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그 기세에 콜린 남작의 표정이 새하얗게 변했다.

‘역시 왕족은 왕족이군.’

기세 하나만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들 수 있는 위압감.

저러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이 필요했다.

하물며 레일리의 외모는 위압감과는 거리가 멀기에 더욱 그렇다.

“후작 각하, 저분이 정녕 왕녀 저하시라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마이어드 후작가, 크레시안 왕가가 아닙니다.”

기가 눌린 콜린 남작을 두고 하버 자작이 다급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는 레일리의 정체를 의심하지는 않았으나 그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에는 의심을 보였다.

“서기관.”

마이어드 후작은 다시 서기관을 불렀다.

이에 서기관은 황급히 책 한 권을 꺼냈다.

세월의 흔적이 상당하지만, 재질부터 꾸밈까지 고풍스러운 느낌이 확연한 책이었다.

‘가계도로군.’

귀족 가문이라면 초대 가주부터 시작해서 그 혈통을 기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이어드 후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녀 저하의 모친이신 크리스텔 왕비 마마는 나의 사촌이었네.”

마이어드 후작은 가계도를 증거로 삼아 크리스텔 왕비와 자신의 혈연관계를 설명했다.

이를 증명하는 건 마이어드 후작가의 가계도만이 아니었다.

따로 독립했다는 사촌 가문의 가계도가 튀어나와 마이어드 후작의 증언을 뒷받침해 주었다.

“따라서 레일리 왕녀 저하께서는 후계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설명이 끝나자 적막이 감돌았다.

가신들은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면서도 이미 울상을 짓고 있었다.

후계자가 된 레일리가 그들의 작태를 두 눈으로 목격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수 없었다.

“그랬던 거군요!”

그때 하버 자작이 갑자기 반색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표정이 완전히 관리되지 않은 누가 봐도 억지로 만들어낸 미소였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후계자가 나왔으니 가문의 대가 끊어질 걱정도 없고, 게다가 고귀한 왕가의 핏줄이시니!”

뒤늦은 아부였다.

레일리와 마이어드 후작의 표정은 이미 싸늘하게 변한 상태였다.

그러나 하버 자작은 추하게도 가식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그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그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 늦었지만 인사 올리겠습니다. 전 마이어드 후작가의 행정관을 맡고 있는 하버 자작입니다. 오랜 세월 후작가를 위해 헌신해 온 몸으로서 왕녀 저하께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 너무나도 비굴한 모습에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으면 안 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어느새 내 몸이 들썩거리고 있었다.

“푸흐흐!”

이 세계에서 본 가장 어처구니없는 광경이다.

“풉!”

천만다행히도 이 광경이 웃긴 게 나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레일리도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몇몇 이들에게서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에 대한 비웃음에 하버 자작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지 하버 자작은 여전히 억지 미소를 유지했다.

“전 쓸모가 많습니다. 왕녀 저하께서 가문에 적응하고 나아가 왕국의 내전을 진압해 왕가를 재건할 때까지 제가 미력하나마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웃음이 멈춘 레일리가 하버 자작을 응시했다.

“하버 자작.”

“네!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왕가의 재건은 없어요.”

“네?”

하버 자작도 더는 미소를 유지하지 못했다.

아무리 뻔뻔하게 대처하려고 해도 레일리의 말은 그의 예상을 훌쩍 벗어난 상태였다.

“크레시안 왕가는 이미 끝났으니까요.”

“왕녀 저하께서 이렇게 살아 계시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레일리가 나를 돌아봤다.

그 시선에 부응해 앞으로 나서주자 이번에는 레일리가 나에게 머리를 숙였다.

“마이어드 후작가의 후계자 레일리 크레시안이 네패스 백작님께 인사드립니다.”

놀라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제야 사람들은 떠올렸다.

바이든 자작의 조카로 위장했던 레일리가 나와 약혼한 사이라는 것을.

쿵!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콜린 남작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는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다.

* * *

“일이 급해졌습니다.”

기세 좋게 후계자를 세우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가 많은 방식이었다.

가신들과 부인들에게 레일리의 존재가 알려졌으니.

더구나 나와의 약혼 역시 주목받을 것이다.

“중부 원정을 서둘러야 합니다.”

아직은 마이어드 후작이 살아 있지만, 곧 레일리가 후작가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는 아직까지 소수에게만 알려졌고 대대적으로 알릴 수도 없다.

일단 왕녀라는 점은 감추고 마이어드 후작과 혈족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들키는 건 시간문제겠지.’

영원한 비밀은 없고 레일리의 존재는 대영주들뿐 아니라 아랫사람들에게도 의문을 남기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알아도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중부를 점령해야 했다.

“내 탓일세. 괜히 신경 쓰이게 했군.”

마이어드 후작은 이번 일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빠진 건강 상태인데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거 같았다.

‘스스로 놔버린 건가.’

마이어드 후작은 이미 모든 걸 놔버린 사람 같았다.

그 때문일까.

마이어드 후작에게서는 살아 있는 사람 특유의 생기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이 마이어드 후작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겠다.

“부디 왕녀 저하를, 내 마지막 가족을 잘 부탁하네.”

마이어드 후작이 내 손을 붙잡았다.

가볍고 앙상하게 마른 손.

그야말로 살가죽만 남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온기 없이 차가웠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마이어드 후작의 손을 잡아주고 레일리를 보았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남아서 후작가를 장악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미리 대기시킨 릴리아나와 티아라를 불렀다.

3티어 영웅이 둘이나 빠지는 건 큰 손실이지만 후방에 불안을 남길 수는 없었다.

“무력을 쓸 일이 없는 게 최선이겠지만 필요하다면 마음껏 쓰십시오.”

이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지킬 테니까.”

그 와중에 티아라의 목소리가 그녀의 이미지와 맞지 않게 매우 밝았다.

전쟁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거 같았다.

“일 끝나면 바로 와야 할 거야.”

그 모습이 왠지 마음에 안 들어서 경고를 남겼지만 티아라는 전혀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단시일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레일리의 능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내가 중부를 점령하는 데 그리 시간을 쓸 거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부 원정도 안정화가 문제였지 점령하는 건 금방이었으니까.

게일 남작의 정보에 의하면 중부는 동부보다도 손쉬운 상대였다.

물론 변수는 언제나 있겠지만.

‘설마 또 마족이 나온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무렴 어떤 변수라도 마족만 할까 싶었다.

“미안해요, 아인. 나 때문에 계속 위험한 일을 서두르게 해서.”

이번에는 레일리가 내 손을 잡아왔다.

가볍지만 앙상하지 않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어차피 빠르든 늦든 제가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이 세계에 온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 목표를 위해서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번 일 역시 결국에는 내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감사 인사를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편안하군.’

레일리가 스스로 고개를 숙인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있다.

그녀가 마음속 깊이 들어오는 게 무섭기도 했다.

감정에 휘둘려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는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 * *

회랑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일렁이는 불빛 너머로 얼굴이 가려진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최근에 들어온 소식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차드가 죽었다.”

상석에 앉은 이의 말에 참석자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제대로 확인한 건가?”

“확인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들까.”

상석에 자리한 이가 품에서 주먹 정도 크기의 보주를 꺼냈다.

특이한 빛을 발하는 일반적인 보주와 달리 그가 꺼낸 보주는 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이는 서로의 신변을 확인하기 위해 특별한 마법을 부여한 보주로 대상이 살아 있다면 밝게 빛나고 있어야 했다.

즉 보주가 어둡다는 건 상대가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어차피 약한 놈이 죽은 건데.”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제 이 땅에 남은 동족이 몇이나 된다고.”

“어이구. 우리가 언제부터 동족애가 있었어?”

그러나 누구도 이 일에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아까운 전력을 잃은 것에 아쉬워할 뿐.

“약한 녀석이 죽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러게 그런 약한 놈은 받아들이지 말자고 했잖아. 괜히 마법사들의 경계심만 샀다고.”

한 인영은 투덜거리며 오차드를 욕했다.

오차드의 존재로 인해서 자신들에 대한 마법사 협회의 추적이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크레시안 왕국에서는 손을 떼는 건가?”

“그럴 수는 없지.”

누군가의 물음에 상석에 앉은 이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비록 차질이 빚어지기는 했으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스페어를 준비한 것이니까. 스페어를 써서 계획을 이어간다. 그 일은 말릭, 네가 맡도록 해라.”

지명을 받은 이는 투덜거리던 인영이었다.

“에엑? 내가 오차드의 뒷바라지나 해야 돼?”

“대신 기회를 주마.”

“기회?”

“오차드를 죽인 인간에게 복수해도 좋다.”

복수라는 말에 말릭의 눈빛이 가늘게 휘었다.

딱히 오차드의 죽음에 분노했거나 복수할 마음이 든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복수에 흥미를 보이는 건 오차드를 죽인 상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정말 허락해 주는 거야? 웬일이야? 협회 놈들에게 들킬지도 모르는데.”

“이번에 오차드를 죽인 인간이 신경 쓰여서 말이야. 미리 싹을 자르는 게 좋겠어.”

“그렇게 말할 정도의 상대가 있어?”

말릭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오차드가 죽었다고 해도 협회의 마법사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에이든에 비견될지도 모르겠군.”

“그거 조금은 재미있겠는데?”

말릭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