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영주님의 품격-40화 (40/250)

VVIP 영주님의 품격 4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40화

40화

내 말에 루퍼스는 멈칫하더니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을 매복이 있는 곳으로 유인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주변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나를 보았다.

“무슨 의미지?”

“넌 여기서 죽는다.”

“내가? 누구한테?”

“나한테.”

난 말에서 내려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 멈춰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사가 기사를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마법사의 실력이 월등하면 된다.

내가 이전에 라이언을 가지고 놀았던 것처럼.

기사를 상대로도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아무리 5티어 마법사라도 4티어 기사 앞에 나서는 건 자살행위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3티어 정도는 앞서야지.’

플레턴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보통의 기사 앞에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나 정도로는 라이언 정도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한계다.

실제로 3티어인 프레드에게 죽을 뻔하기도 했고.

그러나 상관없었다.

“윈드 불릿!”

“느려.”

내가 공격을 날렸지만 루퍼스는 여유롭게 피해냈다.

그러고는 앞으로 달려들었다.

난 몇 차례 더 견제를 날렸다.

“흥!”

다리를 꿰뚫을 것처럼 아래로 쓸고 가자 루퍼스는 훌쩍 뛰어올랐다.

도무지 갑옷을 입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4티어 전투형 영웅의 신체 능력은 저토록 뛰어났다.

푸확!

그때 루퍼스 앞의 바닥이 들썩이더니 칼날이 솟구쳤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루퍼스가 당황했다.

“큭!”

루퍼스는 다급하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루퍼스는 검을 잡을 때 오른손으로 잡는다. 뛰어올 때도 검은 루퍼스의 우측에 있다.’

바닥은 루퍼스의 좌측에서 솟아올랐다.

루퍼스가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다.

게다가 공중에 있는 이상 몸을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파악!

푸학!

“크아악!”

칼날이 피를 흩뿌렸다.

루퍼스의 왼쪽 다리가 그대로 잘려 나갔다.

“후. 정말 말한 대로 오네.”

땅에서 솟아난 라이언이 뒤집어쓰고 있던 흙더미를 털어냈다.

“이거 참, 귀족 나리는 역시 신기하다니까. 정확하게 말을 자빠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뛰게 만들고.”

윈드 불릿의 투사 속도와 루퍼스의 달려오는 속도.

그 타이밍에 맞춰서 루퍼스가 언제 뛸지까지 내가 조절할 수 있었다.

라이언은 그 틈을 노려서 훤히 드러난 루퍼스의 다리를 베어낸 것이고.

“아직 안 끝났다.”

“다리 날아갔으면 끝난 거죠, 뭐.”

무릎 아래가 통째로 사라진 루퍼스는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갑옷은 루퍼스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갑옷 하단부와 각반 사이의 틈.

그 연결부는 다른 곳에 비해 재질이 약해서 네임드 장비라면 벨 수 있었다.

물론 이걸 노릴 수 있으려면 적어도 2티어 영웅이어야 했고 네임드 장비까지 소지해야 했다.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지금 난 그것을 모두 만족하고 있었다.

‘루퍼스 공략에 반드시 2티어 전투형 영웅을 포함시킬 것.’

루퍼스를 상대할 정도면 아무리 무과금 유저라도 2티어 영웅 정도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문제는 네임드 장비인데 이건 이벤트나 출석 보상 등으로 최대한 재료를 모아 직접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정 안 되면 과금을 하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당연히 과금을 선택했다.

아마 게임상에서 많은 루퍼스들이 내 공략에 따라서 왼쪽 다리를 잃었을 것이다.

‘말을 타고 도주, 반격으로 낙마, 숨어 있는 경로로 유인, 타이밍 맞춘 점프와 매복했던 영웅의 기습.’

게임에서 이 공략을 만들기 위해서 루퍼스와 싸운 횟수는 족히 100번이 넘었다.

중간 보스라지만 겨우 하나의 스테이지에 그러한 정성을 쏟아냈다.

물론 4티어 영웅인 루퍼스는 마땅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크으윽!”

라이언이 마무리를 위해 다가가자 루퍼스는 고통을 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 하나를 갑자기 잃어버린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통증을 참고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그, 그만둬!”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무리 기어봐야 두 다리로 걷는 라이언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흐흐. 어디 가시나? 어이쿠, 검까지 놓치셨네?”

라이언은 루퍼스를 비웃으며 놓친 검을 저 멀리 걷어차 버렸다.

뒤늦게 검에 생각이 미친 루퍼스의 표정이 황망하게 변했다.

“오지 마라! 하, 항복이다! 항복!”

“어쩔깝쇼?”

“다리가 없으면 살려둬도 써먹을 수가 없지.”

항복한 건 좋지만 회유하기에는 늦었다.

다리 하나를 잃은 상태라면 아무리 4티어 영웅이라도 못 써먹는다.

이 세계에서는 현대보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그럴듯한 의족도 만들기 어렵고, 기껏 만들어봐야 원래 몸에도 못 미친다.

검술이야 좋지만 제자리에서나 휘두를 수 있지, 격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전장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1티어 기사 하나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장비나 챙기도록.”

“흐흐! 귀족 나리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데…….”

“귀한 건 써야지.”

네임드 장비다.

버릴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절대군주에서도 죽인 적의 영웅의 장비는 얼마든지 노획이 가능했고.

딱 한 번뿐이란 게 아쉽지만.

아무리 재도전해도 적의 장비를 얻을 기회는 한 번이라서 못 얻었다면 재도전이 가능해도 얻은 이상 재도전할 필요는 없었다.

나처럼 공략이라도 만들 게 아니라면.

“아니야! 마족과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내가 겨우 이런 곳에서 죽을 리가…….”

“뭐,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

루퍼스의 절규에 라이언이 비죽 웃었다.

“곧 말을 못 하게 되지만.”

푸확!

* * *

루퍼스의 목을 친 다음 라이언에게는 장비를 챙기도록 하고 난 말을 타고 다시 요새로 돌아왔다.

시간이 오래 지난 건 아니라서 아직 싸움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승기는 이미 잡힌 상태였다.

루퍼스가 남아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젠장! 루퍼스 이 자식!”

마커스라는 기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마찬가지로 엉망인 기사들이 목책에 몰려 있었고 뒤를 뺀 모든 방향을 내 기사들이 포위한 상태였다.

“영주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빅터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라이언 경은?”

“적의 장비를 챙기느라고 늦을 거야.”

“그렇습니까? 그놈 진짜.”

라이언을 걱정하던 빅터는 내 말에 눈이 짜게 식었다.

혹시 라이언이 죽은 게 아닐까 걱정했던 모양인데 장비나 벗기고 있다고 하니.

물론 내가 시킨 일이긴 하지만 난 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마 나중에 라이언은 억울하다고 항변하면서 로크에게 혼나겠지.

“설마 루퍼스 경이 죽었다고?”

몰려 있던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이 동요를 보였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루퍼스는 끝까지 살아남으리라고 믿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럴 만한 실력이기도 했다.

어처구니없이 다리가 날아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랬겠지.

“목도 같이 가져올 거다. 선물로 좋거든.”

일반적으로 명예로운 기사의 시신은 모욕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루퍼스는 달랐다.

카이로스 백작이 몰래 보내서 나를 죽이려고 한 이상 루퍼스는 그 명예로운 기사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 개인도 그다지 명예로운 사람은 아니었고.

‘선물을 어디로 보낸다?’

레일리 왕녀, 마이어드 후작, 카이로스 백작.

누구라도 좋았다.

왕녀에게 보내도 소식은 마이어드 후작에게 갈 테고, 카이로스 백작에게 보내면 나를 노린 것에 엿을 줄 수 있었다.

언젠가 싸울 생각이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공격한 것이니까.

“말도 안 돼…….”

쩔그렁.

버티고 있던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 중 한 명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런 그의 행동을 시작으로 다른 기사들도 하나둘 무기를 내버렸다.

유일하게 마커스만은 버티고 있었지만, 그 역시 이미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눈치였다.

“마커스 경.”

동료 기사가 설득하려고 나서자 마커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상급 기사가 둘이나 죽었다. 루퍼스 경도 죽었고. 그런데 나 혼자 살아남으란 말이냐?”

마커스의 눈이 나를 향했다.

“차라리 명예롭게 죽겠다.”

이윽고 마커스는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는 기사가 수십 명이나 버티고 있었다.

나에게로 오기도 전에 수많은 칼날이 마커스를 향했다.

푸욱!

그중 릴리아나가 내찌른 검이 마커스의 몸을 꿰뚫었다.

‘아쉽군.’

3티어 기사가 셋.

4티어 기사가 하나.

지금의 나로서는 가질 수 없는 대단한 전력들이지만 누구 하나 사로잡지 못했다.

당연히 회유할 수도 없었고.

‘그나저나 카이로스 백작,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무리 내가 카이로스 백작을 적대할 게 시간문제라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빠른 조치였다.

그리고 과하기도 했다.

말로써 경고할 수도 있는 걸 다짜고짜 죽이려고 하다니.

마이어드 후작과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감수할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의 승리다!”

로크가 살아남은 이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목청껏 소리쳤다.

난 죽은 이들을 빠르게 살폈다.

지금껏 전투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큰 피해.

아군 사망자만 아마 200명은 될 것이었다.

기사들도 여럿 죽었고.

‘하지만 이겼지.’

피해는 컸지만 이겼다.

그리고 함께 싸운 이들은 전우가 되었다.

여러 가문 출신이었던 이들에게 동질감을 주기에 승리보다 좋은 건 없었다.

만족할 만한 보상이 함께한다면 더욱 좋고.

* * *

“아이고…….”

한동안 영지에는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희생자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들.

살아남았으나 중상을 입고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

그중에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제 싸우지 못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

난 각자에게 약속된 보상을 주었다.

전사자에게는 가족들에게,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본인에게 직접.

지금까지도 몇 번의 전투에서 반복된 일이지만 규모가 달랐기에 영지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지금껏 승리에 한껏 취해 있던 용병 중에서 이탈자가 나왔다.

오웰 남작가와 싸울 때도 한 번 발생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컸다.

이전 상황이 우연이었다면 이번에 용병들의 피해는 내가 의도한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용병들 말고도 많이 죽었다.

기사 중에서만 여덟 명이 목숨을 잃었으니까.

승리만 반복되는 전투가 아님을 용병들도 깨달은 것이다.

“수고했네.”

난 용병들이 계약 해지를 요청하는 대로 받아주었다.

어차피 남아 있는 용병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용병도 내 부대의 핵심이었으나 이제 용병들의 비율은 매우 적었다.

몇 명 그만둔다고 해서 겁낼 필요 없다.

그리고 용병의 인원수 자체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나간 인원만큼 새롭게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지도 나에게 떨어지게 될 거다.’

카이로스 백작의 기사들과 함께 쳐들어온 영주들.

그들은 나에게 피해를 준 것 이상으로 큰 피해를 입고 물러갔다.

조만간 그들의 영지도 나에게 떨어지게 될 거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마이어드 후작과 카이로스 백작에게 몰려 있던 남부 용병들의 관심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법사 협회를 넘어서 남부 전체에 내 명성이 퍼진 것이다.

* * *

노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있던 여인 중 한 명이 급하게 다가와 노인을 부축했고, 가신들도 염려 어린 시선을 보냈다.

노인의 이름은 마이어드 후작이었다.

“어찌 되었다고?”

“모, 몰살당했습니다.”

보고를 올리는 남자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자신이 가져온 소식이 하필이면 매우 나쁜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카이로스 백작가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암살자들의 손에 마이어드 후작가의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려 막사 안까지 대범하게 들어와서 자고 있던 기사 열 명을 도륙한 사건.

진영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니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경계를 서던 이들은?”

“막사 주변에 있던 이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그 책임자들까지 모두 목이 달아났다.

그야말로 귀신 같은 솜씨였다.

“내부에 첩자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가신들 중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외부에서 내부의 경계에 대해서 알고 침입하는 것과 모르고 침입하는 건 난이도가 전혀 달랐다.

상대의 실력과 별개로 내부의 정보가 알려졌을 게 분명했다.

“서둘러서 첩자를 색출해야 합니다.”

마이어드 후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찾기는 힘들었다.

설령 색출하려고 해도 상대가 순순히 들키지는 않을 터.

더구나 서로를 의심하느라 분위기도 험악해질 것이다.

“그건 천천히 진행하지.”

대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병력을 모아라. 카이로스 백작부터 죽이고 나서 첩자를 붙잡겠다.”

마침내 남부의 거인 마이어드 후작이 몸을 일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