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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63화 (63/250)

VVIP 영주님의 품격 6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63화

63화

* * *

목표로 했던 여섯 영지 중 첫 번째 영지에 도착하면서 남부 안정화가 시작되었다.

연합에 속한 가까운 지역의 영주 역시 미리 준비한 군사를 이끌고 나왔고 나는 지체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포위를 개시했다.

“롯타 남작. 그대와 식솔들의 안전은 보장할 터이니 순순히 항복하시오.”

포위가 끝난 다음에는 당연히 항복을 권유했다.

첫 목표가 된 롯타 남작은 특정 파벌에 속하지 않은 중립 영주로 변방에 작은 영지를 가진 약소한 귀족이었다.

그러나 점령하고도 가질 것도 마땅치 않았기에 연합의 영주는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괜히 무리하게 공격했다가 애꿎은 기사들을 잃는 게 더 손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합류하면서 몇 배나 되는 병력을 끌고 왔기에 영주는 기세등등하게 공격에 나섰다.

“굳이 겨루지 않아도 누가 이길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는 약탈을 하지도 않고, 피를 보지도 않을 것이니 그냥 항복하시오.”

“웃기지 마라! 가문 대대로 내려온 영지를 내어줄 거 같으냐!”

롯타 남작의 반발은 당연했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는 것은 불명예.

더구나 영지를 가진 귀족과 그렇지 못한 귀족이 가지는 힘의 차이는 비교가 안 된다.

여기서 항복하면 그냥 신분만 귀족일 뿐 자신의 땅 하나 소유하지 못한 처지로 떨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무늬만 귀족이었던 몸이라면 모를까 영주로 살아온 귀족이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사정이다.

“아무래도 싸워야 할 거 같습니다.”

롯타 남작의 완강한 거부에 연합의 영주는 전투를 준비했다.

“잠시 시간을 주시오. 직접 정리할 테니까.”

난 싸움을 개시하려는 영주를 말리고 혼자 앞으로 나섰다.

저 롯타 남작의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재물과 영지의 모든 것들이 우리 연합의 것이 될 텐데.

그런 것들을 아깝게 파괴해서야 되겠는가?

“롯타 남작, 정말 싸울 생각인가?”

“귀족으로서 적에게 어찌 등을 보이겠는가! 이 영지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명예롭게 싸우겠다.”

“그렇단 말이지.”

재차 확인했지만 롯타 남작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싸울 계획 같았다.

이에 롯타 남작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기사들을 훑었다.

용맹하게 나서는 롯타 남작과 달리 기사들은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이미 기가 죽은 모습이었다.

그나마 목숨을 버리길 각오했는지 투지를 다지는 자들도 있긴 했지만, 극히 일부.

승리를 생각하는 이들은 아예 없었다.

“모두 보아라!”

그렇다면 간단하다.

감히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면 알아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마나 블래스트, 윈드 불릿, 파이어 스피어.”

남부의 내전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은 뒤 나는 줄곧 삼중 마법을 익히고자 애써 왔다.

삼중 마법을 익히지 못하면 5티어 마법사로서 압도적인 마나를 가지고 있더라도 나보다 수준이 낮은 4티어 마법사를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내가 반쪽짜리 5티어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나 가속.”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지난 노력과 더불어 오는 내내 자크론을 달달 볶은 끝에 드디어 삼중 마법을 익혔기 때문이다.

거기에 네패스 가문의 비전인 마나 가속을 사용하면 부족한 숙련도를 얼마든지 채우고도 남았다.

콰아앙!

롯타 남작가의 마법사가 준비한 실드가 무색하게 깨지며 어설픈 요새가 허물어져 내렸다.

과거에도 목책을 마법으로 뚫었던 적이 있지만 돌로 쌓은 요새는 그보다 더 단단하고 거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럴 수가…….”

그나마 믿을 구석이던 요새의 한쪽이 뻥 뚫려버리자 롯타 남작조차 넋이 나가버렸다.

“다시 한번 묻겠다, 롯타 남작. 이래도 싸울 건가? 그대의 가족들을 눈앞에서 모두 찢어 죽여야 항복하겠나?”

“아으…….”

“롯타 남작의 기사들에게도 묻겠다. 그대들의 가족이 죽고 영지가 불타는 광경을 보여주어야 항복하겠나? 롯타 남작령이란 곳을 지도에서 지워야 항복하겠나?”

협박의 성과는 금세 돌아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들 중 누군가가 무기를 내버렸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기사고 병사고 가리지 않고 자신의 무기를 내던졌다.

롯타 남작이 뭐라고 막을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멍청한 영주보다 부하들이 더 현명하군.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이끌고 온 군대가 그대로 들이닥쳐 요새를 점령하고 롯타 남작을 포박했다.

하지만 롯타 남작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만일 우리가 피를 흘렸다면 정말로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테니까.

여섯 영지 중 첫 상대인 만큼 본보기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코딱지만 한 영지 하나 점령해 놓고 너무 으쓱거리는 거 아니냐?”

내가 돌아오자 자크론은 핀잔을 주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5티어 영웅이라면 남작가 하나 정도는 혼자 제압해 버리는 게 이상하지는 않으니까.

아니, 4티어인 자크론이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불 속성 마법은 대량 살상과 퍼포먼스에 특화되어 있었으니까.

협박용으로는 최고였다.

자크론의 악명에는 불 속성 마법을 다뤄서 생긴 영향도 적지 않았다.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더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우 씨.”

내가 정중하게 요청하자 자크론은 갑자기 질색하며 물러났다.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지금 네놈의 수준이라면 원로 자리에 앉고도 남아. 더 이상 누군가에게 마법을 배울 수준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자크론은 나에게 책 하나를 내주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마법서에 의아해져서 물었다.

“이건 무슨 마법입니까?”

“나도 잘 모른다.”

“네?”

“너 내가 왜 협회에서 제명되었는지 알고 있느냐?”

“대충 듣기는 했습니다.”

자크론이 악명 높은 학살자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많은 인명을 해쳤다는 이유로 제명된 건 아니었다.

그런 이유라면 나도 언제든 협회에서 제명될 수 있으니까.

귀족 밑에서 일하다가 저지른 일은 너무 과도하지만 않으면 협회에서 문제 삼지 않았다.

결국 그 마법사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는 귀족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크론은 악명은 높을지언정 마족과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전쟁 영웅이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자크론이 제명당한 건 협회의 마법사를 죽인 이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데 어쩌고인가 드 어쩌고인가 하는 원로 놈이 있었다. 실력은 쥐뿔도 없는데 성격은 개차반이었지.”

“음…….”

자크론의 입에서 나온 개차반이라는 말에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와 사사건건 시비가 붙던 놈이었는데 내가 그런 걸 참아줄 만큼 인내심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자크론과 상대 마법사는 합의 끝에 결투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협회에서는 이를 만류했다.

두 마법사의 싸움으로 득 될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이를 무시한 채 허가 없이 결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자크론이 상대 마법사를 죽였다.

허가 없는 결투에 사망자까지 나왔으니 협회에서도 자크론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자크론은 그대로 협회에서 제명 처리되었고 협회마저 내버린 마법사라는 이유로 악명은 더욱 높아졌다.

“그때 놈을 죽이고 얻은 거다. 녀석의 비전 마법이라고 할 수 있지.”

“스승님께서는 안 익히셨습니까?”

“딱히. 나한테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 마법이었거든.”

자크론은 자신의 일생 내내 기사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쌓기를 원했다.

마법사들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넘기 위해.

죽인 마법사로부터 탈취한 마법서는 그런 자크론에게 그다지 흥미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거 협회에서 회수는 안 했습니까?”

“당연히 했지. 나도 넘겨줬고. 죽인 것도 문제인데 비전 마법까지 강탈하려고 했다면 제명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갖고 계십니까?”

“필사본이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비전 마법을 강탈한 것과 다름없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기껏 필사까지 해놓고 익히지 않았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세상에는 많은 마법이 있다. 내가 아는 종류만 200가지는 넘지. 비전 마법을 더하면 두 배는 늘어날 거다. 하지만 마법사가 평생을 바쳐도 30가지도 못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이 세계에서 본 마법사 중 가장 많은 마법을 익힌 건 플레턴이었다.

너무 많아서 헤아려보지는 못했으나 자크론이 말한 것처럼 30가지 정도를 익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라면 30가지가 뭐냐, 50가지 이상도 익히고 남겠지. 어쩌면 100가지 이상도 가능할지 모르고.”

이 부분은 나도 자신할 수 없었다.

특전으로 얻은 재능에 의해 그런 게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으니까.

나에게 마법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익혀둬라. 다른 마법사라면 시간 낭비에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너라면 잘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어쨌든 꽁으로 얻게 된 마법이었다.

자크론 자신이 익힌 마법은 아니었지만, 비전 마법을 전수받는 건 의미가 컸다.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그런데 스승님.”

“응?”

“혹시 이걸로 협회에서 추궁받게 되면…….”

아예 협회에서 원본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엄연히 협회에도 존재하는 비전 마법이다.

비전 마법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 마법사들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원로쯤 되어야 꺼내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원로들이라면 다 알아보게 될 거라는 소리였다.

그걸 내가 익히고 있다면 협회에서 이를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뭐, 잘나신 남부 연합의 부맹주한테 감히 뭐라고 하겠느냐?”

“끄응.”

그렇다고 아까운 마법을 배우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지못해 마법을 익히기로 결정했다.

정 문제가 생기면 자크론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수밖에.

* * *

남부 안정화에는 대략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은 군대를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으로 대치는 반나절 이상이 걸린 경우가 없었다.

권유를 가장한 협박들이 아주 잘 먹혔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영지를 협박만으로 점령할 수는 없었다.

인근 영지를 잡아먹고 힘을 키운 영주도 있었는데 그는 항복을 거부한 채 완강하게 나왔다.

딱히 친왕실파도 아니어서 레일리 왕녀를 이용할 수도 없었기에 연합에 합류시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근처의 영주가 아쉬워했지만 싸워서 내주기에는 적이 만만치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싸운다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뒤집어쓸 테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영주님.”

아무튼 안정화가 끝난 뒤 나는 베르타를 찾아갔다.

“오랜만이군, 베르타 경. 그간 잘 지냈나?”

“허허. 저야 늘 그렇지요.”

베르타는 시커멓게 죽은 눈으로 대답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역시나 베르타는 엄청난 업무에 휘둘리고 있었다.

“내가 베르타 경에게 줄 선물을 가져왔지.”

그에 난 신호를 보냈고 몇 명의 관리들이 앞으로 나섰다.

항복한 영지들에서 영웅 정보를 통해 알아본 실력 있는 행정가들이었다.

영지는 근처의 연합 영주에게 주기로 했지만, 자발적으로 나를 따르겠다는 기사나 마법사 혹은 관리들마저 넘겨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 내 권유에도 선뜻 응하는 이는 적었다.

대부분은 살던 곳이 고향이며 가족들도 그곳에 있으니까.

그러나 나를 따라오려는 이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약간의 영웅들을 모을 수 있었다.

“오오오!”

이를 본 베르타가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영주님.”

“응?”

“영주님이 혼인하실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벌써 소문이 돌았나?”

난 딱히 베르타나 기사들에게 레일리 왕녀에 대한 소식을 전달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약혼식만 간소하게 하고 실제 혼인은 언제 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연합의 다른 영주들을 통해서 소문이 퍼져버린 모양이었다.

레일리 왕녀의 정체가 기밀이지 바이든 자작의 조카 라일은 기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누구입니까?”

기대감으로 들뜬 베르타의 얼굴에 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베르타는 레일리 왕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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