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33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3화
33화
* * *
프레드를 위시한 오웰 남작가의 기사들이 처음부터 매복을 결정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프레드는 다리가 점령되는 상황을 보고 즉석에서 기존의 작전을 수정했다.
네패스 남작가의 행보 때문이었다.
상류에서 강을 건너려는 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지원에 나섰던 그는 이내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었다.
‘다리의 폭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다리를 무너트리지 못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프레드는 지원을 멈추고 다급하게 다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미 네패스 남작가의 기사들은 다리를 거의 다 넘어온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는 싸워봤자 이길 수 없다는 게 분명했기에 프레드는 백부장을 비롯해 다리에 있던 병력들만 수습해서 퇴각을 결정했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
“마법사가 기사들을 데리고 물속에서 나타났습니다!”
백부장은 침착하게 자신이 봤던 상황을 설명했다.
무척 충격적이었지만 그렇기에 쉽게 잊히지 않았다.
“마법사도?”
굳이 마법사까지 위험한 적진으로 데려왔다는 건 마법사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프레드는 아군 마법사에게 설명을 부탁했고 그는 마나 실드를 사용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러면 강을 넘는 모습이 보였을 텐데?”
“네패스 남작이 보통 마법사가 아닌 모양이오.”
기사 둘까지 포함해 무려 세 명이나 강을 넘었다.
대범하게 해가 밝은 아침에 물로 들어갔을 리는 없으니 새벽을 틈탔을 터.
하지만 이는 물속에서 몇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마나 실드를 어지간히 크게 쓰지 않은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마나 실드를 쓰면 물의 저항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데…….”
지상에서 마나 실드를 쓰고 움직이는 것과 물속에서 움직이는 건 받는 저항이 천지 차이였다.
“그게 가능한가? 실드가 크면 클수록 물속에서는 움직이지 못할 텐데?”
“흠. 아마 물 안에서 다른 마법도 썼겠지.”
모든 마법사의 기본이 되는 마법, 마나 블래스트.
그 활용에 따라서 물속에서 움직이는 추진력이 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거대한 마나 실드를 물속에서 움직일 정도라면 그 마나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
“최소 지부장급 마법사요. 나 따위 삼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마법사는 상대가 협회의 지부장급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사실 그마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실력이 부족한 그는 자신보다 수준 높은 마법사들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정확한 한계를 모르고 있었으니.
“그만한 마법사가 있다고?”
“네패스 남작 본인일 확률이 높소.”
“남작이 직접?”
“원로님이 제자로 들일 만큼 재능이 엄청나다고 들었소. 이미 활약도 나름 했다는데.”
마법사에 대해서는 마법사가 제일 잘 아는 법.
프레드는 아군 마법사의 말을 믿었다.
같은 협회 소속이라고 해도 마법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해 주는 건 그들을 고용한 영주의 몫.
여기서 아군 마법사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고.
“남작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하다면…….”
프레드는 상대가 목책을 뚫으려고 할 거라는 것까지 예측해 냈다.
직접 위험을 감수하고 강을 넘어와 다리를 점령한 이다.
가까이에서 목책을 타격하는 것 정도는 다리를 점령하는 것에 비해 감수해야 할 위험이 훨씬 낮았다.
“분명 틈이 생기겠군.”
목책이 뚫리든 뚫리지 않든 남작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앞에 자리할 터.
프레드는 기사들과 함께 숲에서 매복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목책이 마법으로 공격을 받자 앞으로 나섰다.
이미 네패스 남작가의 병력은 목책을 뚫기 위해 돌격한 상황.
남작의 곁에 남아 있는 병력은 소수에 불과했다.
“지금이다!”
프레드와 기사들은 남작을 잡기 위해서 숲을 뛰쳐나갔다.
* * *
‘내 성향이 읽혔어.’
이제 네패스 남작가에는 나를 제외하고도 마법사들이 더 있었다.
그러나 강을 건너서 다리를 점령하기 위한 실력 있는 마법사는 나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다.
아무리 그게 가능한 게 나뿐이라도 일반적으로 영주가 직접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잘 없었다.
자칫 실패할 경우 물에서 죽거나, 다리가 무너질 때 휩쓸리거나, 적들에게 잡힐지 모르니까.
그러면 전쟁은 하지도 못하고 끝나는 거였다.
최고 지휘관인 내가 잡힌 것이니.
하지만 난 그 위험을 감수했다.
나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작전이 통한다면 돌아올 이득이 컸으니까.
다소의 위험 부담을 안더라도 이득을 위해서 나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그런 나를 파악한 모양이다.
“영주님을 보호해라!”
친위대로 남아 있던 병사들까지 나섰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용병들은 열심히 싸웠지만 열 명이나 되는 기사들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도망칠 수 있을까?’
달아나려면 베르타가 있는 다리까지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전에 잡힐 가능성이 컸다.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기사의 체력이 나보다 낮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서 싸운다! 마법사들은 벽을 만들어라!”
내 외침에 곁에 있던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대응에 나섰다.
무장한 기사를 해치우기에는 마법사들의 수준이 낮기에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한 벽을 만들라고 했다.
공격은 내가 하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빅터 경, 죽지 마라.”
“물론입니다.”
난 영웅 정보를 펼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를 찾았다.
‘이런 미친!’
그리고 기겁했다.
[영웅 정보]
이름 : 프레드
국적 : 크레시안 왕국
소속 : 오웰 남작가
유형 : 전투형
등급 : 3티어
칭호 : 뛰어난 기사
스킬 : 지휘(3), 검술(3), 기마(2), 방패술(2), 격투(1)
‘3티어 기사가 왜 여기 있어?’
다른 기사들은 별 볼 일 없는 1티어였다.
그러나 가장 선두에 선 기사는 내가 얼마 전 승급시킨 로크와 동급이었다.
아니, 아직까지 로크는 티어만 올렸을 뿐 스킬의 숙련도가 부족함을 고려하면 로크보다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네임드 장비는 없었지만, 무기는 ‘투사의 검’이라는 상등품이었다.
“마나 블래스트!”
난 서둘러서 프레드라는 기사를 공격했다.
콰앙!
한순간 프레드는 충격에 비틀거렸다.
그러나 쓰러지거나 밀려나지 않고 다시 거리를 좁혀왔다.
“파이어 월!”
“마나 실드!”
화르륵!
그때 뒤에서 마법사들이 대응에 나섰다.
앞쪽으로 불을 깔고 마나 실드를 펼쳐 상대의 움직임을 막은 것이다.
“어림없다!”
그러나 1티어에 불과한 마법사들의 저항은 3티어 기사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프레드가 휘두른 투사의 검이 번쩍이자 불길이 풍압에 갈라지고 마나 실드도 단숨에 깨졌다.
채앵!
결국 마지막 방어선이라고 할 수 있는 빅터가 직접 앞으로 나섰다.
“마나 실드!”
그런 빅터의 주위로 2티어 마법사 제이스가 방벽을 펼쳤다.
도미닉 남작가 소속이었던 그는 마법사들의 우두머리였다.
그러니 적어도 1티어 마법사들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3티어 기사만큼은 아니지!’
두세 번 정도 막는가 싶던 마나 실드도 결국 갈라지고 빅터는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더구나 상대 기사는 프레드만이 아니었다.
아직 아홉 명의 기사들이 불을 뚫고 넘어오고 있었다.
단지 프레드가 제일 빨랐을 뿐이다.
‘1티어 기사들이라면 마나 실드 하나로도 충분히 시간을 끌 텐데.’
내가 작정하고 버티면 1티어 기사들이 나를 에워싸고 공격해도 실드를 뚫기는 어렵다.
그러나 저 3티어 기사는 아니다.
내가 버티려면 프레드라는 기사만큼은 반드시 쓰러트려 놔야 했다.
촤악!
“큭!”
프레드의 공격에 어깨를 베인 빅터가 신음을 흘렸다.
콰앙!
프레드는 빅터가 틈을 보이자 빅터의 안면을 찍었다.
“크억!”
그렇게 빅터라는 벽까지 넘은 그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네패스 남작.”
난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마법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너무 방심했다.’
숲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매복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병사들이라면 용병만으로 충분히 대응이 되니까.
기사들이 몇 명 있더라도 용병들이 발목을 잡는 동안 빅터나 내가 협공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티어 기사라니?
내전 이전의 네패스 남작가처럼 사정이 나쁜 오웰 남작가에 저만한 전력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알았다면 기사 몇 명은 더 남겨놨을 것이다.
‘숲을 제대로 살피고 시작해도 되었어. 기사들을 조금 정도는 남겨도 되었고.’
전략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더 세세하게 살피고 신경 썼으면 됐다.
그러나 너무 서둘렀던 탓에 이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항복하시오. 그대의 패배요.”
“설마 오웰 남작가에 그대 같은 기사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럴 만도 하오. 난 마족과의 전쟁에 나가서 간신히 살아남은 몸이니. 잘 알려지지 않았지.”
무려 마족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라.
“남작도 훌륭했소. 다리를 점령한 과정을 듣고 놀랐지. 내가 아니었다면 그대가 쉽게 승리했을 것이오.”
프레드는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주변을 지키던 병사들은 뒤따라온 기사들에게 제압당했고 마법사들은 그저 내 곁에 있을 뿐,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말하기도 그렇지만 오웰 남작이 아니라 내 밑으로 올 생각은 없나? 너무 아까운데.”
“그대를 잡으면 네패스 남작가의 모든 것이 우리 영주님의 것이 될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소?”
혹시나 하는 회유는 역시 씨알도 안 먹혔다.
그래, 이 상황에서 굳이 그럴 이유가 없겠지.
“후.”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순순히 앞으로 나섰다.
“현명한 선택이오. 포로로서 명예롭게 대우해 줄 것을 내 이름을 걸고…….”
프레드와 적당한 거리가 나오자 난 준비했던 마법을 발동했다.
‘마나 실드, 마나 블래스트.’
콰앙!
마나 실드를 펼침과 동시에 마나 블래스트로 회전시켰다.
일전에 플레턴의 마나 실드를 뚫기 위해서 사용했던 방법.
마나 실드에 닿는 것을 그대로 갈아버리는 방식이다.
물론 3티어 기사에게 통할 방법은 아니지만 내가 방심했듯이 프레드도 마지막 순간에 방심했다.
“큭!”
회전이 가미된 마나 실드에 닿은 프레드가 밀려났다.
마나 블래스트는 쉽게 버텼지만, 불의의 기습에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방향도 문제였다.
마나 실드는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충격이 측면에서 들어간다.
‘지금뿐이다!’
마나 블래스트를 연달아 사용해 균형을 잃은 프레드를 넘어트리고 호신용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프레드에게는 갑옷과 투구 사이에 빈틈이 있었다.
퍼억!
“컥!”
그러나 프레드는 넘어진 상태로 발을 움직여 나를 걷어찼다.
힘이 제대로 실리지도 않은 것 같지만 단련되지 않은 내 몸으로는 견디기 어려웠다.
“쓰읍! 명예롭게 대우해 주려고 했더니…….”
아무리 내가 귀족이라도 이 상황에서 굳이 생포를 고집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생포하더라도 온전한 상태일 필요는 없었고.
프레드가 칼날을 나를 향해 겨눴다.
“팔 하나쯤은 각오해라.”
서슬 퍼런 살기와 함께 프레드가 한 걸음씩 다가왔다.
난 걷어차인 부위를 감싸며 보이지 않게 미소 지었다.
내가 미쳤다고 3티어 기사에게 칼을 휘두를까?
차라리 거리를 벌리고 다른 기사들을 견제하는 게 낫지.
굳이 마지막에 검을 뽑은 건 모두의 신경을 나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열 명이나 되는 기사들이 지금 모두 나만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
휘릭!
한 자루의 칼날이 맹렬하게 움직였다.
촤악!
프레드의 등에서 피가 튀었다.
나를 노려보던 프레드는 뒤늦게 자신이 베인 것을 인지하고 믿기지 않는 얼굴로 뒤를 돌았다.
“어, 어떻게?”
“일어나는 게 늦다, 빅터 경.”
“송구합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빅터가 프레드를 벤 것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빅터가 쓰러진 뒤 내가 준비했던 마법은 치유 마법이었으니까.
프레드를 공격해서 시선을 빼앗고 그사이에 빅터를 회복시킨 것이다.
온전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잠깐 싸울 수는 있도록.
‘절대군주는 전략 게임이다.’
정면에서 일대일이라면 모를까 기습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고티어 영웅이 저티어 영웅한테 맥없이 당할 수도 있다.
칼 맞으면 죽는 사람이라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리고 빅터의 검은 내가 직접 하사한 ‘영광의 검’이다.
루안이 만드는 네임드 장비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촤악!
빅터는 재차 검을 움직여 프레드의 목을 날렸다.
“이놈이!”
뒤늦게 오웰 남작가의 기사들이 빅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일 위협적인 상대는 해치웠지만, 아직 오웰 남작가의 기사들에게 포위된 상황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카앙!
“네놈들이 뚫을 수 있는 강도가 아니지.”
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나를 담아서 나와 빅터 그리고 마법사들까지 감싸는 마나 실드를 펼쳤다.
어차피 지금쯤 목책 너머에 있는 오웰 남작가의 진영은 쑥대밭이 되었을 터.
기사들이 죄다 이쪽에 있었으니 그쪽은 아주 손쉽게 승리를 거뒀을 것이다.
그러니 별다른 손실 없이 돌아와 여기에 있는 기사들을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으아아!”
기사들은 미친 듯이 마나 실드를 난도질했다.
지금 이걸 뚫지 못하면 자신들이 패배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는 걸 알기에 나 이외의 마법사들도 필사적이었다.
내가 두른 마나 실드의 위로 세 명의 마법사들이 연달아서 마나 실드를 펼쳤다.
깨지고 새로 만들어지고, 또 깨지고 새로 만들고.
마법사들이 마나가 바닥나서 쓰러질 지경이 되었지만 내 마나 실드만큼은 그 자리를 굳건하게 버텨냈다.
이윽고 돌격했던 나의 기사들이 되돌아오는 소리를 끝으로 오웰 남작가와의 전투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