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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36화 (36/250)

VVIP 영주님의 품격 36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6화

36화

* * *

“이것으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베르타는 로톤 자작가를 흡수하는 모든 절차를 도맡아서 진행했다.

오자마자 일을 하느라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이것으로 네패스 남작가는 새롭게 4개의 영지를 흡수했으니까.

도미닉 남작가와 기존 영지를 합하면 6개 영지 분량이다.

더 이상 일개 남작의 규모가 아니었다.

“바이든 남작 쪽은?”

“두 곳을 더 점령했다고 합니다.”

바이든 남작 쪽의 성장도 빨랐다.

하지만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다.

아직 점령할 수 있는 영지는 많았고 무엇보다 훌륭한 인재를 얻었으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그러지?”

“오는 길에 라이언 경과 빅터 경이 함께 있는 모습을 봤는데 표정이 어둡더군요.”

“두 사람이?”

라이언과 빅터라.

내 측근이기는 하지만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애초에 라이언은 같은 용병 출신인 로크를 빼면 누구와도 안 어울렸지만.

“무슨 일이지?”

* * *

영지를 점령하고 안정화시키는 동안 기사들에게는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

새롭게 받아들인 병력이 많아서 재편도 거듭되었고 낯선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도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사이 라이언은 빅터를 찾았다.

“여.”

“라이언 경?”

빅터는 라이언이 자신을 찾은 게 의외였다.

라이언은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로크는 용병 출신이지만 최대한 기사답게 행동하는 데 반해 라이언은 용병이던 시절 막 나가는 버릇을 못 고쳤다.

정확히는 고칠 생각도 없었다.

그나마 기사가 되어서 자중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종종 소란을 일으켰고.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지?”

“무슨 볼일은.”

라이언은 떡하니 술을 내밀었다.

빅터는 황당한 얼굴로 라이언을 보았다.

내전 도중이지만 금주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마실 수도 없었다.

언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제대로 된 기사라면 스스로의 컨디션을 항상 유지해야 했으니.

“별로 내키지 않는군.”

“내키지 않기는! 무척 당길 텐데?”

“내가 왜?”

“왜기는. 그 여자한테 된통 당했잖아.”

라이언의 말에 빅터의 눈썹이 씰룩였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감을 얻자마자 처참하게 패했지.’

빅터는 근래 들어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기사로서 자신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과정이 아인도 죽을 뻔했던 오웰 남작가와의 싸움 때문이지만 그건 이미 과거였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형편없이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매일 시간이 빌 때마다 수련을 거듭했다.

그러나 릴리아나는 그런 빅터의 성장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검을 직접 겨뤘기에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자신에게 밀렸던 릴리아나는 자신과 겨뤄서 성장했다는걸.

그리고 그 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을 뛰어넘었다.

심지어 과거 터너를 농락했던 라이언조차 상당히 고전하지 않았던가?

‘12년이라고 했던가.’

기사가 되기 위해 수련한 기간치고는 길지 않았다.

보통 기사들은 걸음마를 뗄 때부터 몸을 만들고 검술을 배우니까.

거기에 말 타는 법과 병사들을 이끌 전술까지 배우는 데 12년은 결코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없었다.

재능 있고 노력한 자만이 간신히 서임을 받을 수준일 뿐이다.

‘수준이 다른 재능이다.’

그 12년마저 온전하지 않았을 거다.

상대에게 자신처럼 다른 기사에게 가르침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면 애초에 자신은 검을 제대로 맞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재능의 편린을 릴리아나에게서 읽어낼 수 있었다.

“뭐, 가끔 세상에는 그런 괴물들이 있잖나. 스승 없이도 혼자 성장하는 것들.”

“나는 라이언 경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는데?”

“응? 나?”

빅터의 말에 라이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용병의 몸으로 그 실력이라면 천재 아닌가?”

“아, 그건 오해다. 로크 선배… 아니, 단장님 같은 사람도 있잖아.”

용병에서 기사가 될 정도의 실력자는 절대 우연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넘나든 사선의 수도 많았고 무엇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용병 노릇을 했다.

“난 꽤 이름 있는 용병 밑에서 배웠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리고 용병은 기사들처럼 전술이나 말 타는 법은 안 배운다고.”

기사와 용병은 역할이 전혀 달랐다.

그래서 배우는 내용에도 차이가 있었고 단시일에 실력을 키우는 건 용병이 나았다.

그럼에도 막상 기사들이 용병보다 강한 건 기사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우지만 용병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나이가 찬 다음 입문하기 때문이었다.

또 도중에 죽거나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서 가르침이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너무 좌절하지 말라고. 그건 우리랑은 종이 다른 괴물이야. 뭐, 그런 괴물을 둘씩이나 볼 줄은 몰랐지만.”

“둘?”

“하나는 누구겠어?”

빅터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을 찾아냈다.

아인 네패스.

자신들의 주군.

확실히 분야가 달라서 그렇지, 괴물 같은 재능으로 따지자면 아인도 릴리아나에 밀리지 않았다.

“주군을 부를 말로는 불충한데.”

“그런 건 좀 넘어가자고.”

라이언은 다시 술을 권했다.

빅터는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창 성장한다고 느끼고 있을 때 나타난 자신보다 더한 괴물.

냉정한 현실에 술이 고팠다.

“난 어렸을 때 영주님의 말벗이었다.”

“응?”

빅터가 궁금해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내자 라이언은 의아하게 빅터를 보았다.

“지금이야 감히 친구라고 부를 수 없지만, 그때는 그랬지. 영주님은 막내셨고 위로 형이 둘이나 있었다. 영주가 될 가능성은 없었지. 그래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주군으로 모실 사람이 아니라 주군이 될 사람의 동생.

그래서 빅터는 아인을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막상 시간이 흐르자 영주가 된 것은 아인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고 혼자 남아서 오른 자리였다.

더구나 기억까지 온전치 못하지 않았던가?

“급하게 영주가 되셨을 땐 내가 지켜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하지만 아인은 빅터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언제 배웠는지도 모를 마법에 뛰어난 식견으로 순식간에 내전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네패스 남작가는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

용병을 부리는 데 쓸 돈이 부족해서 가문의 물건들까지 팔아야 했던 과거가 불과 몇 달 전인데 마치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난 영주님을 지킬 능력이 없었어.”

“이미 한 번 구했잖아?”

“내가 아니라 다른 기사였더라도 같았다. 라이언 경이나 단장님이 있었다면 아예 위험한 순간도 없었겠지.”

빅터가 프레드를 죽일 수 있던 건 어디까지나 아인이 목숨을 걸고 틈을 만든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게 로크였다면?

아인은 애초에 위험에 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라이언이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프레드를 상대로 순식간에 뚫리지는 않았을 테고 그러면 아인이 마법으로 지원할 시간은 벌었을 거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성장한다고 느낄 때 진심으로 기뻤다. 지금보다 성장하면 영주님을 지켜드릴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러나 눈앞에 자신의 성장을 우습게 보는 괴물 같은 재능의 소유자가 나타났다.

아마 자신이 원했던 수준으로 성장할 때쯤이면 그녀는 아예 닿지도 않을 위치까지 오를 것이다.

그런 차이를 느꼈다.

“그런데 주제넘는 생각이었더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아인이 이루어온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없더라도 가능했을 일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아인을 지키는 데 자신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것.

빅터는 처음으로 기사가 된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나 정도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라이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인의 세력은 점차 커지고 있었고 몇 곳의 영지만 더 점령하면 대영주 세력과도 겨뤄볼 만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자신 정도의 실력은 그리 특별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로크를 제외하고도 자신과 비등한 수준의 기사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더구나 릴리아나 같은 괴물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당장은 이길 수 있지만 몇 달만 지나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로크조차 장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넌 그래도 성장할 여지라도 있잖냐.”

라이언은 빅터를 다독였다.

빅터는 아직 젊었다.

서임받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고.

그러나 자신은 이미 전성기를 조금 지난 나이였다.

늙었다고는 말 못 하지만 젊음은 사라지고 있었다.

다행히 기사도 되었고 은퇴한 이후에도 돈 걱정은 않겠다만 그뿐이다.

“난 더 올라가지도 못할 텐데.”

라이언은 자신이 더 강해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는 지금의 실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찰 것이다.

“그래도 기운 내라. 암만 그래도 귀족 나리가 우릴 버리기라도 하겠어? 터너 경처럼 마을을 받고 떵떵거리며 살 수는 있겠지. 도중에 죽지만 않으면 말이야.”

“그게 좋은 건가?”

“아, 젊은 놈한테는 너무 소박한 목표인가? 그럼 우리도 아예 귀족이 되게 해달라고 하든가.”

“귀족이?”

“뭐, 남부 전체를 통일하면 우리도 귀족이 될 수 있지 않겠어? 어차피 작위를 줄 왕도 없잖아.”

왕가가 사라진 이상 귀족을 새로 임명할 권한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러나 내전이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새 왕을 뽑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스스로 자칭하거나 대영주가 인정해 줘야만 귀족이 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인은 대영주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의 파죽지세 같은 속도라면 분명 조만간 대영주만큼 힘을 키울 테니까.

힘이 충분하다면 자칭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한다.

“영주님께 부탁하면 서운하게 대하겠냐? 그런 분으로는 안 보이던데.”

아인은 보상이 확실했다.

오히려 상당히 과하게 챙겨주는 편이었다.

아무리 내전이라지만 재물을 아끼지 않고 있었으니까.

“난 그런 물질적인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알아. 명예를 원하는 거지. 기사들이 좋아하는 게 그거잖아.”

“그냥 곁에 있고 싶을 뿐이다.”

“누가 내쫓는다냐?”

“나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단 거지.”

라이언은 여전히 표정이 풀리지 않는 빅터에게 조심스레 속삭였다.

“아니면 그 여자 죽여버릴까? 쓱싹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농담이다. 농담. 걸리면 다 뒈질 텐데. 그냥 인상 좀 펴라고. 그래도 앞길 창창한 녀석이.”

“후. 라이언 경한테 위로받을 생각한 내가 미친놈이지.”

빅터는 술을 꿀꺽꿀꺽 넘겼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빅터는 알지 못했다.

* * *

“흠.”

베르타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을 찾았던 난 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라이언은 예상대로라고 할까, 물질적인 것들을 원하고 있었다.

나이도 어느 정도 있고, 출신이 출신인 만큼 출세가 간절하기 때문이다.

반면 빅터는 그런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일 걸 원했다.

‘1티어 영웅이라.’

무과금 공략에서는 꼭 필요했다.

무과금 상태에서 고티어의 영웅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그런 무과금 공략에서조차 후반에 가면 밀려나는 게 1티어 영웅이었다.

기껏해야 고티어 영웅을 보조해 주는 것이 전부.

‘물론 성장시켜 줄 수야 있지만.’

2티어 승급권은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효율을 생각하면 빅터에게 쓰기에는 아까웠다.

1티어 영웅 중에 성장 가능성이 어마어마한 릴리아나가 새로 들어왔고, 기사들 중에도 빅터 이상의 실력자가 있었으니까.

‘모르겠네.’

효율을 보자면 슬슬 내정이나 외교형 영웅이 급할 때다.

아니면 마법형 영웅인 제이스를 올리든가.

어떤 형태로 생각하더라도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다면 빅터를 성장시키는 경우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걸 뻔히 알면서 다시 생각하는 나도 이해 못 할 노릇이었다.

난 절대 장난으로 이곳에 있는 게 아니니까.

패배한다면 목숨이 날아간다.

얼마 전에 그 위협을 직접 느꼈다.

“이 세계가 게임은 아니지. 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게임에서라면 효율을 좀 무시해도 좋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서 패배하더라도 감수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 목숨을 걸기에 빅터는 그만한 가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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