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77화
VVIP 영주님의 품격 77화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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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상대하게 된 마족은 강하면서 이질적이었다.
막연히 뛰어난 마법사를 상상했던 것과 달리 마족의 전투 방식은 마법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가장 먼저 압도적인 신체 능력.
고티어 마법사가 되면서 나 역시 신체 능력이 올라갔지만, 전투형 영웅들과 겨룰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차드는 낮게 잡아도 4티어 이상의 근접 전투 능력을 갖췄다.
그리고 터무니없이 빠른 마법의 발동.
상대의 행동을 예측해서 쓰는 게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즉시 발동시키는 신속함은 5티어 마법사인 나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차드는 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인간과는 다른 이 두 차이점을 통해 오차드는 상대의 공격을 튼튼한 몸과 마법으로 받아내며 근접해서 싸운다는 독특한 전투 방식을 구사했다.
“허억! 헉!”
앞에서 오차드를 붙들고 있던 로크의 숨소리가 크게 거칠어졌다.
얼마나 신체 능력이 좋은지 오차드는 아직 지친 티도 나지 않았다.
몸에 난 자잘한 상처 따위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반면에 로크를 비롯한 내 기사들은 체력적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촤악!
결국 떨어진 체력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오차드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로크가 상처를 입고 뒤로 물러났다.
목숨이 위태로운 치명상은 아니나 전투를 지속하기에는 힘든 정도의 부상이었다.
“이제야 이 귀찮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겠군.”
자신을 둘러싼 인원에 공백이 생기자 오차드의 안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확실히 녀석의 신체 능력을 고려했을 때 앞을 지켜줄 기사들이 무너진다면 나도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딱 알맞은 대응책을 이미 갖고 있었다.
“치유.”
내 말과 함께 뻗어져 나간 마나가 로크의 부상을 빠른 속도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비록 떨어진 체력까지는 커버할 수 없지만, 부상으로 인한 전투 이탈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유 마법을 가르쳐준 것도 이럴 때 쓰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군.’
플레턴이 나에게 최초로 알려준 마법.
그때는 내전에서 죽지 말고 살아남으란 의미인 줄 알았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고작 변방 영지의 내전이라고 해도 치유 마법보다는 공격 마법을 배우는 게 생존에는 더 유리할 테니까.
마나 블래스트는 기본적으로 쓸 수 있다지만 플레턴이라면 대체할 만한 유용한 공격 마법을 가르쳐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턴이 나에게 준 건 당시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었던 이 치유 마법이었다.
처음부터 나를 마족과 싸우기 위한 후계자로 키워낼 생각이었다고 한다면 말이 된다.
“뭐 저런…….”
로크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광경을 목격한 오차드의 반응은 퍽 유쾌했다.
아무리 마족이 선천적으로 마법을 타고난다고 해도 모든 마법을 알거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협회에서 기록되고 이어지는 마법들은 기본적으로 마법사들이 스스로 창안하는 것이었으니.
“앞으로 나와라!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전투형 영웅이 아닌 내가 4티어 전투형 영웅과도 대등한 오차드의 앞에 서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자크론의 가르침으로 어지간한 전투형 영웅들과 정면으로 싸울 수준이 되었지만 4티어는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니까.
그러니 나로서는 안전한 후방에서 넘쳐나는 마나로 기사들을 계속 치유하면서 공격을 퍼붓는 게 정답이었다.
【 분열의 씨앗 】
오차드가 가진 가장 껄끄러운 패라고 할 수 있는 라닌 후작가의 군대는 자크론과의 상성이 최악이었다.
기껏 일천이나 되는 군대를 조종한 게 무색하게도 자크론이 펼친 불의 벽을 넘지 못하였으니.
그리고 이는 쓸데없는 마나의 소모를 통해 오차드와 우리의 격차를 크게 줄여주었다.
“마족이라고 해서 많이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군.”
“감히!”
“고작 내 기사들도 넘어오지 못하는 실력이라니, 이래서야 실망스러울 지경인데.”
자크론의 조언처럼 빈틈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 오차드를 조롱했다.
그래도 같은 공격에 두 번 당할 바보는 아닌지 쉽게 빈틈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득이었다.
우리에게는 마법사 협회의 지원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젠장! 너도 뭔가 좀 해봐라!”
전전긍긍하던 오차드가 길모어를 불러냈다.
초조한 모습으로 전투를 관망하고 있던 길모어는 그런 오차드의 부름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네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고작 인간 6명이라며!”
“저 빌어먹을 불의 벽이라도 어떻게 해라! 너도 검술 훈련은 받았을 거 아니냐?”
오차드의 불평에 길모어는 당황하면서도 검을 뽑았다.
정말로 이 자리에 나설 생각인 걸까?
길모어에게서는 영웅 정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차드를 상대로 오류가 났을 때와 달리 아군 영웅들에게는 영웅 정보가 문제없이 사용되는 거로 보아 순전히 길모어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자세가 나쁘지 않은 거로 봐서 오차드의 말대로 최소한의 훈련 정도는 되어 있는 모양새지만 그게 전부였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고티어 영웅의 기준점인 3티어 이상.
그것도 남부를 휩쓸면서 얻었던 보주를 아낌없이 퍼부어서 히든 능력치를 높여 놨다.
같은 3티어라고 해도 격차가 날 정도로.
여기에 1티어조차 안 되는 녀석이 덤벼봐야 순식간에 죽을 뿐이다.
지금까지 길모어가 무사할 수 있던 것도 우리가 그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싸운 덕분이었고.
‘마족의 전력을 모르는 상태로 섣불리 공격했다가 빈틈을 내주면 곤란했으니까.’
하지만 슬슬 오차드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제는 만약의 변수를 없애기 위해 길모어를 제거하는 게 가능했다.
오히려 처리하기 쉽도록 제 발로 나서준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나마 길모어를 살려둘 이유라면 마족에 관련된 정보 때문인데.’
시선을 돌려 오차드를 훑었다.
별다른 소식도 없이 갑자기 이 왕국에 모습을 드러낸 마족.
어쩌다가 여기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다른 마족들의 행방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체 왜 갑자기 마족이 나오게 된 거지?’
애초에 절대군주의 스토리에서는 마족이 등장하는 일이 없었다.
설령 이후 패치로 나올 예정이었더라도 말이다.
지금 난 게임 메인 스토리 기준으로 아직 초기에 해당하는 시점에 있었으니까.
이곳이 게임의 시작점과 다른 크레시안 왕국이라 할지라도 마족의 출현이라면 전 대륙에 알려질 만한 거대한 사건이다.
게임 스토리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상황.
그뿐만 아니라 오차드의 등장은 너무 갑작스럽고 어설픈 모습이 있었다.
마법사 협회에 존재가 발각된다면 그 마족은 말살될 때까지 추적이 끊이지 않을 테니까.
라닌 후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마족과 손을 잡은 인류의 변절자 가문이 되면서 수장인 라닌 후작은 물론 그 아랫사람들까지 모조리 공적으로 내몰리게 됐다.
그의 혈족들뿐 아니라 연관된 모든 사람의 목숨이 위험해진 것이다.
지금 마족과 결탁하여 우리를 공격한 것이 그것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기랄!”
오차드의 압박에 기어이 길모어가 움직였다.
녀석이 향한 목표는 자크론.
오차드와 싸우고 있는 나와 기사들을 무시한 채 군대를 가로막고 있는 자크론을 쓰러트릴 계산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멍청한 짓이었다.
차라리 기사들을 노렸다면 길모어의 실력으로도 빈틈 정도는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족인 오차드가 함께 싸워줄 테니까.
그러나 자크론은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견제하고 있는 것만 빼면 만전에 가까웠다.
“애쓴다.”
자크론은 나른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를 내며 길모어를 죽이기 위해 마법을 준비했다.
이에 나는 자크론의 마법이 길모어를 꿰뚫기 전에 서둘러 그 행동을 막았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왜 그러냐?”
“놈에게서 마족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합니다.”
“흐음.”
내 생포 요청에 자크론은 어깨를 으쓱였다.
푸확!
그리고 다음 순간 길모어의 흉부로 파이어 스피어를 꽂아버렸다.
당연히 내 말을 들어주리라 여겼기에 이런 행동은 몹시 당혹스러웠다.
자크론이 오차드를 기습했을 때와 같은 상황이지만 이번 상대인 길모어는 인간이다.
작은 상처는 입었을지언정 멀쩡히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오차드와 다르게 길모어는 저항은커녕 생존조차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으아악!”
불길은 서서히 길모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길모어는 어떻게든 불을 끄려는지 버둥거려 봤지만, 자신을 꿰뚫은 열기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길모어는 얼마 가지 못해 비명도 멈춘 채 거꾸러졌다.
그게 길모어의 끝이었다.
“대체 왜 죽이신 겁니까?”
정보를 캐낼 상대를 그대로 죽여버리는 자크론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내 물음에 자크론은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아서라. 마족에게 협력한 인간이 저놈이 처음이었겠느냐? 마족들은 절대 기밀 정보를 인간에게 발설하지 않는다.”
자크론이 길모어의 시신을 가리켰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그림자는 이내 길모어의 시신에서 빠져나와 오차드에게 흡수되었다.
“애초에 마법으로 세뇌해서 조종하는 게 놈들의 특기지. 저놈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처음부터 마족에게 조종당했던 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기짝이 된 것이지.”
자크론의 말대로라면 정말 터무니없는 능력이었다.
길모어가 마족에게 협력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조종당했던 거라니?
“쓰레기 같은 놈! 전혀 도움이 안 되는군.”
오차드는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고 죽은 길모어를 향해 원망을 쏟아냈다.
자신 때문에 길모어가 죽었음에도 죄책감은 일절 느끼지 않는 듯했다.
자크론의 말처럼 길모어는 마음껏 부리는 장기짝에 불과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확실히 너희는 강하다. 특히 에이든과 필적한다는 네놈의 평가는 절대 거짓이 아니야.”
오차드가 분하다는 얼굴로 나를 인정했다.
상당한 호평이었다.
그러나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불쾌했다.
자크론이 약하다고 평가했던 오차드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을 동원하고서도 아직 확실한 승기를 잡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강하다 자부했던 내 힘이 마족 하나조차 확실히 이기지 못할 수준이란 의미다.
물론 에이든이라는 협회의 영웅조차도 결국 마족에게 죽었을 정도로 마족은 강한 상대다.
하지만 내가 에이든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나 역시 마족에게 당하는 결말이 나오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적어도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러니 더욱 이곳에서 죽어줘야겠다.”
그때 오차드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으어억!”
바깥에서 자크론의 견제를 받고 있던 라닌 후작가의 군대가 갑자기 신음과 함께 쓰러지기 시작했다.
오차드가 그들을 조종하기 위해서 쓰고 있던 마나를 다시 거두어들인 것이다.
‘조심해야겠어.’
오차드의 주위로 무시무시한 바람을 일으키며 막대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마법을 쓴 게 아니라 준비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기사들이 접근하지 못할 만큼 강한 폭풍이 일고 있었다.
이에 나에게 펼쳐두었던 마나 실드를 최대한으로 강화하는데 강화를 끝마치기 무섭게 눈앞에 빛이 펼쳐졌다.
“라이트닝 플레어!”
빨랐다.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빨랐다.
미리 준비를 해서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어도 실드째로 꿰뚫릴 뻔했다.
지금 공격에는 그만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번쩍! 번쩍!
심지어 오차드의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기사들에게도 연달아 눈부신 빛이 번쩍이며 벼락이 몰아쳤다.
콰쾅! 콰르릉!
‘이렇게 강한 마법은 처음 보는데.’
손에서부터 뿜어지는 마나는 그야말로 번개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이한 광경도 펼쳐졌다.
본디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져야 할 벼락이 역으로 지상에서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 엄청난 광경에 손에 땀이 맺혔다.
내가 삼중 마법을 쓴다고 해도 닿지 못할 정도의 위력.
약한 마족이라던 오차드조차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나를 능가하고 있었다.
화르륵!
다행히 군대를 막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 자크론이 다시 참전하여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아군 부대가 있는 곳에서 마나가 요동치는 것도 느껴졌다.
분명 마법사 협회의 지원군이 도착했을 것이다.
“이 마족 놈아, 시간 초과다.”
자크론이 오차드를 비웃었다.
그도 나처럼 마법사 협회에서 지원군이 왔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크윽!”
쉴 새 없이 강력한 공격을 쏟아냈지만 오차드의 공격은 유효타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차드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기사 놈들은 죄다 뒈졌을 거다.”
확실히 아무리 전투형 영웅이라도 이런 위력의 마법에 직격당하고 살아남을 정도는 아니었다.
만일 그 정도로 몸이 단단하다면 창칼에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흘리겠지.
그러나 오차드는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오차드의 마법에 휩쓸렸던 기사들이 먼지를 헤집고 몸을 일으켰다.
이를 목격한 오차드는 크게 당황했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 분명 제대로 맞았을 텐데?”
“우리 대장장이의 실력을 너무 얕봤군.”
로크가 갑옷을 두드렸다.
2티어 영웅인 라이언조차 네임드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게 내 기사단이다.
당연히 3티어 영웅들에게도 그만한 수준의 장비를 챙겨줬다.
잔인한 말이지만 좋은 장비도 좋은 영웅이 써야 제값을 하는 게 현실이니까.
“여기까지다. 마족.”
지원군이 도착한 이상 이전과는 전투 방식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나와 자크론은 오차드를 포위하며 녀석의 퇴로를 막아섰다.
협회의 지원군까지 가세하면 이 자리에서 오차드를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웃기지 마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새파랗게 어린 인간 따위가 나를!”
번쩍! 번쩍!
오차드가 다시 벼락을 퍼부어댔다.
아무리 좋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라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고 자크론 역시 방어에 모든 힘을 둘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방어 대신에 공격을 선택했다.
오차드도 알 것이다.
지금 자신이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을.
그런 와중에 마나를 퍼부어대며 완강하게 공격을 선택한 건 목숨을 포기한 것이거나 도망을 위한 틈을 만들기 위한 허세일 것이다.
그런데 인류와의 전쟁에서 도망쳐 살아남을 정도로 제 목숨을 아끼는 마족이 여기서 포기할까?
결국, 이 공격은 녀석이 달아날 틈을 벌기 위해 발악하는 것일 테니 반드시 빈틈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오차드의 벼락은 제대로 명중하지도 않은 채 스치듯 지나갈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마나 실드에 손상이 가해질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었지만 적어도 한 번에 깨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차드는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급히 몸을 돌려 포위를 뚫고 달아나려 했다.
나로서는 놓쳐선 안 될 완벽한 기회였다.
“파이어 스피어, 마나 블래스트, 윈드 불릿.”
확실한 빈틈이었기에 담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나를 담아냈다.
마나 가속까지 더해져 지독한 탈력감과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다소 후유증이 남더라도 녀석을 여기서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푸확!
오차드의 몸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그 주위를 불태우는 화염의 창.
마침내 어떤 공격에도 끄떡도 하지 않던 오차드의 몸에 거대한 상처가 새겨졌다.
“크헉!”
이번만큼은 충격이 컸는지 오차드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미 만만찮은 상대임을 알아봤기에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고 방심하지는 않았다.
곧장 후속타를 아낌없이 퍼부어 육신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일대를 초토화했다.
그러면서도 마나 실드를 유지하는 마나만큼은 남겨 오차드의 역습에도 대비했다.
기껏 다 이긴 승부에서 어이없게 죽을 뻔한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니까.
승리가 확실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쿨럭!”
이윽고 모래 먼지가 걷히며 처참하게 변한 오차드가 모습을 내보였다.
신체의 곳곳이 꿰뚫리고 불탄 끔찍한 모습.
더는 전투를 이어 나갈 수 없을뿐더러 아무리 마족이라도 곧 죽을 상처라는 게 분명히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안심이 되기는커녕 경계심만 높아졌다.
사람이라면 이미 수십 번은 더 죽었을 공격이었음에도 오차드의 목숨은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으니까.
지금껏 나름대로 전투를 경험해 봤지만, 이렇게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상대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그 카이로스 백작조차 이 정도로 끈질겼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힘들었다.’
실드를 유지할 마나를 뺀 모든 마나를 소모하고서야 겨우 이겼다.
약하다는 놈이 이 정도라면 저놈보다 더 강한 마족들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근접전과 마법 모두 5티어 수준의 적인 걸까?
아니면 5티어조차 넘는 수준일까?
나를 제외한 유저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5티어의 가치는 게임에서보다 더 큰 것이었다.
그래서 6티어의 강함은 짐작하기도 쉽지 않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전 절대군주에서는 VIP 시스템을 추가하며 6티어를 개방했으니까.
마족의 등장이 원래 게임에서도 예정된 일이라고 한다면 마족도 능히 6티어에 준하거나 그 이상이어야 밸런스가 맞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을 들일 강적이 없다면 P2W은 성립할 수 없으니까.
“철두철미하구나. 마족과 처음 싸워본 녀석이 이 정도로 확실하게 처치할 줄은 몰랐다.”
자크론이 나를 칭찬했다.
그제야 긴장이 좀 풀렸다.
경험 많은 마법사인 자크론이 오차드의 죽음을 확신할 정도로 내 행동이 옳았다는 의미이기에.
“무서웠으니까요.”
“이겼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이렇게 끈질기고 끔찍한 상대는 처음입니다.”
자크론이 마족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면 분명 굉장히 힘든 싸움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녀석의 최대 강점이라 생각되는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봉인한 게 컸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패배한 건 오차드가 아니라 우리였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