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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60화 (60/250)

VVIP 영주님의 품격 6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60화

60화

* * *

연합군은 무척이나 어수선했으나 그 수뇌부인 영주들은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레일리 왕녀의 등장으로 인한 충격.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혼인을 청한 것 때문에 이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당장 혼인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권력의 이양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마이어드 후작이 일전에 나에게 준 보상에도 변경이 있었다.

“앞서 이야기한 영지 건은 없던 것으로 해야 할 거 같군.”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마이어드 후작이 나를 시험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으니까.

내가 레일리 왕녀와 혼인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는 불필요해졌다.

그러나 일단 내린 걸 거뒀으니 다른 보상을 마련해야 했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카이로스 백작가의 재산을 자세히 알아볼 수가 없다네.”

마이어드 후작의 말대로 카이로스 백작가의 행정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이 시대 자체가 현대와 같은 깔끔한 행정을 요구하기는 어려웠지만, 카이로스 백작가는 그 수준이 특히 심했다.

카이로스 백작 본인부터가 망나니로 그런 일에 신경 쓰지 않았고, 측근인 테인 준남작이 장난질을 쳐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장부와 실제 금액이 다른 경우가 너무 많네. 틀림없이 이중장부야.”

직접 내역을 확인한 나도 테인 준남작이 뒷주머니를 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이중장부는 어디에 있는가?

테인 준남작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허술하게 숨겨져 있지 않았다.

이렇게 헤맬 줄 알았다면 테인 준남작을 살려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알고 보니 그는 전투 도중이 아니라 카이로스 백작에게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아무리 망나니 카이로스 백작이라도 측근을 갑자기 죽일 리 없으니 뭔가 불화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마이어드 후작은 테인 준남작이 배신을 하려다 들킨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이는 확신할 수는 없으나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지금까지 잘도 살아남은 간신이 갑자기 제거되었다면 그런 이유가 가장 유력했으니까.

“분명 엄청난 재물을 빼돌렸을 텐데.”

카이로스 백작에게서 빼돌린 재물을 찾기 위해 나와 마이어드 후작, 바이든 자작과 레일리 왕녀까지 모두가 날밤을 새웠다.

그만큼 추정되는 재물이 컸기 때문이다.

“어흠!”

그렇게 피곤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자크론이 나를 찾아왔다.

악명 높은 자크론의 등장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당황했다.

자크론은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설마 탈출한 건가?”

“아닙니다.”

난 자크론을 경계하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자크론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에 마이어드 후작과 바이든 자작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이 자크론으로 인해 입은 피해가 특히 컸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크론은 내가 잡은 포로였고 그 권리는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이해해 주십시오.”

“뭐, 어쩔 수 없겠지.”

다행히 마이어드 후작은 자크론을 금방 받아들였다.

적으로서는 두렵지만, 아군으로서는 충분히 든든할 실력이었으니까.

더구나 레일리 왕녀의 정체가 밝혀진 지금 자크론과 같은 실력 있는 자의 존재는 더욱 빛을 발했다.

아무리 대영주라고 해도 자크론 같은 고위 마법사를 곁에 두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원로급 마법사는 협회에서 스스로 나가지 않는 이상 귀족 옆에 붙어 있지 않으니.’

귀족 밑에서 일하는 마법사들은 모두 재물을 원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원로는 협회에서 예산으로 지원해 주기에 굳이 귀족 아래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원로가 귀족 아래에 들어가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협회에서 제명당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쯧.”

하지만 그렇다고 자크론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바로 보내는 것도 어려웠다.

마이어드 후작은 자크론에게서 최대한 거리를 두었다.

이런 태도는 바이든 자작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믿을 수 있는 건가? 자크론의 악명은 카이로스 백작과 비교해서 절대 아래가 아닐세.”

“믿으셔도 좋습니다.”

결국 내 적극적인 옹호에 두 영주가 한 발씩 물러섰다.

자크론은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이만한 거물들이 모여서 장부나 뒤적이다니? 바깥이 얼마나 어수선한데.”

“그게…….”

영주들이 이렇게 발품을 파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쟁이 막 끝난 지금 행정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아무리 연합군이 결성되었어도 내정형 영웅이나 외교형 영웅은 극히 드물었다.

아니, 영웅 수준에 못 미치는 이들도 적었다.

난 시스템을 통해서 이 세계의 언어와 문자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 세계에선 문맹률이 꽤나 높았다.

그리고 그것은 심지어 영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자기 이름이나 서류를 읽는 것은 가능해도 수를 계산하는 행정 업무에서 대다수의 영주들은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관을 비롯해 하급 관리들이 필요했는데 전쟁에 이런 이들을 데리고 오는 영주는 없었다.

나 역시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 베르타 준남작을 데려오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영지를 맡을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도 없는 게 테인 준남작이 빼돌린 재산을 빠르게 찾아내지 못하면 남부 연합군의 다음 행보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다른 지역은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이야. 반면에 남부는 지금 적이라고 할 만한 세력이 없지.’

그렇기에 다음 목표는 최대한 빠르게 안정화를 하고 힘을 길러 다른 지역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역시나 돈이었다.

내전으로 군량을 비롯해 생필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상황.

대영주인 카이로스 백작가의 재산을 빨리 찾아서 처분해야 상인들을 통해 웃돈이라도 주고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흐음. 숨겨진 장부를 찾아야 한단 말이지? 그럼 마법사들이라도 불러서 써라.”

“지금 있는 마법사들은 이미 투입했습니다.”

마법사들은 문맹이 극히 적었다.

마법사 협회의 지식이 책으로 전달되었기에 필수적으로 글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숨겨진 장부 찾는 데 마법사들을 쓰라고. 이런 거 원래 마법사들이 전문이다.”

“네?”

그런데 자크론의 제안은 마법사들을 행정 업무에 쓰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숨겨진 장부를 마법사들을 통해 찾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크론의 말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의문을 느꼈다.

그에 자크론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일반 마법 중에 특정 물건을 찾는 마법이 있다는 걸 아느냐? 원래는 비전 마법이었는데 협회에서 워낙 처리할 문건이 많아 일반 마법으로 공개했다.”

“그런 마법을 익힌 마법사는 못 봤습니다만?”

지금까지 내가 봤던 어떤 마법사도 그런 마법을 익히고 있지 않았다.

플레턴에게는 있었을지 모르나 워낙 배우고 있는 마법이 많아서 내가 다 파악할 수 없었고, 자크론에게도 그런 마법은 없었다.

“외부에서 활동하는 놈들은 잘 안 익히거든. 문건을 직접 다룰 수준이면 굳이 외부에서 일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지만 협회 내부의 높은 자리를 꿰찬 놈들이나 바로 그 밑에서 배운 직계 제자 중에는 익힌 경우가 많다.”

“협회 내부의 마법사라면 어차피 여기에 없지 않습니까?”

그들은 인질을 구할 때와 카이로스 백작의 퇴로를 막을 때만 잠깐 모습을 보이고 사라진 상태였다.

“없기는. 지금 사방에 깔린 게 협회 놈들인데.”

그러나 이어진 자크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중립을 내세우며 내전에 관여하지 않는 협회의 마법사들이지만 그렇다고 절대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분명 이 주변을 돌면서 염탐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남부 내전의 승자인 연합군이 차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확인해야 할 테니까.

“돈 좀 주고 잠깐만 도와달라고 해. 어차피 장부로 찾아낼 재물이 훨씬 클 테니 손해도 아니지. 이건 딱히 협회의 방침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고.”

자크론이 쌓아온 연륜은 헛것이 아니었다.

난 그 즉시 협회의 마법사들을 찾아 나섰다.

“영주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두문불출하던 내가 나서자 기사단장인 로크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그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엉망이 된 내 몰골을 보고는 당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헛고생하고 있었지.”

자크론을 스승으로 들인 건 플레턴과도 논의되지 않았던 독단이었다.

그러나 아주 훌륭한 결정이었다.

자크론이 가진 재주는 마법만이 아니었다.

그 연륜에 따라서 쌓인 지식과 경험.

이는 내 주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로크 경, 주변에 협회에서 나온 마법사들이 있을 텐데 전부 불러 모을 수 있겠나?”

“마법사들 말입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다 모으게.”

내 지시에 로크는 곧장 기사단을 이끌고 마법사들을 찾으러 다녔다.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시간이 지난 뒤 거의 붙잡히다시피 마법사들이 불려 왔다.

당연히 좋은 반응이 나오진 않았다.

칼을 들어 위협한 것은 아니지만 기사들은 마법사들의 옆에 바짝 붙어 압박을 주고 있었다.

“오해하지 말게. 그냥 도움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러니까.”

“협회는 귀족분들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하하. 그야 당연하지. 그냥 사적인 일이야.”

난 모인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이에게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걸쳤다.

이는 자크론의 조언 때문이었다.

어린 마법사가 밖에 있다면 이는 스승이 경험 삼아서 내보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으니까.

“자네 스승이 누구지?”

마법사 협회에는 혈연이 드물다.

마법사의 재능은 마법사의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타고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마법사 협회에서 강조되는 건 학연이었다.

스승과 제자 그리고 사형제의 관계로 얽힌 것.

재능 있는 마법사일수록 좋은 스승을 두고 그 스승을 배경으로 더 큰 인맥을 쌓을 수 있었다.

“남부 지부장을 맡고 계신 가이트 님입니다.”

월척이었다.

지부장 가이트는 플레턴의 제자였다.

플레턴이 여러 지역 중 남부 지부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고.

“아, 가이트 지부장님이군. 그럼 그분이 내 사형되신다는 걸 알고 있나?”

가이트는 나를 사제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지 않았다.

내가 귀족이며 그것도 영주이기 때문에 공적인 관계를 유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협회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난 가이트와 사적인 사이가 되어야만 했다.

“그럼 자네는 내 사형의 제자인 것이군.”

“그렇게 되기는 하지만…….”

“그럼 내가 윗사람으로서 섭섭하게 대할 수야 없지.”

곧장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마법사에게 챙겨주었다.

“저기, 이 돈은 갑자기 왜?”

“용돈으로 생각하게.”

용돈치고는 무척이나 과한 액수였다.

내 말에 마법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 귀족이 갑자기 친근하게 굴면서 용돈을 주는 게 평민이나 농노 출신이 대부분인 마법사들에게 익숙한 일은 아닐 테니까.

“알고 보니 우리 사이가 참으로 가까워. 그런데 이렇게 곁에 있었으면서도 몰랐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 그렇지 않나?”

어깨에 두른 팔에 힘을 주며 압박하자 마법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좀 더 대접하고 싶은데.”

“그건 좀 곤란합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살피던 마법사 하나가 나섰다.

아마 그는 여기에 있는 협회 마법사들의 대표일 것이다.

실제로 나보다 훨씬 고령이었고 영웅 정보를 통해서 2티어 마법사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영주에게 함부로 말을 걸 위치냐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었다.

난 곧장 눈을 부라렸다.

“자네는 누구의 제자지?”

“네?”

“플레턴 님의 제자인 나와 사형의 제자가 말하는데 왜 끼어드는 거지? 자네도 사형의 제자인가?”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그런데 무슨 주제로 끼어드는 거지?”

상대는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방해꾼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나는 어린 마법사를 다독였다.

“자, 안으로 들어가서 좀 더 이야기하지. 아, 혹시 사형의 제자가 또 있나?”

그렇게 난 마법사 몇 명을 회유해서 숨겨진 장부를 찾아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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