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76화
VVIP 영주님의 품격 76화
76화
“협회장? 마법사 협회에 협회장이 있었습니까?”
마법사 협회에 협회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게임에서도 그렇고 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협회는 원로 회의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었고 그것이 오랜 전통이었으니까.
“임시였다. 그렇지만 협회장이라는 이름을 쓸 자격이 있는 건 협회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그놈 하나뿐이지.”
자크론이 이렇게까지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당장 내 재능이 에이든이란 자와 동급으로 취급될 뿐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라면…….
‘불세출의 대마도사.’
5티어 마법사를 부르는 수식언.
마법사가 아니라 대마도사.
그것도 세상에 나오기 어렵다는 의미로 불세출이다.
에이든은 이런 수식언에 걸맞은 엄청난 마법사였을 것이다.
“재수 없는 이름을 잘도 지껄이는구나.”
심지어 오차드라는 마족조차 에이든의 이름에 꺼림칙한 반응을 내보였다.
인류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실력 있는 마족이 기억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대단한 마법사였던 게 분명했다.
“이놈이 그 녀석과 비견되는 재능이라고?”
나를 노려보는 오차드의 시선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그럼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 되겠구나.”
“저 지금 되게 위험해진 거 같은데?”
너무 살벌한 시선이라서 솔직히 거북했다.
저 마족이 인류에게 어떤 적대감을 가지고 있든 나와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완전히 원수 대하듯이 하고 있었다.
“마족들에게 알려지면 확실히 곤란하겠지. 여기서 입막음을 해야 한다.”
여기서 오차드를 놓치게 된다면 힘을 키우기는커녕 앞으로 마족들에게 언제 죽을지 몰라 끙끙 앓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마법사 협회 같은 곳에 틀어박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번 보여봐라. 네가 말했잖느냐? 플레턴이 너를 선택했다고. 증명해라.”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플레턴을 비롯한 원로들은 마족이 다시 나타나는 게 인류의 세력이 한참 약화된 이후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지금 내전 좀 하고 있다고 해서 인류가 크게 약화된 건 아니니까.
오히려 아직까지 마족과의 전쟁에서 갈고닦은 예리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힘을 모두 잃고 마족들이 모습을 보이려면 적어도 수년은 더 지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꽤 여유가 있었다.
5티어 마법사인 내가 수년이나 더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로 성장해 있을지 나도 짐작하기 힘드니까.
게임에서도 그렇게까지 성장한 영웅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과금을 퍼부은 유저라 할지라도 말이다.
“상대도 생각보다 약하니까 괜찮다.”
“아깐 강하다고…….”
“너에 비하면 약하다.”
“자꾸 누구 보고 약하다는 거냐!”
약하다는 말에 오차드가 자크론을 노리고 몸을 움직였다.
그에 루시우스가 앞을 가로막았으나 오차드는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루시우스를 떨쳐냈다.
카캉!
“큭!”
루시우스가 뒤로 쭉 밀려나며 대열이 무너진 순간 자크론은 오차드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러나 오차드는 자크론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쐐액!
오차드의 옆을 파고든 칼날은 절대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타이밍은 호흡의 빈틈을 정확히 노렸고, 칼날의 끝은 마족이라도 별수 없을 눈가를 노리고 있었다.
째앵!
오차드는 다급히 몸을 옆으로 내던지며 간격을 벌리고 날아드는 칼날을 쳐냈다.
릴리아나였다.
“크! 이년이 제일 성가시군.”
정확하게 봤다.
4명 중에서 순수한 기사는 로크와 루시우스였고 두 사람은 오차드의 정면을 막으며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오차드가 둘을 따돌리거나 제칠 경우 가장 기민하게 대응하는 건 릴리아나였다.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은 두 기사의 빈틈을 효과적으로 채워줄 수 있었다.
쐐액!
그리고 쏘아지는 비수.
다니엘은 암살자답게 기사의 전투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에게 다니엘이 암살자 출신이란 건 비밀이었지만 마족을 상대하는 데 힘을 아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캉!
그러나 다니엘은 오차드를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방심하고 있는 상대를 기습하는 거라면 모를까 정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싸우는 건 암살자에게 치명적으로 불리한 페널티였다.
게다가 오차드는 고티어 영웅들을 정면에서 대적할 만큼 좋은 신체 능력을 가진 마족이었다.
암살자의 공격에 반응할 충분한 속도를 가진 것이다.
다니엘 역시 그 사실을 느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네 기사들도 제법 하는구나. 카이로스 밑에 있던 상급 기사들과 얼추 비슷하거나 좀 더 낫군.”
“삼기사에 비해서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네 사람의 협공은 오차드의 발목을 충분히 묶어둘 만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오차드의 신체 능력은 4티어 수준으로 추정되었다.
“루퍼스는 네가 죽였으니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냐?”
확실히 루퍼스는 수준이 달랐다.
진영 한복판에 뛰어들어 와서 난동을 부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했다.
라이언의 기습 한 번에 다리가 잘려 나가지만 않았어도 실제로 루퍼스는 나를 죽이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프레드 때와는 경우가 다르다.
그가 내가 약해진 틈을 정확히 노려서 날 위협했다면 루퍼스는 순수하게 실력으로 나를 압도해서 죽일 수 있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릴리아나는 확정적이었다.
그녀의 재능은 최소가 4티어이고 나는 5티어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녀는 배우는 게 빠르지만, 독학 자체는 잘 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검술을 가르칠 만한 고티어 영웅이 존재하지 않게 되자 성장 속도가 더뎌지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애매했다.
젊음을 생각했을 때 4티어에서도 상위권에 도달할 만한 재능이지만 5티어가 될 만한지는 알 수 없었다.
다니엘은 딱 4티어급 인재였다.
아마 카이로스 백작가의 알렉스와 비슷한 수준의 자질을 지니고 실제로 그만큼 성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로크는 더 성장하지 못한다.
애초에 그의 재능은 2티어에서 상위권, 잘 쳐줘야 3티어 턱걸이였다.
내가 강제로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기사단장이라는 자리를 맡아 수련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이상 더는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 단장 놈 빼고는 다 젊으니까. 얼마든지 크겠지.”
대화는 여기서 끝이었다.
네 사람의 연계로 공격할 만한 기회가 나오자 나는 준비한 삼중 마법으로 오차드를 공격했다.
그 와중 거센 폭음에 어렴풋이 자크론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너도 그렇고.”
* * *
“엄청난 싸움이군…….”
아인이 빠진 남부 연합의 군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군대가 나아가야 할 길목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탓이었다.
게다가 터무니없는 적과 싸우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 아인을 놓고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원군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건가? 자신 있는 자는 누구든지 앞으로 나와라!”
악명 높은 자크론과 그 자크론을 이긴 아인.
그 외에도 아인이 특별히 선정한 기사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만큼 적이 강대하다는 의미일 것이기에 영주들은 서둘러 실력 있는 기사들을 모았다.
그러나 그 기사들도 막상 눈앞의 전투를 보고는 쉽게 참전할 뜻을 밝히지 못했다.
‘저게 대체…….’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싸울 수 있지?’
기사들의 싸움이란 백병전이었다.
공기가 찢어지고 화염이 넘실거리며 땅거죽이 뒤집히는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인데 저곳에 끼어든다면 채 1분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정녕 나서는 자가 없는 건가?”
“죄송합니다.”
영주의 실망스러운 물음에 기사들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들이 감히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상대의 체력이나 마나도 무한하지는 않을 테니 그것이 떨어지면 빈틈이 나겠지만 그건 주변에 있는 라닌 후작가의 군대 때문에 불가능했다.
애초에 저 군대를 뚫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아인이 손쉽게 해내서 쉬워 보일 뿐.
“정말 수준이 다르구나.”
빅터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도대체 얼마나 실력을 키워야 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아인은 자신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빅터 스스로가 자신이 없어질 정도였다.
“뭐, 그렇다니까. 우리랑은 사는 세계가 다른 인간들이지.”
라이언이 그런 빅터를 위로했다.
저건 아무리 봐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들이지.
화악!
그때 한쪽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지며 일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티아라는 그 광경을 보고 탄성을 흘렸다.
“순간 이동 마법!”
마법사 천 명분에 해당하는 마나와 그것을 제어할 원로급 마법사가 있어야만 펼칠 수 있는 마법사 협회의 비전.
아무리 마법사 협회라도 그만한 숫자의 마법사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기에 막대한 양의 보주를 퍼부어야만 발동이 가능했다.
워낙 많은 재물이 들어가는 만큼 협회도 함부로 쓰기 어려워 티아라도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마족이군요.”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고작 3명의 마법사였다.
동부 협회의 지부장 라울과 간부 한 사람, 그리고 순간 이동 마법을 직접 제어한 원로 벨로스였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상대는 고작 하나에 네패스 자작과 자크론도 있으니.”
동부 협회에서는 본부에 보고를 올리는 한편 선발대를 꾸려서 빠르게 현장으로 왔다.
본래라면 이는 해선 안 될 위험한 행동이었다.
고작 3명의 선발대라면 도리어 마족에게 당할 위험성이 있었으니.
하지만 라울은 기꺼이 이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자크론과 그 자크론을 이긴 마법사가 있었으니까.
“바로 지원하겠습니…….”
“잠깐 기다려라.”
라울이 합류하려고 하자 벨로스가 그를 제지했다.
벨로스의 시선은 정확히 아인을 향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라울은 불안한 눈으로 벨로스를 보았다.
아무리 자크론이 곁에 있더라도 상대는 마족.
그것도 전쟁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아인이 이긴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질 경우를 대비해서 지원에 나서야 했다.
“동부 지부장, 저 거대한 마나가 안 느껴지는 건가?”
“예?”
라울은 당황하며 전장을 살폈다.
“거리가 멀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벨로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만한 마나를 앞에 두고 느끼지 못하다니?
물론 지부장의 수준에서 이는 이상한 게 아니었다.
라닌 후작가의 군대 때문에 양측의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옆의 간부 역시 마나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울 지부장님!”
그때 티아라가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오랜만이군. 티아라 양.”
라울은 티아라를 반겨주었다.
이제 네패스 자작에게 밀렸지만, 이전에는 협회 최고의 유망주였던 티아라였다.
“벨로스 원로님께 인사드려라.”
“아! 켈렌 원로님의 제자인 티아라라고 합니다.”
티아라의 인사에도 벨로스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전투가 한창인 전장을 가리켰다.
“저곳의 마나가 느껴지나?”
벨로스의 물음에 티아라는 당황했다.
“제가 아직 부족해서…….”
그녀의 대답에 벨로스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지부장도 그렇고 최고의 재능이라던 티아라조차 마나 감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잘못된 건 아니었다.
나이나 경력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당연했다.
그러나 이들의 대답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이전 최고 재능이라던 녀석이나 지부장 모두 마나 감지조차 제대로 못 하는데 저놈은 대체 뭐지?’
벨로스는 자신의 예민한 감각에 느껴지는 거대한 마나의 유동에 몸을 떨었다.
이 마나의 크기는 명백하게 자신을 상회하고 있었다.
물론 이상한 일은 아니다.
저 자리에 있는 건 흉악한 마족과 원로를 죽인 것으로 제명당했던 전적이 있는 자크론이니까.
그러나 벨로스의 감각은 그 두 존재의 마나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이 거대한 마나는 그 둘의 것이 아니었다.
‘저번에 자크론과 싸울 때 느낀 마나도 원로 수준에 근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상점의 존재를 모르는 벨로스로서는 아인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납득할 유일한 대답이라면.
“설마 자크론을 상대로 전력이 아니었다고?”
너무나도 충격적인 현실에 벨로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