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영주님의 품격 30화
VVIP 영주님의 품격 30화
30화
【 두 번째 전쟁 】
생각보다 마법사 협회에서의 일정이 길어졌다.
어느 정도 수련을 할 생각은 있었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플레턴은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마나 실드!”
콰앙!
난 날아드는 플레턴의 화염을 새로 배운 마나 실드로 막아냈다.
“그새 아주 자연스러워졌구나! 가이트 놈은 배우는 데만 보름도 넘게 걸렸는데!”
화르르륵!
그러나 기뻐할 틈도 없이 뱀처럼 넘실거리는 화염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플레턴은 정말 날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미친 듯이 공격을 날렸다.
초반에는 적당히 하는가 싶더니 마나 실드를 익힌 뒤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방어 마법이 생기니까 도리어 망설임 없이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당히 좀 하시죠!”
난 제자리에서 묵묵히 견뎌내며 반격을 가했다.
플레턴의 바로 위에서 마나 블래스트가 쏟아졌다.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마나 파장처럼 마법사 특유의 감각이 그것을 인지해 냈다.
처음에는 이 감각이란 게 굉장히 무뎠던 나지만 요 며칠 동안 플레턴과 치고받으며 감각이 놀랍게 발달했다.
그래서 이제는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마법들도 인지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후웅!
‘뒤편!’
가령 지금처럼 내 뒤에서 날아오는 윈드 불릿이라거나.
쾅!
“큽!”
마나 실드는 결코 무적이 아니었다.
웅크리고 있는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서 마법 중에는 마나 실드를 뚫기 위한 마법도 있었다.
윈드 불릿이 그런 마법 중 하나였다.
회전을 통해 관통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마나 실드는 물론 갑옷을 입은 기사도 꿰뚫는 마법.
3티어 이상은 되어야 쓸 수 있을 만큼 어려운 마법이지만 4티어 플레턴은 이를 자유자재로 썼다.
“자, 그대로 두면 뚫릴 거다.”
이번에도 윈드 불릿은 연달아 날아들었다.
“이미 당한 것에 또 당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저번에는 연달아 쏘아진 윈드 불릿에 마나 실드가 깨지며 패했지만 이미 대책을 마련해 왔기 때문이다.
“마나 블래스트.”
윈드 불릿의 궤도에 맞춰서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하여 윈드 불릿의 궤도를 비틀었다.
“그걸로 되겠느냐?”
“마력 자체는 제가 더 높지 않습니까?”
상성으로 보자면 마나 블래스트가 윈드 불릿에게 유효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도 압도적인 출력, 마력으로 찍어 누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래서야 네가 먼저 지칠 거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반대편에서 윈드 불릿이 쏘아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나 블래스트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주변에 펼친 마나 실드에 마나 블래스트를 활용했다.
“무슨?”
회전에는 회전으로.
내 마나 실드를 회전시켜서 윈드 불릿이 가지고 있는 회전을 상쇄하고 튕겨냈다.
“이중 마법?”
한 번에 여러 개의 마법을 쓰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어디까지나 마나의 양과 집중력의 문제일 뿐, 3티어 마법사라면 한 번에 두 개나 세 개의 마법을 쓰는 이들이 흔했다.
그러나 결국 사용만 한 번에 하는 것일 뿐 각각 따로 쓴다는 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다중 마법은 다르다.
두 개 이상의 마법을 융합해서 쓰는 것.
정확히는 이를 통해서 마법의 성질을 융합시키는 것으로 여러 마법을 발현하는 것보다 높이 평가되는 기술이었다.
“벌써 이중 마법까지 익혔느냐?”
“아니면 답이 없으니까요.”
플레턴은 나를 상대로 이미 이중 마법을 넘어 삼중 마법까지 보여줬다.
융합된 마법은 그 위력이나 성질이 크게 변해서 단순히 마력만 믿고 대항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플레턴을 상대로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니까.
그러니 한 방이라도 먹이기 위해서는 나 역시 이중 마법 이상을 쓸 필요가 있었다.
“하, 역시 넌 영주를 그만두는 게 낫겠다.”
내 이중 마법을 본 플레턴은 느닷없이 영주를 관두라는 소리를 꺼냈다.
그만큼 내가 마법사로서 가지고 있는 재능이 뛰어나다는 의미겠지만…….
“차라리 마법사를 관두지, 영주는 못 그만둡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게 얼마인데.
더구나 마법사 협회는 분명 평민들 입장에서는 대단한 곳이지만 귀족 입장에서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돈도 권력도 다 귀족들이 독점하고 있는 세상.
마법사들은 자신들을 지킬 수는 있어도 귀족들로부터 권리를 가져올 능력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신분의 벽이니까.
‘마법사가 귀족이 되는 경우야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기사가 된 용병이 용병 시절을 청산하듯 귀족이 된 마법사도 협회 시절을 청산한다.
집단의 주축이 평민이거나 농노 출신이기에 나중에 발목이 잡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한 마법사 출신 귀족에게 들러붙는 이들이 흔한 편이기도 하고.
‘마법사라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용병 모두가 기사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마법사도 모두가 귀족이 되지 못한다.
극히 일부의 재능 있는 이들만이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나마 마족과의 전쟁이나 연이은 내전 등으로 그런 케이스가 많이 늘고는 있지만 그만큼 죽는 사람도 많았기에 마냥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쯧. 욕심만 버리면 얼마나 살기 좋은데.”
“욕심 좀 내면 제가 무엇을 이뤄낼 거 같습니까?”
플레턴은 마법사로서의 내 재능을 인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영주로서의 내 재능도 인정하고 있었다.
VVIP 시스템의 도움이 컸지만 결국 네패스 남작가는 도미닉 남작가를 집어삼켰다.
이 과정에서 입은 피해는 미미했고, 마법사 협회를 끌어들여 이후의 화도 면했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이 수련이 끝나면 나는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갈 심산이었다.
‘이전과는 수준이 다르지.’
이웃 영지들에게 노려지던 최약의 세력이 이제는 번듯한 영주 가문이 되었다.
좀 더 세력을 키우면 남부에서 이름 있는 가문이 될 수 있었고, 나아가 대영주 자리도 노릴 법했다.
마이어드 후작과 카이로스 백작의 대립은 내가 이용하기에 딱 좋은 틈이었으니까.
‘최악은 대영주들이 단합해서 약소 영주들부터 해치우는 거였다. 그런데 마이어드 후작은 그러지 않았지.’
카이로스 백작은 이웃 영지를 공격했지만 마이어드 후작은 평화 노선을 선택했다.
진짜 평화를 바란다기보다는 약소한 이웃 영주들보다 카이로스 백작이라는 대어를 잡는 게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게다가 어차피 약소 영주들의 세력을 통합하는 건 레일리 왕녀가 뒤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내가 아니었으면 레일리 왕녀는 4곳의 영지를 잡아먹었겠지.’
그리고 그 뒤로 빠르게 약소 영지를 먹어치우고 마이어드 후작의 세력에 합류한다면 카이로스 백작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 때문에 그 계획은 조금 틀어졌다.
겨우 왈트 자작가를 먹은 선에서 그쳤으니.
물론 왕가의 병력이 있는 이상 충분히 다음을 노릴 수도 있었으나 레일리 왕녀는 나를 끌어들이는 걸 선택했다.
마법사 협회를 얻어내는 쪽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중립으로 알려진 마법사 협회가 마이어드 후작의 편을 든다면 남부에서 카이로스 백작이 설 자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고 나서 남는 약소 영지들을 하나씩 집어먹으면 그만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진짜로 왕녀에게 고개를 숙인 게 아니었다.
왕녀가 가져가는 것들은 곧 내가 가질 수 없게 되는 것들이다.
그러니 왕녀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내가 얻어야만 했다.
“고집하고는!”
“스승님도 만만치 않으신데요!”
난 앞으로 뛰었다.
나이 때문에 플레턴은 싸우는 내내 제자리를 유지했다.
움직이기 힘든 몸이기도 하고 사실 움직임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뭐냐?”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거리를 좁혀서 플레턴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쩌엉!
몸이 닿기 전 서로의 마나 실드가 먼저 충돌했다.
“이중 마법이란 게 1+1이 아니라 2+1으로 쓸 수도 있더라고요.”
난 그 상태로 마나 블래스트를 사용해 내 실드와 플레턴의 실드를 동시에 회전시켰다.
문제는 두 실드가 접촉하고 있던 상태라는 것.
그 상황에서 급격한 회전이 붙은 마나 실드는 서로를 갉아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이잉!
마치 전기톱으로 쇠파이프를 잘라내는 것 같은 마찰음이 동반되었다.
듣기 싫은 소음에 플레턴이 인상을 썼다.
“상대의 마법에 이중 마법을 걸다니? 발상이 좋구나.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청출어람이지요.”
마나의 양도 마력도 내가 우위.
이대로 서로 힘 싸움을 하면 분명 내가 이길 것이다.
“그걸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만.”
번쩍!
일순간 시력을 앗아갈 만큼 밝은 빛무리가 눈앞에서 일렁였다.
그러나 마법사로서의 감각은 시야가 방해되어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 있게 해줬다.
“이런…….”
무려 3개나 되는 공격 마법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그것도 삼중 마법이었다.
마나 실드를 유지하면서 이 정도 숫자의 마법이라니.
‘동시에 4개를, 그중에서 삼중 마법까지 쓰다니.’
이 플레턴보다 강하다는 마족들은 얼마나 끔찍한 괴물일지 모르겠다.
콰콰쾅!
결국 다시 내 패배가 적립되었다.
* * *
“여기까지 하자.”
“네?”
바닥에 뻗어 있던 나에게 플레턴이 꺼낸 말이었다.
“아직 못 이겼는데요?”
“그 짧은 사이에 정말 이기는 게 가능할 줄 알았느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5티어 마법사였지만 플레턴의 세월을 넘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삼중 마법을 쓰는 플레턴에게 대항하려면 나 또한 삼중 마법을 쓸 수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곧 될 거 같았는데.’
이중 마법은 이제 상대의 마법도 이용할 정도로 익숙해졌으니 삼중 마법 하나만 남은 상태였다.
그것까지 익히면 플레턴이라도 이길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네 영지에서 소식이 왔다. 바이든 남작인가? 그자가 너를 찾는다 했던가. 그 때문에 기사들이 너를 데려가려고 협회 앞까지 온 모양이다.”
“그렇군요.”
아마 바이든 남작이 아니라 레일리 왕녀 쪽일 것이다.
내가 마법사 협회에 들어가고 나서 계속 소식이 없으니까 궁금해서 연락한 듯했다.
“일이 생겼으니 이제 나가봐야겠네요.”
“그렇지.”
“음.”
나는 잠깐 플레턴을 마주 보았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밤낮없이 어울리며 마법을 배우니까 이전과 달리 나름의 정이 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막상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까 시원섭섭했다.
내가 만약 아인 네패스가 아니라 그냥 마법사로 이 세계에 오게 되었다면 그대로 남았을지도 모를 텐데.
‘그래도 가야지.’
그리고 플레턴이 말한 마족과 싸우기에도 마법사인 쪽보다야 영주인 쪽이 나았다.
마법사가 되면 귀족들 눈치 보면서 싸워야 할 테지만 내가 군주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가보겠습니다.”
“그래라. 다음에 또 보자.”
“건강하세요.”
난 플레턴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플레턴은 내 뒤를 따라오지 않았다.
이후 가이트나 실론 등 안면이 있는 이들에게 적당히 인사를 했고, 건물을 나섰다.
협회의 건물 앞에는 무장한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기사단장 로크를 선두로 한 나의 기사들.
그중에는 라이언이나 터너, 빅터 등 네패스 남작가 출신으로 안면이 있는 기사들과 도미닉 남작가 출신으로 아직 다소 낯선 기사들이 있었다.
난 그들의 얼굴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마지막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분명 모두가 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내 사람 정도는 아낀다.
살릴 수 있다면 최대한 살려낼 것이다.
마족들에 대항할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적도 새로 생겼으니까.
“영주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대로 기사들을 이끌고 돌아가려는데 라이언이 나에게 바짝 다가서며 검을 빼 들었다.
“이 미친!”
돌발 상황에 기사들이 기겁했지만, 라이언은 그런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내 앞에서 새롭게 얻은 검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루안이라는 대장장이가 만든 건데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군.”
나는 장비 정보를 통해서 라이언의 새 무기를 확인했다.
자신만의 이름이 존재하는 네임드 장비였다.
“축하하네.”
“하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기사가 좋다니까요.”
“그래. 그럼 이제 기사다운 책임을 지도록.”
“네?”
“주군 앞에서 칼을 뽑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내 말에 라이언은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봤다.
기사들의 눈초리가 사나웠다.
특히 단장인 로크가.
“로크 경, 교육이 아직 미흡한 것 같군.”
“확실히 조져놓을… 아니, 교육하겠습니다.”
“그래. 신경 쓰게.”
같은 용병 출신이라도 모두가 라이언처럼 구는 건 아니었다.
라이언은 천성이었던 모양이다.
* * *
“드디어 떠났군요.”
가이트는 수련장에 혼자 남은 플레턴에게 다가왔다.
플레턴은 다소 창백해진 얼굴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떠셨습니까?”
“끔찍할 정도로 잘 배우더구나. 하마터면 체면을 구길 뻔했어.”
“그 정도입니까?”
플레턴과 아인이 수련장에 틀어박히다시피 한 사실은 협회의 마법사라면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플레턴이 승리하는 것 또한.
하지만 그와 별개로 마법사들은 플레턴의 제자인 아인을 상당히 인정하고 있었다.
마법사 협회에서 플레턴은 원로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니까.
그런 플레턴을 상대로 어느 정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인은 제 실력을 증명한 셈이었다.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기하기에는 너무 출중한 재능이다.
“소문은 충분히 났겠지?”
“물론입니다. 남부는 물론 협회 본부에도 소문이 자자할 겁니다.”
“그래야지. 협회를 잡아먹으려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플레턴은 그저 아인을 키우기 위해서 수련장에 틀어박힌 게 아니었다.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의 신분으로 이렇게 시간을 투자한 것은 아인의 영향력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였다.
“마법사 협회는 절대 특정 세력을 따르지 않는다. 협회는 오직 마법사를 위한 단체니까.”
하지만 그런 마법사 협회가 딱 한 번 한 사람을 따라서 움직인 적이 있었다.
인류의 명운을 건 마족과의 전쟁.
그곳에서 활약하던 인류 최고의 마법사를 위해서.
플레턴은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공식적으로 협회장은 존재하지 않지만, 최고의 마법사라면 협회를 가질 수 있다고.
그리고 아인에게는 그럴 만한 재능이 있었다.