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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48화 (48/250)

VVIP 영주님의 품격 48화

VVIP 영주님의 품격 48화

48화

* * *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내일은 아침이 지나면 바로 전투가 시작될 예정이기에 서둘러서 탈론을 내 막사로 불렀다.

아무리 용병이라도 전투를 앞두고 자신의 진영을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영주인 내 이름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실력 있는 용병이라고 알고 있네.”

“저는 마이어드 후작님께 고용된 몸입니다.”

“이번 싸움이 끝날 때까지만 아닌가?”

탈론은 한 세력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성향이 있는 영웅이었다.

그래야만 비싼 액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일에 대해서 미리 계약해서 나쁠 건 없겠지.”

“흠.”

내 이야기에 탈론은 잠시 고민하더니 긍정했다.

“알겠습니다. 어떤 의뢰를 원하십니까? 내용에 따라서 비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내 밑에서 일해줬으면 하네.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이 아니라 충성을 바쳐서.”

후드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았으나 반응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성미에 맞지 않는 요청일 테니까.

“죄송하지만 그런 종류의 의뢰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 용병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건 찾아야 할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툭 내뱉은 말에 탈론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무려 4티어씩이나 되는 실력을 가진 탈론이 용병의 일을 고집하는 것은 찾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탈론은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용병으로 잠깐 머무르며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찾아주시겠다는 소리라면 거절하겠습니다. 쉽게 찾을 수 있다면 벌써 찾았겠죠. 하지만 그를 쫓기 시작한 지 2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변변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탈론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크레시안 왕국과 로베른 왕국 사이의 국경 지대. 평화의 폭포 근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 하나 있지.”

그에 나는 게임에서 탈론을 영구히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을 그대로 말했다.

탈론은 한 사람을 쫓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연인을 죽이고 달아난 원수를.

하지만 상대 역시 탈론에게는 못 미쳐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특히 숨는 능력이 뛰어나 단서조차 잡히지 않았는데 공략을 올렸던 랭커가 게임의 설정을 파고들다가 단서를 찾는 데 성공했다.

그 장소가 바로 크레시안 왕국과 로베론 왕국 사이에 있는 국경 지대.

그곳엔 평화의 폭포라고 불리는 거대한 폭포가 있었는데 근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탈론이 쫓는 상대는 바로 그 마을에 몸을 숨긴 상태였다.

‘이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커뮤니티가 한 번 뒤집어졌지.’

그냥 게임에 등장하는 그저 그런 용병인 줄 알았던 탈론이 사실은 영입이 가능한 영웅이다.

이를 알게 된 유저들의 반응은 정말 엄청났었다.

절대군주의 제작사에서 이런 이벤트를 숨겼을 줄은 몰랐으니까.

“외부인의 왕래가 적어서 숨기에 좋은 곳이야.”

“그곳에 제가 찾는 사람이 있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탈론은 내 말을 쉽사리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실제로 게임에서는 유저가 직접 해당 장소로 가서 관련된 단서를 입수한 이후에야 탈론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게임이니까 그럴 뿐이다.

난 충분히 말로 탈론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검은 화살촉을 쓰는 드래고니안이 흔하지는 않겠지.”

쿠당!

탈론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에게 달려들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크와 릴리아나가 돌발 사태에 맞서 움직였지만 가까이에 있던 탈론이 더 빨랐다.

쩡!

그러나 탈론은 궁사다.

활을 쏘는 거라면 모를까 근접해서 하는 공격은 내가 펼친 마나 실드를 뚫을 수준이 아니었다.

스르릉!

탈론의 공격이 막히며 그의 목덜미로 두 자루의 칼날이 닿았다.

하지만 탈론은 개의치 않은 채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탈론에게서 흉흉한 살기가 나와서 나를 압박했다.

“거짓말이면 날 죽여도 좋다.”

탈론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드래고니안?”

로크와 릴리아나가 깜짝 놀라며 탈론의 종족을 불렀다.

하나 남은 눈동자에서 드러나는 파충류 특유의 세로 동공.

거기에 작게나마 솟은 용의 뿔과 귀.

드래고니안은 용과 인간의 사이에서 태어난 종족이었다.

정확히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그런 전설을 갖고 있다는 설정으로 기억한다.

워낙 수가 적은 종족이라서 드래고니안들은 자신의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알려지면 여러모로 위험해질 수 있었으니까.

“진실이어야 될 겁니다. 내 화살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래서, 사실이라면 어떻게 할 거지?”

“좋습니다. 당신 밑에서 얼마든지 일해드리죠. 그게 평생이라도.”

탈론은 나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두 기사들을 노려보았다.

“치우시죠.”

“어떻게 할까요?”

“보내줘.”

내 허락에 두 사람은 겨눴던 검을 다시 회수했다.

탈론은 그대로 막사를 빠져나갔다.

“원수를 쫓고 있는 겁니까?”

“그래.”

“상대도 드래고니안입니까?”

“아무리 소수 종족이라도 자신들끼리 평화로울 수만은 없지.”

탈론에게는 장래를 약속한 아름다운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에는 벌레가 꼬이기 마련.

일족 내의 어느 젊은 드래고니안이 탈론의 연인에게 마음을 품었고 그는 잘못된 선택을 저질렀다.

자신의 마음을 거부한 탈론의 연인을 홧김에 죽인 것이다.

가뜩이나 수가 적은 드래고니안에게 살인은 중대한 범죄였다.

처벌받지 않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드래고니안은 달아났다.

이에 연인의 죽음에 분노한 탈론은 복수를 위해서 일족의 영역을 나와 원수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대로라면 탈영할 거 같은데.”

“하라고 그래.”

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원한을 생각해 봤을 때 탈론은 자신을 고용한 게 아무리 남부의 대영주인 마이어드 후작이라도 분명 탈영할 것이다.

원수를 찾아낸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실력이 상당한 용병 같던데 마이어드 후작이 주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병이 나간 걸 나한테 책임을 묻지는 못해.”

그리고 금방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평화의 폭포가 있는 국경 지대는 동쪽 끝에 있었다.

이곳 남부가 아니라 동부의 끝으로 가야만 원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탈론이 원수를 갚고 돌아오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마이어드 후작이 살아 있지는 못할 테지.’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으면 처벌도 없는 법이다.

* * *

아침이 되자 각 진영의 영주들은 레일리 왕녀가 준비한 계획에 맞춰 진군하기 시작했다.

워낙 규모가 큰 싸움이라 기존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투에 쓰이는 대형 북과 나팔 등 지시를 대신할 악기가 모습을 보였다.

둥! 둥!

뿌우우우!

“분위기 장난 아니군.”

전장의 긴장감을 느낀 라이언이 답지 않게 표정을 굳혔다.

자신의 땅을 가진 영주의 숫자만 자그마치 열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총 병력의 숫자는 1만을 넘었다.

‘반면 카이로스 백작가의 전력은 대략 4천.’

당연히 정면으로 맞붙을 경우에는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단이 아무리 강해도 상대가 안 되는 차이였다.

이 때문에 어제 병력이 집결하는 사이 카이로스 백작은 병력을 뒤로 물린 다음 방어를 준비해 둔 상태였다.

“남부의 운명을 결정 지을 싸움답군요.”

로크도 한 마디를 꺼냈다.

기사들조차 긴장감을 감추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이만한 규모의 병력들이 움직이는 싸움은 아무리 내전이라도 흔한 게 아니었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바로 나설 일은 없을 테니까.”

선봉은 바이든 남작의 몫이었다.

정확히는 바이든 남작가의 기사로 위장한 크레시안 왕가의 기사들이 나섰다.

“우리는 지켜보면 돼.”

난 부디 카이로스 백작이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나름 준비는 해뒀지만 너무 시시하게 끝나면 예상보다 마이어드 후작의 피해가 적을 수 있었다.

‘마이어드 후작과의 싸움에서 크게 다쳤다는 거 같은데.’

카이로스 백작은 마이어드 후작을 상대로 한 번 이겼지만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

오죽하면 내가 직접 카이로스 백작을 찾아가 치료해 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한번 해봤을 정도로.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쳤지만.

“자랑스러운 나의 기사들이여!”

바이든 남작은 대열의 앞쪽에서 자신의 기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있었다.

솔직히 낮기가 힘들 정도로 유리한 전장이었지만 그래도 형식적으로 필요한 조치였다.

“저 무도한 카이로스 백작을 무너트리고 남부에 평화를 가져오자!”

나도 그렇지만 내전을 이용해서 세력을 키워온 입장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 이런 거였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까.

나나 바이든 남작은 승자였고 얼마든지 영웅이라는 명성으로 자신을 포장할 자격이 있었다.

“카이로스 백작가에서도 기사들을 내보냈습니다.”

바이든 남작이 기사들을 내보낼 낌새를 보이자 카이로스 백작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기사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을 인물이 바로 카이로스 백작이니까.

“모두 진격하라!”

바이든 남작의 신호에 맞춰서 기사들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카이로스 백작가에서도 기사들이 돌격을 개시하며 양측의 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두 집단의 충돌에 다른 훼방꾼은 없었다.

화살을 날리는 이도, 마법을 날리는 이도 없이 오롯이 기사단이 서로 맞섰다.

콰쾅!

한 차례 충돌음과 함께 몇몇 기사들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말을 탄 기사들의 싸움은 검과 검이 아니라 창과 창을 내찌르는 승부였다.

이를 위해서는 대열을 잘 맞추고 함께 싸우는 협동이 무척 중요했다.

“우리도 움직이지.”

그때 좌익에서 한 무리의 기사들이 움직였다.

머릿수에서 앞서는 연합군의 입장에서 굳이 바이든 남작만의 세력을 내세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싸움에 끼어드는 건 위험했지만 기사단이 출격하고 빈틈이 드러난 카이로스 백작가를 노리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나를 따라라!”

준비를 마친 몇몇 영주들이 싸움에 정신이 팔린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단을 지나쳐 측면으로 움직였다.

카이로스 백작가에서도 반격에 나섰다.

화살을 쏘는가 하면 다수의 마법사들이 나서서 측면을 노리는 연합군의 기사들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로군.”

좌익으로 적들의 시선이 몰리자 우익에서도 움직임을 보였다.

“먼저 가겠소, 네패스 남작.”

내 바로 옆에 있던 영주까지 우익으로서 병력을 이끌고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내 시선은 여전히 정면에서 싸우고 있는 바이든 남작과 카이로스 백작 쪽으로 향해 있었다.

‘없다.’

생각보다 카이로스 백작가가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수가 부족한 건 아니었는데 실력 있는 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름 높은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단치고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아.’

3티어 기사들이 몇 명 있는 거 같기는 하지만, 그건 바이든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크레시안 왕가에서 대대로 왕실을 지켜왔던 이들은 3티어 이상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싸움은 팽팽했다.

‘카이로스 백작이나 알렉스라는 녀석은 어디 있지?’

당연히 기사단을 이끌고 나올 줄 알았는데 둘 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영주님, 저쪽을 보십시오.”

그때 우익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부라고 생각되었던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 우익과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눈에 띄는 솜씨의 기사가 한 명 있었다.

‘알렉스 경인가?’

미리 확인했던 카이로스 백작과는 행색이 많이 달랐다.

더구나 카이로스 백작은 화상을 입어서 더욱 눈에 띌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신을 투구와 갑옷으로 꼭꼭 싸맨 기사도 있기는 했으나 실력이 출중하지 않아 후보에서 제외였다.

‘암살 계열이로군.’

난 알렉스 경의 움직임을 통해서 그가 암살에 특화된 영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말 타고 싸우는 기마전에서 창을 들지 않고 검만 휘두르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또 그 검술마저도 보통 기사들이 익히는 것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하지만 카이로스 백작은 아니다.’

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세 곳 모두 카이로스 백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부상이 심해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노림수가 있는 건지.

답은 시간이 알려주었다.

“카이로스 백작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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