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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영주님의 품격-34화 (34/250)

VVIP 영주님의 품격 34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4화

34화

【 성장과 견제 】

‘엉망이군.’

전투가 끝난 뒤 난 빅터의 상태부터 살폈다.

치유 마법을 써줬지만, 간신히 몸을 움직일 정도로 회복했을 뿐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 한 대 차인 게 전부인데.’

통증이 너무 크다.

뼈에 금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위험할 뻔했습니다.”

로크는 내가 뚫은 구멍으로 목책을 넘어 적들을 유린했다.

그러나 상대측에 자신을 막는 기사가 없음을 알고 급하게 돌아왔다고 한다.

물론 그래도 늦었다는 건 변함없지만.

“그러게 말이야. 설마 이 정도 실력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오웰 남작가는 그대로 무너졌다.

영주인 오웰 남작은 프레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탄식하더니 항복했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구석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기뻐하지 못했다.

‘살아남아서 이겼지만 솔직히 진 기분이야.’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상대에게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는 것.

거기에 생각지 못한 피해도 나왔다.

‘용병은 20명 이상이 죽었다.’

중상을 입은 자들도 그 정도는 되었다.

아무리 돈을 주고 고용하는 용병이라지만 내 휘하에 있는 소중한 전력을 상실한 셈이다.

오웰 남작가의 항복으로 새롭게 전력을 추가할 수는 있겠지만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용병은 사실상 반토막이군.’

기사나 병사들의 피해는 극히 적었다.

목책은 내가 뚫었고 기사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내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였다.

난 용병들의 시신을 적당히 수습하라고 말한 뒤 눈을 감았다.

* * *

“오웰 남작가가 당했소!”

“빌어먹을! 다리 하나 못 지켰단 말인가?”

오웰 남작령의 인근에도 이웃 영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두 영주는 서로 연합한 상태였다.

“로톤 강의 다리를 진작 밀었어야 되는데.”

“그 강이 아니면 오웰 남작가와도 싸워야 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강 너머에 있는 네패스 남작가와 왈트 자작가, 도미닉 남작가와 바이든 남작가까지.

네 곳의 영주 가문이 맞붙은 싸움은 남부 최초의 내전이었다.

그리고 너무 빠르게 결과가 나왔다.

옆에 있던 다른 영주들이 서로 눈치만 보던 사이에 이미 결판이 나버렸으니.

그 결과 왈트 자작가와 도미닉 남작가가 지워지고 네패스 남작가와 바이든 남작가가 남았다.

그에 영주들은 언제 네패스 남작이 넘어올지 두려워하면서 강을 경계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웰 남작가가 강을 지켰다.

두 영주의 입장에서 오웰 남작가와 싸운다고 다리를 방치할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오웰 남작가의 안전을 당분간 보장하며 대신 다른 한 세력을 상대했다.

그러나 오웰 남작가는 제 역할을 못 했고 결국 무너졌다.

“상대는 네패스 남작가뿐인 게 맞소? 바이든 남작가는?”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는 소식이 들어왔소. 바이든 남작은 네패스 남작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오.”

“동맹은 맺되 따로 행동한다는 건가?”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어리석은 짓일 수도 있었다.

상대가 뒤통수를 치면 그대로 무너지게 될지도 모르니.

그래서 두 영주들은 서로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의 뒤를 노리지 못하도록.

“네패스 남작가는 마법사 협회라는 배경이, 바이든 남작가는 마이어드 후작이라는 배경이 있으니.”

단일 세력으로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으나 둘에게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다.

마이어드 후작이야 남부 최강의 힘을 가진 대영주니 말할 필요도 없고, 마법사 협회도 만만치 않았다.

“제길! 배경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그래도 한쪽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겠소?”

바이든 남작가의 군대까지 함께 왔다면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리를 넘어온 건 네패스 남작가의 군대뿐이었다.

“뒤는 어쩌고 말이오?”

두 영주들이 연합해서 상대하던 존재.

원래 저 로톤 강을 영토로 두고 있던 로톤 자작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세월이 지나면서 로톤 자작가는 가문의 이름과 맞지 않게 강으로부터 조금 옆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던 게 오웰 남작가였고.

“이미 피해는 충분히 줬지만 로톤 자작도 알 것이오. 가만히 죽을 바에야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걸.”

로톤 자작은 이미 두 영주에게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솔직히 이틀 정도만 더 있으면 아예 로톤 자작의 목을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꿔서 말하면 적어도 이틀은 버틸 역량이 있다는 소리였다.

“대략 300명쯤 남았나.”

농노들까지 있는 대로 긁어모은 로톤 자작은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그걸 남겨두고 네패스 남작과 전투에 나선다면 후방을 노릴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병력을 둘로 나누자니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오웰 남작가까지 점령한 네패스 남작가의 세력은 자신들보다 월등히 컸으니까.

“며칠만 더 있었더라도.”

너무 아쉬운 타이밍이었다.

고민하던 영주 중 한 사람이 의견을 냈다.

“카이로스 백작에게 붙는 건 어떻소?”

“이제 와서? 그리고 마이어드 후작을 적으로 돌리는 짓이오.”

“다른 방법이 없지 않소?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지.”

“카이로스 백작은 마이어드 후작과 싸우느라 바쁠 텐데 지원을 줄 거 같소?”

남부에 여러 귀족 가문들이 있지만, 최후의 승자는 마이어드 후작과 카이로스 백작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그마저 마이어드 후작이 유력했다.

카이로스 백작이 괜히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나마 마이어드 후작에게 약점이라고 한다면 그가 고령이며 후계자가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당장 죽을 거 같지는 않았다.

“바이든 남작이 마법사 협회를 등에 업은 네패스 남작과 손을 잡았소. 마법사 협회가 마이어드 후작의 편을 간접적으로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지.”

바이든 남작과 네패스 남작 모두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약소 영주들은 그 둘의 손에 의해서 제압될 것이다.

“카이로스 백작이 순순히 당하지 않으려면 약소 영주들을 모아서 거기에 대항해야 하오.”

“그 인간은 그럴 주제가 못 되오.”

약소 영주들이 돌아가는 상황을 몰라 대영주들에게 붙지 않는 게 아니었다.

마이어드 후작이야 약소 영주들을 신경 쓸 필요 없을 만큼 거대한 세력이었다.

그리고 다음가는 세력인 카이로스 백작은 성격에 큰 문제가 있었다.

조곤조곤 자신에게 붙도록 설득하는 게 아니라 힘으로 겁박하면서 따르라고 시키니까.

그는 동맹이 아니라 복속만을 요구했고 그 때문에 약소 영주들은 카이로스 백작을 피했다.

“카이로스 백작은 폭군이나 다름없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주변에서 만류하지 않겠소?”

카이로스 백작이 마이어드 후작과 맞서려면 약소 영주들의 존재는 꼭 필요했다.

아무리 백작 본인의 성정에 문제가 있더라도 주변에서 그를 어르고 달래면 별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에 다른 영주는 코웃음을 쳤다.

“그대는 카이로스 백작을 직접 본 적 없는 모양이군.”

“발치에서는 봤소.”

“직접 말은 못 하지 않았소? 그놈은 개망나니요. 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때려죽일 놈이지.”

“그럼 어쩌란 말이오?”

“어쩌긴. 우리끼리 해결하는 수밖에 없소.”

영주는 비장하게 말했다.

* * *

“승리했습니다.”

로크가 깃발 두 개를 가져와 내 앞에 내밀었다.

오웰 남작의 영지와 인접한 다른 영주들의 깃발이었다.

이 둘은 서로 연합해서 로톤 자작과 싸우고 있었는데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하긴 오웰 남작도 어렵지는 않았다.

프레드라는 규격 외의 존재가 예상 밖이었을 뿐.

“덕분에 더 치밀해질 수 있었지.”

프레드 덕분에 큰 교훈을 얻은 나는 신중하게 전략을 계획했다.

상대가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고 있을 상황을 가정하고 언제나 나를 지킬 인원을 따로 선별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를 지킬 기사.

고르다 보니 나온 게 본래부터 네패스 남작가의 출신인 기사 일곱 명이었다.

실력이 조금 아쉽지만 3티어 영웅이 그리 흔한 것도 아니고, 일곱이나 되면 3티어 영웅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다음은 로톤 자작가로군.”

“쉬운 상대일 겁니다.”

로톤 자작은 이미 만신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방심하지 않고 정석적으로 로톤 자작의 영지를 포위하고 압박에 들어갔다.

세 곳의 영지를 더 차지하며 5개 영지만큼을 가졌기에 내 병력의 숫자는 어느새 1천에 이른 상태였다.

징집을 하지 않아서 이 규모지, 징집까지 한다면 더 병력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징집은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가뜩이나 왕국 상태가 개판인데.’

전쟁은 돈 먹는 괴물이다.

병력을 무장시키고 보급을 챙겨주는 것만으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크레시안 왕국은 마족과의 전쟁으로 이미 피폐해진 상태였다.

영주 가문을 털어도 나오는 물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치를 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지.’

네패스 가문의 혈족이 나 하나뿐이라서 다행이었다.

들어오는 재산을 모두 전쟁에 필요한 예산으로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 외에 휘하 병력들을 챙겨줄 보너스도 필요했지만 그건 VVIP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충당이 가능했다.

매일 조금이나마 들어오는 물자가 있으니.

적당히 모으다가 승전할 때마다 풀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다.’

나라가 가난한데 귀족이 부유해 봐야 얼마나 부유하겠나.

물론 영주 가문이란 게 장식은 아니지만 천 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려면 어지간한 영주 가문의 재력으로도 무리가 있었다.

“속전속결이다.”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레일리 왕녀가 세력을 키우는 걸 경계하고 있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서라도 싸움을 서둘러야 했다.

다행히 이런 변방에는 거대한 요새나 성은 없어서 수성이라고 해봐야 목책 정도를 두르는 게 한계였다.

그리고 그건 5티어 마법사인 내가 충분히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대영주들이라면 모를까, 약소 영주와의 싸움에서라면 5티어 마법사는 충분히 크랙이 될 수 있었다.

“저쪽이 로톤 자작령입니…….”

선두로 나서던 로크가 말을 멈췄다.

새하얀 깃발을 든 일단의 무리가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로톤 자작의 깃발이 있습니다.”

“항복인가?”

이상한 선택은 아니었다.

로톤 자작가는 싸우기도 전에 이미 두 영주의 연합을 상대로 만신창이가 되었으니.

그 두 영주까지 잡아먹은 나와 싸우겠다고 하면 휘하의 병력이 칼을 거꾸로 쥐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곧 항복을 알리는 전령이 다녀갔고 나는 로톤 자작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상대가 항복하겠다는데 굳이 피를 흘릴 이유는 없었으니까.

“네패스 남작이오?”

무장을 해제하는 절차가 끝나자 피곤한 행색의 로톤 자작이 소수의 기사들만 데리고 내 진영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는 지쳐 있었고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약속대로 귀족의 신분과 가문을 보존해 드리겠소. 그러나 영주로서의 권리 일체를 모두 나에게 넘기시오.”

“그렇게 하겠소.”

로톤 자작은 영지에 대한 권리가 적힌 문서를 나에게 넘겼다.

난 대충 내용을 확인하고 빅터에게 문서를 넘겼다.

어차피 내가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니 이는 베르타가 확인할 것이다.

“많이 지친 거 같군.”

“근래 들어서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소.”

“돌아가서 쉬시오. 나머지 절차는 행정관이 오고 나서 하지.”

일단 로톤 자작이 쉴 수 있도록 돌려보내고 그의 기사들을 살폈다.

혹시 쓸모 있는 영웅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전투 도중에 죽었는지 1티어 몇 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영웅 정보가 나오지 않는 자도 있었다.

얼굴로 봐서 과거 빅터처럼 정식 기사가 되기 전의 나이인 거 같은데 사람이 부족해 급하게 기사로 서임한 모양이었다.

“저놈 생긴 게 꼭 여자 같군. 아직 수염도 안 났잖아.”

나와 같은 기사를 본 라이언이 혀를 찼다.

“그럴 수 있지. 사람이 급했던 모양이다.”

난 라이언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런데 나와 라이언의 시선을 받은 기사가 얼굴을 붉히더니 대꾸했다.

“전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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