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32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2화
32화
* * *
강 전체를 따라서 넓게 병력이 펼쳐져 있었지만, 핵심은 결국 다리였다.
그 때문에 오웰 남작가의 병력들은 다리에 가장 많이 배치되어 있었고.
난 그들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병력을 상류로 보냈다.
그러나 상류에서 병력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다리 밑바닥에 도착한 칼날도 있었다.
“이거, 이게 됩니까?”
로크와 라이언, 가장 실력이 좋은 기사 둘이 나와 함께했다.
그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물속을 거닐었다.
그렇게 특별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저 마나 실드를 사용했을 뿐이니까.
우선 물에 들어가기 전에 나와 기사들을 중심으로 가능한 크게 마나 실드를 펼친다.
그리고 병력보다 먼저 이동해 새벽을 틈타 강물로 들어간다.
여기서 감시하는 이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원, 나와 로크, 라이언만이 이동했다.
“공기가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도 아끼고.”
깜깜한 어둠 속, 그것도 물 아래에서는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헤매며 다리가 있는 곳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 때문에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다리 밑까지 올 수 있었다.
이후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과연 내 병력들이 상류에 적절하게 나타날까.
그리고 상류 쪽으로 빠진 틈에 우리가 다리를 점거할 수 있을까.
이게 완전한 첫 시도라면 어떻게 하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다.
‘절대군주에서는 익숙하게 했으니까.’
무장한 병력의 이동 속도는 대부분이 거기서 거기였다.
병종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나는 절대군주에서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하며 그 타이밍을 꿰고 있었다.
내 병력이 상류에 도달할 시간.
적이 그것에 반응할 시간.
물 밖으로 나가야 할 타이밍.
물론 게임과 달리 현실에서는 여러 변수가 있지만…….
‘실패하면 다른 계획으로 가는 거지, 뭐.’
적어도 시도해서 손해 볼 건 없다.
그리고 행운이 따라주었는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첨벙!
적들이 심지에 불을 붙이고 빠질 때에 맞춰서 우리 셋은 물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리를 폭발시키지 못하도록 신속하게 심지를 잘라냈다.
폭발의 충격을 우려해서 불을 붙인 병사들은 이미 달아나고 있었기에 방해꾼은 없었다.
그렇게 심지 제거가 끝나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나 블래스트로 물보라를 일으켜 화약을 모두 적셔버렸다.
“마, 마법사!”
제법 지위가 높아 보이는 이가 나에게 소리쳤다.
영웅 정보가 나오지 않으니 기사는 아닌 거 같고 백부장 정도로 보였다.
“아무리 마법사라도 어떻게 물속에서?”
“그걸 알려줄 이유는 없지.”
투각!
마침 타이밍 좋게 강 건너편에서 내 기사들이 말을 몰고 다리를 넘기 시작했다.
“마,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다리를 무너트려라!”
백부장의 신호에 맞춰서 오웰 남작가의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이미 화약에 물을 뿌렸지만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리는 오웰 남작가의 공작으로 약해진 상태일 테니까.
“막아!”
로크와 라이언이 달려드는 병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난 후방에서 마법으로 두 사람을 엄호했다.
루안이 만든 네임드 장비로 무장한 3티어와 2티어 전투형 영웅답게 평범한 병사들은 단칼에 쓰러졌다.
“크악!”
특히 대검을 휘두르는 로크는 상대를 갑옷 통째로 베어내는 괴력을 선보였다.
“이 양반은 또 언제 이렇게 강해졌대?”
라이언이 그런 로크의 모습에 질린 시선을 보냈다.
내가 로크를 3티어로 승급시킨 건 어디까지나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기에 실제로 다른 이들의 눈에 로크는 갑자기 강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이것이 납득 가는 상황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로크를 따로 불러내어 선물을 건넸다.
마법사 협회에서 받은 귀한 약이라고.
그러나 실제로는 흔한 약이었다.
기껏해야 감기에 걸렸을 때나 쓰이는.
이후 약효가 도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약을 먹이고 다음 날 승급시켰다.
갑자기 강해진 것에 로크는 놀라며 약을 더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난 원로인 플레턴이 하나 있는 귀한 약을 내주었기에 더는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물론 승급권을 구하려면 구할 수야 있었지만…….
‘부족하지.’
상점에서 승급권 사는 데 필요한 보주가 얼마인데.
나도 마음 같아서는 승급권을 마구 사서 휘하 영웅들을 죄다 5티어까지 올리고 싶지만 그건 무리였다.
“불화살! 불화살을 쏴라!”
기사들이 다리를 넘어오기 시작하자 상대는 더욱 다급해졌다.
심지에 불을 붙이는 확실한 방법 대신 멀리서 화약을 향해 불화살을 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마나 블래스트.”
난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쳐냈다.
후방에 있어야 할 마법사인 내가 괜히 이곳까지 온 게 아니다.
날아오는 화살은 직접 요격하고 필요하다면 마나 실드까지 사용해서 화약을 쓰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결국, 내 기사들이 다리의 절반을 넘게 되자 적 지휘관은 신음을 흘렸다.
이미 막을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진작 무너트릴 것을.”
그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적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달아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웰 남작가는 세력이 약하기에 가만히 있으면 결국 잡아먹힐 처지였으니까.
대영주가 아니라 주변의 이웃 영주들만 해도 충분히 두려운 상대였을 것이다.
“싹 쓸어버려라!”
마침내 기사들이 다리를 넘으며 로톤 강에서의 전투가 끝났다.
* * *
“성공하셨군요.”
상류에서 병력을 이끌던 베르타가 다리를 건너 합류했다.
시선을 끌기 위해 넘는 시늉만 하다가 적의 지원이 오는 걸 확인하고 내려온 것이다.
덕분에 별다른 피해 없이 다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기사들과 마법사 등 정예 병력이 이미 다리를 넘어온 상황이라 오웰 남작가의 병력은 이를 막지 못했다.
‘왔으면 피해만 늘었을 테지.’
희생을 늘리지 않고 물러난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강에서 정면으로 대치하면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했으니까.
“베르타 경의 활약도 훌륭했네.”
베르타는 행정관임에도 내전에서 적잖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접 농노들을 이끌고 바이든 남작가의 병력을 붙잡아 시간을 끌었었고, 이번에는 상류로 적을 유인해서 다리를 점거할 틈을 만들었다.
“저야 지시하신 대로 따랐을 뿐이지요.”
“그걸 잘 해낸 건 능력이지.”
이외에도 난 나와 함께 다리를 점령하는 데 힘쓴 로크와 라이언에게 공치사를 해주었다.
“그럼 베르타 경, 다리의 보수를 맡기도록 하겠네.”
추후 영지에서의 보급을 위해 나는 베르타에게 다리의 보수를 맡겼다.
화약을 걷어내더라도 이미 무너트리기 위한 공작이 있던 다리는 상당히 불안정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베르타와 일부 병력들을 다리에 배치해 후방의 보급로를 지키게 한 뒤 주력을 이끌고 전진했다.
“시작이 좋습니다.”
“결과도 좋아야지.”
다리는 성공적으로 점령했지만, 오웰 남작과의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이 땅은 오웰 남작의 영토인 만큼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을 것이다.
“와…….”
아니나 다를까,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여기에 요새가 있었습니까?”
어디까지나 나무를 엮어다가 세운 목책으로 된 진영이었다.
하지만 저런 구조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게다가 상대는 지형상의 이점도 갖고 있었다.
“완만한 편이지만 확실히 언덕이군요.”
올라가면서 싸워야 하는 상황.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우회할 방법은?”
“숲으로 들어가셔야 됩니다.”
“함정과 매복이 있겠군.”
정면으로 들어가도, 우회해도 불리한 상황.
그렇다면 뭐가 있을지 모르는 숲보다야 정면을 뚫는 게 나았다.
“로크 경, 기사단을 이끌어라.”
난 로크에게 기사단의 지휘를 넘겼다.
“용병들은 숲을 막아라.”
전투가 시작되면 숲에서 매복한 적들이 나올 수 있었다.
용병들에게는 그 적들을 상대하도록 명령했다.
“마법으로 목책을 날릴 수 있으십니까?”
“확신하지는 못하겠군.”
로크의 물음에 난 확답하지 못했다.
석벽이라면 아예 가망이 없다.
마법사는 공성 병기가 아니니까.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경우라면 뭉쳐 있는 적들을 휩쓸 수 있으나 단단한 성벽을 무너트릴 수는 없다.
그러나 목책이라면 시도해 볼 만은 했다.
난 5티어 마법사니까.
비록 장담하기는 어려웠지만.
“불을 지르는 건 어떻습니까?”
라이언이 화공에 대한 의견을 꺼냈지만 나와 로크는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목책을 지으면서 화공을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물을 먹이든 특수한 약을 먹이든.
어떻게든 불에 잘 타지 않도록 조치를 해놨을 것이다.
“그럼 결국 정면으로 무너트려야 한다는 소리군요.”
목책 위에 활을 갖고 있는 궁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에게 궁수들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문제는 기사들이 타고 있는 말.
‘마갑을 입힐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지.’
아쉽게도 말까지 모두 갑옷을 입히기는 어려웠다.
그만큼의 철도 없고 있더라도 장인들은 병사들을 무장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력이 부족했으니까.
아니면 보다 준비를 갖춰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남부의 내전이 먼저 끝날지도 몰랐다.
“일단 시도는 해보지.”
플레턴에게서 배운 이중 마법의 힘을 확인할 때였다.
마나 블래스트에 관통력을 높이는 윈드 불릿.
거기에 비전인 마나 가속으로 마력을 크게 높였다.
“적 마법사가 마법을 준비한다!”
아무래도 위력을 높이려고 하다 보니까 바로 공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당연히 상대도 이를 파악했고 마법사가 대응을 위해서 나타났다.
“마나 실드!”
마법사는 궤적을 읽고는 중간에 마나 실드를 펼쳤다.
그리 단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위력을 줄여서 목책만 지켜내도 되는 일이었다.
“이런, 마법사까지…….”
로크가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마나 실드까지 펼쳐진 이상 승산이 없어 보였던 모양이다.
콰콰콰!
“일단 보자고.”
나도 확신은 하지 못한 채 공격을 날렸다.
마법사가 펼쳐둔 마나 실드는 단숨에 찢기고 목책에 마법이 충돌했다.
콰쾅!
“으아악!”
막대한 충격에 목책 위에 있던 병사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엎어졌다.
콰드득!
목책도 버티지 못했다.
상대 마법사가 수준이 낮았는지 마나 실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목책에 큰 구멍이 생겼다.
“오오.”
“저쪽으로 가면 되려나?”
기사들이 그 모습에 감탄하며 눈을 빛냈다.
상식적인 선에서 목책을 뚫을 수 있는 마법사는 극히 드물다.
하물며 상대에게도 대응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아예 불가능했다.
그걸 내가 해냈으니 이미 내 활약을 지켜봐 왔던 기사들도 감탄할 수밖에.
‘나도 놀랐네.’
저쪽에 있는 상대가 플레턴과 같은 수준의 마법사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가이트 수준만 되어도 절대 안 뚫렸다.
거리가 멀어서 티어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1티어가 아닐까?
‘2티어면 애매했겠는데.’
통하는 걸 확인한 이상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나는 한 번 더 마법을 준비했다.
거듭된 마나 가속과 막대한 마나의 사용으로 큰 탈력감이 느껴졌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콰앙!
좀 더 구멍이 넓어졌다.
로크와 라이언은 곧장 눈을 빛냈고 난 그들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돌격해라.”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한바탕 해볼까!”
각자 한 마디씩 남기고 기사들이 선두에서 돌격을 시작했다.
기사들 다음으로는 병사들이 창을 쥐고 뒤를 따랐다.
상대도 대응하기 위해서 화살을 쏘았지만 생각보다 저항이 미미했다.
내가 날린 공격으로 목책 위에 있던 병사들의 대열이 무너진 탓인지 아니면 사기가 떨어졌는지.
이유야 어쨌든 승기는 잡았다.
“지금이다!”
그때 숲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한 무리의 병력이 용병들을 상대하며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웰 남작가의 기사입니다!”
숲에 있느라 말을 타지는 않았으나 무장 상태나 용병들을 압도하는 실력으로 봐서 틀림없는 기사였다.
유일하게 돌격에 나서지 않고 내 곁에 남아 있던 빅터가 검을 뽑으며 나를 감쌌다.
“설마 숲 쪽에 기사들을 배치해 뒀을 줄이야.”
지휘하는 기사야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숲에서 나오는 이들은 모두가 기사로 보였다.
그 수가 모두 열 명.
내가 후방에서 병력을 돌격시킨 틈을 타서 나를 잡으려던 게 분명했다.
“방어는 지휘관 하나만 두고 기사들을 다 이쪽으로 돌렸군!”
무척 파격적인 전략이었다.
설마 목책이 이렇게 쉽게 뚫릴지는 저들도 몰랐겠지만, 목책을 뚫으려고 병력이 빠진 틈을 타서 나를 잡으려고 한 것이다.
방어만 할 거라는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이건 안 좋아.’
한순간 내가 노출되고 말았다.
그리고 마법사는 본래 정면에서는 기사를 상대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