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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39화 (39/250)

VVIP 영주님의 품격 39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9화

39화

당연하게도 영웅의 성장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기사의 기준인 1티어만 해도 기사들은 어렸을 때부터 15년 이상을 들여서 실력을 키운다.

그마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스승을 두고 그 밑에서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2티어 영웅은 그런 기사를 가볍게 이길 수 있다.

적어도 20년 이상의 노력에 무수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3티어는 아예 논외다.

재능도 재능이고 수련만이 아니라 사선을 넘나든 충분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그렇지 않지.’

승급권을 버젓이 팔고 있는 것부터 밸런스가 고려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별도로 달성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승급권만 충분하다면 1티어 영웅을 5티어까지, 아니 최신 패치를 기준으로는 6티어 영웅까지 만들 수 있다.

돈만 충분히 들일 수 있다면.

P2W.

돈이 있는 사람은 패배하려야 패배할 수가 없는 부조리의 극치.

나의 경우에는 과금이 아니라 VVIP 등급만을 달고 그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과금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과금치고는 액수가 매우 짠 양의 보주를 주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다.

더구나 5티어 이하는 뽑기 상자도 아니고 확정해서 살 수 있다.

‘그래도 원래 릴리아나에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릴리아나는 천재다.

오히려 그렇기에 조금은 기다려 볼까 싶었다.

어쩌면 3티어 수준까지는 내가 뭔가를 안 해도 쑥쑥 성장할까 싶어서.

그러면 보주를 아껴서 4티어를 살까 했다.

그러나 지금 릴리아나의 성장을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급했고 난 릴리아나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앞당겼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로크의 갑작스러운 성장도 납득하기 어려워서 특별한 약을 썼다고 말했다.

릴리아나에게는 그런 가짜 명분도 줄 수 없었다.

천재에도 정도가 있다.

기사들도 내가 뭔가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의심이야 이전부터 있었다.

기존에 영지에는 없던 몬스터들이 마구 돌아다니는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하다.

외지인인 용병들이야 그러려니 할지도 모르나 기사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마법사이기에 뭔가를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의심하고 있을 뿐 누구도 그것을 캐묻지는 않았다.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알더라도 영주인 나에게 직접 묻는 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그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묻고 싶을 것이다.

“가라.”

나는 로크와 싸우고 있는 카이로스 백작가의 3티어 기사를 가리켰다.

다른 기사들의 도움으로 로크가 거의 승기를 잡았지만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탓!

릴리아나는 실력이 부족한 자신을 보내는 것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이전과 차원이 다른 몸놀림으로 그냥 나아갔을 뿐이다.

본인 딴에는 좀 놀란 듯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에게 묻거나 하지 않았다.

“큭?”

여러 기사들이 한데 어울리는 틈을 릴리아나는 어렵지 않게 파고들어 갔다.

동급의 티어라고 하지만 기사와 검사는 다르다.

기사는 밸런스가 좋아서 전투형 최강으로 평가받지만 지휘나 기마 등, 특정 상황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스킬도 있었다.

반면 순수 검사인 릴리아나에게는 오직 검술뿐이었다.

밸런스는 나쁘지만 검을 다루는 분야에 있어서는 독보적이다.

휘릭!

릴리아나는 상대 기사의 방어를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날아들던 공격이 궤도를 비트니까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파악!

핏물이 튀었다.

즉사는 아니었지만 치명상이다.

그리고 그 기사는 둘러싸인 상태였다.

촤악!

릴리아나에 이어서 로크를 비롯한 내 기사들의 칼날이 날아들어 그를 도륙했다.

“이런!”

거구의 기사가 그 광경을 보고 당황했다.

셋 중 루퍼스 말고 이제 남은 이가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콰앙!

실드는 깨지기 직전이었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

“로크 경! 릴리아나 경! 저놈을 막아라!”

난 루퍼스를 가리켰다.

동시에 다른 기사들에게는 들어오는 적들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하도 많이 죽여 주변에 더 죽일 적이 없어 모습을 드러낸 루퍼스가 나를 보았다.

피 칠갑을 한 그는 살벌한 눈길로 나를 훑었다.

쓱.

그리고 곧장 달려들 것처럼 앞으로 나섰으나 로크와 릴리아나가 먼저 도착했다.

채앵!

“네패스 남작 휘하에 실력 있는 기사는 없는 줄 알았는데.”

루퍼스의 중얼거림에 로크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내 이름을 기억해라. 네패스 남작가의 기사단장 로크다.”

“그쪽은?”

로크의 이름을 들은 루퍼스의 시선이 릴리아나를 향했다.

“릴리아나입니다.”

“그래, 기억하지.”

루퍼스는 갑자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마커스!”

루퍼스가 소리치자 거구의 기사가 대답했다.

“그래!”

“작전을 수정한다.”

“뭐?”

“지금 우리로서는 이길 수 없어. 물러나서 정비해야 한다.”

“진심이냐?”

마나 실드를 모두 뚫은 마커스란 기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와 루퍼스가 함께한다면 로크와 릴리아나도 위험하지만 마커스의 앞에는 수십 명의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절대 쉽게 뚫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네패스 남작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왔을 텐데?”

“벌써 둘을 잃었다. 이대로 가면 너도 죽을 거고.”

“너는?”

루퍼스는 고개를 돌려 로크와 릴리아나를 훑더니 나에게까지 시선을 던졌다.

“50% 정도겠군. 죽이거나 죽거나.”

“쯧! 그 정도인가?”

“상급 기사를 하나만 더 데려왔어도 달랐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잠깐 물러나는 수밖에.”

루퍼스가 몸을 돌렸다.

쫓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루퍼스는 목책을 넘어갔으니까.

‘아쉽군.’

죽일 수 있었다면 분명 큰 이득이었을 텐데.

하지만 순순히 놓아줘야만 했다.

지금부터 상대해야 할 적들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으니까.

‘조금 이따가 보자.’

* * *

루퍼스가 기사나 마법사들을 죽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혼란을 주는 건 충분히 성공했다.

적들의 병력은 별다른 저항 없이 목책에 도달했고 그것을 부수고 물밀 듯이 들어왔다.

물론 나도 기사들을 내보내 대응했다.

뒤에서 화살을 쏘는 이들도 있었고 마법사들이 밀집한 적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상대 마법사도 마찬가지로 공격을 퍼부었기에 양쪽 모두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마법사의 역량은 우리 쪽이 압도적이었다.

“마나 쇼크!”

상대 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플레턴에게서 배운 마나 쇼크를 사용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지만, 마법사들은 갑자기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마나가 갑자기 날뛰어 마나 가속을 쓸 때처럼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날뛴 마나는 통제에도 따르지 않아 한동안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물러서지 마라! 밀려나는 쪽이 죽는다!”

“막아라! 여기서 버티면 이긴다!”

마법사전에서 승기를 잡자 병사들 쪽에서도 승기가 확보되었다.

대열이 무너진 상대는 밀려났고 기껏 들어온 목책 밖으로 쫓겨나고 있었다.

루퍼스가 다시 모습을 보인 건 그쯤이었다.

“어스 월!”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가까이 접근한 마법사가 땅거죽을 뒤집으며 목책을 넘는 길을 만들어냈다.

한 무리의 기사들이 말까지 탄 채 그 흙벽을 넘어서 목책 안으로 들어왔다.

목책이 무너지지 않은 장소에서 나타났기에 그쪽 방향에는 기사들이 없었다.

‘예상대로군.’

하지만 이쪽에 두 명의 기사는 남아 있었다.

로크와 릴리아나.

최고 실력자를 일부러 빼내지 않고 체력을 회복하도록 뒤에서 휴식시킨 것이다.

루퍼스가 다시 왔을 때 이 둘이 지쳐 있다면 싸움이 안 되니까.

문제는 같이 넘어온 기사들이었다.

‘루퍼스, 마커스.’

4티어와 3티어.

그리고 그 뒤로 2티어 기사와 1티어 기사들.

모두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였다.

‘쉽지 않겠는데.’

난 예비 부대로 빠져 있던 용병들을 호출했다.

접전을 벌인 기사들은 이미 지쳐서 다른 기사들과 싸울 처지가 아니었다.

용병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로 막는 게 맞았다.

“제기랄!”

또다시 기사들과 싸워야 할 상황에 몇몇 용병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물러서거나 칼을 돌리지는 않았다.

마법사인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투 내내 각인시켰으니까.

‘마나가 간당간당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실제로 내게 향하는 루퍼스의 눈길에 의문이 깔려 있었다.

지금쯤 내 마나가 동났어야 하는데 여전히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의 마나도, 기사의 체력도 무한이 아니다.

아무리 강한, 심지어 5티어라도 그들이 천 명 수준의 전력까지 되지 못하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물론 천 명 사이에서 중요한 대상을 처치하는 것으로 천 명을 바보로 만드는 활약은 가능했지만 그건 그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목표는 네패스 남작이다. 내가 죽일 테니 너희는 다른 놈들을 막아라.”

“물론이지!”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이 쇄도했다.

용병들이 마주 달려 나갔고 로크와 릴리아나가 함께였다.

난 오직 루퍼스의 움직임만을 주시했다.

녀석은 메인 스토리에서 중간 보스로 한 번 나왔다.

카이로스 백작가가 아니라 다른 국가의 귀족 가문 소속으로 나왔지만 중요한 건 한 번 나왔다는 것.

게임과 전장이 다르기는 하지만 녀석의 특징은 일치한다.

오히려 게임에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약했다.

‘그럼 죽일 수 있다.’

아까 한 번 물러난 게 실수다.

존재를 모르고 당했던 것과 알고 대응할 시간을 버는 건 천지 차이다.

하물며 무과금 공략으로도 이길 수 있는 상대를 지금 내가 못 이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력은 충분해.’

“말을 가져와라!”

난 미리 대기시켰던 말에 올랐다.

한순간 루퍼스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내가, 그것도 혼자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병력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다고?”

루퍼스는 나와 다른 기사들을 번갈아 보았다.

갈등하는 것 같았다.

기사들을 상대할지 나를 죽이러 쫓아올지.

내가 아는 루퍼스라면.

“놓치지 않겠다!”

반드시 쫓아온다.

루퍼스는 전공을 챙기길 좋아한다.

그러니까 아까도 무리하게 목책을 넘어와서 난리를 피운 거다.

그리고 적당한 틈이 났다면 날 죽여서 자신이 직접 승리를 거두려고 했겠지.

‘루퍼스 공략, 유저가 직접 나서서 병력과 떨어뜨려 놓는다. 루퍼스는 무력은 뛰어나지만, 지휘관에는 안 어울려.’

뛰어난 실력에 비해 지휘 능력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유인했을 때 걸리는 건 아니지만 유저가 직접 나서면 여지없이 걸렸다.

“잠깐! 루퍼스 경!”

루퍼스가 혼자 훌쩍 떨어지자 뒤편에 남겨진 카이로스 백작가의 기사들이 당황했다.

마커스란 기사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그는 혼자였다.

이쪽은 3티어가 둘이다.

‘그래, 쫓아와라.’

루퍼스는 기마 능력이 뛰어나다.

도망친다고 해서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 달렸다.

요새를 빠져나와서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루퍼스는 그런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루퍼스의 이동 속도 464.’

절대군주에서는 속도의 개념도 있었다.

이 수치는 병과에 따라서 그리고 영웅에 따라서 저마다 다르다.

난 루퍼스의 정확한 속도를 알고 있었다.

지금 루퍼스는 아마 거기서 살짝 낮겠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아마 10 정도 낮으려나.

‘기마 스킬이 없는 기병, 310.’

내 이동 속도는 애매하다.

게임에서는 수치가 변하지 않지만 직접 말을 모는 지금으로선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기마 스킬도 없으니 말을 제대로 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래도.

‘말 타고 온 것도 실수다, 루퍼스.’

아까처럼 부대끼면 기사들에게 발목이 잡힐 수 있으니 말을 타고 올 가능성도 계산했다.

안 타고 오면 안 타고 오는 대로 대응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말을 타는 쪽이 나로서는 좀 더 나았다.

루퍼스가 나를 쫓아올 확률이 높아지니까.

“마나 블래스트!”

난 휙 몸을 틀어서 윈드 불릿까지 섞은 이중 마법을 날렸다.

루퍼스에게는 통하지 않을 공격.

하지만 루퍼스가 탄 말에까지 통하지 않을 공격은 아니다.

휘익!

루퍼스는 급하게 기수를 틀었다.

기마 스킬이 높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줄 알았다.

내가 원하던 바였다.

오히려 반응하지 못하는 쪽이 곤란했다.

콰득!

“뭣?”

루퍼스의 말이 딛고 있던 바닥이 무너졌다.

급하게 파느라 깊이 팔 수는 없었지만 말을 무력화시킬 정도면 충분하다.

전력 질주를 하다가 급하게 방향을 돌렸던지라 땅이 꺼지자 말은 균형을 잡지 못했다.

쿠당탕!

말은 그대로 엎어져서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루퍼스도 몸을 굴렸으나 그건 말과 달리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게임에서 낙마 피해를 안 받으니까 예상했다.’

아예 피해를 주지 못하는 건 아닌데 거의 효과가 없었다.

기마 스킬이나 티어에 따라서 몇몇 전투형 영웅들은 낙마 피해에 면역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눈으로 직접 보자니 조금 황당했다.

상당히 무게가 나갈 쇳덩이 같은 갑옷을 입어놓고 구르기가 가능하다니.

“이 자식이!”

루퍼스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몸을 일으켰다.

가뜩이나 피 칠갑을 한 번 했던 몸으로 바닥을 뒹굴었으니 그 모습이 악귀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런 루퍼스에게 당당히 선언했다.

“체크메이트다, 루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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