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51화
VVIP 영주님의 품격 51화
51화
【 남부대전의 끝 】
‘저놈이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한참 날뛰던 자크론이 한 곳을 바라보며 경계심을 높였다.
예민한 그의 감각에 상당한 마나를 보유한 존재의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명 플레턴의 제자라고 알려진 녀석이었다.
‘혹시 나를 노리는 건가? 감히?’
자크론은 과거 플레턴에게 패한 전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자크론의 실력이 플레턴의 아래란 의미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플레턴이 익힌 마법이 특별했을 뿐.
이 전장에서만큼은 어떤 마법사도 자신에게 맞서지 못할 거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플레턴의 제자는 너무 당당하게 다가왔다.
‘설마 플레턴한테 그것까지 배웠다면?’
플레턴의 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기에 그 마법까지 배웠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자크론이었다.
하지만 플레턴의 마법을 익힌 게 아니라면 저토록 당당하게 마나를 뿜어내는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끄응.’
골치 아픈 상황에 신음이 나왔다.
정말 플레턴의 마법을 배운 것이라면 자크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플레턴의 마법이 어떤 원리로 마법사를 제압하는지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한참 어린 녀석에게 물러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협회의 원로와 맞먹는 배분과 실력을 가진 자신이 저런 젊은 녀석에게 겁먹고 물러난다면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겠는가?
‘일단 찔러본다!’
결국 자크론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이놈! 어린놈이 감히 스승을 믿고 나한테 덤비는 것이냐!”
자크론이 날린 화염이 아인의 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아인은 화염을 마나 실드로 가볍게 막아냈다.
‘역시 보통 마나가 아니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인의 모습에 자크론은 경계심을 한층 올리며 다가오는 아인을 주시했다.
언제 어떤 형태로 플레턴의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쓰러트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은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심조차 보이지 않고 성큼성큼 자크론과의 거리를 좁혔다.
‘무슨 속셈이지?’
자크론은 의심스러운 기색으로 아인을 살폈다.
저렇게 경계심 없어 보이는 행동으로 방심을 유도한 뒤 기습할 계획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찝찝하더라도 여기서 먼저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저 어린놈이 다가오는 것만으로 자신이 물러난다면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뻔했으니까.
원로인 플레턴도 아니고 일개 제자에게 겁먹었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고 멀리서 하는 견제에 쓰러질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미 실컷 힘을 뽐낸 탓에 잔여 마나에도 신경 써야 하는 처지였다.
결국, 아인은 추가적인 방해를 받지 않고 자크론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아인 네패스라고 합니다.”
그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자크론의 눈가가 씰룩였다.
자신이 날린 공격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진심이 아니라는 걸 꿰뚫어 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선배님에 대한 이야기는 스승님께 익히 들었습니다.”
“플레턴이 내 이야기를 했다고?”
플레턴의 이름이 거론되자 자크론은 눈을 번뜩였다.
협회에는 많은 원로가 있었지만 자크론은 그들 대부분이 자신보다 아래라고 여겼다.
그러나 패배의 치욕을 안겨준 플레턴은 예외였다.
마땅히 인정할 만한 마법사인 만큼 플레턴이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을지 호기심이 들었다.
“플레턴이 나에 대해 뭐라고 했지? 정신 나간 미치광이라더냐?”
“전투에 있어서 최고의 마법사라고 하셨습니다.”
특정 분야 한정이라지만 최고라는 평가.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니라 자신을 이긴 마법사인 플레턴의 평가였다.
자크론은 순간 전장의 상황도 잊은 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당연히 제가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싸우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자크론의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제자에게 자신을 주의시킨 것 역시 플레턴이 자신을 고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었기에.
“흠흠. 당연하지. 그래도 너도 네 나이치고는 아주 훌륭하다.”
덕분에 자크론은 호의적인 태도로 아인을 대해주었다.
“자크론 님은 가족이 없으니까 인질이 잡히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후 아인이 꺼낸 말에 자크론은 행동이 멈추고 말았다.
그에게 정말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젊었을 때부터 악명을 떨친 터라 연락 끊고 산 지 오래였다.
그 덕에 카이로스 백작에게 가족이 인질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마법사들의 가족은 협회에서 구하기로 했습니다.”
“뭐, 그럴 테지.”
자크론은 쉽게 수긍했다.
가족을 인질로 잡혔으니 마법사들이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정해진 순서.
그리고 아무리 중립을 고수하는 협회라도 이런 일에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협회에서 행동에 나섰을 테니 마법사들은 곧 카이로스 백작을 배신할 겁니다. 아니, 배신은 아니지요. 먼저 배신한 건 카이로스 백작이니까.”
자크론은 이제야 왜 아인이 자신의 앞에 나섰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적측의 마법사로서가 아니라 협회의 마법사로서 이 자리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도 아인을 공격할 수 없었다.
협회의 대표를 공격하는 건 협회 자체에 대한 선전 포고나 마찬가지니까.
“카이로스 백작은 전쟁에서 패하고 죽게 될 겁니다. 그런데 선배님께서 카이로스 백작의 편에 서서 많은 이들을 죽이면 마이어드 후작을 비롯한 다른 영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뒷일을 생각해서 알아서 물러나라는 소리냐?”
하지만 자크론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불쾌해졌기 때문이다.
상대가 플레턴이라도 그럴 텐데 새파랗게 어린놈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말은 적어도 지부장급은 나서서 전해야 하니까.
자크론은 자신이 그 정도 위치는 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닙니다. 선배님께 그럴 수는 없죠.”
아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쳐졌다.
“부디 이 후배를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면 제가 선배님의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자크론이 몸을 떨었다.
전장 한복판에서 적을 회유하려고 나서다니?
지인이라면 모를까 자크론은 아인을 이번에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워낙 악명이 높았던 자크론은 마법사들도 피하거나 적대를 했지 손을 내미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가 카이로스 백작의 밑에 있는 이유도 카이로스 백작만이 그 드문 일을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보고 네놈에게 붙으라고?”
“그럼 제가 다른 영주들을 설득하겠습니다.”
아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이 설득될 것이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도 느껴지지 않는 당당한 태도.
자크론의 심사가 뒤틀렸다.
“어이가 없구나. 내가 왜 너 같은 코흘리개에게 협력해야 하지?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건 자신 있다.”
사실 자크론도 지금 자신의 처지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카이로스 백작이 선을 넘는 순간부터 협회의 움직임이 예견되었으니까.
아무리 중립을 원하는 협회라도 연합군이 패배하는 그림은 좋지 않았으니 어쩌면 개입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자크론은 협회가 나서기에 괜찮은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가 협회에서 제명된 이유 중에는 협회와의 트러블도 적지 않았기에.
하지만 자크론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이 전장에 나선 상황이었다.
‘어린놈의 혓바닥에 놀아날 수는 없지.’
자크론은 아인의 반응을 기대했다.
과연 저 자만심 넘치는 얼굴이 어찌 변할지.
그런데 아인은 자크론의 거절에 고민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마족과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 * *
마족과 싸운다는 내 말에 자크론이 당황하는 게 보였다.
이 자크론이라는 악명 높은 마법사는 많은 죄를 저지른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제명까지 당했지만 그렇다고 협회의 비호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플레턴을 비롯한 원로들은 훗날 다시 돌아올 마족과의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라도 마법사들은 쉽게 서로를 해쳐선 안 되었다.
특히 자크론처럼 실력 있는 마법사라면.
“마족과 싸워? 플레턴이 그 얘기까지 해줬다고? 아니, 설마 플레턴이 선택한 게 네 녀석이란 말이냐?”
마족이라는 단어에 자크론은 달라진 시선으로 나를 봤다.
그저 그런 제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매우 진지하게 나를 살피면서 실력을 가늠하고 있었다.
“직접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난 그런 자크론에게 실력을 보이겠노라 말했다.
이대로 대화만으로 자크론이 설득되면 오히려 내가 곤란했다.
악명 높은 자크론이 말 몇 마디에 넘어갈 리 만무하니, 마법사 협회에서 개입해 자크론과의 싸움을 중재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됐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자크론에 의한 피해가 벌어지기 전에 미리 했어야 되니까.
이대로 회유한다면 나중에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서 실력으로 자크론을 꺾어야 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제가 이길 수 없겠지만 선배님께서는 지금 마나를 크게 소모하셨으니 저에게도 승산은 있을 겁니다.”
난 호승심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여겼고, 만약의 경우에도 자크론이 나를 죽이지는 못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크론이 보여준 태도가 이를 증명했다.
“허, 그래서? 기어이 나를 이겨보시겠다?”
자크론이 비죽 웃었다.
“오만방자하구나. 귀족으로 태어나, 마법사의 자질을 갖고, 좋은 스승까지 두니 세상이 쉬워 보이더냐?”
하지만 절대 쉽게 이길 거 같지는 않았다.
한순간 심장이 철렁할 만큼 섬뜩한 기운이 나를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위해는 아니지만, 자크론 정도의 마법사는 기세만으로 상대를 압도할 수도 있었다.
“증명하려는 겁니다. 제가 마족과 맞설 만한 자질이 있는지를.”
“네 증명이야 네 스승한테 할 일이지. 왜 나한테 증명한다는 거냐? 아니면 나를 이기는 게 네 스승이 내준 과제이기라도 한 거냐?”
“아닙니다. 전 선배님께도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뭐라고?”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말에 자크론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법사 협회에서 스승을 여럿 두는 건 흔하지는 않으나 전례는 충분히 있었다.
자크론은 협회에서 제명당한 몸이지만 협회 소속이 아닌 마법사를 스승으로 두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었고.
정확히는 이런 경우를 생각하지 못한 쪽이겠지만.
“내 마법까지? 플레턴을 스승으로 두고서 말이냐?”
“그 플레턴 님도 자크론 님의 마법은 인정하고 계십니다.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딱히 스승을 여럿 두는 데 제한은 없고 전례도 많지만, 하필 플레턴의 제자라…….”
자크론이 재차 나를 살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뭐, 좋다. 플레턴이 선택한 녀석이라니까 궁금하기는 하구나.”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일단은 스승을 공경할 수 있도록 네 주제부터 알게 해줄…….”
콰콰쾅!
자크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마나 블래스트와 윈드 불릿의 이중 마법을, 마나 가속으로 강화해서 날렸다.
자크론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깜짝 놀랐으나 마나 실드를 펼쳐내 이를 막아냈다.
“이 자식이! 감히 기습을 해?”
“설마 이 정도 기습에 놀라신 겁니까?”
“이 새끼가!”
싸구려 도발인데 내가 어려서 그런지 자크론은 흥분한 상태로 공격을 마구 날려댔다.
실력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마법사.
그게 자크론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몇 개의 마법을 주고받으며 나와 자크론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난 자크론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
등급은 내가 더 높을지언정 삼중 마법까지 쓸 수 있는 자크론이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집중하는 사이 중군은 퇴로를 얻을 수 있었다.
대화로 시간을 끈 것도 자크론을 회유하는 것과 별개로 바이든 남작을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어서 퇴각해!”
퇴각을 막아야 할 자크론이 내 등장 이후로 침묵하고 있으니 바이든 남작은 이미 퇴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크론은 나에게 정신이 팔려 그것을 막지 못했다.
“자크론! 뭐 하는 거냐!”
그때 도망치는 이들을 쫓아 카이로스 백작이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어이가 없어졌다.
엄청난 상처였다.
전장이 아니라 병상에 누워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일 만큼.
‘어떻게 저 몸으로 움직일 수 있지?’
그야말로 괴물 같은 생명력이었다.
[영웅 정보]
이름 : 카이로스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카이로스 백작가
유형 : 전투형
등급 : 4티어
칭호 : 위대한 광전사
스킬 : 검술(4), 기마(4), 방패술(4), 격투(4), 혈전(3), 단검술(3), 위압(3), 지휘(2)
그의 정보를 확인하고서야 놀라운 생명력의 비결을 알 수 있었다.
‘광전사라고?’
카이로스 백작은 기사가 아니라 광전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