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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45화 (45/250)

VVIP 영주님의 품격 45화

VVIP 영주님의 품격 45화

45화

* * *

“믿을 수가 없습니다.”

바이든 남작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을 느꼈다.

기사단장인 필립 경에 이어 부단장인 벨로스 경까지 전사.

마이어드 후작가는 기사단의 절반을 잃은 채 패퇴하고 말았다.

물론 그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을 레일리 왕녀가 갖추고는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약소 영주들을 대상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건 이쯤에서 멈춰야겠네요.”

어차피 남은 영지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나머지 영주들은 사실상 잔챙이 정도로 이제 남부에서 패권을 논할 만한 세력은 넷뿐이었다.

그리고 그 세력 중 셋이 동맹이었고.

“그 말씀은?”

“카이로스 백작에 맞서 힘을 보태야 할 때예요.”

바이든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마이어드 후작이 더 밀린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충분히 힘을 키운 상황이기도 했다.

“네패스 남작도 세력을 키웠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이죠.”

네패스 남작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성장한 상태였다.

압도적인 숫자로도 마이어드 후작은 한 차례 패배했지만, 자신과 네패스 남작이 합류한다면 이전보다도 더 압도적인 우위가 생길 것이다.

카이로스 백작가는 세력이 한풀 꺾였을 테고 전력을 보충하기도 힘들 테니 승기는 확실했다.

“네패스 남작에게 연락하세요. 이 남부 내전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다고.”

* * *

“영주님, 급보입니다!”

베르타가 급하게 나를 찾아와 보고를 올렸다.

남부 내전에서 최대의 관심사였던 마이어드 후작과 카이로스 백작의 싸움이 마침내 결판이 났기 때문이다.

승자는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마이어드 후작이 아니라 승산이 낮다고 여겨졌던 카이로스 백작이었다.

“잘됐군.”

하지만 나에게는 딱히 나쁠 게 없는 소식이었다.

마이어드 후작은 비록 패배했으나 전멸한 게 아니었다.

극심한 피해를 입어 세력이 주춤거리고는 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병력을 수습해서 물러났다.

카이로스 백작은 이기기는 했으나 역시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대영주들은 모두 서로를 잡아먹지 못했고 부상만 입은 꼴이 되었다.

“네? 카이로스 백작의 피해야 저희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마이어드 후작은…….”

내 말에 베르타가 말을 흐렸다.

마이어드 후작은, 정확히는 그의 세력은 장차 레일리 왕녀에게 주어질 것이었다.

크레시안 왕가를 재건할 핵심 전력.

그런데 그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건 크레시안 왕가의 재건에 문제가 생겼단 소리였다.

그러니 베르타가 당황할 만도 했다.

“레일리 왕녀에게 내 존재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거지.”

난 적당히 말을 돌렸다.

베르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까지 레일리 왕녀에게 나의 존재는 친왕실파인 네패스 남작가가 대대로 충성을 바치는 정도의 의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가 크레시안 왕가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정통성을 지지해 줄 인물을 얻은 것이기는 하나, 그 세력은 미약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상황이 달라졌다.’

내가 아무리 미칠 듯이 세력을 키우고 성장시키더라도 레일리 왕녀는 나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마이어드 후작가를 손에 넣는 순간 남부가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올 테니.

그렇기에 지금까지 나를 향해 별도의 감시나 견제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레일리 왕녀가 가진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의 근원이었던 마이어드 후작의 세력이 주춤해졌으니, 이제는 섣불리 견제하는 게 도리어 위험해진 상황이었다.

내가 칼을 돌리더라도 레일리 왕녀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카이로스 백작이 남아 있는 한 말이야.’

상황이 묘해졌다.

두 대영주들이 서로의 전력을 물어뜯은 탓에 상대적으로 크게 뒤처지던 나와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삼국지에서 나오는 천하삼분지계처럼 남부의 패권에 내가 끼어들 여지가 생긴 것이다.

‘물론 카이로스 백작을 내버려 두기는 힘들지만.’

마이어드 후작과 카이로스 백작의 관계는 최악.

나와 카이로스 백작의 관계도 최악이다.

서로 눈치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카이로스 백작을 합심해서 치는 게 자연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리고 아직 마이어드 후작을 적으로 돌리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이번 싸움에서 큰 피해는 입었으나 레일리 왕녀가 키우고 있는 바이든 남작의 세력이 합류한다면 여전히 그 힘은 가장 크니까.

그렇다고 카이로스 백작과 손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제쳐두더라도 카이로스 백작은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마이어드 후작과 함께 카이로스 백작을 치는 건 기정사실이야.’

문제는 그 과정에서 최대한 마이어드 후작 쪽에만 피해를 주고 나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략을 짤 필요가 있었다.

“회의를 소집해야겠군.”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네패스 남작가의 전략은 전적으로 나와 베르타의 상의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세력의 규모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방대해졌고 그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베르타는 유능한 행정관이었지만 이만한 규모의 영지를 다스리는 일을 맡은 경험이 없었다.

애초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고.

‘베르타는 내정형 영웅도 아니고.’

회의를 소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영웅들이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대략 20명 정도였다.

실제로 발언권이 큰 인물은 몇 명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지만.

‘기사단에서는 로크 단장. 마법사 중에는 제이스, 행정관으로 베르타와 휘하의 행정가들. 그리고 새로 뽑은 가신들.’

내 몸은 하나였고 모든 영토를 직접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대리인의 존재는 필수적이었고 귀족이 아닌 자를 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별된 게 기존 영주 가문들과 사이가 나빴던 귀족이나 그 친척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영주 가문의 사람들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으니까.

“우선 소식부터 전하지. 마이어드 후작이 카이로스 백작과 싸워서 패했다.”

움찔!

내 말에 회의에 참가한 이들 모두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마이어드 후작의 승리를 점쳤던 이들이 많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수천의 사상자가 발생했겠지.”

물론 그렇다 한들 마이어드 후작이 나보다 약해졌다는 건 아니었다.

시간이 있다면 마이어드 후작은 이 정도 피해는 충분히 회복할 저력이 있었다.

오히려 더 약해진 건 카이로스 백작이었다.

카이로스 백작이 마이어드 후작에게 맞설 수 있던 핵심은 어디까지나 기사단.

병력의 숫자는 계속 마이어드 후작이 우위였고 이번에 잃은 손실로 인해 카이로스 백작가의 규모는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우리에게는 좋은 기회다. 카이로스 백작의 목을 노릴 만하게 되었지.”

“하지만 정면으로 맞붙기에는 여전히 위험합니다.”

로크가 곧장 의견을 내었다.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대영주는 대영주였다.

“당연히 정면 승부를 할 생각은 없다. 마이어드 후작과 동맹을 맺어서 함께 싸워야 되겠지.”

가신들도 내가 바이든 남작을 통해서 마이어드 후작의 아군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레일리 왕녀라는 연결 고리만 모를 뿐.

“그렇다면 누가 선봉에 서야 할 것인지가 문제겠군요.”

카이로스 백작가가 약해졌다고 해도 기사단이 건재한 상황.

그와 맞서야 할 선봉은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와 마이어드 후작의 눈치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아니지. 그건 아니야.’

마이어드 후작의 입장에서는 나를 내세우고 싶을 것이다.

기사단의 손실이 컸기 때문에 더욱.

그러나 내 입장에서도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이어드 후작의 요구에 응해줄 이유는 없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잘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에 모두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으나 난 그 방법을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카이로스 백작과의 싸움에서 선두에 설 건 마이어드 후작도 나도 아니었다.

* * *

그 후 레일리 왕녀를 통해 마이어드 후작과도 이야기가 오갔다.

카이로스 백작에 맞서기 위한 동맹을 위해서였다.

며칠 동안 몇 가지 조율이 이어진 뒤 마침내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쪽이 집결지인 모양입니다.”

사전에 마이어드 후작과 마나 파장으로 통신을 한 끝에 전달받은 집결지에는 이미 다수의 병력이 모여 있었다.

마이어드 후작 본인의 것은 물론이고 온갖 깃발이 휘날렸다.

그만한 수의 병력이 모인 만큼 막사는 지평선 너머로 끝을 모르게 이어져 있었다.

‘마이어드 후작을 따르는 영주가 바이든 남작만은 아닐 테니까.’

굳이 내전이 아니더라도 위세 좋은 귀족과 손을 잡고 싶은 이들은 예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내전이 일어나자마자 마이어드 후작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가거나 이번 기회에라도 마이어드 후작에게 잘 보이고자 모습을 드러냈다.

‘대영주의 진짜 무서움은 이거지.’

대영주 개인의 세력도 강대하지만 필요하다면 자신의 세력이 아닌 영주들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카이로스 백작은 힘과 공포로 굴복시키려고 했지만 마이어드 후작은 다르다.

그는 명망 있는 이였기에 약소 영주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따르고는 했다.

“이게 전부가 아닐 텐데도 이렇게 많다니.”

기사들도 집결지에 모인 병력을 보며 놀랐다.

상대측에는 카이로스 백작이 있으니 사실상 남부의 모든 군대가 집결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마이어드 후작가의 기사로부터 병력을 주둔시킬 지점을 안내받았다.

그리고 다른 영주들이 모일 때까지 적당히 대기하고 있다가 마이어드 후작의 부름에 따라서 호위를 데리고 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안내받은 장소는 대형 천막의 안이었다.

바깥에는 다른 영주들의 호위로 보이는 기사들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내가 데려온 호위는 로크하고 릴리아나를 포함한 6명이었다.

라이언은 없었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다 보니 라이언이 혹시 사고를 치면 뒷감당이 힘드니까.

기사들을 대기시킨 뒤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거대한 테이블이 천막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온 걸로 보이는 영주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저자는 누구지?”

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영주들이 나를 향해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난 나를 먼저 소개하지 않았다.

세력의 차이가 크니까.

같은 남작이라는 작위를 가지고 있더라도 저들과 내가 지닌 힘의 격차는 매우 컸다.

“저렇게 젊은 영주라면 한 사람뿐이겠지.”

그래도 여러 영주들이 모여 있었기에 그들은 금세 내 정체를 깨달았다.

“네패스 남작. 잘 오셨소.”

내가 누군지 알아낸 영주들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다가왔다.

내전이 일어나기 전 네패스 남작가가 이웃 영주들로부터 외면당했던 걸 떠올리면 엄청난 변화였다.

“나는 루카인 남작이오. 젊은 영웅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아주 기쁘군!”

루카인 남작이라는 자를 선두로 해서 영주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난 그들에게 마주 인사를 하며 나를 소개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익숙한 얼굴인 바이든 남작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네패스 남작. 오랜만이군.”

“바이든 남작. 오랜만이오.”

난 바이든 남작과 형식적으로 인사하며 그 뒤를 살폈다.

역시 레일리 왕녀가 바이든 남작과 동행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보는 시선들이 있었기에 예의를 차리지는 못하고 남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레일리 왕녀는 충분하다는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남작의 활약은 잘 듣고 있었어요.”

“왕녀 저하의 은혜 덕분입니다.”

“은혜는요.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딱히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레일리 왕녀가 나를 도와준 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충성을 바쳤기에 내전 동안 마이어드 후작과 연결된 귀족들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내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던 배경 중 하나였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마이어드 후작의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니까.

“바이든 남작.”

그때 루카인 남작이 바이든 남작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레일리 왕녀를 보며 말했다.

“이 자리는 영주들만이 모이는 자리인데 식솔을 데려와서 어쩌자는 거요?”

그 말대로였다.

그러나 당연히 예외는 있는 법이다.

바이든 남작은 당황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대꾸했다.

“허락은 받았소. 그러니 문제 될 게 없소.”

“허락이라고?”

루카인 남작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설마 다른 영주에게 또 딸을 팔기라도 할 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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