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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78화 (7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7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78화

78화

또 내 기사들이 앞에서 오차드를 제대로 붙들지 못했다면 내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차드의 신체 능력은 마법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나도 마법사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자크론을 스승으로 들인 것이지만 3티어 몇 명을 상대하는 것이 한계였다.

그마저 거리가 멀 때의 이야기고 만일 가까이 붙게 된다면 절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넌 정말 좋은 자질을 가졌다.”

무서워서 그렇다는 대답을 자크론은 오히려 크게 반겨주었다.

“에이든 그 녀석은 자기 목숨을 아끼는 법을 몰랐지. 남을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영웅. 듣기에는 좋지만 그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자크론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분명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 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오차드와의 전투는 마족을 철저하게 상대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기사들에게 있어서도 그랬다.

“그나저나 앞으로 일이 곤란해지겠구나.”

“무슨 말입니까?”

자크론의 시선이 오차드를 향했다.

오차드는 이제 완전히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마법사 협회가 오기 전에 녀석을 처치해 버렸지 않느냐?”

“아.”

아까 느꼈던 마나 파동으로 봤을 때 협회의 지원은 도착했지만, 아직 합류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마족의 출현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조용히 덮을 수는 없는 일.

마법사 협회는 이곳에서의 일을 하나도 숨김없이 공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마족을 쓰러트린 내 실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지.’

지금까지도 충분히 많은 명성을 떨치기는 했으나 내 마법사로서의 역량에 의문을 가질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루퍼스만 해도 죽었다는 것만 알려졌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굳이 소문을 내지 않아 묻혔고, 자크론과의 싸움은 유명하지만 둘 다 죽지 않았기에 전력이었는지를 두고 의문을 가질 여지 정도는 있었다.

그러니 티아라가 나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배짱을 부렸던 것이고.

그러나 마족을 물리친 일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마족의 무서움을 제일 잘 아는 건 그들과 맞서봤던 자들일 테니까.

협회의 도움도 없이 마족을 죽였다는 게 알려진다면 대영주들조차 내 힘을 경시하지 못할 것이다.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마족이 나타날 줄은 누구도 몰랐던 데다가 그 마족은 실력을 숨긴 채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나도 기사들도 모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싸운 끝에 간신히 이긴 것이다.

“아니면 스승님께서 물리친 것으로 하시지요?”

내 명성은 분명 대단한 수준이지만 단시일에 쌓은 것이었다.

반면에 자크론의 악명은 아주 예전부터 차근차근 쌓여온 것.

거기에 자크론이 나에게 진 것은 이후 사제 관계를 맺은 점에서 고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그러니 자크론의 악명으로 내 명성을 묻어버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원로가 왔다. 바보가 아니라면 네 수준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크론은 이런 내 희망을 짓밟았다.

일전에 그는 마나가 감지되지 않도록 숨기는 방법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이라면 모를까 마나를 개방하고 전투를 시작하면 들킬 수밖에 없다.

내가 평소에는 마법사를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마법을 쓰면 알아차리듯, 협회의 원로도 전투를 보며 내가 어느 정도의 마나를 품었는지 알아봤다는 것이다.

“그럼 마족이 생각보다 약했다는 변명도 안 통하겠군요.”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조종한 것만으로 이미 마족의 힘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그러나 남을 조종하는 능력은 뛰어나도 개인의 전투력은 형편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는 있다.

문제는 협회의 원로가 도착한 이후에도 마족과의 전투가 진행되었으니 마족의 수준도 원로에게 파악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당연하지. 협회의 모든 마법사가 너를 주목할 거다. 원로들조차 이제 너만 바라보겠지. 유망주 따위가 아니라 자신들을 능가하는 마법사로 말이다.”

원로를 능가하는 마법사.

거기에 조금 의문을 느꼈다.

원로와 비슷하다고 취급되는 자크론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자부하고는 있다.

그러나 사실 원로 마법사의 무서움은 마나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협회의 원로라는 자리가 마나만으로 어찌할 만큼 가볍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원로들은 협회에 보관 중인 비전 마법들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선대 마법사들이 남긴 비전 마법을 익힐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조합해 새로운 마법을 만들 가능성도 있단 소리였다.

실제로 원로인 플레턴은 자신만의 비전 마법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마법사였다.

보통 한 마법사가 일평생을 바쳐 만드는 게 비전 마법임을 생각할 때 이는 터무니없는 권력이었다.

더구나 어느 한 분야에 특화되어 있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마법을 갖추었고.

때문에 이제 자크론을 확실히 능가하게 된 나도 플레턴을 상대로 100퍼센트의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옛날에야 그랬지.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그런데 자크론은 이런 내 의견을 부정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즘은 아니라니?”

“마족과의 전쟁으로 공석이 난 자리가 어디 한둘이었겠느냐? 지금 원로들 대부분은 싸우는 것 말고는 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플레턴이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알았지만 동등한 수준의 원로가 몇 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마법사 협회를 높이 사왔다.

등급이 높은 내가 어지간해서는 이기겠지만 적어도 허를 찌를 만한 독침은 품고 있다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부정당해 버린 것이다.

“지금 협회에는 플레턴 같은 전통적인 마법사가 오히려 특이 케이스가 되어버렸지.”

마족과의 전쟁에서 협회의 원로들도 많이 죽고 그 빈자리를 급하게 채우다 보니 과거와 비교하면 원로들이 특정 성향으로 편중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그들이 전투에는 능할지 모르나 플레턴 같은 변수 창출 능력은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더구나 그 플레턴마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니…….”

자크론의 눈빛에 스산한 빛이 감돌았다.

“네가 협회를 통째로 먹어도 막을 수 있는 마법사가 없을 거 같구나.”

“제가 협회를 말입니까?”

마법사 협회는 분명 유용한 집단이었다.

그러나 중립에 목숨 거는 그들의 성격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분명 탐은 나지만 영주이자 귀족인 내가 협회를 손에 쥐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크론의 말을 들어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협회의 원로라는 이들 수준이 자크론이 말한 것처럼 싸움에만 치중되어 있다면?

마나가 훨씬 많은 내 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

게다가 그나마 협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인 플레턴은 내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걸 두고 볼 리가 없는데.’

플레턴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으나 동시에 나에 대한 견제도 함께 해왔다.

나를 마족과의 전쟁에 첨병으로 쓸 계획이겠지만 그게 협회를 넘겨준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루안을 영입했을 때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루안이 그랬듯이 마법사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따르려고 한다면 플레턴이 그것까지 반대하려고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행보가 이를 증명했다.

플레턴이 가르쳐준 마법인 마나 쇼크는 내가 마법사들을 생포하는 데 크게 일조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수십 번의 전투에서도 협회로부터 원한을 산 일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포획되어서 곱게 풀려나거나 내 밑으로 들어와 종군하고 있었으니까.

“하…….”

마나 쇼크를 가르쳐준 이유를 같은 협회 소속이니까 해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

플레턴은 처음부터 나에게 기회를 계속 주고 있었다.

마법사 협회가 스스로 나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만들어보라고.

단지 내가 이를 깨닫지 못했을 뿐.

“스승님.”

“뭐냐?”

“에이든이란 사람은 어떻게 협회장이 되었습니까?”

협회장의 자리는 협회 역사 내내 공석이었다.

그런 협회장의 자리를 에이든이란 사람에게 굳이 마련해 준 것에는 분명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협회의 기나긴 전통을 바꿀 만한 이유가.

“녀석이 훌륭했으니까. 실력도, 인품도. 많은 마법사가 녀석을 추종했다.”

“그랬군요.”

혹시나 하고 했던 질문에 기대하고 있던 그대로의 대답이 나왔다.

내가 협회를 지배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에게 들어와야 플레턴이 바라는 합격점이었다.

그리고 난 이를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마법사 협회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마법사 협회를 손에 넣는다라.’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 * *

전투는 우리의 승리로 끝났지만, 남부 연합의 진격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마족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최고 전력인 나와 기사들이 지쳐버렸다는 것.

두 번째로 마족을 조사하는 마법사 협회에 협조를 해야 했던 것.

세 번째로 오차드가 조종을 풀며 쓰러진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모조리 붙잡았기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는 것.

특히 마지막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라닌 후작의 영토에 대한 무혈입성이 약속된 것이니까.

덕분에 마나도 회복할 겸 편한 마음으로 협회의 조사에 응해 주었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오차드라는 마족이 라닌 후작가의 사생아 길모어와 손을 잡았고,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조종했다는 거군요.”

동부 협회의 지부장을 맡고 있다는 라울이란 마법사가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상대로 얻은 정보를 모았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라닌 후작은 길모어의 손에 사망.

가신들도 억류된 상태이며 휘하의 군대는 멋모르고 모였다가 마족에게 조종당했다고 한다.

“끝났군.”

열심히 증언을 해줬던 라닌 후작가의 병사가 비통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를 포함한 이 장소의 모두가 거기에 동의했다.

라닌 후작가는 끝이었다.

사생아라고 하지만 어쨌든 라닌 후작가의 혈족이 마족과 손을 잡은 것이다.

비록 가주인 라닌 후작이 마족과 손잡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다 죽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문의 안위를 보장해 줄 수는 없었다.

가신들이 모두 마족에게 굴복해 버렸으니.

그리고 라닌 후작가에 남은 최후의 수단인 저항이란 선택지는 군대가 모두 붙잡히며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부장님, 조사는 잘 마무리되었습니까?”

지부장에게 호의적인 목소리로 슬쩍 질문을 던졌다.

옆에서 내내 지켜본 마당에 정말 조사가 잘 되고 있는지 궁금했던 건 아니다.

그저 대화를 시작할 구실 하나가 필요했을 뿐.

“그렇습니다. 협회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패스 자작님.”

“마족의 출현은 전 인류가 힘을 합쳐서 막아야 할 일이니까요. 더구나 협회의 일에는 마땅히 협조를 해드려야지요.”

은근히 협회를 편드는 내 말에 라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는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지만, 그 찰나로 감정을 읽기에는 충분했다.

아마 내가 협회의 일원임을 넌지시 암시한 게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네패스 자작님.”

“왜 그러십니까?”

“협회는…….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

라울은 나의 행동에 불만을 내비치려고 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어쨌든 내가 협회 소속인 건 사실이니까.

협회 소속 마법사가 협회에 협조하겠다는데 뭐가 문제가 될까.

더구나 이번 일에는 마족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끼어 있었다.

속뜻이야 어떻든 그는 내 간섭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내 위치나 명성이 지부장을 압박하지 못할 수준도 아니었고.

“잠깐.”

그때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협회의 원로가 나섰다.

마법사임에도 기사 못지않은 큰 체구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눈길이 가던 상대였다.

그는 아까부터 줄곧 나를 예의 주시하며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이미 영웅 정보를 통해서 상대를 파악해 둔 상태였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협회의 원로이신 벨로스 님입니다.”

“그렇군요. 협회의 원로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플레턴 님의 제자인 아인 네패스라고 합니다.”

호의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하며 벨로스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어찌 귀족께서 고개를 숙이십니까? 그 인사는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벨로스는 인사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뜻은 분명했다.

나를 플레턴의 제자이자 마법사 협회의 일원으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천한 신분입니다. 편히 말씀하시지요. 네패스 자작님.”

“무리한 말씀이십니다. 젊은 후학이 어떻게 까마득한 선배님께 그러겠습니까? 마땅히 예의를 갖춰야 하지요.”

나와 벨로스의 시선이 부딪쳤다.

역시 지부장과 다르게 원로는 내 신분이나 세력으로도 쉽게 눌러지지 않았다.

‘이 원로 한 사람만 특별히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건 아니겠지.’

방금 라울이라는 지부장의 태도도 그렇고 이들은 남부 협회와 달리 분명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귀족인 내가 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달갑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마법사 협회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나를 거부할 원로들의 반대를 넘어서야만 했다.

“귀족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불편합니다.”

“전 협회의 위계질서를 존중할 뿐입니다.”

“정말 우리 협회를 존중하십니까?”

벨로스가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졌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협회에서 나가주십시오. 미천한 협회에서 귀하신 분을 모실 수는 없습니다.”

벨로스는 귀족인 내가 협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왔다.

그러니 협회에서 나가 달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이 나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긍정한 상태였다.

“협회에 받은 도움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대로 벨로스의 말을 끊어내며 내가 협회에 있어야 할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귀족 이전에 사람의 도리로서 그 은혜를 모두 갚기 전까지는 협회에 있을 생각입니다.”

벨로스와 다시금 시선이 부딪쳤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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