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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75화 (75/250)

VVIP 영주님의 품격 7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75화

75화

그림자에 집어삼켜져 진군해 오는 라닌 후작가의 군대는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저게 대체…….”

“마족 놈들은 태생적으로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그중에는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든 괴상망측한 마법을 부리는 것들도 있지.”

확실히 저 마법은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서 봤던 어떤 마법과 비교해도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이질적인 건 저런 종류의 마법을 1천에 달하는 대군에 쓰고 있단 사실이었다.

“전쟁에서 저 마법을 부리는 마족과 마주한 적이 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을 집어삼켜서 제 수족으로 만들지.”

그제야 자크론이 군대를 물리라고 한 이유가 뭔지를 알 수 있었다.

“저 사람들은 죽은 겁니까?”

“아니. 의식을 잃은 채 조종당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봐줄 생각은 말아라.”

“전 라닌 후작가를 점령하러 온 남부 연합의 부맹주입니다.”

어차피 조종당하지 않더라도 죽여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 네가 그런 머저리는 아니지. 플레턴이 왜 너를 제자로 들였는지 내가 잠깐 잊었던 모양이다.”

자크론이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

어느새 라닌 후작가의 군대가 코앞까지 접근해 온 상태였다.

“잡것들은 무시해라. 마족만 죽이면 어차피 마법은 풀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모두 바짝 따라붙도록.”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곧장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해서 정면을 덮쳐드는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공격했다.

개미 떼처럼 달려들던 이들이 일격에 좌우로 갈라지며 공간이 생겼다.

‘마족은 후방인가?’

마법을 쓰고 있는 덕분에 숨어 있는 마족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쉬웠다.

녀석은 후미에 있었다.

‘영웅 정보.’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으니 얼마나 강한 마족인지 알아보기 위해 영웅 정보를 사용했다.

[%$$#@%!^]

“뭐야?”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오라는 영웅 정보 대신에 이리저리 깨져버린 글자가 떠오른 것이다.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타르타로스 고객 센터에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내 멀쩡한 글자가 나왔지만 그건 내가 원하던 영웅 정보가 아니었다.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서 문의해 달라는 말이었을 뿐.

‘진짜 기업이었나?’

계약서에 범차원 기업 타르타로스라고 명시해 뒀기에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보니 완전 기업이었다.

지금 알고 싶었던 내용은 아니지만.

콰콰콰!

두려움도 없이 달려드는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그대로 꿰뚫고 후미에 도달했다.

상대의 전력을 모르는 채로 마나를 소모한 건 뼈아프지만 나름 믿는 구석은 있었다.

‘자크론이 알았다면 협회도 알았겠지.’

동부 마법사 협회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전처럼 은밀하게 적을 습격한 것도 아니니까 근처에는 협회의 마법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마족의 출현을 알린다면 곧 지원군이 도착할 거다.

“뭐, 뭐냐? 내 군대를 어떻게 이리 쉽게!”

후미에 도착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마족으로 추정되는 존재와 유일하게 이성이 멀쩡해 보이는 인간 남성이었다.

“과연. 네 말대로 상당한 실력의 인간들이로구나, 길모어.”

마족이 남성을 밀쳐내며 앞으로 나섰다.

‘길모어라.’

라닌 후작가의 정보를 모았을 때 확인해 둔 이름이었다.

분명 라닌 후작의 사생아라고 했던가.

그 외에는 아는 게 없었지만, 정황상 마족과 손을 잡고 라닌 후작가를 장악한 것처럼 보였다.

“오차드, 이길 수 있는 거겠지?”

“고작해야 인간 6명이다.”

오차드라 불린 마족은 여유를 부리며 앞으로 나왔다.

“저놈 많이 강합니까?”

자크론이 과거에 마주한 적이 있다고 했으니 정확한 실력을 알지도 몰랐다.

“원로 한 명이 저놈에게 죽었다.”

“직접 싸워보지는 않으셨습니까?”

“놈이 조종하는 인간들을 죄다 불살랐지.”

자크론도 자세히는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본 정보대로라면 협회의 원로는 4티어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일 테니 그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최소 플레턴과 동급. 어쩌면 5티어 마법사인 나랑도…….’

고민해 봐야 별수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싸워야 할 상대들이니까.

“마나 블래스트, 윈드…….”

타악!

삼중 마법을 준비하는데 오차드가 갑자기 바닥을 박차며 거리를 좁혀왔다.

5티어 마법사의 눈으로도 흠칫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흐압!”

하지만 마법형이 아닌 전투형 영웅들에게는 대항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제일 선두에 있던 로크가 대검을 휘둘러서 오차드를 공격했다.

쩌어엉!

오차드는 자신의 팔을 날붙이처럼 휘둘러 로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순간 릴리아나는 로크의 바로 뒤에서 목덜미 옆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보이지 않는 궤도에서 날리는 절묘한 찌르기였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위치에 다니엘이 뛰어들었다.

만약 그대로 피하려고 한다면 다니엘이 오차드의 배후를 잡아낼 것이다.

그러나 오차드는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내 기사들의 연계를 타파해 냈다.

“마나 실드.”

카앙!

릴리아나가 내지른 검격을 실드로 막아낸 것이다.

그것도 찰나에 불과한 사이에 해낸 엄청난 속도의 마법이었다.

거의 숨 쉬듯 가볍게 마법을 쓰는 게 천부적으로 마법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는 종족다웠다.

하지만 마나 실드를 써서 웅크리고 있는 상대만큼 맞추기 좋은 표적은 없었다.

휘릭!

루시우스까지 합세한 4인의 공격이 일제히 쏟아졌다.

가장 발군은 역시 육중한 대검을 사용하는 로크의 일격이었다.

다른 이들이 마족의 주의를 돌리는 틈을 타 로크는 큰 힘을 담아 마나 실드를 후려쳤다.

그러자 마나 실드가 찌그러지며 오차드가 몸을 휘청였다.

“물러나라!”

나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마나 가속까지 더해서 그대로 쏘아냈다.

콰콰쾅!

큰 위력의 공격이 들어갔다.

원로와 같은 4티어 수준의 마법사라고 해도 이 공격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충격으로 발생한 먼지가 걷히자 오차드의 몸에 작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기도 했다.

툭툭.

오차드는 자신이 상처 입은 부위를 가볍게 털어냈다.

놈은 딱히 아프지도 않다는 듯 태연했다.

“좋아. 이 느낌이다. 이게 싸운다는 감각이지.”

오히려 자신이 다친 것에 즐거워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시시한 상대가 아니라서 정말 기쁘구나.”

“목에 칼이 박히고도 그런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군.”

여유를 부리는 마족의 모습에 다니엘이 불쾌한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에 자크론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족이란 것들이 원래 다 저렇다. 지들이 강하다는 걸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지.”

“그게 어떻단 거지?”

자크론의 평가를 들은 오차드가 씩 웃었다.

“나보다 약한 것들을 짓밟아서 내 강함을 증명한다. 이는 모든 생물에게 내재된 본능이지.”

나는 내심 오차드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내가 절대군주가 되고자 하는 건 결국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서였으니까.

그러나 다른 이들은 딱히 동의하지 않는지 표정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오차드가 한쪽에 있는 길모어를 가리켰다.

“권력으로, 무력으로, 재력으로. 우리 마족이 순수하게 힘을 추구한다면 너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짓누르느라 혈안인 종족 아니냐?”

길모어는 조마조마한 눈으로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놈을 보아라. 어미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제들에게 짓밟히며 살아온 놈이다. 너희 인간이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증명이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냐?”

자크론이 시큰둥하게 물었다.

나도 오차드의 말에 동의한 것과 별개로 솔직히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본능이 어쩌고 간에 그런 걸 일일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누가 더 더러운지 따져보고 싶다는 거냐?”

“천만에. 단지 본능을 부정하지 말란 소리다. 너희 인간이나 너희가 마족이라 부르는 우리나 그저 같은 존재인 것을.”

“마족에게 충고도 다 듣고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자크론은 냉소를 보내고는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 들어라. 마족과 싸울 때는 3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이제 와서 말입니까?”

그런 주의 사항이 있었다면 싸우기 전부터 이야기를 해줬어야지.

한창 전투 도중에 명심해야 할 사안을 말해 준다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실전을 겪어봐야 이해가 잘 되는 법이지.”

자크론도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첫 번째는 마족이란 것들이 자의식이 강하다 보니까 싸울 때 입을 터는 경우가 많아 피곤하다는 것이다.”

“하?”

그런데 자크론의 조언이 어째 영 아니었다.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기대했던 조언과 거리가 한참 멀었다.

난 마족이 주로 어떤 마법을 쓰고 어떻게 싸우는지에 대해서 말해 줄 줄 알았는데.

“어지간하면 피곤하니까 말을 섞지 않고 무시하거나 한 귀로 듣고 흘려라. 대꾸해 주면 신나서 계속 떠드니까.”

“아니, 그럼 왜 말을 받아주신 겁니까?”

오차드의 말을 받아준 건 자크론이었다.

말상대 하기 귀찮으면 애초에 받아주지를 말았어야지.

“거기서 두 번째.”

푸확!

그런데 다음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오차드의 흉부에서 자크론의 파이어 스피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앞이 아니라 뒤에서 튀어나온 공격.

공격을 당한 오차드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입을 나불대고 있을 때를 노려 공격하면 효과가 좋다.”

“이, 이 인간이!”

오차드는 흉부를 꿰뚫리고도 쓰러지지 않고 자크론의 파이어 스피어를 소멸시켰다.

불꽃에 지져진 덕분에 출혈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마족이라도 저 정도면 확실히 큰 피해였다.

자크론은 나처럼 기사들과 연계해 삼중 마법을 쓴 것도 아니면서 마족에게 대미지를 준 것이다.

“어떠냐? 내 실전 가르침이. 네 녀석은 툭하면 기습해 대는 잔머리를 굴리니 이런 것도 잘 배우겠지?”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오히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귀중한 가르침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이런 건 플레턴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다.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이걸 또 덥석 받네. 넌 명예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느냐?”

“마족한테 죽으면 명예롭습니까?”

“뒈진 새끼한테 명예가 어디 있느냐. 아니, 딱 한 놈 있나…….”

자크론은 갑자기 아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에이든이란 이름을 아느냐?”

“모릅니다.”

“마법사 협회 소속이란 놈이 에이든을 몰라?”

유감스럽게도 내가 알고 있는 마법사 협회의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 이 세계에서 알게 된 것보다는 지구에서 절대군주를 하면서 익힌 게 많았다.

게임에서 에이든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았고.

“꼭 기억해 둬라. 네가 귀족이라고 협회에서 지랄당하지 않으려면 에이든이란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 새끼들이 날 무시하다니!”

자크론이 한참 에이든에 대해 설명하려고 할 때 오차드가 발끈하며 뛰어들었다.

“여기서 세 번째, 마족은 무시당하면 발끈해서 빈틈을 보인다.”

화르륵!

그러나 이마저 자크론의 계획이었다.

오차드가 달려오던 방향을 따라서 바닥에서 솟아난 불기둥이 순식간에 오차드를 집어삼켰다.

나와 기사들이 오차드를 상대하는 동안 자크론이 만들어낸 함정이었다.

“이까짓 불길쯤은!”

하지만 이것만으로 오차드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오차드가 손을 떨쳐냄과 동시에 자크론이 준비한 화염이 꺼져버렸다.

“안 통했는데요?”

“저놈 좀 많이 세네.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끝냈을 텐데.”

“마법사는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지지 않습니까?”

신체 능력에 의존하는 전투형 영웅들은 노화가 시작되면 성장에 한계가 나타난다.

경험은 계속 쌓을 수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실력의 성장이 멈추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다.

내가 로크보다 루시우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이유였다.

지금은 로크가 조금 더 강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추월당할 테니까.

반면에 마법사는 신체 능력은 딱히 의미가 없기에 나이가 들수록 강해진다고 봐야 했다.

“스승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제자란 녀석이 꼬박꼬박 말대꾸나 하고.”

“올바른 지식을 알려주셔야지요.”

“충분히 알려줬잖냐.”

자크론은 사방으로 파이어 월을 펼쳐서 접근하는 라닌 후작가의 군대를 가로막았다.

“네 비열함과 압도적인 마나라면 겨뤄볼 만한 수준이다. 부족한 신체 능력은 기사들이 채워줄 테지.”

그러다 자크론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과연 그런 건가?”

“갑자기 뭐가 그렇단 말씀이십니까?”

“이제야 왜 플레턴이 너를 선택했는지 알겠다. 넌 에이든 그놈과 비견될 만한 재능에 놈에게는 없는 것들을 갖췄어.”

“대체 에이든이 누구입니까?”

마족을 앞에 두고 자꾸 엉뚱한 이름이 나오니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에이든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자크론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건지.

마법사 협회의 설립자라도 되는 걸까?

하지만 마법사 협회의 역사는 족히 수백 년에 이르렀다.

아무리 협회의 원로라도 그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에이든은 마법사 협회장이다. 이미 죽은 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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