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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49화 (4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4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49화

49화

누군가가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요란한 전장에서도 옆에 있던 이들이 연달아서 소리를 질러 적 사령관의 출현을 본진으로 전달했다.

남아 있던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드디어 나타난 건가!”

카이로스 백작이 모습을 드러낸 건 마찬가지로 우익에서였다.

그곳에서 카이로스 백작은 소수의 인원과 함께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익을 공격할 셈이군.”

좌익은 철저하게 요격으로 버티고 정면은 기사단이 막고.

그리고 우익은 카이로스 백작이 직접 뚫을 심산 같았다.

‘바보 같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다른 방향에 비해서 우익에서의 병력 차이가 특히 컸다.

아무리 카이로스 백작 본인과 알렉스라는 기사가 함께 있다고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앞서 나갔던 영주들이 당하면 저희가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일리 왕녀는 카이로스 백작이 어느 쪽으로 나서서 대항해도 대응할 수 있도록 세 방향 모두를 가정하고 작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만일 우익에서 카이로스 백작이 나타날 경우에는 내가 상황을 보고 지원을 가도록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처음부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굳이 우익에서 나타날 이유가 없다.

그대로 중간을 뚫고 마이어드 후작을 잡으려고 하는 진짜 미친 짓이 남아 있었으니까.

카이로스 백작이 그러지 않고 우익부터 공격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좌익 부분은 방어에 용이한 지형이지만 우익은 그렇지 않지.’

상대적으로 우익이 더 취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다.

그러나 카이로스 백작이 아무리 강해도 한계란 게 있었다.

우익의 선두를 맡은 영주들을 상대하고 나면 힘이 빠질 것이다.

병력의 우위는 이쪽에 있으니 적진 한복판에서 체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피하려면 신경을 써야 했다.

더구나 중상을 입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이라면 체력 문제가 더욱 카이로스 백작의 발목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놀랍기는 하네.’

난 카이로스 백작을 보며 감탄했다.

겨우 한 손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있으면서 선두에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적들을 분쇄하는 무시무시한 무용.

‘하지만 죽을 거다. 게임 스토리에서도 그랬을 테니까.’

메인 스토리에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추측할 단서 정도는 있었다.

그게 바로 루퍼스였다.

게임에서 나온 루퍼스는 카이로스 백작가의 소속이 아니었다.

이는 루퍼스가 제 발로 카이로스 백작가에서 나왔거나 카이로스 백작가가 없어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후자였다.

‘만약 내가 없었더라도 카이로스 백작이 유리했을 거 같지는 않으니까’

레일리 왕녀의 확장은 나 때문에 방해받은 부분이 있었다.

본래 내가 엑스트라 영주인 아인이었다면 네패스 남작가와 도미닉 남작가 모두 바이든 남작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힘을 키웠다면 레일리 왕녀의 전력은 지금보다 강했을 테니 카이로스 백작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나 때문에 갑자기 탈영하게 된 용병 탈론의 존재도 있었다.

4티어의 궁사인 탈론은 혼란한 틈을 타서 카이로스 백작을 죽일 수 있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어디, 얼마든지 와보거라!”

그러나 적어도 당장 그런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카이로스 백작은 아군의 우익을 종횡무진 휩쓸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기사들은 형편없이 패배해서 목숨을 잃었고 이에 우익을 맡은 영주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뭐가 저렇게 강하단 말이냐?”

1티어나 2티어 기사들로서는 상대가 안 된다.

거리가 멀어서 정확한 확인은 못 하고 있지만 카이로스 백작이 자칭한 삼기사의 전력이 동등하다면 그 역시 4티어 수준의 강자니까.

더구나 다른 4티어인 알렉스라는 기사도 함께하고 있었다.

“와아아!”

“놈들을 몰아쳐라! 카이로스 백작가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그때 중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치열하게 싸우던 바이든 남작가의 기사들이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4티어 영웅이 두 명이나 없었음에도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이 우세를 점한 것이다.

지켜보고 있던 레일리 왕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왕녀는 정보가 안 보인다.’

난 영웅 정보에서 나오는 티어를 통해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단이 가진 전력을 예측하고 있었다.

상급 기사란 자들이 3티어.

삼기사는 4티어.

실력의 편차가 크지 않다면 카이로스 백작이 굳이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 이건 나름 믿을 만한 정보였다.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보가 보이지 않았다.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가 강하다고 해도 정확히 어느 정도로 강하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러니 보통은 소속이 어딘지를 보고 판단을 내리지.’

왕가에 소속된 근위기사는 단연코 그 나라의 최정예 기사였다.

그러니 머릿수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 이상 그들이 당연히 이길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로스 백작은 직접 마족과의 전쟁에 나서서 실력 있는 기사들을 영입했다.

루퍼스의 존재나 마이어드 후작의 패배를 통해서 그들의 실력이 왕가의 기사들에게 밀리지 않으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지.’

마이어드 후작가의 기사들을 이긴 것?

거기서 맹활약한 인물은 카이로스 백작이었다.

그리고 마이어드 후작가의 기사들의 정확한 실력은 아무도 몰랐다.

그냥 남부에서 제일 큰 세력이니 제일 강할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있었을 뿐.

‘그럴 리가 없잖아.’

마이어드 후작가의 기사들은 젊은 시절부터 마이어드 후작에게 충성을 바쳐왔다.

물론 기사들의 은퇴는 영주인 마이어드 후작보다 빨랐고 지금 그를 따르는 기사들은 한 세대 아래의 인물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윗세대에서 이어져 온 혈연과 인맥으로 올라선 자들이었다.

‘애초에 나조차도 같은 티어에서는 정확한 실력을 알기 힘든데 이런 정보조차 안 보고 기사들의 수준을 정확히 아는 건 불가능하지.’

더구나 레일리 왕녀가 지금까지 상대해 온 건 약소 영주들의 기사들뿐.

3티어 이상의 고티어 영웅은 약소 영주 밑에 어지간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다.

왕가의 기사들이라면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에게 밀리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바이든 남작을 지원해야 한다!”

마이어드 후작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을 준비시켰다.

곧 마이어드 후작가의 기사들이 출격했다.

그들은 이미 단장과 부단장을 잃는 등 큰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당한 숫자와 힘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힘을 쓰나 싶던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은 다시 주춤거렸다.

“기사들을 도와라!”

그때 카이로스 백작가 측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테인 준남작이라고 했던가.

카이로스 백작의 측근으로 알려진 기사가 별동대를 내세워 싸움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마법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적들이 마법사를 투입했다!”

“우리도 마법사를 보내라!”

구역과 진형을 갖춘 채로 이어지던 싸움이 점점 개싸움에 가까운 형상으로 변해갔다.

“지원 요청입니다!”

그때 우익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나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우익에 있던 영주가 보낸 전령이었다.

“네패스 남작님, 카이로스 백작을 잡기 위해서 지원을 부탁한다는…….”

“그럴 필요 없다.”

난 우익을 살폈다.

신나게 날뛰던 카이로스 백작이 갑자기 소극적으로 행동하더니 고삐를 돌려서 우익을 빠져나갔다.

어느 정도 우익에 타격을 주고는 후방으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싸우기 힘들겠지.’

더 싸워서 큰 피해를 주는 게 좋기야 하겠지만 부상을 입은 카이로스 백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놈이 도망간다! 쫓아라!”

카이로스 백작이 물러나는 걸 본 우익의 기세가 살아났다.

다쳤다는 녀석이 멀쩡하게 날뛰고 있으니 잠깐 주춤했지만, 역시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니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봐라. 충분하군.”

“아…….”

전령은 내 눈치를 살피며 더 이상 지원을 요구하지 못했다.

우익이 점차 카이로스 백작가의 병력을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알렉스도 수십 명을 베어 넘겼으나 혼자서는 전황을 뒤집지 못했다.

‘차라리 마법사가 저런 상황에서는 낫지만.’

아직까지 카이로스 백작가 측에서 실력 있는 마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아예 실력 있는 마법사가 없는 건 아니었다.

- 카이로스 백작과 싸울 예정으로 알고 있다.

마이어드 후작의 요청에 따라 집결하기 전 플레턴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카이로스 백작이 마법사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것 때문에 마법사 협회에서도 카이로스 백작을 주목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남부의 대영주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건 그것과 다른 이유였다.

- 마법사 협회에서는 개입 안 하십니까?

아무리 마법사 협회가 중립을 좋아하더라도 협회에 속한 마법사들이 가족들을 인질로 잡혀서 내몰린 상황이다.

이 사실을 알리고 카이로스 백작과의 싸움에 개입할 여지가 있기는 했다.

- 괘씸하기는 하지만 곤란하다. 아무리 몰렸더라도 협회가 대영주를 공격하는 건 좋은 광경이 아니지. 물론 가만히 있겠다는 건 아니다.

마법사 협회는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질로 잡힌 가족들을 구해내기 위해서.

그 정도까지만이라면 협회가 중립을 어기고 나서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선을 넘은 건 카이로스 백작 쪽이니까.

- 그러나 그와 별개로 카이로스 백작은 네가 상대해야 할 거다.

- 알겠습니다.

대화는 그대로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플레턴이 한 가지 정보를 추가로 내주었다.

- 카이로스 백작의 밑에서 조심해야 할 이들이 있다. 그중에는 상당히 뛰어난 마법사도 있지.

플레턴이 나에게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마법사.

그러나 지금까지 카이로스 백작이 벌인 싸움에서 마법사가 주목받았던 일은 없었다.

아마 아끼고 아껴둔 비장의 패였을 것이다.

아니면 신뢰하지 못해서 드러내지 못했거나.

어느 쪽이라도 상황이 이렇게 몰리면 카이로스 백작이라도 마냥 버틸 수는 없었다.

‘슬슬 나올 때가 된 거 같은데.’

카이로스 백작의 뒤를 쫓기 시작하는 우익.

요격을 뚫고 뒤엉켜서 정면 승부에 나서기 직전인 좌익.

적과 아군이 뒤섞여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중군.

나는 세 방향을 빠르게 살폈다.

카이로스 백작이 지시를 내렸을 타이밍이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퍼퍼펑!

그리고 마침내 마법사가 움직였다.

그러나 과연 마법사답게 내 허를 찌르는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무, 무슨 일이냐!”

적측 어딘가에서 나타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아군이 뭉친 장소에서 폭발이 연달아 터졌다.

밀집되어 있던 병력들은 그 폭발에 휩쓸려 순식간에 핏물이 되고 말았다.

“저게 무슨!”

마법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진짜 장난 아니네.’

사전에 미리 공작을 해서 화약을 깔아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화약을 한꺼번에 기폭시켜서 일격에 수백에 달하는 이들을 휩쓸었다.

그나마 그 자리가 수뇌부가 몰린 본진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물론 거리가 있는 만큼 그럴 수도 없었을 테지만.

“당황하지 마라! 적을 찾아!”

“인사가 너무 거칠었던 모양이군.”

혼란을 수습하고 범인을 찾던 이들의 눈에 한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후방과 중군을 고립시키는, 사실상 우리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무척이나 대범한 위치였다.

기사도 아니고 마법사가 진영 한복판으로 들어오다니.

“이번에는 가볍게 가보지. 윈드 불릿, 파이어 월, 마나 블래스트.”

화르르륵!

무시무시한 화염이 일더니 마법사는 자신의 뒤편, 바이든 남작가의 기사단과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단이 뒤섞인 곳으로 강력한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가까운 위치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바이든 남작가의 기사였다.

퍼버벙!

바닥조차 녹일 만큼 거센 화염이 일며 기사들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과연 플레턴이 조심하라고 굳이 경고를 해줘야 했을 만큼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

‘영웅 정보.’

[영웅 정보]

이름 : 자크론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카이로스 백작가

유형 : 마법형

등급 : 4티어

칭호 : 위대한 마법사

스킬 : 마나 블래스트(4), 파이어 월(4), 이중 마법(4), 마나 파장(4), 마나 실드(4), 삼중 마법(3), 윈드 불릿(3), 파이어 스피어(2), 파이어 스톰(2), 어스 웨이브(2)

‘엄청난데.’

플레턴은 자크론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살육에 미친 자.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부분은 적어도 마족과의 전쟁에서는 인간의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그게 마족을 죽이는 쪽이 더 재미있을 거 같아서라는 이유라는 게 문제였지만.

워낙 위험한 인물이라서 마법사 협회에서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족과의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카이로스 백작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요주의 인물로서 감시하고 있던 마법사 협회의 눈길까지 피하지는 못했지만.

“시시하군. 더 재미있는 녀석은 없는 거냐?”

자크론의 광기 어린 눈길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곳에 멈췄다.

그는 정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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